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참좋은 여행을 통한 동유럽 기행기1

해암 송구호 2019. 4. 8. 21:39




1일(인천) 2019년 03월 19일(화) [지역] 인천 - 프랑크 푸르트 - 뮐도르프

 오스트리아 알프스산맥을 중심으로 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6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이래로 유럽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서 세계인이 동경하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여행 코스도 영화를 찍었던 장소를 중심으로 짜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는 곳도 사운드 오브 뮤직을 찍었던 명소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11시간 15분을 비행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은 유럽 어느 공항보다 질적이나 양적으로 더 우수해 출입국 심사 중에 기죽을 일은 없었다. 독일은 유럽 국가 중, 공항에서 입, 출국 심사가 까탈 하기로 소문났지만 입국 절차가 순조롭게 끝났다. 

  입국장을 나와 화물 찾는 곳 앞에서 인원 체크를 하는데 31명 중 1명이 없어 인솔자가 수신기 마이크로 이름을 불러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인솔자가 공항 여기저기를 찾아 헤맨 끝에 1시간가량 지나 입국장 내에서 찾았다. 지능이 모자랄지 모른다는 생각은 우려였다. 그녀는 불만이 쌓인 상태로 여행을 온 듯하다.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뽀로통한 표정만 보였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5시간 30분을 더 가야 한다. 유럽여행은 체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노새, 노새 젊어 노새. 늙어지면 못 노나니."란 가사말이 딱 맞는 말이다. 늙으면 자기 몸 하나도 돌보지 못하니 여행은 돈 많아도 못한다. 커다란 짐가방을 끌고, 인솔자의 깃발을 보면서 쫓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끝나는 날까지 깃발을 바라보며 군중 속을 헤쳐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 잠시라도 한눈팔면 일행을 잃고 낯선 곳에 홀로 표류할 수 있다. 

 게다가 연령층이 다양해서 서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요즘 말로 에티켓도 챙겨가야 하기 때문에 눈치껏 알아서 민폐가 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그룹이 지어진 경우 숫자가 많은 쪽이 여행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경우, 기분상하더라도 잘 참고 견디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첫째 날은 비행기와 버스를 타고 숙소를 찾아가는데 장장 16시간 30분을 꼼짝 않고 앉아서 갔다. 엉덩이, 허리에 다리까지 쑤시고 아프니까 옆에 앉았던 짝들은 서로 빈자리를 찾아서 떨어져 앉는다. 다리를 뻗고 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플라자 호텔 뮐도르프 암인(plaza hotel am inn)이 첫날 묵을 호텔이다. 독일 지역인데 오스트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닌듯하다. 둘째 날 여정이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될 테니 말이다.

  

                  < 독일 뮐도르프에 플라자 호텔 뮐도르프 암인(plaza hotel am inn) >


2일(뮐도르프)2019년 03월 20일(수)[지역]뮐도르프-잘즈카머구트-할슈타트-잘츠부르크

 삼월 중순은 꽃샘추위가 기성을 부리는 시기다. 요즘엔 꽃샘추위도 약해진 것인지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날씨가 포근한 편이다. 가끔씩 가랑비와 함께 남미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뼛속까지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햇볕이 내리쬐면 뜨거운 열기로 창가에 앉는 것이 힘들 정도다.

  잘츠 카머구트는 잘츠부르크 동쪽에 위치한 호수 지역으로 앞으로 알프스산맥이 보인다. 이곳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장면에 나왔던 산이 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배는 출발하자마자 속도를 줄여 360도 회전한 후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시범운행도 아니고 도대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유람선 관광이 어디 있을까?  점심 식사는 현지식으로 나왔다. 현지식이란 게 고작 감자 서너 조각에 닭 가슴살을 익혀서 소스와 함께 먹는 간편 요리다. 


  < 알프스 산맥이 눈에 덮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다. 4인승 케이블카로 15분을 타고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서 앞을 바라보니 알프스산맥과 설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내가 고산을 정복하고 정상에 우뚝 서있다는 착각이 든다. 이곳에 사는 현지인들은 스키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남녀노소(男女老少) 할 것 없이 스키를 신고 정상까지 걸어와  가파른 언덕을 내려간다. 우리나라의 상급자 코스보다 경사면이 더 가파른데 그들은 오래전부터 스키를 탔기 때문인지 산 비탈을 내려가는 데 거침없다.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까지는 거리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오스트리아는 알프스산맥에서 발원하는 빙하가 녹아서 계곡을 타고 흘러 만들어진 호수로 칠십여 개나 된다. 할슈타트도 그중 하나다. 잘츠란 소금을 뜻한다. 할도 현지어로 소금이란 뜻이라고 한다. 산에 소금이냐고 하겠지만 알프스산맥은 오래전에 바다가 융기해서 만들어졌다. 물은 빠지고 염분이 산에 남아서 쌓인 것이 소금광산인데 이곳에 소금광산이 있었다고 한다. 남자들은 산에서 소금을 캐고 여자들은 소금을 날랐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조각상은 소금을 나르는 여인인데 제주도에 물 항아리를 짊어진 여인의 조각상과 닮았다. 

