여행후기

참좋은 여행을 통한 동유럽기행기 2

해암 송구호 2019. 4. 9. 10:33




7일(플젠) 2019년 03월 25일(월)[지역]플젠 - 프라하

 악몽을 꾸었다. 대가리가 둘인 뱀이 나타나 막대기로 때리다 보니 몸이 둘로 나눠지고 결국 죽이지 못하고 힘들게 사투를 벌이다 새벽 2시 30분경에 잠에서 깨었다. 꿈속에서 뱀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것이 영 찝찝하다. 봄철마다 해외여행을 다닌 지도 수삼 년 되다 보니 이맘때면 몸이 유럽 모드로 전환된다. 이 상태에서 간밤에 꾼 악몽으로 새벽에 잠을 설치고 말았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면 마땅히 할 게 없어 곤욕스럽다. 

 한낮의 폭염은 살을 아프게 하더니 아침 공기는 몸을 움추리게 만든다. 냉탕, 온탕을 넘나드는 기분이다. 살을 에이는 찬바람을 맞으며 찾은 곳은 바르톨로메오 성당이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가는 길에 '필스너 우르켈 맥주 박물관'이라며 인솔자가 알려줬다. 최근 체코의 자랑, 플젠의 자존심이던 필스너 우르켈 맥주회사가 일본 기업에 넘어갔다고 한다. 1842년부터 필스너 우르켈을 생산한 유서 깊은 도시 플젠이다. 체코의 자존심이라고 말하던 필스너가..                1295년 바츨라프 2세 시절 보헤미아 지방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이 건축됐다. 이외에도 레푸블리카 광장을 중심으로 중세 르네상스 양식을 갖춘 시청사, 프란체스코 수도회, 성모 마리아 교회가 있다. 체코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건축물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돼 있다. 저항보다 항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체코 사람들을 겁쟁이라고 놀린단다. 프랑스도 역시 독일에 항복한 것은 도시를 재앙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였다고한다. 도시가 유물인 나라는 앞으로 전쟁도 제대로 못하겠다. 

 유럽은 어느 곳을 가도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뾰쪽뾰쪽한 첨탑이 있다. 중세는 성당이 세상의 중심이었다. 하나님의 대리자가 속권을 쥐고 흔들던 때라서 신은 존귀해야 하고 높은 곳에서 위엄을 드러내야 했다. 그래서 성전은 모든 건축물보다 크고 웅장하게 지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성가족 성당은 130년이 넘었어지만 현재도 공사 중이다. 유럽엔 몆백 년 공사를 해서 지은 성당이 수두룩하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짓다가 무너졌다는 바벨탑도 무색할 만큼 하늘 끝을 향해 있다. 성당은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기 앞서 당대 권력자들의 무덤이었다. 신의 집에 머물면 천국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곳을 안식처로 정한 것이다. 공동묘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성당 주변이 무덤이다. 성당에서 가까울수록 힘 있던 자라고 보면 된다. 성당을 중심으로 해서 힘의 세기에 따라 무덤의 위치가 정해졌다니. 신도 과연 그렇게 생각했을까?

  식당의 위치가 먼저 정해져 있다 보니 때와 상관없이 식사를 한다. 11시 15분경 점심 식사를 하겠다며 한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도 문을 완전히 열지 않은 상태로 우리를 맞았다. 순두부찌개라고 하는데 찌개 속에 순두부가 보이질 않는다. 옆좌석에서 종교 팀 남자가 "거기엔 순두부가 들어있냐"며 우리 좌석에 놓인 순두부찌개에 숟가락을 넣어 휘~ 저어보고 "여기도 없네 하며" 돌아갔다. 나는 아침식사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밥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남들 밥 먹는 모습을  멀뚱하게 바라만 봤다. 다른 사람들은 보약 먹듯이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함께 식사를 한 종교 팀의 두 자매는 공주와 세종시에 각각 살고 계셨다. 언니는 서울에서 살다낙향 해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다며 자신의 집을 보여주는 데 사진 속엔 예쁜 처녀가 꽃밭을 가꾸고 있었다. 누구냐고 묻자 딸인데 가끔 내려와 집안일을 돌본다며 방송국 PD란다. 마흔이 넘도록 시집갈 생각을 않는다면서 내심 시집 안 간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것 같다. 노부모를 곁에서 살뜰하게 챙겨주는 것이 좋은가 보다. 자신의 옷도 딸이 코디를 해줬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다. 

