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음식 중 쌀국수와 월남쌈은 국내에 들어와 일상에서 자주 먹는 음식 중 하나다. 옌뜨 정식에서 먹었던 음식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베트남 음식을 이미 접했기 때문일 것이다. 닭고기와 돼지수육, 야채와 고기 국물, 감자튀김과 야채 순대, 죽순과 라이스페이퍼 등이다. 독특한 것은 라이스페이퍼를 따듯한 물에 담그지 않고 그대로 쌈싸 먹는 것이 우리나라와 달랐다.
둘째 날 저녁 때 한국식당에 갔다. 해외여행을 가면 국내에서 먹던 음식이 생각나는데 때마침 삼겹살을 무한리필 해준다고 한다. 베트남 돼지고기는 육질이 쫀득쫀득해서 식감이 좋았다. 상추도 양상추와 같이 부드러워 맛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3쌍은 애주가, 다른 3쌍은 건강파다. 나도 "더 나이들기 전 맨정신으로 살아보자."라는 생각에 요즘은 술을 멀리하고 있다.
한쪽 테이블에 애주가들이 앉고 가운데에 우리 부부가 그리고 끝에 건강을 생각해 술을 자제하는 사람들이 식사를 했는데 양쪽에 각각 한 명씩 여 아이가 고기굽는 일을 도왔다. 술이나 반찬을 가져오는 잔심부름까지 하느라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니 술기운이 오른 애주가들이 시원하게 팁을 주었다. 14살 정도 되보이는 꼬마아이는 기분이 좋아 입이 찢어지는데 건강파 아저씨들은 정신이 멀쩡하니 지갑이 잘 열리지 않았나보다. 팁을 못 받은 아이가 입이 뾰로퉁해진 채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음양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절에도 음의 기운을 나타내는 연못
을 파놓았다. 하롱베이로 이동해서 찾아간 마사지 투어에서도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받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음양의 조화를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선택관광 중 마사지가 총 3회 들어가 있다. 하롱베이에서 전신 마사지 2시간씩 2회와 하노이에서 전신 마사지 1.5시간을 받는 것이다. 마사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탐탁지 않았지만 일행과 보조를 맞춰야 하기때문에 군말 없이 받았다.
이번 마사지 체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마사지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받으면 행(幸)이고,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받으면 고(苦)라는 사실이다. 나의 경우는 첫 번째, 세 번째는 고(苦), 두 번째는 행(幸)이었다. 마사지사가 성글지 못하면 아프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살을 쥐어뜯고 힘자랑을 하듯 세게 눌러 고통만 안겨주는 것이다. 가이드는 중간에 맘에 들지 않으면 말하라고 하지만 그건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에겐 일이 서툴긴 해도 생계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자주 손님에게 퇴짜를 맞을 경우 실직할 수 있고, 150명이 넘는 직원들 중 선택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손님 기분에 따라 한 사람의 생계가 좌지우지될 수 있다.
초보자들은 자신이 하는 것이 못 미더운지 "괜찮아요?"라고 거듭 거듭 묻는다. "안 괜찮아 !"라고 답한 뒤, 가이드에게 말해서 "괜찮아요?"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도 알고 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면 숙련자들은 경락을 잘 집는다. 어느 곳에서 힘을 주고, 어느 곳을 만져야 손님이 시원한 느낌을 갖는지 잘 안다. 따라서 그들은 굳이 손님에게 따로 묻지 않는다.
하롱베이에서 받은 마사지와 하노이에서 받을 때는 약간 차이점이 있었다. 하롱베이는 침상인 반면 하노이는 굴절이 가능한 의자다. 마사지도 하롱베이는 손가락 힘만으로 하는 데 비해 하노이는 안마사가 손과 전신을 이용한 마사지를 하는 것이 다르다. 손힘에 의존할 경우 초보자와 숙련자의 차가 도드라지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마사지도 중독성을 지닌 것이라서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시원한 느낌을 위해 마사지숍을 찾는 것도 병이라고 본다.