 

  < 할 슈타트에서 할은 소금, 슈타트는 창고란 뜻이다.>


당시 남녀가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세계에서 최초로 유아원을 운영했다고 한다. 마을은 육 년 전과 비교했을 때 관광지로 크게 탈바꿈돼 있었다. 산 아래 목조 가옥을 짓고 사는 이곳 사람들이 관광객이 몰려들자 장사에 눈을 떠 도로변 주택은 기념품 가게와 술집으로 바뀌었다. 물론 현지인은 장사꾼들에게 집을 팔고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돈이 움직이는 곳엔 젠트리 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필연적이다. 잘츠 캄머굿에서 관광 후 헌팅캡 2개를 구입했다. 그리고 시내에서 3개를 더 샀다. 별로 비싸지 않아서 마구마구 샀는데 사놓고 보니 너무 싸구려를 잔뜩 산 것 같아 마음이 그닥 편치 않다.

 이튿 날은 Austria Trend Hotel Salzburg West(오스트리아 트렌드 호텔 슬래브 버그 웨스트)에서 묵었다. 호반의 도시답게 호텔 객실에 백조 그림이 걸려있다. 호텔식은 빵, 치즈, 쏘시지, 요구르트, 토마토, 야채 쎌러드, 계란, 사과, 오렌지, 우유, 콘프레이드, 오이가 주로 나온다. 아침식사는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을 들고 오면 테이블에 한가득이다. 옆 좌석에서 식사하는 유럽인들이 우유에 빵 한 조각을 띁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3일(잘츠부르크) 2019년 03월 21일(목) [지역 ] 잘츠부르크 - 멜크 비엔나

 미라벨 정원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송을 불렀던 곳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정원 뜰을 구경하기 위해 들린 곳은 아침 햇살이 연극 무대의 핀 조명처럼 정원 한구석을 비추는데 아침 찬공기와 더불어 삭막한 분위기다. 오래전 도레미 송을 촬영했다는 돌계단도 세월의 때가 묻어 칙칙하고 볼품없다. 정원을 관리하는 인부들이 봄에 핀 꽃들을 옮겨심기 하는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다. 보리수나무는 가지치기로 일정한 모양을 했는데 아름답다는 생각보다 기형적 모양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뭇잎이 없어 더욱 초라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 사운드 오브 뮤직, 도레미 송을 부른 돌 계단>


호헨 잘츠부르크 성으로 가는 길에 자색 목련이 꽃봉오리를 봉긋하게 드러낸 모습이 아름답다. 하루만 지나면 만개하여 꽃잎이 벌어질 덴데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도보로 성을 오르는 길은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요즘엔 케이블카가 놓여 5분이면 성에 도착할 수 있다. 성에서 멀리 보이는 알프스산의 백설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남자 주인공 폰 트랩 대령의 생가도 보인다. 

 성채 안에 고목이 작년에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베어진 고목의 나무토막이 성채에 전시되어 있고 고목이 서있던 자리엔 작은 나무를 심어 놓았다. 400년 후에 또 누군가의 쉼터가 될 것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이 마을은 매년 11월 24일부터 1달 동안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린다. 그리고 5월부터 8월까지는 음악 폐스티벌이 열려 도시가 시끌벅적한데 3월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게트라이데 거리에는 음악의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다. 대부분 관광이

 외관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보니 이곳 역시 그집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게트라이데 거리는 철제 간판으로 유명하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간판을 보면 무엇을 파는 집인지 알 수 있도록 잘 표현했다. 우산 파는 집, 칼 파는 집을 간판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 게트라이트 간판 거리 / 우산 파는 집>


 오스트리아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모차르트가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광 명소라고 해서 가는 곳이 뻔하기 때문에 나온 우스게 소리다. 심지어 초코릿도 모차르트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 모차르트를 내세워 광고효과를 극대화 하려는 것 같다.

  관광 중간에 기념품점에 들렸다. 인솔자는 이곳에서 호구 손님들이 물건을 많이 사줘야 안심을 한다. 현지 상점은 교포들이 운영을 하는데, 웬지 여행사와 동업자 관계처럼 느껴졌다.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사면 후해하고 먹으면 실망하게 되는 웃픈 현실의 딜레마다. 여행 상품 가격이 싸면 수지를 맞출 대체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발생된 현상일 것이다. 

 장사꾼이 밑지는 것 봤나? 때론 여행객이 기념품점에서 볼모가 되기도 한다. 춥다고 "언 발에 오줌 싸는 격"으로, 싼 맛에 온 여행이 자의반, 타의 반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여행사는 돈 안드는 공원, 광장이나 사원 중심으로 관광 일정을 짜 놓았다. 