 프라하 대통령궁도 검문검색이 공항에 들어갈 때 받는 수준으로 강화됐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는 테러가 원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대통령궁을 할리우드의 촬영 세트장 이라고 말하는 인솔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병헌, 하정우 등이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의 배우와 감독을 나열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엔 들어도 뇌가 주어 담을 용량이 못된다. 듣고 난 후, 곧바로 백지 상태가 되버린다. 

 여행 동선이 타 여행사와 비슷해서 그들과 자주 마주친다. 한국인을 만나면 반가워야 하는데 쑥스럽고, 계면쩍다. 먼 길 떠나 이곳에 온 이유는 우리와 다른 모습을 보러 온 건 데, 길 가다 그들과 조우하면 또 다른 내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관광버스를 타고 국내 여행을 할 때, 기사가 데려다준 곳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장소가 외지고 음식이 맛없다. 나는 식당과 운전기사 간 야로가 있기 때문이란 걸 한참 후 알게 됐다. 유럽여행을 끝마친 직후 시내에 나갔을 때 식당 주인이 관광버스 기사에게 사례비를 건네는 장면을 사직동사무소 앞에서 목격했다. 버스가 식당 입구에 도착하자 주차를 안내하는척하다 버스기사 곁으로 다가가 둥글게 만 지폐 뭉치를 건넸다. 은밀하게 건네고 당연하다는 듯 넙죽 받아 챙겼다. 뒷거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단체 관광객이 버스에서 내려 2층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 올라갔다. 그들은 오늘 서울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을 먹고 한국 음식 맛없다고 타박할 게  뻔하다. 추측해 보면 해외여행 중 현지식이라며 매 끼니마다 제공된 음식도 여행사와 음식점 간 커넥션이 존재했기 때문에 매번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됐고 번번이 맛없는 음식을 먹은 뒤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프라하 천문 시계탑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계가 시간마다 묘기를 부리기 때문이다. 시계 맨 상단엔 황금 옷을 입은 닭이 있다. 그리고 로마 글자로 표기된 숫자판 위에서 커다란 아날로그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돌아간다. 그 아래는 365일을 세분해서 날짜별로 성인이 표기돼 있어 아기가 출생하면 그날짜에 해당된 성인 이름을 지어준다고 한다. 그리고 유럽에서 따지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어 개개인의 운명을 점쳐주는 철학관 기능도 한다.

  시계의 양 옆으로 오른쪽엔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해골이 종의 줄을 잡고 있고 그 옆엔 키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서있다. 반대편엔 거울을 든 사람과 술병을 든 사람이 서 있다. 그리고 닭이 앉아있는 바로 아래엔 창문이 두개 있다. 시침이 3에 가 있고 분침이 12에 도착하자 해골 인간이 종을 친다. 그러자 양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와 동시에 창문이 열리고 예수의 열두 제자 가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 천문 시계탑 앞에 선 사람들이 닭 우는 소리를 듣기위해 기다리는 중>


마지막에 닭이 울면서 시계쇼는 끝이 난다.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은"시간 앞에선 누구도 장사가 없다. 너도 곧 나처럼 죽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고, 기타, 술, 거울은 사치와 타락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음주 가무와 사치, 향락에 빠져 살다 보면 곧 새벽이 온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새다. 즉 심판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때도 못 가리고 허송세월을 하다 보면 곧바로 관속으로 직행한다는 경고다. 

  올드 카를 타고 체코의 구시가지를 돌다 보면 본의 아니게 우리를 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올드 카를 보고 셧더를 눌러대는 것이다. 체코에서 올드 카는 유명 배우 못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차가 가는 곳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손을 흔들어 준다.  

  

 < 유명 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올드 카>


차가 멈추자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차 옆에 서서 사진 찍느라 정신없다. 정작 돈 주고 빌린 사람들이 추억의 사진을 찍지 못하고 서있게 되자 테니스 팀 아줌마가 화가 났는지 "왜, 우리 차에서 사진 찍고 난리야 !" 라며 화를 낸다. 프라하는 세계인들이 손꼽는 꼭 가보고 싶은 도시다. 

 밤이되면 프라하 광장은 불야성을 이룬다. 그리고 물가가 싸다. 딱 놀기 좋은 도시가 프라하다. 고대 건축물들이 도심 안에 가득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중세 시대에 와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심지어 바닥도 검은 돌로 포장돼 있어 로마 가도를 걷는 느낌마져 든다.

