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고흥반도를 가다

해암 송구호 2019. 4. 7. 13:58

 올겨울은 유난히 따듯했다. 이미 지구 온난화가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화석연료의 사용범위는 광범위한 데 최근 정부 발표에 따르면 노후된 디젤 자동차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게 생겼다. 이를테면 희생양이 된 꼴이다. 지구 환경을 오염시킨 것이 어디 자동차뿐이겠나? 화석연료에 의한 지구환경 오염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 분야의 과학자들이 경고를 해왔던 상황이다. 그러나 인류는 "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난 오늘 화석연료를 이용한 편익을 포기할 수 없다."라는 고집스러움이 지구 생태계의 변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슬로 라이프, 슬로 푸드 등을 모토로 해서 지금까지 지구를 아프게 해왔던 삶의 패턴을 바꿔 자연인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세한 플라스틱 가루가 심해에 떠돌고 있고 발전기 터빈을 돌리는 에너지도 석유와 석탄을 이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사용하는 각종 생활 도구도 화석연료를 통해 소재를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옷의 원료도 석유나 석탄에서 뽑아 쓴다. 화석연료는 인류의 시작과 끝이다. 즉 산업 발달을 통해 지구 화석을 가공하기 시작한 이래로 화석연료(化石燃料)는 삶의 원천이 된 셈이다. 

  우리나라의 미세먼지가 나빠지는 것은 서쪽 하늘에서부터 시작된다. 봄이면 중국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함께 산뚱 산업단지에서 배출된 배기가스가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치는데 중국정부는 작금의 현상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오염은 안팎으로 발생 원인이 존재한다. 산업 발달로 인류에게 편익을 제공한 반대급부적 현상으로 자연 화석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대 재앙이다.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 난 꼴이다.

  화석연료는 동물이나 생물이 환경 변화, 천재지변, 홍수, 대화재 등으로 멸종의 길을 걸으면서 생태계에서 퇴출된 후, 사체가 퇴적된 채 봉인됐다가 산업혁명과 함께 근대를 이끌어온 주역으로 부활했다. 화석연료는 인류 문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농경사회에서 공업화 사회로 이행을 견인했다. 화석연료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게 된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출발한 뒤 변화를 거듭해서 인류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의 삶은 편리해진 반면 화석연료의 부산물이 인류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기 시작했다. 대표적 사례가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스모그 참사다. 1952년 12월 04일 런던 스모그 참사로 1만 2천 명의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미미한 사건에 불과할 수 있다. 심해 깊숙이까지 녹아내린 미세한 비닐의 분말은 생태환경에 어떤 재앙을 예고할지 알 수 없다. 먹이 사슬의 정점에 인류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산화탄소가 대기층에 막을 형성해 대류현상을 방해하고 투과된 태양의 열을 가둬 놓아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는 온실효과로 북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구의 이상 현상은 기후에서 가장 큰 변화를 나타낸다. 몹시 춥거나 몹시 덥고 국지적으로 쏟아붓듯 내리는 비로 짧은 순간에 도시가 대홍수를 겪는다. 또 극심한 가뭄으로 넓은 호수가 사막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공포, 그 자체다. 앞으로 전개될 공포는 과연 무엇과 견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중세 인류는 흑사병이란 질병을 통해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인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종교의 지도자도 죽고 왕과 귀족도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행히 살아남은 자들은 흑사병은 신이 내린 심판이라고 믿게 됐고, 신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가려 노력했다.     

 요즘 외출을 할 때면 사전에 미세먼지의 농도를 파악해서 마스크를 착용할지 여부를 따진 후 움직인다. 문제는 마스크가 활동성이 떨어져, 착용하고 움직이다 보면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거나 자주 벗겨져 쓰고 활동하는 것이 불편하다. 또 안면을 가린 모습은 범죄자들이 자신의 얼굴을 은폐하려는 행동을 연상시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활동하다 보면 미세먼지를 마셔 죽기 전에 숨 막혀 죽겠다는 게 착용 경험자의 불평이다. 각설하고 현재 우리는 공기의 질이 아주 나쁜 상태의 나라에서 폐에 문제가 생길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미세먼지가 폐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장기 내에서 발암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3.1절과 함께 시작된 연휴 첫날도 눈이 따가울 정도로 미세먼지가 극심했다. 멀리 산이 백내장에 걸린 눈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몇 달 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질 않았다. 언뜻 머리를 스치는 것이 이놈도 때가 왔나 보다. 어떡하지 아직 아이들을 키우려면 몇 년 더 고생해야 할 텐데, 나는 15년 전 직장에서 명예롭게 퇴출을 당해봐서 쫓겨나는 자의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더 쓰였다. 여러 번 전화를 걸다 나중에 카톡으로 문자를 남겼다. "도 닦냐?" 얼마 후 이 친구가 답장을 보내왔다. "조금 기다려라. 바쁜 일이 있어서.."라는 짧은 문자였다. 