 문제는 내가 경험한 것이 유럽의 알맹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과 먹었던 음식들은 가장 유럽적이지 않을 수 있다. 어디를 가든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보자면 마치 이웃집에 마실 나온 기분마저 든다. 또 다른 문제는 인솔자가 전해주는 이야기와 현지 가이드의 말이 서로 달라 누구 말이 옳은지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여행을 마친 후 갔던 곳을 되짚어 보려 해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또한 패키지여행의 특징이다. 오직 사진만 남는다. 

  중국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신혼 부부팀과 모녀 팀이 동석을 했는데 모녀 팀 중에서 딸이 여행을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끌려온 느낌이 들 정도로 표정이 뾰로통해 있다. 밥도 엄마가 '먹어라, 먹어라 해서 겨우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밥을 먹고 난 뒤에도 표정은 어둡고, 행동도 좀 이상했다. 우리와 함께 있는 공간이 불편하다고 느꼈는지 식탁 위에 놓인 붉은색 컵 받침대를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갈기갈기 찢었다. 

 잘츠부르크에서 멜크까지는 버스로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서울에서 대전 정도 거리를 차로 이동해야 한다. 여행이 마치 숙제를 하듯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인솔자는 사감 선생님처럼 여행객의 머리 숫자를 헤아리고 이상 없는 걸 확인한 후 출발한다. 멜크 수도원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무대이기도 하다. 여행 전 소설을 읽고 독후감까지 썼다. 그리고 손 코넬리 주연의 영화도 몇 번 봤다. 게다가 몇 년 전에 왔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로마 역사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기 때문에 소설의 줄거리는 이해가 쉬웠다. 하지만 멜크 수도원과 소설 속 공간이 서로 매치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 속에서 나왔던 수도원이 그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이곳에서 한 수도사의 일기를 보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멜크 강과 도나우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멜크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멜크는 로마군의 군사 주둔지였으며 976년~ 1106년까지 바벤베르크 왕조의 수도였다. 

 멜크 수도원은 1089년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2세가 자기의 성 중에 한 곳을 림바흐 수도원의 수도사들을 위해 기증한 것이 멜크 수도원의 기원이다. 멜크 수도원에는 10세기부터 전해지는 1,800권의 필사본을 비롯해 10만 권의 장서가 있으며 대리석 홀과 도서관 천정에 파울 트로 거의 유명한 프레스코화가 보존되어 있다.


             < 멜크 수도원은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에 배경이 된 곳이다.>


 멜크 수도원은 아직 동면 중이었다. 우리가 도착 후 5분 정도 뒤에 건물 관리인이 나와서 우리를 안내하면서 잠긴 문을 일일이 열어주고, 또 다시 잠그는 일을 반복했다. 비수기라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평상시 문을 잠가 놓기 때문이다. 관리인이 문 앞에 서있기 때문에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대충 보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주교들의 예복과 재활용 관(棺)이다. 화려함과 검소함의 대비다. 

 멜크에서 다시 비엔나로 돌아오는데 1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저녁은 한국 식당에서 육개장을 먹었다. 모녀 팀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오지 않았다. 딸이 식사를 거부하면서 집에 가자고 떼를 쓴 모양이다. 두 사람은 음악회를 예매한 상태였는 데 딸이 안 가겠다고 고집부려 혼자 갈 생각이란다. 다행히 인솔자가 티켓을 절반 가격에 반환했다며 돈을 건넸다. 딸이 왜 그렇게 집에 돌아가려는지 묻자, 별것 아닌 데 힘들어한다며 속말을 꺼냈다. 

 딸이 직장을 그만둔 후 취미로 목공을 배웠는 데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 운영하다 보니 수업을 대충 얼버무리는 경향이 있었단다. 이점을 그녀가 지적했고, 이후 목공 수업을 계획표대로 마치면서 쫑파티까지 하고 헤어졌는데 단톡 대화방에서 딸을 두고 누군가 미친년이라고 했고 그 문자를 본 후 이성을 잃은 채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여행 출발 2일 전 딸은 여행을 포기하지고 했고, 엄마는 비용을 돌려받지 못하니 오자며 다툰 후 불편한 감정으로 비행기를 탔단다.

  저녁식사 후 음악회에 가는데 인솔자는 꽃보다 할배에서 김 용권 씨가 음악회를 본 후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며 우회적으로 참여를 권해도 아무 반응이 없자, 끝난 후에 CD도 준다고 미끼를 던져보지만 가겠다는 사람은 없다. 결국 음악회에 갈 최종 인원은 수원에서 온 수영팀, 부산에서 온 교사팀과 모녀팀 중 어머니로 8명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 시내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우리는 성 슈테판 성당 주변을 배회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음악회가 끝나갈 무렵 공연 관람자들과 함께 숙소에 가기 위해 버스가 오기로 한 장소로 갔다.

