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태국은 트렌스젠더와 게이들의 천국

해암 송구호 2018. 6. 18. 14:13


  쑤코타이(태국 최초 독립왕국)왕국과 아유타야(현재 태국)왕국은 범아와 230년 간 전쟁을 하면서 수 많은 남자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아유타야 왕국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중심의 모계사회로 변화되면서 한 집안에서 한 명은 남자를 여자로 변장시켜 전쟁터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 결국 남자의 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여자처럼 행동하다보니 정신세계가 여성에 동화되면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되었는데 이러한 남성의 사고가 유전자를 갖고 후대로 전해지게 되면서 성적인 정체성이 불 분명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태국인 10명 중 1명은 트렌스젠더나 게이라고 한다. 

  태국의 상류층 내 트렌스 젠더가 많이 분포돼 있어 트렌스젠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사회 저변에 깔려 있어 부모는 본인이 원할경우 성 전환수술을 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태국인들에겐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의 비밀이 있었던 셈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대신 한 가족의 대를 잇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했지만 그들의 삶은 남자가  아니라 여성처럼 말하고 여성처럼 행동하고 또 여성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성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됐고 그러한 정신세계는 유전으로 다음세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트렌스 젠더와 게이의 차이점은 트렌스젠더는 성과 정신세계가 불일치해서 자기의 성을 부정하는 경우에 해당하고 게이는 동성에 대해서만 사랑을 느끼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게이는 남성 간 동성애를 느끼는 것을 말하고 여성은 레즈비언이라고 말한다. 트렌스젠더의 경우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급격하게 남성으로 변화돼서 또 다른 자기 혼란에 빠져들게 되고 대중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 채,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데 대부분 승려가 되어 사찰에서 남은 여생을 보낸다. 그들은 성 전환 후 먹는 호로몬제로 수명이 단축돼 50대 전후를 살다 간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엔 트렌스젠더의 삶을 선택하고 있는 남성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많고 푸켓이나 발리에 가면 성 전환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에겐 타락과 추잡스러운 성을 논하기 전, 전쟁으로 남자들이 절멸하려 할 때 종족을 보존하려던 계책의 하나로 남성을 여성으로 은폐해야 했던 것이, 어릴 때부터 정신적으로 자기성을 부정하면서 이성(異姓)에 동화된 채 고착화 되어 살았던 것이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 태국에 트렌스젠더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고대의 문화적 환경이 후대로 유전 된 것이다. 인간의 본능 중 타인의 것을 약탈하고 짓밟으려는 착취적 욕망도 과거 우리 조상의 그릇된 생존전략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유추케 된다. 이기심은 아마 거기서 발동했을 것이다.

 치앙라이와 치앙마이의 옛 왕조 란나왕국의 전성기는 1263년 맹라이왕이 통치할 때다. 크메르 - 앙코르 제국과 맞서 싸웠고 몽고의 쿠빌라이 칸의 남하를 막았다. 그러던 란나왕국도 맹라이 왕 이후 통치자의 부재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라오스를 통치하던 사촌에게 대리통치를 맏기기도 했으나 1년만에 그가 승려와 보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정치 공백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미얀마의 침략에 아유타야왕국이 초토화 될 때 란나왕국은 큰피해 없이 지켜낸 후, 1774년 카빌라 국왕은 태국 남부 방콕에 짝그리 왕조와 연합전선을 펴 미얀마를 태국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이후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자 스스로 독립왕국을 꿈꾸기도 했지만 결국 짝끄리 왕조에 의해 1935년 태국의 도(道)로 편입되면서 란나왕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인타논이란 이름은 인타위차야논 왕에 의해 하사받은 이름이다. 그는 치앙마이의 마지막 왕이었다. 1775년 톤부리 왕조 딱신에 의해 멸망됐다. 그후 딱신은 정신착란을 자주 일으켜 그의 심복에게 제거되는데 그가 라마1세로 짝끄리 왕조의 시조다. 짝끄리 왕조에 복속된 후 치앙마이의 마지막 왕 인타논은 도이루앙(큰산)에 봉인된 후 고독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사후에 이곳에 묻히길 원했고, 라마 5 세의 왕후였던 그의 딸 다라가 유지를 받들어 도이루앙 정상에 유골을 안치한 작은 탑과 제단 옆에 코끼리 상 2개를 세웠다. 이후 도이루왕은 란나왕국의 마지막 왕 인타논의 이름인 도이 인타논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산 정상의 높이는 2,565m로 산에 이끼 식물이 나무에 자라 장관을 이룬다. 이곳은 아바타의 촬영지이기도 한데 아열대 기후에 수시로 산을 감싸는 연무가 이끼류와 풍난의 서식에 알맞은 환경을 조성해서 이곳을 트레킹하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