  내가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것은 고양시 행신동에 살 때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친구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난 곳은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였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것을 확인한 후 산을 좋아하던 그 친구와 죽이 잘 맞아 전국에 유명산을 찾아 다녔다. 이 친구는 남들보다 리더십이 뛰어났다. 자기 주도형 인물(自己主導型 人物)이다. 계획을 세우고 친구들에게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함께하길 즐겼다. 이번 여행도 그 친구의 제의에 의해 떠나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자가운전을 해서 멀리 여행을 하는 것이 선뜻 맘에 내키진 않았지만 나를 연단(鍊鍛)하는 계기로 삼고자 여행을 결심했다. 또 이 친구와 연락이 안 됐기에 무슨 연유(緣由)가 있나 알아볼 요량(料量)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여행 중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다만 예전에 알던 친구 모습에 안도했을 뿐이다. 고흥은 전남의 맨 끝자락에 있다. 인근에 나로도와 소록도가 더욱 유명한 곳이다. 어촌체험과 자연산 회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펜션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쯤이다. 하루해가 다 지고 나서야 때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리숭어회는 쫀득쫀득하다. 팬션주인이 말하길 숭어는 본래 펄에서 먹이 활동을 하며 자라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한다. "맛이 어째요, 아마 여그서 먹어본 회는 도회지에서 먹는 생선과 다를 것인디?, 도회지에서 먹는 자연산 회는 손님상에 오르려면 최하 7일은 걸리요. 봐보소, 고기 잡아서 모아 둔 후 2틀이나 3일 만에 공판장에 가고 경매해서 각지로 팔려가면 또 하루, 이틀은 걸리고, 소비자 입에 들어가는 것은 빨라도 족히 일 주일이란께. 어쩌요. 아마 이것 먹다간 다른 회는 못 먹을 것인디. 푸석푸석하고 맛 읍서, 난 도회지서 횟집에 가면 회는 안 먹고 쓰키다시만 주워먹으요." 

 펜션주인은 오른손을 다쳤는데, 치료를 소홀하게 해 덧나서 수술을 하고 열흘 만에 돌아왔다며 악수도 왼손으로 한다. "지금은 조금(조수가 가장 낮을 때) 때라 고기가 없어, 고기가 많이 날 때는 4월에서 11월까지 여라. 그중에서도 보름이나 그믐이 지난 후 삼, 사일 때 고기가 가장 많이 잡히요, 고기가 없을 때 와서 대접이 소홀해 어쩌까?, 내일 또 한 팀이 와요. 한 열명쯤 되는디 오늘 저녁에 잡은 숭어로 또 회 썰어 내야 돼. 이팀은 선생님들인데 가끔 오요, 술먹으면 걸져. 여기 와서 재밌게 놀다 가는 방법은 전날 와서 자고 다음날 하루 종일 놀고 그다음 날에 가, 와서 자는 날은 내가 방값을 안 받아, 썰물 때 바닷가에 나가면 해삼, 성게, 미역, 낙지, 문어, 게 잡으며 놀다 저녁때 먹고 놀고 다음날 가면 좋지." 

 새벽에 일어나 장거리 운전을 하고 열 시간 만에 첫 식사를 한 후, 두 시간 만에 또 전어구이와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라 그다지 입맛이 당기지 않았지만 차려놓은 밥상이니 어쩔 수 없어 젓가락을 들었는데 방금 잡은 생선처럼 싱싱함이 살아있다. 펜션 사장은" 전어를 급랭시켜, 싱싱하요. 요것은 회로 먹어도 돼라."라며 여느 생선과 다르다는 말을 강조해서 여러 번 한다.

  음식을 먹고 난 후 모닥불 아래서 친구의 아내가 가슴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들으며 보냈다. 우리보다 늦게 결혼해서 지금까지도 자녀 교육 중인데 아들은 대학교 2학년으로 올 5월에 군에 입대를 하고 딸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이 집도 최근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봤던 입시 전쟁 통을 겪고 있었다. 남편은 직장과 친구밖에 모르고, 자녀교육을 자신이 오롯이 떠맞게 된 후 사교육을 시켜도 그다지 성과가 없자 아이들과 입씨름하랴, SKY 대학에 진학을 못시킨 죄로 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과 둘째 딸이 곧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데서 오는 중압감이 겹쳐 한계점에 다다른 듯 보였다. 