 삼일 째 간 숙소는 Best Western Smart Hotel이라는 4성급 호텔이다. 눈으로 봐선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솔자는 호텔 측에서 요구하는 거실 내에서 흡연을 할 경우 벌금 480유로를 물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숙소 배정을 받기 위해 로비에서 대기 중 모녀  팀에서 또 문제가 터졌다. 모자가 달린 잠바로 얼굴을 가린 채 캐리어에 앉아있던 딸이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갔고, 엄마는 그 딸을 붙잡겠다고 매달리다 뿌리치는 딸의 팔에 얼굴이 맞았다. 딸은 버스 타고 집에 가겠다며 늦은 밤에 억지를 부렸다.

 

4일(비엔나) 2019년 03월 22일(금) [지역] 비엔나 - 부다페스트

 아침 식사 후 빈에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갔다. 이궁은 사보이 왕가 오이겐 왕자의 여름궁전이다. 벨베데레는 이탈리아어로 '좋은 전망의 옥상 테라스' 란 뜻이다. 이곳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유디트, 에곤 실레의 죽음과 삶, 가족, 추기경과 수녀, 그리고 다비드의 나폴레옹까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클림트의 키스란 그림은 빈의 간판으로 선물용 티셔츠, 도자기, 가방 등 다양한 부분에서 채용해 관광 수익을 올리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테니스 팀 언니들은 언제 구입했는지 클림트의 키스 그림이 박혀있는 시장 가방을 들고 다녔다. 

 

                                            <에곤 슐레의 작품 수녀와 신부 사랑>


쉰 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여름궁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정원'이란 뜻을 가졌다. 현재는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과거엔 이곳이 사냥터라고 하니 쉽게 상상이 안된다. 모녀 팀의 딸이 버스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딸은 일관되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고 있고, 엄마는 유럽 여행을 어렵게 왔는데 어떻게든 딸을 구슬려 여행을 끝까지 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딸은 점점 시위 강도를 높여가는 게 문제다.

 

    < 호이리게는 그해 만든 포도주를 음식과 함께 마시는 것이다>


점심 식사는 '호이리게'라는 생소한 음식이다. 6년전에 타 여행사를 통해 왔을 때 현지 가이드가 데려간 호이리게 집은 오스트리아에서 유명한 주점이었다. 현관에는 이곳을 다녀간 세계적인 명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때 들어던 이야기가 '호이리게'란 음식과 함께 그 해에 담근 술을 이웃과 나눠마시는 것이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음식과 함께 화이트 와인 한 잔씩을 줬었다. 요즘엔 와인을 마시는 전통 음식점을 호이리게라고 한단다. 와인 없는 호이리게라니 ! 뭘 알고나 이곳에 데려왔나? 이날 와인을 마신 사람은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는 스페인에서 봤던 가우디의 작품 카사밀라와 카사바트요가 생각났다. 

가우디가 리모델링한 빌라나 훈데르트 바서의 하우스는 직선을 곡선화 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 훈데르트 바서의 리모델링 집>


주거공간에 예술적 감성을 불어 넣어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식사 후 버스를 타러 가는 길목에 바서의 하우스가 있어 사진만 찍고 버스가 서있는 곳으로 갔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고 있길래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버스에 올라가니 버스 안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물건들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고 각자 자기 물건을 찾느라 난장판이다. 어떤 사람은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라며 혀를 내두른다. 

 결국 모녀 팀 딸이 대형사고를 쳤다. 버스 안은 각자 자기 물건을 찾느라, 왔다 갔다하기도 하고 물이 젖은 의자에 비닐을 깔고 앉거나 물이 묻지 않은 다른 의자를 찾아 자리를 옮겨 앉았다. 테니스 팀은 여행 공동 경비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참 희한한 일은 이런 상황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채 일언반구(一言半句) 말이 없다. 인솔자도, 각각의 팀원들도 마치 예견됐던 일처럼.  

 오후에 슈테판 성당을 본 후 시내 자유투어 시간이 주어졌다. 상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거리의 풍경도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누군가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여행지에서 느끼는 자유다. 패키지여행의 삼분에 일은 이동이다. 찍고 찍고 턴하는 것이 다반사다. 오늘도 역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비아를 경유해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이동하는 장거리 이동이다.  

 헝가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야경이다. 야경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핸드폰 카메라가 담아내기엔 한계가 있다. 그런데 가이드는 소형 조명등까지 들고 와 야경 사진을 찍어주자 아주머니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사람 마음을 사는 것이 대단한 게 아니다. 