 프라하에서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처음 찾은 곳은 신발을 파는 가게다. 5층까지 전층이 신발을 파는데 아내가 신발을 신어본 후 상표를 살펴보다 "어 ~ 이거 중국산이네. 나가자." 라고 말한다. 중국의 물건은 이제 세계 어딜가도 볼 수 있다. 생산원가를 낮춰 박리다매(薄利多賣)로 공급하다보니 세계 공통으로 품질은 저 평가돼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당 헌장에 올린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세계를 하나의 띠로 묶어 과거 실크로드의 번영을 재현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중미 간 무역갈등은 작게는 동북아 패권을 놓고 힘겨루기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더크게 보면 세계 최강자의 자리다툼이다. 이 싸움은 승패가 갈릴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바닥 시장을 겨냥해 세계 시장의 활로를 만들었다면 향후 중국이 첨단 기술로 세계와 겨룰 날도 머지않았다. 

 화웨이 통신 설비의 수출을 유럽과 미국이 막고 있는 이유도 중국의 정보망이 세계 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함으로서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패권의 변화는 세계지도의 변화와 세계 질서의 이동을 의미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도록 등거리 외교와 외유내강(外柔內剛)을 바탕으로 한 실리 추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로마가 세계를 향해 질주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길을 놓는 것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길은 곧 소통의 역할을 하게 됐다. 교역로가 돼서 로마와 주변국의 물산이 모이고 흩어지는 역할을 했다. 전쟁 땐, 정복의 안내자가 되기도 했다.  반면 중국 진시황은 흉노의 노략질로 변방을 지키는 것이 어렵자 만리장성을 쌓아 커다란 벽을 만들었다. 이 전략은 중국을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지게 했고 "중화사상"이란 논거를 통해 불통의 길을 걸었다.

 시진핑의 일대일로는 중화의 틀을 깬 변화를 상징한다. 중국이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해서 뻗어가려는 의지의 표출이다. 미국은 캐나다 국경과 멕시코 국경에 쇠말뚝을 박고 있다.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난민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또 백인 우월주의를 부추기면서 미국 내 불법체류자를 강제 추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앞에서 로마와 중국 진시황의 사례가 현재 미국과 중국이 걸어가는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벽을 쌓고 있고, 시진핑은 길을 내려하고 있다.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여권과 지갑이 든 파우치 백을 도난당해 가까운 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했는데 사고 접수를 거부해, 프라하로 갔다. 그곳에서 조서를 써주면 자신들에게 무슨 불리한 것이라도 있나?  일행들은 사회주의 잔재가 남아서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지역 치안에 허점이 생기면 상급부대로부터 문책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결국 프라하에서 분실신고를 했고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물어 프라하 성이라고 대답했더니 그곳에 CC-TV가 있으니 거짓말하면 큰일난다고 겁을 줬다고 한다. 덩치가 산만한 인솔자도 순간 쫄았다고 한다. 

  저녁 식사 후 프라하 야경을 즐기려는 데 하늘 문이 열렸다. 프라하는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유일하게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거북스럽다. 이곳 날씨는 바람이 뼈 속을 파고들 만큼 매섭다. 군대에서 팬티 바람으로 벌을 설 때다. 선임하사가 눈가루를 몸에 뿌렸는데 면도 칼로 살을 베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맞은 비바람이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비바람이 치자 야간투어에 회의적인 반응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목소리 큰 사람은 곧장 숙소로 가자며 인솔자를 채근(採根)한다. 하지만 인솔자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야간투어 하지 않으면 컴플레인 들어와 안 됩니다. 일정대로 진행합니다."  요즘은 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다반사인지라 인솔자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카를 교는 고려 말엽인 1357년에 카를 4세에 의해 지어졌다. 이 다리엔 30개의 성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중 물의 수호신 얀 네포무즈키 성인에 대한 전설과 그가 볼타바 강에 던져진 장소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로 유명하다. 전설은 2가지가 있다. 그중 여행사에서 관광객들에게 흥미 위주로 말하는 속설(俗說)이 더 잘 알려져 있다. 바츨라프 4세왕 시대 왕비가 경비병과 바람이 나 임신하게 되고 그 죄책감을 못 이겨 얀 네포무즈키 성인에게 고해성사를 했는데 그 소식이 왕의 귀에도 흘러들어가게 되었고, 왕은 얀 네포무즈키 신부를 추궁해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밝혀내려 했다. 

