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정치판에 끌어들인 나라 중 로마와 태국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한다. 로마는 국경을 수비하던 장군들이 하급병사의 추대로 황재에 오르는 군사 쿠테타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늘어가게 되면서 황제의 권위는 물론이고 임기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가운데 살해되는 경우가 너무 빈번하게 발생되자 4세기 초 황제에 오른 콘스탄티누스는 종교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가톨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무렵 정치를 하던 자가 교황에 오르는 등, 종교는 순수성을 잃고 정치적 수단으로 남용되기에 이르렀다.
태국의 불교 도입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목적으로 왕실로부터 불교가 들어왔다. 동남아시아는 기후가 좋아 쌀농사를 짓기 적합한 풍토를 지녔다. 물산이 풍부하다 보니 백성들의 삶도 풍요로왔다. 그러나 왕은 백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삶이 윤택하니 왕과 백성 사이에 격이 없어졌다. 왕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백성을 장악하고 통치할 수단으로 부쳐님을 왕실에 모시게 됐다. 또 승려는 왕족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해서 왕실의 권위를 세워나갔다. 왕과 부처를 동급으로 놓게 되자 백성들은 그제야 왕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고 한다.
기독교는 예수의 존재를 믿음으로 사후 세계에서의 영생을 보장 받는 다고 하지만 예수의 상을 모셔 놓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상징적으로 십자가를 성전에 배치한다. 불교는 각자 수행을 쌓아 성불을 통해 극락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돈오돈수(頓悟頓修), 돈오점수(頓悟漸修)로 수행 과정 중 일거에 도를 깨우치느냐, 점진적으로 깨우치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부처가 돼야 극락정토에 발을 디딜 수 있다고 한다. 그중 대표 된 자가 석가모니로 불당에 모셔져 있다. 어느 종교에서는 누구를 통해서 천당엘 가고, 또 어느 종교에선 자기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는 논리다.
예배당에 예수상이 있어야 더 어울릴듯 하다. 그를 믿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데 그의 좌상은 없다. 불교는 개인의 수행에 따라 깨달음을 얻어야 성불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성불하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굳이 불상을 법당에 둘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수행자들 모두가 정진해 득도한다면 부처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각설하고 정치란 것이 본래 민중을 어르고 뺨쳐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대중과 몫을 공정하게 나누면 민주적이라고 말하고 민중의 몫까지 독식하면 독재, 전제군주 정치라고 한다. 따라서 대중이 잘나고 똑똑하면 통치 행위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과거엔 지식계층 일부만 알 수 있는 문자를 통해 자신들만 소통하고 민중은 우민화(愚民化)로 일관했던 것이다. 거기에 종교는 통치를 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종교의 본질은 이승과 저승을 나누고 사후세계의 출입구를 통제하는 논리로 대중을 겁박하는 것이다. 설령 인간을 만들고 자연과 우주를 총람(總攬)하는 절대자가 엄존(儼存)한다고 가정하면 자연은 그의 주관에 따라 운행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 놓고 재단(裁斷)하고 있는 신은 우주만물을 창조한 조물주가 아닐 확률이 높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들은 인간의 주관이 개입된 우상(偶像)이고, 교리도 인간의 생각이 가미된 허설(虛說)일 뿐이다. 신은 인간의 눈에 드러나는 순간 신격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에 의해 모습이 드러난 순간 신은 신이 아니다.
종교집단이 양적 팽창과 함께 드러나고 있는 기이한 현상들은 우리의 생각을 보다 구체화 시켜준다. 절간에서 도박판을 벌이고, 주지스님이 여승을 겁탈했다. 또 대형교회 목사는 여신도들을 은밀한 곳으로 불러내 성관계를 요구하며 자신이 저지른 일탈을 종교적 믿음으로 희석시키려고 한다. 혹자는 자신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낭설을 늘어 놓는다. 최근엔 기업형 교회들이 부자세습을 하고 있고 중,소형 교회들도 자신들의 아들에게 물려줄 기세인데 대형교회처럼 노골적으로 세습하지 않고 품앗이 하듯, 밀어주고 당겨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엄밀히 따져보면 종교시설의 세습화 및 사유화는 이미 종교적 순 기능을 상실했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사람들은 사후 세계에 보험을 든 선량한 신도들로 그들이 봉납(捧納)한 헌금으로 배를 불리고 있지만 속사정을 알려하지도 않고, 알리도 없는 맹 신도(盲 信徒)들은 구원을 소망하며 산다.
인간의 속성 중에 감출 수 없는 한 가지는 모든 경쟁에서 독존(獨尊)을 갈구하는 것이다. 인간이 땅을 딛고 일어서는 순간 서로 평등하게 공존하려는 생각보다, 자신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만들어 지배하고 착취(搾取)하려는 약탈자의 본성을 지닌 것이다. 학문과 철학마져도 인간을 발아래 두고 짓밟으려는 도구로 둔갑한다. 가사를 걸치고 목탁을 두드릴 때, 성경책을 펼치고 기도송을 읊조릴 때에도 인간은 약탈에 대한 충동이 억제되질 않는다. 다만 그들은 마음을 표현하는데 직설화법대신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화술로 아둔한 자의 마음 문을 열고 호주머니를 터는 것이다.