          <헝가리는 밤에 유람선을 타고 도나우 강에서 즐기는 야경이 아름답다. 황금 빛 물결.. >


5일(부다페스트) 2019년 03월 23일(토) [지역] 부다페스트 - 브라티슬라바 - 부르노

 아침 식사 때 모녀 팀이 보이지 않았다. 테니스 팀에 알아보니 어제 터키 항공의 비행기 표를 예약했는 데 오늘 오후 8시 출발한다고 한다. 결국 엄마와 싸움에서 딸이 이겼다. 전날 난리 통에 테니스 팀은 잃어버린 돈을 엄마한테 받아냈다. 버스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 돈 봉투는 어디로 간걸까? 신은 알고 계실 테지. 

부다 지역을 관광하면서 현지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주는데 너무 많이 찍어서 문제였다. 그중 하나는 건진다는 논리인지 셔터를 너무 많이 눌러대서 아줌마들이 나중엔 찍기 전에 "한 장만 찍어주세요"라고 말했다. 종교 팀 중 부부는 두 번 다 무릎 아래만 찍어줬다며 고의성이 있었던 게 아니냐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들도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댄다. 사진을 찍는데 웬 오두방정을 떠냐." 등 말이 많다. 

 겔레르트 언덕은 헝가리가 가톨릭을 처음 받아들일 때, 선교사 겔레르가 순교한 것을 기념하는 언덕이다. 헝가리인들은 겔레르트 신부를 포도주통에 넣어 다뉴브 강에 수장시켰다고 한다. 


 <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 본 부다 페스트 시내 전경>

 

마차시 사원 지붕에 검은 까마귀가 금반지를 물고 앉아 있다. 장자로 왕위 계승이 이어지던 때에 차자가 왕에 오르려니 필요했던 신화로 둘째 아들이 사냥터에서 까마귀를 잡아 반지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반지는 왕위 계승자가 끼는 것으로 당시 차자의 왕위 계승의 당위성을 설명하려 했던 것 같다. 헝가리인의 조상은 중앙아시아 유목민 마자르족이다. 흉노족의 일파로 게르만족의 대 이동을 추동(推動)했고, 여파로 로마는 멸망하고 말았다. 서로마 멸망이 476년경이니 4세기 중후반에서 5세기 말엽쯤이다.    

 마차시 사원에서 부다왕국을 향해 가다 보면 아니 사스 파티카(Arany Sas Patika)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과거 헝가리가 오스트라에 지배를 받을 때 한 산부인과 의사가 의학쎄미너에서 "의사 손에의한 감염으로 산모나 태아가 죽는다."는 발표를 했다. 당시엔 출산 과정에서 임산부와 태아가 원인모를 이유로 절반 이상 사망했다.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고 아이를 받던 때라서 그는 손을 씻기만 해도 산모의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정부는 유언비어 날조 죄로 투옥시켰고 그는 감옥에서 옥사하고 말았다. 그 후 파스퇴르가 세균을 연구하게 되면서 그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돼 세계 최초의 세균 연구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헝가리는 그의 업적을 기려 이곳에 박물관을 세웠놓았다.   

 부다 왕궁의 입구에 독수리같이 생긴 새 '트롤'이 칼을 들고 있다. 이 새는 부다 왕국 탄생의 비밀을 쥐고 있는 새다. 우리나라에 삼신할미와 같은 존재로 현재 150여 마리가 남아있는데 정부에서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간 날은 휴일이라 대통령이 집무실에 없었다. 하지만 근무 교대 시간이 되면 군인들의 절도 있는 교대 장면은 볼 수 있다. 교대 시간을 알리는 구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총을 어깨에 걸치고 오와 열을 맞춰 걸어간다. 사람들은 신기한듯 더 가까이 가서 보려고 몰려들어 한 순간 대통령궁 앞이 구경꾼으로 가득하다.

   헝가리에서 체코로 가는 중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 슬라바에 잠시 들렸다. 한때는 체코의 변방 도시였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1993년 분리 독립한 이유는 지역 간 불균형이 가장 큰 이유였다. 체코는 공업과 관광으로 재정이 풍부한 반면 슬로바키아는 농업중심사회로 경제 낙후 지역이었다. 체코에서 벌어들인 돈이 슬로바키아의 재정 적자를 메우는데 사용되는 것에 대한 체코 시민의 불만이 점차 커지자 결국 분리 독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브라티 슬라바를 봐서 그런지 수도라고 하지만 화려하진 않았다. 보헤미안 풍이라고 하는데 빈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도심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빈티 숍이 보인다. 아내가 추울 줄 알고 겨울옷만 챙겨가 더워도 입을 옷이 없었는데 그곳에서 상의 반팔 티셔츠 옷 한 장을 골라 입고 나오니 감쪽같다. 마치 집에서 가져온 옷으로 착각할만하다. 가격은 3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이곳 젊은이들도 빈티지를 고르고 입어보느라 정신없다. 서너 장의 옷 값이 고작 10유로 안팎이니 부담 없이 골라 입는 것 같았다.