 하지만 얀 네포무즈키 신부는 입을 열지 않았고 화가 난 왕은 그의 혀를 자르고 몸에 돌을 매달아 카를 교 중간쯤에서 블타바 강으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라에 좋지 안은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는데 어느 날 블타바 강 위로 5개의 별이 뜨고 그 별들이 떠있는 곳에 얀 네포무즈키 신부의 시신이 떠올라 시신을 성당에 안치하자 좋지 않았던 일들이 점차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온 나라에 퍼져 1729년 얀 네포무즈키 신부는 성인으로 추대됐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바츨라프 4세 왕 시대 교황청이 프라하에 있었는데 왕과 교황청이 끊임없는 분쟁으로 격돌하게 되자 왕이 대주교를 잡아들이려 하는데 대주교는 도망가 없고, 대주교 대리였던 얀 네포무즈키 신부가 죽임을 당한 채 블타바 강에 던져졌고 30년 후인 1729년 종교적 희생양인 얀 네포무즈키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이 두 이야기 중 후자 쪽이 더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흥미를 끄는 전자가 사실처럼 회자(膾炙)되고 있다.

 석상 17번과 19번 사이에 얀 네포무즈키 신부의 부조가 있다. 별이 다섯 개인 물의 수호성인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다 이뤄진다고 믿는다. 소원을 비는 방법도 있다.

우선 왼손을 별 위에 올려놓고 바닥에 버튼에 오른발을 올려놓은 후 블타바 강을 향해 소원을 빈다. 그리고 나서 얀 네포무즈키 성상으로 가 동판에 새겨진 신부가 순교하는 장면에 왼손을 올려놓고 똑같은 소원을 빌면 된다. 이때 왼손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아야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뒤로 보이는 다리가 카를 교 > 

 교사 팀 중 한 명이 소원을 비는 곳이 어디냐고 내게 물었다. 네 명은 학교 불교 동아리에서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나누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난 농으로 "종교가 달라서 빌어봤자 소용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배를 잡고 웃는다. 누구나 절박한 사연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심초사를 한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4%도 안 된다고 한다. 빈다고 안 될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더 쉽게 말하면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무작정 빌면 손바닥만 단다. 

 귀텔은 트램을 타고 버스 주차장까지 간 후 버스로 호텔까지 갔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호기심과 경계의 대상이다. 비록 관광객이라도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들 뇌는 우리를 보면서 나보다 약자인가, 강자인가를 따져보고 한편에선 웃을까? 아님 인상 쓸까? 아님 외면할까? 등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한가롭던 트램에 스물아홉 명이 떼로 탑승하니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8일(프라하) 2019년 03월 26일(화) [지역] 프라하 - 드레스텐  

 스프링(spring)은 튀다란 뜻을 지니고 있다. 싹이 돋아나기 때문에 봄을 스프링이라고 하나보다. 나뭇가지에 잎이 돋아나고, 넓은 벌판이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우리나라는 사방에 산과 아파트로 이뤄졌지만 유럽은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한편 도시로 들어서면 집들이 틈이 없이 이어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조망권, 일조권, 용적률, 건폐율 등을 따져 짓다보니 상하좌우로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유럽의 건축물은 벽과 벽 사이를 붙여서 짓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골바람을 막기 위해서다. 

 패키지 여행의 장점은 적은 비용으로 여행하는 나라의 가장 핫한 명소들을 콕 집어서 관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행사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은 치열해졌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도 있지만 가성비가 좋은 상품이 오히려 여행을 만족시킬 수 있다. 

 해외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가격 대비 여행의 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좋은 여행을 다녀보니 관광 일정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같다. 차이 점이 있다면 호텔이 차이가 난다. 힐튼에서 묵을 때 방이 몇 개 딸린 숙소를 혼자 쓰는 데 고독과 공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었다. 

  전날 비가 와서 카를 교를 제대로 못 본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번 가기로 했다. 다리 위엔 밤에 보이지 않던 풍경에 눈에 들어온다. 차가운 돌다리 위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채 모자를 내밀고 있는 걸인이다. 걸인 중엔 개를 품에 안고 개와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는 사람도 있다. 햇볕이 드는 곳이 있으면 그늘진 곳도 생기게 마련이다. 사연이 어떻든 간에 어느 나라를 가도 구걸을 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의 모습은 비루하고 남루하다.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라서 자주 단속을 나오지만 개를 보면 경찰관들도 단속을 못하고 되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사람보다 개가 불쌍해서 라고하니 아이로니컬하다.