호텔에서 숙소를 배정받고 들어가 짐을 푼뒤 씻으려는데 세면기 배수관이 빠져있었다. 저녁엔 그냥 잔다고 해도 다음날 세면을 못할 것같아 배관 연결부가 이탈된 상태를 사진을 찍어서 프런트 여직원에게 보여주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 즉시 다른방 키를 내줘 짐을 옮기는데 때마침 옆방에 부부와 그 일행들이 밖에 나가서 술 한잔 하려고 대화를 나누던 중으로 자신들이 시끄럽게 굴어 방을 옴기는 줄로 오해하고 "시끄러워 옮기는 거냐"며 거듭 물었다.
우리가 옮긴 방은 비좁고 불편했다. 괜히 옮겼나 ! 일순간 후회가 됐다. 다음 날 본래 자리로 옮겨야겠다 마음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녘에 화장실에서 들리는 굉음에 깨어났다.
창밖을 보니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도로도 일부 물에 잠겨 있었다. 폭우로 옥상에 불어난 빗물이 우수관에 유입되자 에어가 빠지면서 나는 소리로 천둥소리보다 더 요란스러웠다. 베트남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하롱베이 관광」인데 비로 취소가 되면 어쩌지 하는 우려로 계속 창밖을 내다보는 데 하수도에서 나던 굉음도 점점 잦아들고 빗줄기도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와 중국 계림의 풍광(風光)은 너무 닮아있다. 사실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계림을 갈까, 아니면 하롱베이를 갈까 고민했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둘 다 같은 줄기에 놓여 있고 생성 시기도 비슷하다고 한다. 석회암층의 융기로 만들어진 다도해의 모습이 중국과 베트남에 공존했던 셈이다. 내가 베트남으로 마음을 굳힌 것은 베트남엔 먹거리가 풍부하다는 말을 들어서다. 매년 중국을 여행했지만 음식이 기름진 것이 문제였다. 하롱베이는 중국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베트남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겉보기와 달리 지하경제를 이끌고 있는 자산가들이 많고 집집마다 골드바 한, 두 개는 쌓아 놓고 산다고 한다. 자주 겪는 전쟁으로 화폐보다는 실물로 금을 선호하기 때문이란다. 베트남을 게으르고 무기력한 후진국과 견주어 생각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중국, 프랑스와 미국처럼 강대국을 생대해 전쟁에서 승리한 저력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외세를 자력으로 막아냈다는 자부심은 미래 베트남의 강한 힘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현재 부를 누리는 층은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후손이라고 한다. 이 나라엔 정의가 살아있다.
<키스 섬>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후손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고 문맹자들이 많다. 해방 후 최 하위층으로 전락해서 궁핍한 삶을 산다. 해방 직후 만주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 요원들이 국내에 들어와 반민특위를 구성하고 친일파를 잡아들여 단죄하려 할 때 남한을 점령했던 미 군정이 친미 성향의 이승만을 앞세워 남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친일파를 감옥에서 끌어내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행정관료로 재기용하면서 우리의 역사는 크게 꼬였다.
지금 국회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자들이나 일부 행정부 공무원, 재벌들 중엔 친일행위를 한 후손들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군사독재자들의 비호를 받고 자란 악의 축이라고 봐야 한다. 패역한 자들을 심판하지 않은 상태로 지금까지 이어온 국가에서 정의를 찾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울림인지 우린 너무도 똑똑히 목도(目睹)하고 있는 것이다.
하롱베이는 3천여 개의 석회암이 융기해서 생겨난 섬이다. 맨틀이 서로 부딪치면서 응력에 의해 지각이 융기할 때 생겨난 섬인데 여기엔 전설이 전해저 내려오고 있다. 중국 군이 남침할 때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3천여 개의 여의주를 던저 물리쳤고, 그 여의주가 하롱베이의 섬이 됐단다. 하롱은 용이 내려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롱베이 관광은 우리 팀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선박(船舶)을 타고 약 5시간을 바다에서 유람하는 코스다. 하롱베이에는 2가지가 없다고 한다. 섬으로 둘러져 있어 파도가 없고 파도가 없어 갈매기가 살지 않는다고 했다. 선상에서 바다의 전망을 바라보니 황홀감이 든다. 킹콩 섬과 키스 섬은 특히 유명한 곳이다. 킹콩 섬은 영화에 나왔었고, 키스 섬은 "이 섬 앞에서 키스를 하면 잘 산다"라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알려져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물론 꾸며낸 말이겠지만 이곳에서 연인들은 키스를 한다.