치앙망마이에 도이스텝 사원이 있다.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위치한 사원이다. 전설에 의하면 흰코끼리가 3일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이 산 중턱에 와서 크게 울다 죽었는데, 마침 이나라에서 부처님 어깨뼈가 발견되어 진신사리탑을 지으려 하던 차라 그곳에 황금 불탑을 세워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사원 입구에는 흰코끼리의 유골을 넣은 탑도 세웠다고 전해진다.
부처님의 사리는 도대체 몇 개 길래 이 나라, 저 나라 불교 국가마다 진신 사리탑이 모셔져 있는 것인지. 혹시 석가모니 말고, 다른 성불한 부처님의 사리인가?
치앙라이에 가면 종교화가 찰럼차이가 짓고 있는 백색 사원이 있다. 대부분 사찰은 금색을 칠해 일반 건축물과 구별을 지으려 하는데 이 사원은 온통 흰색으로 사원을 짓고 있다. 찰럼차이는 5살 때 부모에게 버려져 사찰에서 생활했는데 성격이 까탈해서 남들과 잘 어울려 지내질 못해 주지스님도 고민 끝에 이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던 중, 어느날 아침 스님이 마당을 지나가다 이 아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찰럼차이가 그린 그림은, 땅에서 부처님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부처님이 현생한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었다.
그 후 주지스님은 찰럼차이를 끼고 공부를 가르쳤는데 알고 보니 수재 중에 수재였다. 17세 태국 국립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해 남들은 6년을 공부해도 졸업하기 어려운 과정을 복수전공을 하면서 3년만에 수석으로 졸업을 하고 국비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던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틈틈히 그린 그림을 전시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림에 대한 현지 반응이 뜨거워 그가 그리는 그림마다 억대에 팔려나가게 되었고 그는 전공마져 바꿔, 그림 그리는 것에 몰두해 큰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게 되자, 자신을 키워줬던 주지스님이 생각나 본국을 찾게 되었고 그가 사찰에 당도했을 무렵, 주지스님은 열반에 들기 직전으로 그를 보자 마지막 유언을 남긴 것이 "찰람차이야 ! 너와 같은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돌봐주면 안되겠느냐?"였다. 그후 집에 돌아와 꿈을 꾸는 날이 많았는데 한 번도 꿈에 나타난적 없던 어머니가 지옥에서 손을 뻩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찰럼차이는 프랑스에서 생활을 정리해 본국으로 돌아왔고 치앙라이에 대지 20만평을 매입 사원을 직접 짓기 시작했다. 사원은 온통 백색이다. 이글거리듯 사원을 감싸고 있는 불꽃을 형상화한 문양들은 인간의 번뇌를 나타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불꽃은 붉은색이 아니라 눈처럼 햐얀색을 띄고 있다.
지옥문을 지나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다리 앞에는 무서운 얼굴을 한 나한상이 세워져 있고 지옥을 형상화한 다리 입구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과 구원을 갈망하고 있는 손들이 있다.
태국은 소승불교를 믿는다.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중생을 구제하기위해 세워진 종교라면 소승불교(小乘佛敎)는 불교 수행자들이 교리를 실천하면서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실천을 근간으로 삼는 교리다. 따라서 이곳에 승려들은 매일 아침이면 맨발에 탁발을 나선다. 물론 매일 공양을 바치는 신도들이 있기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광경이다.
스님은 하루 두 끼를 먹는데 아침에 탁발한 음식을 가져와 미물들에게 나눠주고 또 사찰에 기식하는 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들이 먹는데 그중 절반을 아침에 먹고 나머지는 12시 이전에 또 한끼를 마져 먹는데 이것으로 그날 식사는 끝이다. 스님들이 배고프면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하다보니 배가 볼록 튀어나온 스님들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백색사원은 현재도 공사 중에 있다. 지금은 입장료와 개인마다 발복을 비는 흰색의 소망판을 팔아 공사비에 보태고 있는데 이곳엔 스님이 단 한 명도 없다. 다만 대웅전에 찰럼차이 교수를 가르쳤던 주지스님이 밀납인형으로 환생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시다.
다른사원과 구별되는 것은 대웅전 내 벽화로 탱화대신 찰럼차이 교수가 직접 그린 그림들로 벽면을 채우고 있다. 찰럼차이 교수는 주지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아이들을 데려와 돌보고 있는데 그 아이들의 머리에 가득 차 있는 번뇌를 씻어주기 위해 불당에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아침마다 들러 그림을 보며서 마음의 수양을 쌓게 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은 이곳에서 배운 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서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 남성들은 군대는 가지 않아도 대부분이 출가는 경험한다고 한다. 승려가 되서 부모님의 건강이나 사후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이 효의 으뜸으로 치기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출세를 하면 부모님을 위해 사원을 짓는 것인데 사원을 지으려면 큰 돈이 들어가므로 일반인들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백색사원에는 지옥을 형상화한 부조물이 있다. 해골과 지옥에서 살려달라고 손을 뻗은 모습이다. 찰럼차이 교수는 어머니의 손톱엔 빨간 메니큐어를 칠해 놓았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란 상상과 지옥에 계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사원엔 한 인간의 회한이 베어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서운함도 있을 것이고 또 지옥에 떨어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에서 연민의 정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또한 인간의 잣대로 예단하고 만들어낸 상상일 뿐이다. 종교의 형틀에 갖힌자들도 매 한가지다.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는 줄도 모른 채, 이용을 당하면서도 구원이란 촛불 앞에서 소망을 버리지 못한다. 신이시여 ! 당신은 알고 있나이다. 저들의 어리석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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