  카를 교와 가까운 곳에 캄파 섬이 있다. 모래톱이 쌓여 생긴 작은 섬이다. 체코가 공산주의 체제였을 때 사람들은 벽에 존 레논의 노래와 그림을 그리며 자유, 평등 등을 기원했다고 한다. 존 레논의 노래 imagine 가사가 그들의 꿈이고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가사를 그대로 옮겨봤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 가사의 내용은 종교와 국가로부터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잃고 고통 받고 있는데 상상과 희망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라는 내용이다.) 벽엔 존 레논의 그림이 여러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희망과 꿈을 갖게 해준, 존 레논이 그들의 우상이기 때문이다.


                                < 캄파 섬에 있는 존 레논 벽이다.>

  드레스텐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하게 됐고 독일은 14주 후 최종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작센 왕국의 수도였고 바로크 미술의 결정체라 불리던 동독 드레스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베를린에서 남동쪽으로 189km 떨어진 작센 주의 주도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많아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린다. 도심 한가운데로 엘베 강이 흐르고 신구 시가지가 나뉘어 7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독일 맥주를 정통 술집에서 맛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호프집을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나름 분위기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테이블에 앉자 직원이 테이블 위에 놓인 초에 불을 붙여준다. 흑맥주 2잔을 시켜서 마셨는데 깔끔한 맛이 느껴졌다. 굳이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다. "이게 바로 독일 맥주지 ! 엄지, 엄지 척." 짧은 자유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인솔자 분침의 노예로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시계를 자주 들여다 본다.

 프라우엔 교회는 교회를 복원할 여력이 없어 폭격을 맞고도 오랜 시간을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폭격으로 부서진 잔해를 한곳에 모아두고 언제든 때가 되면 복구를 할 생각이었는데 이 도시의 공무원이 인터넷에 도움을 청했고 세계인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복원을 맡았던 건축가는 파편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이고 조각조각을 맞춰서 지금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성급한 마음에 도면대로 재료를 써서 빠른 시간 안에 재건축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건축물에 역사의 혼을 되살리려 했고 그 결과는 훌륭했다. 

  약속 장소에 가니 수원 팀이 신발을 사들고 왔다. GEXO란 브랜드로 한국에서 명품 반열에 올라 있다는 데 가격이 국내보다 절반은 싸다고 말했다. 집합 오 분 전, 아내와 인근에 있는 가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번개처럼 아내는 신발 한 켤레를 들고 나왔다. 인원파악 후 식당을 향해 가는 중에 수원 팀이 면세 영수증을 받아왔냐고 묻자, 눈이 휘둥그레진 아내가 열을 이탈해 신발가게로 뛰어갔다. 잘못하면 일행을 잃고 민폐가 될 여지가 있어 달려가는 아내를 불러 세웠다. 

 

9일(드레스덴) 2019년 03월 27일(수) [지역] 드레스덴 - 베를린 - 라이프치히

 동서 냉전시절 독일과 우리 나라는 분단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1990년 10월 03일 독일은 155킬로미터의 베를린 장벽을 걷어내고 동, 서독은 독일이란 단일국가로 통일을 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우방이다. 과거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재건과 경제 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었다. 혁명이란 멍에를 벗기 위해서 무엇보다 경제 발전은 국가 주도로 이뤄내야 할 혁명과업이었다. 

 미국이나 선진 여러 나라에 차관을 빌리려 해도 우리나라의 경제적 기반이 전무하다보니 거부 했다. 우방국가라고 굳게 믿었던 미국마저 외면할 때 독일은 우리나라에 흔쾌히 돈을 빌려줬다.  단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한다는 조건이었다. 삼시 세끼를 챙겨 먹을 수 없을 만큼 궁핍하게 살던 때 독일로 돈 벌러 가겠다는 젊은이들은 차고 넘쳤다. 그들 대부분이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과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는 야심을 갖은 사람들이었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전범국가다. 패전 후, 두 나라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가는 길은 서로 달랐다. 독일은 전쟁 피해 당사자들에게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정중히 사과하고 끊임없이 반성하며 피해 당사자들을 돕는 데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또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신들의 과오를 여과 없이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유태인 희생을 추모하는 공원에 갔을 때도 유치원 어린이들이 인솔교사의 안내로 현장에서 역사 교육을 받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독일 젊은이들에게 세계 2차 대전은 트라우마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장난으로라도 히틀러식 경례를 하면 현행범으로 붙잡혀 간다고 한다. 또 최근 나치당에 가담했던 구십 넘은 노인을 감옥에 보낼 만큼 나치 청산은 현재 진행형이다.


