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는 사후세계에서 망자를 상대로 벌어지는 심판을 그리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사십구 일 동안 일곱 번 재판을 받고 환생을 하느냐, 아니면 지옥 불에 떨어지느냐가 판가름 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골자다. 우선 사람이 죽으면 초군 문에서 차사를 만나게 되고 차사는 일곱 개의 관문을 안내하며 이승에서 망자의 업을 변호한다. 살인지옥, 나태지옥, 거짓지옥, 불의지옥, 배신지옥, 폭력지옥, 천륜지옥으로 구성된 곳에는 죄를 심판하는 대왕들이 지키고 있다. 용암이 끓는 화탕영도, 인면어가 살을 뜯어먹는 삼도천, 만년설에 쌓여 만들어진 한빙계곡, 지나가는 사람의 몸을 날카로운 칼로 베는 검수림, 땅이 꺼지는 싱크 홀(sinkhole)의 진공심혈, 천륜을 저버린 자를 심판하는 천고사막 등을 통과해야 환생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죽으면 매장이나 화장을 한다. 망자가 이틀이 되어도 살아나지 않으면 염(殮)을 한다. 몸을 꽁꽁 묶어서 꼼짝달싹을 할 수 없다. 입과 코에는 솜을 넣어 숨도 쉴 수 없다. 뒤늦게 깨어나도 살아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매장이 주를 이뤘지만 요즘에는 화장이 대세가 되었다. 죽으면 대부분 화장터로 가서 한줌 재로 변하는 것이 인생의 끝자락이다. 인간은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을 사망했다고 말한다. 혼(魂)은 소멸하고 백(魄)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였는데 요즘은 망자들의 업(業)이 하늘을 찌르고도 넘쳐나, 제 스스로 화탕영도 용암의 불구덩이에 몸(魄)을 던지는 것이다.
인간이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혀를 통해 오감의 맛을 느끼고 눈을 통해 빛과 어둠을 인식한다. 낮에는 움직이고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하루의 삶이다. 인간은 빛이 있는 낮에 활동하는 중, 탐욕에 빠지고 욕망이란 덫에 갇혀서 업(業)을 쌓게 된다. 물론 예외적으로 밤에 활동하는 좀벌레 같은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역사는 낮에 이뤄진다. 산자는 칠정(七情 / 희,노,애,락,애,오,욕)을 느끼고 살지만 숨이 끊긴 후에는 어떤 고통이나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망자를 심판할 염라대왕은 인간이 통증을 느낄 수 없는 상태에서 징벌을 한다면 용암이 끓는 화탕영도인들 무슨 대수겠는가? 결국 저승에 대한 이야기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상상에 의해 꾸며진 이야기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성폭력이란 단어를 수도 없이 듣고 살아간다. 어금니 아빠로 유명세를 누리는 사람, 아동을 성폭행하고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의 만기 출소 임박에 대한 대중적 공포감, 직장 상사의 성추행까지 사회는 성(性)이란 성(城)에 갖혀 살고 있다. 성(聖)스러워야 할 사람, 타에 귀감이 돼야 할 지도층마저 성적 타락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성질(性質)나는 세상이다.
어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어느 기혼 여검사의 커밍아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직장동료의 장례식장에 갔는데 때마침 고위직에 있던 검찰 총장과 안모 검사가 왔고 동료들이 팔꿈치로 툭 치면서 이들 사이에 앉도록 눈치를 보내 억지로 둘 사이에 앉았는데 전작이 있던 안모 검사는 여검사의 허리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만지는 추태를 그것도 장례식장에서 보였다고 한다. 그 후 이 여검사는 억지 사정에 엮이게 되었고 지방으로 좌천되어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자신이 당했던 성추행을 조직에 폐가 된다며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조직에서 버림받았을 뿐 아니라 잘나가는 상사의 뒷다리 잡는 꽃뱀으로 오인되기도 했다고 한다.
안모 검사는 우병우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고 작년 말 검찰 회식 중 돈 봉투 사건으로 감찰국장에서 물러난 사람이다. 검찰에서 불명예로 물러날 경우 이 년간 변호사 업을 할 수 없는데, 퇴직 후 이 년 동안 한 몫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적법성 여부를 다투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종교 간증회를 통해 자신의 과거 잘못을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약자를 짓밟고 그들을 밟고 일어섰던 자가 교회 나가서 자신의 잘못을 말하고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이 사회를 불평등과 부조리와 범죄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묻고 싶다.
박종철을 죽게 했던 물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감옥에서 종교에 심취했고 형을 마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종교에 귀의했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을 품는 아량을 지녔고 그들의 죄를 대속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종교의 교리 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하나님이 대신 내 죄를 짊어지고 가셨다는데 난 구원받았고 앞으로 새사람 되서 살면 되는 거니까, 지금부터 성경책 열심히 읽고 거듭나는 사람이 돼야지"라고 생각 했겠지.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기독교에서 그의 목사안수를 철회했고 이후 그는 부인이 폐지를 주어 번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죄 짓고 회개했다는 사람은 도심을 활개치고 다니는데 그들에 의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여전히 슬프고 억울하고 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면 아무리 관용을 베푸시는 하나님이라지만 인간적으로 불공평한 게 아닌가? 왜 저들에게 벼락을 안주는지, 번개도 있는데 번개를 내려 심판해야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짓밟혔는지 잘 아시면서.
인간은 최소한 스스로를 경계하는 양심과 도덕을 지니고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자신을 경계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살려한다. 그러나 사회 엘리트라는 자들은 자신들끼리 야합해서 약자를 짓밟고 제 편한대로 재단하면서 자신이 곧 법이요 진리인 것처럼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살아간다. 여기에 하느님의 용서가 그들의 얼룩진 양심까지 씻겨준다고 하니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닌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좋다'는 말이 있다. 강자로 이승에서 누리는 영화는 끝이 없는 듯하다. 내가 없으면 남의 것 뺏으면 되고, 내가 못하면 남 시키면 되고, 예쁜 것 있으면 내가 가지면 되고, 말 안 들으면 패면 되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감옥에 집어넣으면 되고, 이래도 저래도 안되면 다시 하면 되고, 이것저것 다하다 안 되면 교회 가서 회개하면 된다. 그러면 난 새사람이 되고 거듭나는 삶을 살 수 있으니 누가 나를 손가락질 하겠나? 난 구원 받은 몸인데.
사람들은 제 편한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믿고 살려는 경향이 있다. 검은 석탄 위에 눈이 쌓이면 석탄은 드러나지 않고 온통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일 뿐, 햇볕이 눈을 거두고 나면 도로 검은 석탄이 드러나는 것이다. 죄를 사함 받았다고 간증하는 자들은 그 말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후에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죄를 씻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쌓은 업은 살아가면서 응보로 돌아오고 이승에서 모든 심판이 이뤄지는 것이다. 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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