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비료 대신 인분이나 가축의 분을 퇴비(堆肥)로 사용했던 시절엔 회충, 편충, 요충, 십이지 장충 등의 기생충이 뱃속에 살았다. 그 시절엔 배앓이를 하면 회가 동한다고 했다. 또 항문이 간지러우면 요충이 있어서라고 했다. 실제로 회충약을 먹고 지렁이만 한 회충을 입으로 쏟아낸 기억이 있다. 항문이 가려웠을 때 변에서 흰색의 요충이 변에 바글바글했던 적도 있었다. 인분이 밭에 뿌려지고 거기에서 자란 채소를 먹으면 영락 없이 기생충이 몸속에 생기게 된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72회 황금 종려상을 받았다. 칸은 프랑스 남부 지방에 있다. 작년에 남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들렸던 곳이다. 5월에 갔는데 칸 영화제 개막 일주일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걸 목격했었다. 바닷가에 요트가 즐비하고 그 사이에 건축물에서 칸 영화제가 열린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은 햇볕이 드는 지상과 들지 않는 지하층,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IT 기업 CEO와 실업자, 유능한 자, 무능한 자의 대비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격차를 이야기 하고 있다. 꼽등이는 습한 곳에서 서식하는 곤충이다. 꼽등이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택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기택의 집에선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와 가끔씩 술에 취한 취객(醉客)의 노상 방뇨(路上 放尿) 때문에 싸움이 발생하곤 한다. 햇빛이 들지 않는 기택의 집은 음습해서 독특한 냄새가 난다. 밖으로 나가려면 좁고 긴 골목길을 지나가야 한다. 마치 개미굴처럼 복잡한 미로 끝이 그들의 보금자리다.
박 사장은 IT 기업 CEO다.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대저택으로 이사했다. 넓은 잔디밭이 있고 박 사장도 모르는 지하실의 피난공간이 존재하는데 전 주인인 건축가가 살 때부터 가사도우미로 있던 문광이 비밀의 공간을 알고 자신의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다. 박 사장의 부인 연교는 고등학교 2학년의 사춘기 소녀 다혜와 초등학교 3학년의 다송을 둔 두 아이의 엄마로 심플한 성격을 지녔다.
가난하지만 실력 있는 친구들은 부잣집 과외로 생활비를 벌어가며 공부를 하는 것이 과거엔 흔한 일이었다. 기우는 대학에 4번 낙방한 백수다. 그의 친구가 외국 유학을 떠나면서 물려준
과외 선생 자리는 그에게는 과분한 자리다. 하지만 그는 사문서 위조를 통해 신분을 세탁한 후 박사장의 아내 연교를 속이고 자리를 꿰차는데 과외 수업 중 연애하느라 바쁘다. 박 사장의 아들은 집에서 귀신을 본 후 이상한 행동을 한다. 그림에서도 그의 심리적 불안감이 드러나고 인디언 놀이를 하면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기우는 다송의 불안한 심리를 치료해줄 해외 유학파 미술 선생을 소개해주겠다고 제의해서 자신의 여동생 기정을 소개한다. 기정은 오빠로부터 다송의 상황을 간파하고 연교가 빠져들도록 감언이설을 늘어놓고 돌아가는데 그녀에게 빠진 연교는 운전기사에게 귀가를 돕도록 부탁하고, 기정은 자신의 팬티를 벗어 놓고 내려 마치 운전기사가 차 안에서 정사를 나눈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어 해고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후 기택을 운전기사로 소개한다.
박 사장 집 가사도우미는 이사 오기 전부터 그 집에서 살았는데 그녀의 음식 솜씨와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연교가 신뢰하는 사람이다. 기택은 그녀를 내쫓고 자신의 아내 충숙을 박 사장 집 가사도우미로 쓰려고 계략을 꾸민다. 그녀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녀에게 접근 복숭아털을 뿌린 뒤 연교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기침을 한 뒤 버린 휴지에 토마도 캐첩을 뿌려 마치 결핵환자가 각혈을 한 것처럼 오해를 사도록 해서 내쫓는다. 백수 일가족이 신분 위조와 모략(謀略)을 통해 박 사장 집에 완벽하게 안착했다.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의 생일전날 온 가족은 야외 캠핑을 떠나고 지하에 살던 기택 일가는 모처럼 빈집에서 거창한 술 파티를 즐기며 자신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입성한 것을 자축한다. 한창 파티가 무르익어갈 무렵 전 가사도우미가 찾아와 잊고 간 물건을 찾아가겠다며 집의 비밀공간에 내려가는데 충숙이 몰래 뒤를 밟고 충격적인 부분을 목격한다.