                           < 관을 형상화 한 유대인의 추모공원>

  이웃나라 일본은 독일과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1급 전범의 위패가 있는 신사에 정치인들이 집단으로 몰려가 참배를 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쟁 피해국과 보상 및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갈등을 빚고 있다. 한편으론 법까지 바꿔서 군사대국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망령을 되살리려 하는 중이다. 

 부국의 길을 걷는데 약탈만큼 손쉬운 게 없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고 있는 것 같다. 조어도, 독도 등 주변국과 분쟁거리를 만들어 놓고 자국령이라고 교육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 침략의 유전자(遺傳子)를 심어주는 것이다.

 베를린은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과 브란덴브르크 문이 있다. 분단 당시 서베를린은 육로가 동독의 땅을 통과하지 않고는 서독으로 갈 수 없었다고 한다. 땅을 이상하게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된 서베를린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구소련의 지령을 받은 동독의 작전은 8개월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때 미, 영국의 군용기가 밀가루와 석탄을 공수했는데 이 작전을 "하늘 다리 수송작전"이라고 한다.

 독일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지 30년이 돼가고 있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의도됐든 아니든 해프닝이 작용했다고 한다. 물이나 문화(文治敎化)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 게 마련이다. 서독이 동독보다 더 잘 살았기 때문에 동독의 젊은이들은 서독 문화를 동경했고 국경을 넘는 사례가 증가했다. 그리고 서독을 방문할 수 있도록 VISA 발급을 허용하라는 월요 시위를 벌였다.

 동독 정부는 각료 회의에서 'VISA를 발급받은 자'에 한해서 자유여행을 허가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다. 휴가를 다녀온 킨 터 샤브 스키 내무장관은 자유여행을 허가한다는 발표를 했고 외신 기자는 사실 확인 없이 신문과 방송사로 타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동독 시민들이 베를린으로 몰려나왔고 거센 인파를 막지 못한 동독 정부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VISA를 발급받은 자"란 말을 빼고 발표한 장관과,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타전한 외신기자 모두가 독일 통일의 일등 공신이 된 셈이다. 

 

<베를린 장벽에 구소련의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호네커의 명장면 Kiss다>


 베를린 장벽 중 일부는 아직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분단의 고통이 아직 멈추지 않은 우리에게 베를린 장벽은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분단이란, 언젠가 다시 만나야 될 사람들에게 "기다림"이란 형구를 씌워 놓고 그리움만 쌓는 가슴 시린 아픔이다. 남북이 분단된 지 71년째인 우리나라는 형제마저도 생존자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이미 긴 세월이 흘렀다. 

 독일이 통일 될 때 동서 간 격차가 커서 통일 비용이 많이 들었다. 특히 독일의 통일을 우려하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독일  침략 피해 당사국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비용도 적잖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와 북한의 경제력 차는 독일보다 훨씬 크다. 게다가 북한은 왕조국가라서 통일은 공염불(空念佛) 될 공산(公算)이 크다. 

  슈바르츠 발트(검은 숲)는 독일의 남서부 바덴 뷔르템 베르크 주에 있다. 로마시대부터 검은 숲은 유명했다. 신출귀몰(神出鬼沒)한 게르만족을 상대로 싸우느라 애를 먹은 곳이 바로 검은 숲이었다. 숲이 빽빽하고 울창해 낮에도 해가들지 않기 때문에 검은 숲이라고 불렸다. 독일인은 숲을 좋아한다. 헨델과 그레텔도 검은 숲이 배경이 된 동화다. 유럽 여행 중 도로변에 울창한 소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은 이곳에서 처음보았다. 베를린 시내조차 숲이 있는 걸 보면 정말 숲을 좋아하는 민족이란 생각이 든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겪는 2가지 고충이 있다. 첫 번째는 부족한 공중화장실인데 그 조차도 공짜가 아니다. 둘째는 음식점에서조차 돈 주고 물을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실도 진화를 거듭해 요즘엔 자동화가 되고 있다.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차단 장치가 있어 동전을 넣고 출입해야 한다. 동전 투입구에 돈을 넣으면 거스름돈과 함께 영수증이 나온다. 영수증은 휴게소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내면 50센트를 삭감 받을 수 있다. 

