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고, 동․서양이 공존하며,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양립(兩立)하는 국가다. 한해 평균 삼천만 명이 다녀가는 관광지로 관광수입이 이 나라 GNP의 64%를 차지한다. 광활한 평야를 갖고 있지만 농업은 고작 9% 정도에 머물고 있다. 터키인은 흉노족의 후예로 고기가 주식이며 생선 소비량은 극히 미미해 항구에 가도 생선 비린내가 나질 않는다. 로코코 시대(18C)의 황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던 튤립 원산지이고 올리브 가공기술이 세계 1위다 .
여행의 시작은 블루 모스크 사원이다. 사원(寺院) 내부는 청색 타일이 붙어 있는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타일에 반사되면서 청색으로 변하는 것에서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을 얻었다. 터키는 이슬람 사회다. 전체 국민의 95%가 이슬람교를 믿는데 제정이 분리되어 국가는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는 15세기 중반(1461)에 생겨난 시장이다. 이스탄불은 육상 실크로드의 종착지이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제노바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의 연결지로 상인들과 낙타가 쉬어가는 곳이었다. 지붕 덮인 시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시장이 커 매장마다 번호를 부여해 관리되며 보석, 카펫, 가죽제품, 향신료 등이 거래된다. 시장 투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점포에 분주히 차를 배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손님을 맞으며 자연스레 차를 마시는 상인의 모습이다. 터키인은 잘록한 찻잔에 ‘차이’라는 홍차를 즐겨 마신다.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에 관심을 보이자 내게 차를 시켜줄 기세다. 터키인 한 명이 연간 평균 2킬로그램의 홍차를 소비한다고 하니 홍차 사랑은 알아줘야 할 것 같다.
둘째 날은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샤프란 볼루 차르쉬 마을에 갔다. 흑해 서쪽지역이다. 이 마을은 실크로드를 통해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 긴 여정 중에 잠시 쉬던 곳으로 말편자와 가죽신을 팔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와 샤프란 꽃 재배를 한다.
셋째 날은 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에 들렀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터키군의 추모탑이 세워진 곳이다. 버스가 공원 앞에 도착하자 때마침 공원 관리인이 문을 열고 있었다. 공원 추모탑 앞에서 간단히 묵념을 하고 기념촬영을 한 뒤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앙카라 시내에는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 무스타크 케말의 묘가 있는 ‘아느트 카비르’가 있다. 케말은 군인 출신으로 세계 1차 대전 때 오스만 제국이 패전국이 되면서 국토가 연합군에 의해 강제 분할될 위기에서 현재 터키의 영토를 지켜낸 인물이다.
카파도키아는 3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응회암(凝灰巖)이 풍화작용으로 버섯 모양을 비롯해 돌(石)마다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처음에 찾았던 곳이 데린쿠유다. 로마시대 때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았던 지하도시다. 피난민 이만오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고 가축도 키웠다고 한다.
점심으로 항아리 케밥을 먹고 지프(Jeep) 여행을 위해 차가 대기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열기구 대신 여행사에서 만든 상품으로 명소를 돌면서 사진을 찍는 투어다. 간간히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영화 <스타워즈>와 <혹성탈출> 촬영장소 등 전망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차가 반쯤 들려서 가는 무서운 곡예운전을 하자 비명, 절규에 이어 용무가 급하다는 다급한 호소(呼訴)가 들려온다.
넷째 날은 파묵칼레로 이동했다. 석회가 섞인 미지근한 온천수가 흘러나오는데 목화송이처럼 흰색을 띤 성이란 의미다. 멀리서 보면 흰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갔을 때 비구름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해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질러댔다.
다섯째 날 에페소로 향했다. 터키 이즈미르 남서쪽 약 5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고대도시다. 터키의 로마라고 할 만큼 로마시대 유적지가 많고 지금도 발굴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오니아 문명의 중심지로 헤라클레이토스, 탈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태어난 곳이자 예술과 과학이 꽃을 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셀수스 도서관은 당시 이만사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세워졌다. 그리고 하드리아누스 신전과 원형대극장이 있다. 이곳에는 화려한 보석들을 다루는 명품관이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자주 와 쇼핑을 즐겼단다.
여섯째 날에는 트로이 목마를 구경하러 갔다. 독일 사업가 슐리만은 어려서 「일리아드」를 읽고 트로이 유적 발굴 꿈을 키웠고 사업에 성공하면서 그의 꿈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보물을 찾으려는 욕심에 유적 발굴사업은 엉망이 됐다고 한다. 터키인 입장에서 그는 보물을 훔쳐가려는 도굴꾼으로 기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원군의 묘를 도굴했던 것처럼 말이다. 저녁에 이스탄불 시내 투어를 했다. 오래된 지하철도 타보고 시내를 걸으며 수많은 인파 속에 묻히기도 했다. 상점에 들러 로쿰도 샀다. 보스포루스교를 건너가는데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로 장관이다. 성소피아 사원과 돌마바흐체 궁의 야경을 보면서 이스탄불에서 여행 마지막 밤을 보냈다.
칠일 째 되는 날은 아시아와 유럽이 맞닿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통배를 타고 약 40분 가량 여행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화려한 보석들로 채워진 세계 3대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을 관람한 후 이스탄불 공항으로 향했다.
터키는 동서양이 맞닿아 있고 기독교 유적과 이슬람교가 공존한다. 터키인의 조상은 동양인이지만 현재 그들은 유럽인으로 살고 있다. 오스만 제국 때는 아프리카,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른 대제국이었다. 따라서 세 대륙의 문화가 융합돼 있다. 다이아몬드처럼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여행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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