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영화"남한산성"에서 충신은 누구인가?

해암 송구호 2017. 10. 22. 08:36

 얼마 전  "남한산성"영화를 보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한양을 버린 인조가 갖혀 지낸 곳이 남한산성이다. 그들은 왜 한양 땅을 버리고 궁박(窮迫)한 남한산성으로 갔을까? 한양은 조선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다. 임금이 거처하던 궁궐이 있고 백성들의 터전이 그곳에 있었다. 당시 병자호란은 대외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조정 대신들이 명분 싸움에 눈이 멀어 살길을 찾기보다 죽을 줄 모르고 집안싸움 하기 급급하다 화란을 당한 상황이다. 반정세력에 의해 옹립된 허수아비 인조는 힘있게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없는 상황이니 대외적인 정세에 힘을 쏟을 겨를이 없었을지 모른다. 인조는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던 용렬(庸劣)한 임금이었다. 반면 광해는 국제정세를 잘 읽고 그에 적절한 외교활동을 했던 현군이었다. 등거리 외교를 통해 상호 간, 이해득실을 따져 처신하려던 현군이 대신들의 주도권 싸움에 희생되면서 임진왜란 이후 또 다시 국가가 누란지위(累卵之危)에 빠진 꼴이 되었다. 

 현실과 명분을 놓고 두 대신이 끝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서 누가 충신인가를 가릴 수 있는가? 그들은 이미 백성을 버리고 제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나와 있던 비겁한 군신일 뿐이다. 전쟁 중 청에 끌려간 사람들이 50만을 넘었다고 하니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사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까? 엄동설한에 먹을 것, 입을 것 변변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랏줄에 개, 돼지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이국 땅으로 끌려가 온갖 모욕과 수치를 겪었던 백성들은 병자년의 피해 당사자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환속금을 내고 풀려나왔지만 여자의 경우 주위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 환향녀라는 주홍글씨가 가슴팍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필부(匹婦)로 사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생귀신처럼 투명인간 취급을 하거나 대놓고 무시하니, 목숨이 붙어있다 한들, 산목숨이 아니었다.

 최명길이냐? 김상헌이냐?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며 최명길은 살아 있어야 산 목숨이다.라고 하고 김상헌은 죽어서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라고 말하며 인조를 끝 없이 괴롭힌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전자는 용렬한 자의 삶이다. 또 후자의 생각이 옳지만 참된 지도자였다면 궁을 떠나선 안되었다. 백성을 버린 자들이 무슨 명분으로 영원히 살 것이란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영원히 살고자 했다면 당파를 떠나 현실적 상황에 맞는 외교를 펼쳤어야 옳았다. 그래서 청의 군마(軍馬)가 우리 국토를 유린하지 않도록 힘을 모았어야 했다. 그들의 턱에 난 긴 수염처럼 허세를 부리고 서로다른 명분을 갖고 망난이 춤을 춘다면 설령 어느 누구의 논리가 옳다고 한들 국가가 얻는 것이 무엇이며 국민에게 돌아가는 실익(實益)이 대체 무엇인가? 이전투구(泥田鬪狗)판에서 개의 최후는 가마솥이다. 구경꾼들은 눈앞 광경을 보면서 제각각의 상상을 할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원하던 것을 손에 쥐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를 운영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민낯을 보면서 오물을 본 것처럼 구역질을 하게 된다. 

  우리 모습을 보고 이웃나라 누군가는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할지 모른다. 그 추측을 당위(當爲)케 하는 일본인의 본심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충격적이고 의미 심장한 이야기를 몇 일 전에 들었다. 경주에 수학여행을 간 우리나라 중학생과 일본에서 온 중학생들이 가까이에 있었다고 한다. 요즘 일선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데 학생 중 일부가 점심으로 싸간 김밥을 던지며 장난치는 모습을 본 일본에서 수학여행을 온, 한 학생이 자기학교 선생에게 "저 애들 뭐하는 거"냐고 묻자 인솔교사 "왈" " 재들 지금은 조금 산다고 저렇게 방자하게 구는 데 조만간, 우리한테 지배를 당하게 될거야"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데는 분명  꼼수가 숨어있다. 이를테면 바둑에서 대마를 잡기 위해 멀리 보고 던진 한 수가 아닌가하는 생각과 최근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미국의 태도를 보면서 '이 것들이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아냐'라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인가 !

 인조의 무능도 또 명분 싸움으로 백성은 안중에 도 없던 대신도, 다 싫다. 백성들은 그저 배곯지 않고 등 따습게 하는 임금과 대신이 최고다. 특히 지금은 서로 협치를 해서 어려운 난국이 닥쳐오지 않도록 안팎을 여밀 때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대통령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야 옳다. 온 국민이 아는 사실을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어제 광화문에서 또 태극기가 모욕을 당하고 있는 집회를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의 암울한 미래가 걱정스러웠다. 부패든 부정이든 잘못된 행위는 응당한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옳다. 다음 세대에 귀감(龜鑑)이 되도록 하기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일을 가지고 정쟁의 도구로 삼아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최명길도 김상헌도 국가를 병화(兵禍)에 빠트린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누가 충신이란 말인가? 

'영화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과 함께를 보고  (0) 2018.01.31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버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0) 2018.01.03
택시운전사를 보고  (0) 2017.08.26
쉰들러 리스트  (0) 2016.07.02
귀향(鬼鄕)  (0) 201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