  물은 기사에게 1유로씩 돈 주고 사 먹는다. 인솔자는 '이왕이면 여기서'라고 말하지만 슈퍼에서는 절반 가격에 팔고 있다. 거기에다 잠자고 나올 때마다 1달러씩 매너 팁을 던져놓고 나온다. 그걸 에티켓이라고 한다. 목마르고, 오줌 마려운 것은 생리현상으로 참기 어려운 것인데 그걸 가지고 돈 버는 무서운 놈들이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으려면 커피숍이나 패스트 프드점에 가서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들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 오줌 싸기위한 소비다. 그들은 생리현상을 볼모로  소비를 유도하는 촉매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포장은 에티켓이라고 말한다. 

 현재 독일은 기민 당 대표인 엥겔라 메르켈이 4선에 당선되면서 16년 장기 집권을 하게 됐다. 독일은 대통령이 있지만 실질적인 국가 운영은 총리가 하고 있는 내각책임제다. 기민당은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의 약자다. 그 밖에도 독일 사회민주당, 좌파당, 녹색당, 바이에른 기독교 사회연합 등 얼핏봐도 무슨 종교 집단 같은 당이 많다. 메르켈도 아버지가 동독에서 목사였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독일은 기독교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루터가 있기 때문은 아닌지. 그분을 드레스텐의 푸라우엔 교회 앞 광장에서 보았다. 

  영국에서 시작된 굴뚝산업이 유럽에선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반면 한반도는 요즘 중국이 쏟아내는 국뚝 연기로 미세 먼지에 갇혀 고통을 받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재앙은 이미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산지대 살고 있는 주목군락이 60% 이상 사라졌고 향후 10년 이내에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가뭄이 원인아라고 한다. 올겨울엔 거의 눈이 내리지 않았다. 서서히 서서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생태환경은 악화 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개구리를 가마솥에 넣고 1도씩 온도를 올리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죽는다고 한다. 내일 닥칠 재앙(災殃)을 모르고 사는 우리도 가마솥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10일(라이프치히) 2019년 03월 28일(목) [지역] 라이프치히 - 뉘른베르그 - 로텐부르크

 음악의 아버지 바하의 활동무대였던 라이프치히를 떠나 뉘른 베르크로 향했다. 보따리 상처럼 가방을 쌌다 풀고 옮기는 일을 번복한지 9일 째다. 오늘은 버스에 타자 마자 비가 내린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사람 마음도 쉽게 변한다. 비가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일상에 쉼표가 찍히고 방구석에서 할일 없이 멍때리다 보면 사색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철학과 날씨는 무관치 않다고 한다. 활동적이냐, 정적이냐의 문제다. 태양은 활동적인 에너지를 끄집어 내지만 구름과 비는 사색의 주머니를 뒤지게 한다. 어둠은 영혼의 날개를 돋아나게 한다. 독일과 영국에 철학자가 많은 이유도 날씨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마틴 루터가 법률 공부를 시작할 무렵인 1505년 친구와 함께 빗길을 걸어가다 낙뢰를 만났다. 

그 낙뢰로 함께 걸어가던  친구는 즉사했다. 충격을 받은 마틴 루터는 신의 계시라 여기고 가족의 반대에도 아우구스 티누스 수도회들어가 2년 후 가톨릭 사제가 됐다. 가톨릭 교회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부당함을 느낀 그는 1517년 10월 31일 비덴베르크 대학의 교회당 정문에 95개의 반박문을 붙이고 종교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교황의 파문과 신성로마 제국의 추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수녀와 결혼까지 했다. 루터는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바르트 부르크 성에 은거(隱居)하며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며 보냈다. 기독교는 교황의 권위가 아니라 복음의 종교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기 위해서였다. 이후 30년 전쟁이 발발해 신, 구교 간 대립 전이 발생했다. 

 어제 베를린 장벽에 갔을 때 Who`s God ? she`s Black.이란 글귀를 보았다. 무슨뜻일까? 니이체가 한 "신은 죽었다."는 말이 생각 난다. 아니 로마의 시인 루크레 티아는 종교를 악마라고 했다.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하고 무차별적인 학살은 종교와 연관된 전쟁이었다. 인류문명의 쇠퇴기엔 종교가 흥성(興盛)했다. 반면 문명이 융성(隆盛)할 때는 종교는 쇠락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종교는 인간의 마음이 약해질 때 그들 마음 속을 파고들어 조종하고, 농락하는 것이다.

