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인간의 감성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음악을 하는 사람 중에 악한 사람이 없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퀸은 내가 대학 시절에 활동했던 그룹이다. 당시엔 음악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가끔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중 따라 부르기 어려운 곡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사회자가 그들의 활동과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는 정도는 당시 자주 언급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없다. 퀸이란 그룹이 있었다는 것 외엔.
보헤미안 랩소디란 영화를 본 큰딸이 영화가 괜찮다는 평을 해서 한번 봤으면 했는데 출가한 둘째 딸이 집에 왔을 때 딱히 할 게 없어 함께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게 됐다. 그때 영화관에서 퀸의 리드 씽어 프레드 머큐리의 노래와 몸짓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의 생김새도 남달랐지만 무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현대 젊은이들이 매력을 느끼기 충분한 끼를 발산했다. 물론 영화는 배우가 그의 생전 모습을 모방한 것이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공연 장면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키가 조금 작은 것 외엔 프레드 머큐리의 공연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했던 것 같다. 영화지만 기록영화를 보는 착각이 들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부모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영국 이민을 선택했다. 머큐리는 영국령 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인종과 종교적인 문제로 영국에 이민와 세계를 떠돌며 노래를 부르다 스위스에서 죽었다. 그가 마지막 머물렀던 스위스 몽트뢰는 인구 2만의 소도시다. 힘들 때마다 이곳을 찾았던 프레디 머큐리는 "if you want peace of mind, come to montreux"라고 말할 정도로 이 도시를 사랑했고 그의 마지막 시간도 이곳에서 작곡과 휴식을 취하며 보냈다고 한다. 이곳엔 레만 호수를 바라보는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영화는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일부 다르게 만들어졌다. 관객들의 흥미와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 각색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도입부는 공항에서 수하물을 나르는 프레디 머큐리의 청년 시절을 그리고 있다. "이 멍청한 파키스탄 놈"이란 동료의 폭언에서 이민자의 차별과 편견에 대한 단면을 그리고 있다. 대학 동아리에서 보컬(vocal)을 맞았던 친구가 가수로서의 벽을 체감하고 떠나자 공석이 된 보컬에 리드 씽어로 자원하지만 앞니가 튀어나온 것을 문제 삼아 거절당한다.
동료들은 앞니 부분의 돌출을 단점으로 바라봤지만 그는 남들보다 입안이 넓어 더욱 풍성한 성량(聲量)을 낼 수 있다며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보컬의 역량을 인정받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비되는 사랑도 앵글은 놓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에서 착하고, 정의롭고 신망 받는 엘리트가 되길 바랬고, 엄마는 아들의 재능을 믿고 사랑으로 대한다. 프레디는 아버지의 조언에 반항이라도 하듯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는 뭐가 달라진 게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프레디는 어려서부터 평탄치 않은 삶을 통해 늘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맞서 싸우면서 자아를 강하게 단련했고 벽에 부딪힐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는 용기를 체득해 갔다. 그의 음악에서 굴기(倔起)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보편적으로 대중성을 띤 음악은 3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고 틀에 박힌 유행 가사의 멜로디를 고수해야 한다는 제작자와 프레디 머큐리는 서로 대립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6분짜리 곡으로 방송국에서 틀어주지 않아, 결국 그 곡은 사장될 것이란 제작자의 단언에 소속사와 결별을 선언한 후 자기의 길을 걸어간 프레디 머큐리는 대중들로부터 '보헤미안 랩소디'가 큰 인기를 얻고, 제작자의 예단(豫斷)이 착오란 사실을 입증한다. 모방은 창작을 위한 과정은 될 수 있어도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선 고정관념을 부수고 벽을 무너트려야 한다는 사실을 프레드는 자라면서 몸으로 체득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퀸 이란 그룹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는 평생을 사랑했던 메리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음악적으로 성공하면서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드러냈고 애인이었던 메리에게 자신이 양성애자란 고백을 한다. 그러나 연인 메리는 "넌 게이야"라며 냉정하게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성의 정체성에 대해 정확히 그 연원을 따질 수 없지만 정신적인 부분도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태국 여행 중에 우연히 알게 됐다. 태국 고대 왕조는 인접국과 팔백 년 동안 긴 전쟁을 하면서 남자의 씨가 마르게 되자, 대를 이을 씨앗이 필요했고 집집마다 은밀하게 남자가 태어나면 젖을 물릴 때부터 여자아이로 키웠다. 복색과 말씨는 물론이고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여성들 틈에서 그들과 동화(同化) 된 채 살았다. 특히 귀족사회 내에서 이런 풍속이 성행했는데 태국엔 그 맥이 이어져내려와 지금도 귀족층에 게이가 많다고 한다. 동성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천륜에 어긋나지만 후천적인 일탈이 아니라 유전학적 형질을 내포한 감정선(感情線)의 변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프레디는 음악적 성공을 통해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넌 앞으로 힘든 길을 걸어가게 될 거야"란 말처럼 돈과 명예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과 싸워야 했다. 결국 그는 마약을 하며 동성애자들과 어울리는 등 타락(墮落)의 길을 걷는다. 그를 수렁에서 건전낸 것도 메리다. 비록 결별했지만 우정은 변함 없었다. 메리의 충고를 받아들인 머큐리는 과거를 청산하고 일상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동성애를 나누는 과정에서 에이즈에 감염됐고 45세란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의 병을 철저히 숨기다 죽기 하루 전날 공식적인 발표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요즘엔 약물로 치료를 받고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게 됐지만 당시 후천성 면역 결핍증은 사형수처럼 죽음 앞에 서야 했다. 그는 죽음의 문덕에서 생을 정리할 때 음악에 몰입했다. 죽음은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해야 할 숙명인데 그 누구도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신이 인간 각자에게 죽음의 시간을 일러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유산 중 100억과 음반 저작권을 메리에게 줬다. 메리는 자신은 받을 자격이 없다며 거부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만약 내가 여자와 결혼했다면 너와 했을 것이란 말을 하면서 그녀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넌 게이야"란 말을 남긴 채 그의 곁을 떠나 새로운 남자와 결혼한 전 여자친구를 부모와 형제보다도 살뜰히 챙기려한 프레디 머큐리의 순수한 감정이 예술가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운명(殞命)은 등 뒤에 숨어 있는 그림자다. 그림자는 태양이 비칠 때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구름에 가리면 등 뒤로 이내 숨어버린다. 아프거나 고통이 없을 땐 죽음이란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매한가지 이유다. 시류에 맹종하는 자는 미메시스(Mimesis)의 감옥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 자기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명확해야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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