전쟁이나 급박한 사태가 있을 때 피난처로 쓰기 위해 만들어 놓은 지하실엔 문광의 남편이 사업 실패 후 전 주인이 살고 있을 때 몰래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데 박 사장 부부는 눈치채지 못했다. 어린 다송이 부엌에서 귀신을 봤다는 것은 문광의 남편이 가족이 다 잠든 후, 먹이활동을 하기 위해 지하실에서 부엌으로 나가는 중 발각됐지만 어린 다송이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했다.
충숙은 문광의 남편이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소리 지르고 문광은 충숙에게 매달 돈을 보낼 테니 자신의 남편을 지금처럼 지하에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는데 기택과 기우, 기정이 계단에서 동태를 살피다 미끄러져 구르면서 결국 문광에게 발각되고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댁 기생충이란 사실이 노출된다.
문광과 충숙의 입장이 바뀌게 되면서 문광은 기세를 잡고 가족의 동영상을 박 사장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인원수에 밀린 문광이 핸드폰을 뺏기고 그들에게 제압당한 뒤 포박 당한다. 문광은 탈출을 하려다 계단에서 굴러 사망하고 그녀의 남편도 손발이 묶인 채 지하실에 갖혀 움쩍달싹을 못하게 되면서 기택이 승기를 잡는 듯 보인다.
한편 박 사장네는 야외 캠핑장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서둘러 돌아오고 연교는 거의 집에 다 와갈무렵 충숙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전화를 하면서 꼽등이들의 지상축제는 막을 내리고 먹던 음식을 황급히 치우느라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기택의 식구들은 빈곳을 찾아 숨어든다. 마치 바퀴벌레가 음습한 곳을 찾아 몸을 숨기듯 재빠르게 테이블 밑에 기어들어가 숨을 죽이고 피해 있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영화 제목인 기생충 아니 바퀴벌레를 떠올리게 한다.
폭우는 하층민 삶의 터전으로 밀어닥친다. 가슴 위로 물이 차오르고 가재도구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에서 극빈자들의 애환이 깊게 배어난다. 비가 오면 물이 차고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는 쿰쿰한 냄새가 난다. 이곳에 살고 있는 기택의 식구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나이 어린 다송은 단번에 알아채고 기택의 식구들을 가리키면서 똑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박 사장은 아들 다송의 생일날 번개팅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한 가운데 아들이 좋아하는 인디언 추장 복장을 하고 아들과 격투하다 죽는 장면을 연출하려 한다. 그런데 파티가 시작될 순간 박 사장 집 지하에 은거하던 전 가사도우미 남편이 밖으로 나와 칼부림을 벌이면서 영화는 순간 공포와 스릴러로 돌변한다. 앞장에서 서민의 애환을 통해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렸다면 파티 장면에서 영화는 긴장감이 고조되는 스릴러로 전환된다.
기택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며 코를 막고 피하는 박 사장에게 기택은 칼을 들고 쫓아가 살해를 하고 기택의 딸 기정도 문광의 남편 칼에 찔려 죽는다. 살인을 한 기택은 자신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은 박 사장 댁 지하라고 생각하고 그리로 숨어든다. 얼마 뒤 박 사장 집은 외국인에게 팔린다.
기택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족들이 대책을 묻자 "때론 무대책이 대책이라면서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이 대책"이라고 말한다.
이제까지 영화에서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갈취하고 편취하는 것을 내세운 반면 기생충은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 속을 파고들어 자신의 기생할 공간을 만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이 집을 비운 공간에서 쾌락을 즐기며 부자들의 풍요를 맛보고, 또 음지에서 양지로 나아가기 위해 모사(謀事)를 꾸미고 자리다툼 과정에서 벌어지는 술수가 눈에 띈다.
문광의 남편은 지하실에서 세상을 등지고 기생충처럼 사는 삶에 익숙해 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는 주인집 지하에서 모두가 잠자리에 들면 냉장고를 뒤져 먹으며 생활한다. 그가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것은 자신의 아내가 기택의 식구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기우를 돌로 내리쳐 크게 상처를 입히고 파티가 한창 진행 중인 때 마당으로 달려 나와 기정을 식칼로 찔러 죽인다. 생일 파티는 엉망이 됐고 박 사장의 죽음으로 한 집안은 몰락하고 만다.
아이로니컬하게 박 사장 살해 후 기택이 스며든 곳은 그집 지하실이다. 기생충의 생리를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등 스위치를 이용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기택, 아들은 아버지가 보내는 모스부호를 해독하면서 아버지가 박 사장 집 지하에 잘 계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음습하고 냄새나는 반지하방에 살아 남은 모자는 세상 밖으로 길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기생충"을 보면서 되짚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 격차'로 인한 인간 평등의 절대적 가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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