  뉘른베르크는 나치당의 전당대회가 열린 곳으로 유명해졌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은 패전국 독일에게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왔다. 600만이 넘는 실업자와 물가 폭등으로 사회는 점차 혼란이 가중돼갔다. 혼란 속에서 공산당과 나치당은 제복을 입고 민중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공작을 통해 공산당을 독일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뉘른베르크는 나치당이 매년 전당대회를 통해 독일에 전쟁의 불씨를 당긴 곳이다. 그는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강조한 반면 유대인은 증오의 대상으로 지구 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악의 뿌리라고 했다. 제복 입은 나치당원이 이 도시에서 세계를 훔칠 꿈에 부풀어 있던 때를 상상하면서 뉘른베르크 구 시가지에 '카이저부르크 성'에 올랐다. 도시는 평온하고, 고요했다.

  여행 전에 이미 독일에서 구매할 품목을 적어온 신혼부부의 제의로 DM(슈퍼마켓)에 갔다. 아주머니들은 보물섬에 보석꾸러미를 움켜지듯 진열장에 있는 물건들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중국 관광객을 욕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들의 꼴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로 공통된 물건은 비타민, 치약, 에센스 등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물건들로 국내 판매점과 가격 차이가 나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주워담기 바쁘다.

 도시를 잠깐 잠깐 들렸다 이동하는 게 깡총깡총 뛰어 다니는 토끼와 같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토끼여행이다. 오늘도 버스 속에서 4시간 30분을 이동했다. 로텐브르크 성은 30년 전쟁 때 이도시를 지키기 위해 3리터가 넘는 포도주를 원샷했던 누쉬(Nusch)시장의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30년 전쟁은 구교와 신교의 대립전이다. 

  에스파니아의 구교 지지세력이던 합스부르크 왕과와 보헤미아 지역의 개신교의 지지세력이던 제후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가톨릭 군의 지휘관 틸리 백작은 내기를 좋아했는데 로텐브르크 성을 함락한 후 만약 포도주 3.2리터를 단숨에 마시는 자가 있다면 도시의 약탈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술을 마실줄 모르는 누쉬 시장이 이 제안에 응했고 단숨에 들이킨 후 몇일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시장 때문에 이 도시는 약탈을 면했고 시민들은 시장의 용기에 감사하는 뜻으로

시청사에 시계탑을 세웠다고 한다. 



11일(로덴부르크)2019년 03월 29일(금)[지역]로덴부르크-뷔르즈 부르크-프랑크 푸르트

  뷔르츠 부르크는 로맨틱 가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맨틱, 로망, 로맨스 등은 로마와 연관된 표현으로 로마 문화와 삶을 닮고 싶던 유럽인들의 마음이 드러나있는 말이다. 마리엔 베르크 성은 들어가는 입구에 해자가 있다. 지금은 연못처럼 꾸며져 있지만 중세엔 도개교가 설치돼 지금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성문을 몇 개 지나야 한다. 벼랑 위에 성채가 지어져 천연 요새인데다 성문이 여러 개다 보니 방어를 위한 최적의 장소란 생각이 든다. 

  성을 둘러보고 나오다 맞은편을 바라보니 도심 뒤편 경사진 곳에 포도밭이 있다. 포도는 햇볕과 배수가 관건이다. 당도가 좋은 포도를 얻으려면 햇볕이 오래 드는 남향에 경사진 땅이 최적이다. 뷔르츠 브르 크는 공업도시이자 포도주 산지의 중심에 위치하며 철도와 수운이 발달했다. 

  프랑크푸르트는 여행의 시작점이자 여행이 끝나는 종점이다. 드디어 프랑크푸르트에 입성했다.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져 골목을 둘러보다 시선이 멈춘 곳은 헌팅캡을 파는 상점이다. 가격표를 들여다보니 제법 값이 나갔다. 명품인가? 모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데 아내가 내 손을 끌고 밖으로 나온다. 상점 여주인은 아쉬운 듯 내 뒷모습을 멀끔히 바라보며 내가 구매를 결심하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앞서 잔뜩 산 모자들이 내 발목을 잡고 말았다. 내 손을 잡아끈 아내가 서운하기도 했지만 안목이 없는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남들은 명품 명품 하는데 난 까막 눈이다. 결국 모자 사는 것은 포기했다. 다음 여행 땐 미리 알아보고 좋은 걸 골라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여행을 마무리하게 됐다. 매년 여행 때마다 패키지여행의 한계를 느끼면서 또다시 반복하는 것은 게으름이 첫 번째고, 두려움이 두 번째다. 낯선 땅에서 언어 장벽을 느끼며 자유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매번 자유여행을 포기하고 말았다. 여행 후기를 쓰는 동안이 그래도 즐겁고 기쁜 것은 숨가쁘게 지나쳤던 시간을 정지 화면처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90407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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