 

                         <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 슬로바의 중심가 빈티숍>


주말을 맞아서인지 도시가 시끌벅적하다. 술집마다 젊음이 가득 차고 넘친다.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여느 도시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간만 허락되면 나도 맥주 한 잔 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다 광장 한쪽에 긴 줄이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맛 집인가? 

 궁금증에 다가가 보니 아이스크림 집이다. 인솔자가 말했던 아이스크림 집이 문 닫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보다. 이탈리아인이 이곳에 아이스크림 점을 냈는데 대박을 터트렸다고 한다. 우리도 긴 줄 뒤에 서서 15분을 기다린 후,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추억을 만들고 그 추억을 먹은 것이다. 우리가 관광객인 것을 눈치챈 것인지 남들이 들고 가는 아이스크림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 보인다. 뜨내기에 대한 야박한 상술이 아이스크림의 부피를 결정했다. 말이라도 통하면 한마디 하련만, 마음이 아프다. 이런 걸 두고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고 하나?

                                  < 길게 줄을 선 이탈리아 직영 아이스크림점>

 

시간은 빠르게 빠르게 흘러간다. 인솔자의 꽁무니를 따라갈 때는 지루하고, 시간도 더디게 가는 것 같은데 벌써 약속한 시간이 다 됐다. 부지런히 루터교회로 발길을 옮기던 중 우리 일행이 약속 장소와 반대 방향으로 허둥거리며 가는데 "맥도날드, 맥도날드"한다. 결국 종교 팀의 부부가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이번 인솔자가 혹독한 트레닝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모녀 팀 쇼크를 겪었을 텐데 또 뭔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떨고 있을 때 멀리서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가 사과를 먹고 배

앓이를 해서 화장실을 찾느라 허둥댄 거였다. 작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인솔자는 가슴이 덜커덕 내려앉았을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엔 늘 변고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솔자도 마음이 편해지려나? 요즘엔 현지 가이드를 쓰지 않나 보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려니 감당이 안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슬로바키아 브라티 슬라바 거리로 바로 옆이 루터교회다.>

 

저녁에 체코의 제2도시 브르노에 도착했다. Myslivna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8시경에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갔다. 시간도 늦은 데다 기다려도 식사가 나오지 않았다. 30분가량 지나서 닭 가슴살에 알랑 미가 나왔다. 점심에도 굴라쉬라고 해서 닭 가슴살에 콩과 당근이 담긴 야채와 알랑 미가 나왔었는데 저녁도 닭 가슴살을 뜯어야 한다니, 게다가 밥까지 설어서 먹을 수 없자 사람들은 망연자실한다. 얼마 뒤 라면을 먹겠다며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내도 이날 저녁 밥은 맛이 없는지 수저를 들지 않았다. 

 여행 중 될 수 있으면 현지식을 먹자는 주의인데 오늘은 비상식량을 털어야 하는 날이다. 컵라면을 들고 식당 입구에 있는 Bar로 갔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은 후 숙소로 돌아가는 중 나는 프런트에서 와인 한 병을 샀다. 여독을 씻어야 잠이 올 것 같아서다. 점심때 헝가리 시내에서 여행사가 공식 후원하는 기념품점에 들렀다. 테니스 팀 맏언니가 60유로나 하는 화이트 와인을 샀는데 저녁때 먹을 예정이란다. 교사 팀도 휴게소에 들렀을 때 10유로 하는 화이트 와인을 샀다.

  여성들은 텁덥한 레드 와인보다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을 선호한다. 헝가리에서 맛본 와인은 화이트 와인에 코냑을 브렌딩한 것 같았다. 작년 포르투갈에서 맛본 뽀로또 와인과 비슷했다. 

 인솔자가 여행 절반을 넘기면 빨리 갈 거란 예언 같은 말이 적중했다. 도시와 도시를 이어달리기하듯 계속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때가 되면 한식 또는 중식당에서 식사하고 잠깐 도시를 구경하는 둥 마는 둥하고 숙소로 돌아가서 잠을 자니 정말 3~4일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6일(브르노) 2019년 03월 24일(일)[지역] 브르노-텔츠-체스키 크롬로프-홀루보카-플젠

 찍고, 찍고의 진수라고 해야 할까? 이동시간만 8시간이다.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는 것이 오늘 관광의 전부다. 때 되면 한국, 중국식으로 식사하고 또 버스 타고 이동한다. 패키지여행은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속셈이 깔려있다. 

 우선 첫째 날은 숙소에서 시작해 먹는 것까지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만큼 형편없다. 그리고 3일 정도 지나면 이런 호사도 누려보네라며 입가에 미소가 만개한다. 그리고 중반을 넘으면 여행은 여행인데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허울좋은 여행이다. 

 이동 시간엔 대부분 잠을 자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하루 종일 잠자거나 옆에 일행과 수다떨며 보내는 것이 전부다. 

