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도입부는 경제의 위기를 알리는 시그널로 넘쳐난다. 뉴스는 1997년 우리나라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듯, 과거의 뉴스를 편집해서 극에 사실감을 불어넣었다. 언론 검열이 심했던 당시 국가부도위기라는 상황과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정부의 목소리가 데자뷰를 이루며 여과 없이 방송매체를 통해 듣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대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론과 시중 은행은 안전한 금고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하루 아침에 깨진 것이다.
아엠에프(IMF)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민들은 나라가 어렵다는 것에 공감하기 시작했고 공영방송을 통해 '금 모으기 캠페인'에 온 국민이 참여해서 모은 성금이 국가부도를 막는데 쓰였다고 믿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대기업의 부도를 막는데 유용되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먹고 살기도 빠듯하던 때 장농 깊숙히 감춰뒀던 금을 내놓았던 국민들의 큰 마음이 기업 회생자금으로 쓰였다는데 경기가 회복된 후, 기업은 국민의 희생에 어떤 보답을 했는지 큰 물음이 생겼다.
경기는 싸인 곡선을 그리며 흥망성쇠를 반복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강조하려는 점도 현재 우리경제와 20여년 전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앵글에 담아 극적 몰입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요즘 조선, 자동차, 건설이 침체의 늪에 빠진데다 반도체의 시장도 위협받고 있는데 청년 실업율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설픈 경제정책이 민생고를 증폭시킨 꼴이다.
"소득주도 성장 !" 소가 웃을 일이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탁상행정이요. 미숙한 진보정권의 사생아가 아닌가? 최저임금을 올리니 물가는 망둥이처럼 널뛰고 있고, 자영업자는 물가 인상분에 종업원 임금 인상까지 더해서 판매가에 반영해야 버틸 수 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가격을 올렸더니 소비자의 외면으로 매장은 찬바람만 감돌고, 월세 내기 조차 힘든 자영업자는 종업원 수를 줄여서 손실을 메우려 하다보니 실업자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결국 잘못된 정책 하나로 경제가 파탄난 꼴이다.
이 영화에서 또 다른 파편은 국가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가치 없는 일이고 허구인가를 밝히고 있다. 금융회사원 윤정학은 정부 발표와 정 반대로 흘러가고 있는 자금 흐름에 이상을 느끼고 다니던 회사를 나와 펀드사를 세우고 대박을 터트린다. 그의 결정은 정부의 발표와 정 반대 방향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었다. 국가가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사실을 간파한 투자자 윤정학은 관제언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판단과 직관력을 믿고 위기에 맞서 과감한 투자를 한다.
한편 정부의 수뇌와 한국은행 직원간의 대립 구도다. 재정국 차관은 국민의 이익보다 대기업의 회생으로 국가부도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IMF라는 외국 자본으로 경제 축이 바뀌게 된다. 그후 가장 큰 변화는 국내 은행은 외국계 은행에 인수 합병되었고 경제의 근간이 되는 자본이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금 모으기'로 위기를 타계하겠다던 말도 결국 벼룩의 간을 빼서 대기업에게 넘겨준 꼴이다.
국가 부도의 날은 'IMF 때 국가는 누구의 편에 서있었는지', 또 국민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 왜 그렇게 철저히 외면했는지 되집어 보게 한다. 그리고 국가 부도 7일 전이란 메시지는 아직도 잠자고 있는 주체의식(主體意識)과 빼앗겨버린 당신의 권리를 되찾으라는 명령어처럼 들린다. 누구도 당신의 밥그릇을 챙겨주는 사람은 없다. 정치하는 자들은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한다. 그들 뒤엔 돈을 든 전주들이 유혹하고 있다. 국가부도가 바로 당신의 부도란 사실을 알 땐 모든 것을 잃고 난 후다. 후회하는 날. 그날..
'영화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가박스에서 영화 기생충(寄生蟲) 을 보았다. (0) | 2019.06.05 |
---|---|
보헤미안 랩소디 감상 (0) | 2019.03.31 |
한반도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0) | 2018.08.21 |
신과 함께를 보고 (0) | 2018.01.31 |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0) | 2018.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