 남편이 자녀교육을 분담하지 않으면서 이제껏 짊어진 무게가 너무 컸고, 대학을 포기한 아들을 겨우 설득시켜 인 서울 대학에 입학시켰는데 시댁의 반응은 시큰둥하고, 아이들은 머리가 컸다고 말을 해도 안 듣고, 그렇게 애들과 입씨름하며 살아온 인생이 허무하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다. 반면 남편은 자신에게 소홀하게 대해 외롭고 친구들과 밖으로 나돌고, 심지어 여자 동창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고 한다. 또 남편이 들로, 산으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 건강이 악화될까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아내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염려와 걱정, 자존감 상실, 고립 등과 싸우고 있었다. 반면 남편은 자신을 입시 전쟁터에 남겨두고 쾌락을 좇고 있다고 생각했다. 등산, 남녀와 교제, 그리고 자신과 친정을 무시하는 태도가 화가 난다는 것이다. 편집증은 각각의 상황을 짜깁기해서 자신의 상상을 현실화하려는 것으로, 보편적 사고를 뛰어넘어 강박(强迫)을 보일 때 흔히 편집증이라고 한다. 보통 우울증이 심해지면 조울증을 동반하게 된다. 웃다가 분노를 드러내기도 하고 또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울증과 편집증이 겹치면 상황이 악화되어 망상에 사로잡힌다.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게 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가지려 하고, 곡간을 채우고 넘쳐나도 갈증에 허덕거린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거늘. 남과 비교하며 아등바등하는 것을 보면 이곳이 생지옥(生地獄)이란 생각이 든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은 호리병에 바나나를 넣어두는 거라고 한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놓으면 살 수 있는데 그걸 놓지 못해 붙잡힌다고 한다. 원숭이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인간을 빗대어 한 말인 것 같다. 

  나는 명품을 모르며 살았다. 앞으로도 명품은 별 관심이 없다. 명품이란 낱말엔 비교라는 단어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나만의 아집(我執)일 수 있다. 경제적 여력이 되고 품질 좋은 것을 구매해서 쓰는 것인데 그것을 사치와 결부시키는 것 같아서 말이다. 문제는 경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과시(誇示)를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사는 데 있다. 보석도 마찬가지다. 공작이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다 삵이나 여우에게 잡혀 먹는 모습은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보석은 공작의 깃털과 같이 허영을 상징해서 싫다. 인간은 신의 선물이다.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운 보석이다. 거기에 또 다른 것을 얹으려는 것은 옥상옥(屋上屋)이다. 당신이 명품이다.

 아침을 먹고 순천만 국가 정원에 갔다. 순천만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연을 지닌 곳으로 최근 개발을 해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됐다. 벌써 봄을 알리는 매화가 활짝 피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를 뜰에 두고 즐겼다. 그중에 홍매화는 멋스럽기가 이를 데 없어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애용된다. 국가 정원에 핀 홍매를 보니 봄이 왔구나! 드디어 봄이 왔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넓은 정원에 각 나라의 국기와 그 나라를 상징하는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4월 중순이면 이 정원은 푸르고 울긋불긋한 꽃들로 가득 차 있겠구나.

 오후 3시경 정원을 나와 벌교로 향했다. 친구 부부는 아들과 아들 친구를 데리고 순천만 습지로 갔다. 아들 친구가 저녁에 선약이 있어 먼저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순천 시외버스 터미널에 데려다준 후 우리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가는 중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점심 식사를 안 했으면 먼저 식사를 하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벌교에서 꼬막정식으로 유명한 '정가네 원조 꼬막 회관'으로 행선지를 바로잡았다. 조정래 문학관에서 약 5분 거리에 꼬막 집들이 즐비했다. 벌교역이 인근에 있는데 유독 이 집은 별관까지 두고 제법 크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는데 종업원들은 한결같이 외국인이다. 시골 촌구석에도 외국 종업원을 쓰고 있다. 임금을 적게 주려는 것이다. 

 꼬막정식은 이만 원을 받았다. 밑반찬도 대부분 꼬막이다. 꼬막을 무쳐서 내오면 밥을 넣고 비벼 먹는데 상차림으로 볼 때 이만 원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가가 이만큼 오른 것인지, 아니면 시골의 인심이 사나워진 것인지 모르겠다. 배고품에 꼬막 비빔밥은 잘 먹었지만 물가가 이렇게 비싼데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됐다. 음식값이 너무 비싸..

 식사를 마친 후 5분 거리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에 갔다. 조정래 씨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의 이름을 따서 문학관의 이름을 지었다. 전시관엔 태백산맥을 쓰기 전 자료를 수집하던 수첩과 들로 산으로 자료조사를 나설 때 신었던 신발과 나무 지팡이 그리고 집필한 원고의 철이 큰 탑으로 쌓여 있었다. 또 그의 캐리커처가 여러 명의 작가에 의해 그려져 있었다. 친구는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빠져서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들린다고 했다. 나에게 태백산맥을 읽었냐고 묻고 내가 안 읽었다고 답하자 대뜸 "무식한 놈"이라고 내뱉는다. 사실 박경리 씨의 토지나 조정래 씨의 태백산맥은 읽어보고 싶은 문학책이다. 올해는 이 두 권의 책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