 버스 좌석 간격이 좁고, 둘이 앉기엔 불편해 빈 자리를 찾아 따로 앉으려다 보니 남들이 기피하는 뒷좌석에 가서 앉았는데 테니스 팀 아줌마 둘이서 수다 삼매경이다. 소음(騷音)이란 글자를 파자해보면 말 울음 소리와 곤충의 윙윙대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린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소(騷)의 뜻도 근심스럽다는 의미다. 영어로는 unwanted sound라고 한다. 듣고싶지 않은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 상황, 그 자체가 근심스러운 일이다.

 다음 날 식사 시간을 잘못 알고 일행들이 대부분 식사를 마쳤을 무렵 부랴부랴 식당을 향해 캐리어를 끌고 갔다. 대부분 아침은 빵과 우유 그리고 치즈, 햄, 소세지, 계란, 요구르트다. 거기에 야채로 오이가 나온다. 오이가 야채란 사실은 이번에 여행 와서 새삼스레 알게 됐다. 얼핏 봐선 다이어트 식이요법 같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2킬로가 쪘다. 오마이 갓. 뭐야 ? 아침 식단이 문제였다. 소시지를 너무 많이 먹었다. 작은 것이 앙증맞기도 하고 맛있어서 절제(節制)란 단어를 잊고 말았다.

 또 다른 원인은 밤에 와인을 마신 것이다. 여행하다 보면 긴 밤동안 따로 할게 없어 심심하다. 

TV를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잠자거나 아니면 책을 읽고 그것도 아니면 술한잔 하는 것인데 제일 쉬운 게 술을 마시는 일이다. 유럽에 오면 와인을 마신다. 동네에선 막걸리지만 유럽에선 막걸리 대신 와인을 마신다. 

  텔츠의 자하리하쉐 광장은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중세도시가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다. 마치 독일 동화 헨델과 그레텔 속에 나오는 과자집처럼 생겼다. 마을은 넓은 광장에 비슷비슷한 집들이 나란히 붙어 있다. 휴일이라서 오가는 행인조차 없고 고요한데다 연무가 드리워지니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에 와있는 듯한 묘한 감정이 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게 없어 30분의 자유시간도 길게 느껴진다. 뿌연 아침 안개 때문에 사진도 선명하게 찍히질 않았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중  테니스 팀 셋 째 언니가 어깨에 숄을 두르고 오는데 얼마주고 샀냐고 물으니 4유로 줬다고 한다. 휴일 날인데 상점이 문을 열었나 보다. 다른 일행은 빨간색 스카프를 1유로 주고 샀단다. 여행 중 소소한 소비는 뒤엉킨 감정을 순화시키고 스트레스를 날리는 역할을 한다. 

 이른 봄인데도 한낮의 태양은 살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다. 그렇다 보니 알게 모르게 좌석을 두고 눈치 전을 벌인다. 게다가 햇볕이 드는 창가에 앉으면 서로 창에 커튼을 끌어당기는 데 한치의 양보가 없다. 커튼과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을 두고 벌이는 실랑이다. 여행 중에 좌석을 둔 눈치싸움은 늘 존재한다. 발 빠르게 좋은 자리를 맡으려 일찍부터 버스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인솔자는 "좌석은 매일 앞, 뒤로 번갈아 가면서 앉으셔야 돼요."라고 원론적인 말을하지만, 약아빠진 아줌마들은 "내가 차 멀미를 심하게 해서 죄송해요,"라고 응수한다. 

<텔츠 자하리 하쉐 광장 입구>

 장거리 여행이 계속되자 오금이 저려오는 통에 다리를 뻗고 갈 요량에 한자리씩 차지하다 보니, 뒷좌석도 만원이다. 이 와중에 어떤 분은 뒷좌석에 누워 잠을 청한다. 전날 한숨을 못 자서 피곤이 쌓였단다. 잠을 못 자면서 하는 여행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노년 여행은 고통이 동반되기 때문에 신기루를 쫓는 것과 같다. 

 종교 팀 중 한 부부가 나누는 대화를 뒤에서 우연히 듣게 됐다. 머리가 혼란스럽다면서 남편에게 "여기가 어디래유, 영등포유?"라며 농을 건낸 뒤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여행은 이번이 끝이라며 늙어서 하는 여행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란다. 

어찌 보면 인생의 끝자락에 하는 여행이 무의미 하단 말도 일리가 있다. 특히 장거리 여행은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할 짓이 아니다. 그냥 있어도 아픈 사람이 하루 종일 버스 타고 덜컹대는 차 안에 갇혀 있는 게 생지옥이 따로 없다. 

 텔츠에서 체스키 크롬로프까지는 2시간 30분이 걸린다.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체코의 말발굽이란 뜻을 지닌 성은 스페인의 톨레도처럼 도시 전체가 중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또 하회마을 처럼 강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마을을 휘감고 흘러간다. 우리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으로 향했다.