키스를 마치고 섬 뒤로가면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키스를 통해 얻은 부산물이라고 가이드가 너스레를 떤다. 다금바리가 나왔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약 5분을 가자 쪽배를 타는 선착장이 나타났다. 모터보트로 갈 수 없는 곳을 가기 위해서다. 노를 저어 대략 3분을 갔을까? 바닷속을 들어가는 출입구가 나타났다. 항루원이라는 곳인데 항이 구멍이란 뜻이고, 루원은 숨다, 아지트, 은밀한 곳이란 뜻이다. 바다 한가운데 비밀의 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릉도원이 펼쳐진다.
사방이 병풍처럼 석회암석으로 뺑 둘러 쳐 있고 그 속안은 고요한 정적만 흐른다. 이 곳은 용왕이 살았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머물렀을 법한 곳으로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는 별개의 세상이다. 비가 와 해수면이 오르면 동굴문도 닫혀버린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항루원이다. 이곳엔 특별한 동물이 살고 있다. 일본원숭이로 성체가 된 것이 주먹만 하다.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원숭이가 대략 300마리 정도 된다고 한다. 가이드는 원숭이를 주려고 검은 비닐봉지에 바나나를 들고 왔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든 바나나를 보니 문득 몇 년 전 장가계를 갔을 때가 일어났던 사건이 기억난다. 장가계도 뾰쪽한 봉우리가 가히 장관을 이룬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고생대 살았던 암모나이트 화석을 사서 검은 비닐에 담아 들고 원가계로 갔다. 원가계(猿家界)는 원숭이들의 세상인데 가이드가 관광 중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만약 원숭이가 달려들어 물건을 빼앗으려 하면 주라"라는 거였다. 전에 물건을 안 주려고 버티다 원숭이에게 물려 병원비가 50만 원 넘게 들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원숭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일행이 들고 있던 검은 비닐을 빼앗으려고 습격했다. 체구는 작은 개만 한데 민첩성은 번개와 같이 빨랐다. 화석을 들고 가다 봉변을 당한 것이다. 다행히 원숭이에 물리지 않았다. 또 돌이라 무거워 원숭이가 들고 가지도 못했다.
항루원에 살고 있는 원숭이는 너무 작아 노략질을 할 수 있는 종(種)이 못 됐다. 작고 야리야리해 누군가 돌봐줘야 할 것 같은 측은지심(惻隱之心)마져 들었다. 배를 원숭이가 모여있는 곳 가까이 대고 가이드가 나눠준 바나나를 던져주는데 일부는 바다에 떨어져 빠지고 또 일부는 원숭이가 손으로 받아먹는 장면을 연출됐다. 어떤 원숭이는 무리에서 떨어져 먹이를 받아먹지 못하고 끙끙대는데 아마도 외톨이가 아닐까 짐작됐다. 동물 세계엔 왕따라는 게 엄존하고 적자생존(適者生存)이 불문율이다.
무릉도원에서 나와 다시 스피드보트에 올랐다. 가이드가 "한번 즐겨볼까요?"라고 말하자 일행들이 함성을 외치며, 기다렸다는 듯 격하게 반응한다. 곡예비행처럼 스피드보트는 빠르게 물살을 가르고 질주하면서 선장이 몸을 좌, 우로 크게 비틀며 핸들을 꺾자, 선장의 몸이 기우는 방향으로 쏠리는 롤링(Rolling)현상이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와 ~ , 까르륵, 까르륵" 소리가 터져 나온다. 스피드와 롤링을 즐기는 스피드보트는 전복 위험성을 염려해 선택관광에서 제외하려 했는데 바다에 파도가 없으니 내 생각은 기우(杞憂)였다.
웃으면 젊어지고, 젊어졌으니 팁을 줘야지! 처음 보트를 타기 전 선장에게 줄 팁을 1달라씩 걷웠는데 기분이 좋아진 일행들은 보너스 팁을 주려고 여기저기서 지갑을 연다.
'여행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여행기 4 (0) | 2019.06.19 |
---|---|
베트남 여행기 3 (0) | 2019.06.19 |
베트남 여행기1 (0) | 2019.06.18 |
참좋은 여행을 통한 동유럽기행기 2 (0) | 2019.04.09 |
참좋은 여행을 통한 동유럽 기행기1 (0) | 2019.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