 대부분 여행사들이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몰린다. 매번 식당에 갈 때마다 한국 사람들로 북적대니 초행자들은 이곳에 한국 사람들만 여행을 온 줄로 착각할만 하다. 패키지 상품은 항공사, 기념품점 그리고 식당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 체스키 크롬로프란 뜻은 체코의 말발굽 이란 의미다. >


 줄을 서서 들어가는데 식당 종업원들이 손에 음식을 들고 "익스 큐스미"를 외치며 줄을 선 틈으로 왔다 갔다 한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큼지막한 닭 다리다. 내심 오늘은 다른 요리를 먹겠구나 ! 생각하고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우리 음식은 변함없이 수프를 곁들인 감자와 돈가스다. 삼시 세끼가 감자와 닭 가슴살, 돈가스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짜증 났다. 우리가 지금 다이어트 하는 것도 아닐 터. 

 6년 전엔 수프가 짜서 전혀 먹질 못했다. 유럽 사람들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할 때 소금을 듬뿍 넣어 준다고 한다. 왜냐하면 소금은 금처럼 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너무너무 귀하게 대접해서 수프는 입도 대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확 달라졌다. 수프가 우리 입맛에 딱 맞다.

 체스키 크롬로프는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멋있고 아름답다. 꽃보다 할배에서 노인네들이 입을 떡 벌린 곳이기도 하다. 해자엔 대부분 물을 채워두는데 이곳엔 곰을 키운다. 해자에 떨어지면 바로 곰에게 물려 죽는 것이다. 지금도 곰이 있다. 이발사의 다리에서 각자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발사의 다리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1608년 신성로마제국의 영지였던 크롬로프에서 있었던 일이다. 요양차 내려온 줄리언 왕자가 이발사의 딸 마르케타를 보고 한눈에 반해 결혼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케타는 죽고 말았다. 줄리언 왕자가 정신착란을 일으켜 마르케타를 죽였지만 자신이 그녀를 죽인 것조차 모른 채 자신의 아내를 죽인 자를 잡아오라며 마을 사람들을 하나, 둘씩 죽였다. 결국 이발사가 자신이 죽였다고 거짓 자백을 해서 마을에 불던 피바람이 멈췄고 이발사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놓은 다리가 바로 이발사의 다리다.  

 한 시간 후 이발사의 다리에 갔더니 테니스 팀 중 한 명이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한다. 가방을 옆에다 매고 사진 찍는 일에 몰두하는 사이에 지퍼를 열고 파우치 백을 훔쳐 갔다는 것이다. 가방 속에 파우치 백이 안전할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가장 손쉽게 털린다고 한다. 유럽 여행을 하면 매번 인솔자가 마치 아이들에게 훈육하듯 번복하는 게 가방은 반드시 앞쪽에 차라고 하는 거였다. 옆에 차면 옆 사람 거, 뒤에 차면 뒷사람 거란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사전 교육이 철저할 수 록 확실히 도난 사고는 없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여권을 재발급 받기 위해선 현지 경찰서에 도난 신고를 하고 '사고 사실 확인서'를 발급받아 대사관에 신고해야 한다. 도난 신고 밎 사고조사를 받기 위해 또다시 1시간의 추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전망 좋은 포토존을 찾아가려다 실패했는데 다시 그곳을 찾아 나섰다. 광장 위쪽으로 난 길을 오르니 가까운 곳에 전망 좋은 테라스 정원이 나타났다. 1차 실패 원인은 기억오류였다.

            < 일행 중 한사람이 여권을 도둑 맞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유럽에 집시들은 뚜렷한 직업이 없다. 막노동을 하거나 아니면 구걸을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개중엔 거리악사로 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스페인에 갔을 때 집시들이 췄던 플라멩코가 눈에 선하다. 이 춤엔 집시의 애환이 담겨 있다. 돈이 없어서 못 배우고, 유럽 사회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고 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어려서부터 남의 물건을 내 것처럼 훔쳐 쓰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방식이라고 여긴다.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진이 빠진 인솔자가 보헤미아 지방에 흘루보카 성을 올라가는데 숨이 차서 말도 못 한다. 성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녀는 녹다운이 돼서 벤치에 앉아 있고 일행들은 인증샀을 찍느라 분주하다. 훗날 사진으로 이곳에 왔었단 사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보헤미안 하면 집시가 떠오른다. 보헤미안의 유래는 보헤미아 왕국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이 지역에 집시들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프랑스인들이 그들을 보헤미안이라 불렀고 그 후 이 지역명이 집시의 대명사가 됐다. 장거리 이동에 따른 보상은 깨끗한 숙소다. 이전 호텔보다 깔끔하다. IBIS란 호텔이 세계 곳곳에 있는데 하나같이 정갈했다. 그렇다고 고급 호텔은 아니다.

                                               

 [ 참좋은 여행을 통한 동유럽 기행기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