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9 일째(20170331) : 소피아 레닌 광장, 세인트 페인트 지하교회, 차르베츠 언덕
불가리아는 우리에게 야쿠르트와 함께 장수 마을이 소개되면서 유제품을 음용(飮用)해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블가리스라는 제품명이 블가리아를 더욱 친근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역사의 보고라고 불리워 진다. 땅을 조금만 파도 역사 유적이 출토되어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지경이란다. 지층별로 다른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이곳을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부른다.
세인트 페인트 지하교회는 오스만 터키가 지배할 당시 지어진 교회다. 정교회가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건축에 상당한 제약이 따랐는데 말을 타고 지나가는 관리의 눈 높이 보다 낮아야 했다. 건물의 규모도 제약을 받아 아주 작다. 소피아는 다양한 국가의 지배를 받아서 문화적 자양분은 풍부하다. 특히 렌닌 광장 주변에 이슬람교, 그리스 정교회, 가톨릭교, 그리고 유대교까지 눈이 머무는 곳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종교 박람회를 열어도 됨직하다.
지하도에는 공사 중에 발굴된 유물과 발굴터가 보존되어 있다. 로마시대 도로와 배수 시설이 있고 마차 바퀴에 깍여 움푹 들어간 돌이 있다. 당시 불가리아는 로마의 속주로 병참기지 역활을 했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팽창 과정에 불가리아는 로마의 협력자로 큰 몫을 담당 했었다.
지하도를 지나 온천수가 나오는 광장으로 갔다. 수도물을 틀자 따듯한 물이 나온다. 현지인들은 물병을 들고와 받아가는데 석회석이 포함되어 있어 마시면 배탈이 날 수 있다고 한다. 정말 물이 미끄러웠다. 이 물을 오랫동안 마시면 몸에 석회물질이 쌓인다고 하니 겁이 난다. 온천수가 나오는 광장을 지나려고 횡단보도(橫斷步道)에 서있는데 정신이상자(精神異常者)로 보이는 여성이 아내의 머리를 치며 뭐라고 중얼거리며 가자, 현지 가이드가 그녀를 쫒아가 등짝을 때리며 미쳤냐고 하며 돌아서서침을 밷는다. 아마 그들에게 하는 욕인 것 같았다. 어찌됐든 가이드가 우리 대신 화풀이를 해줘서 속이 시원 했다.
아침 식사가 문제가 되었는지 고령팀에서 여성 한 분이 다급하게 화장실에 가야 한다며 가이드를 부른다. 현지 가이드는 눈앞에 보이는 제일 큰 정교회로 그분을 모시고 갔다. 우리도 교회 내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 도로를 건너 갔다. 크레출레쿠 정교회를 들어갔을 때 내부는 크고 웅장했다. 예배를 드리는 의자는 없고 제단 만 있어 일반 교회와 구별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도 때 반드시 촛불을 피우는 의식을 행하다 보니 교회 내부가 맑지 않고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콘도 초의 그을음에 퇴색되어 있는데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함부로 채색을 못한다고 한다. 기도할 때 산자에 대한 기도는 땅위에 초를 꽂고 죽은자를 위한 기도는 땅바닥에 꽂는 다고 한다. 정교회에서 행하는 촛불은 번제의 변형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점심 식사 후, 벨리 코투르노보로 이동 했다. 블가리아의 북쪽 끝으로 루마니아와 가까운 지역이다. 이동 중 불가리아의 장수식품 주문을 받았다. 이곳에는 유럽처럼 한국인 이민자가 많지 않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매장이 없고 현지 가이드가 주문을 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버스안에서 물건을 보지도 않고 가이드 말만 믿고 하는 데 주문량이 폭주 했다. 한사람이 6 개월을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떤집은 온 가족이 먹을 양(量)을 주문 한다며 백 유로짜리 지폐 한 움큼을 꺼내어 건넨다. 아내도 사고 싶어 안달이 났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블루베리 분말식품을 벌써 샀는데 또 사겠다고 한다. 나이든 사람에게 불노초(不老草)는 억만 금으로도 바꿀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내도 나이가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1393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5세기에 걸쳐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번창하였다. 1867년에는 오스만에 저항하는 무장봉기의 중심지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반 파시즘 운동의 최대 거점이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말이 있다. 교육을 통한 깨달음은 분별력을 통해 문제를 개선하려는 행동력을 갖는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고, 배운자는 행동하는 양심을 갖게 된다. 벨리코투르노보(Veliko turnovo)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주와 같은 곳이다.
14세기 세워진 성 베드로 교회와 성 바오로 교회가 있다. 성으로 가는 길에는 까마득한 낭떨어지가 있는 건널다리가 있다. 성문을 겸하게 돼 있어 닫히면 사람과 말이 이곳을 들어갈 수 없도록 분리 된 구조다. 과거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은 주변의 산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도로는 병목처럼 좁아 쉽게 적들이 침략할 수 없는 지형이다. 천연 요새가 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투르노보는 옛 이름이다. 정상까지 대략 15분이면 갈 수 있다. 지금은 성당과 종탑만 남아있다. 성당 내부에 이콘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고통 받고 억압 받는 이들이 절규하는 모습이다. 밧줄에 묶이고 고통 받는 사람과 촛불을 들고 저항하는 사람, 입을 가리고 성경을 읽는 수도사, 가면을 들고 있는 수녀까지 군상들의 모습은 당시 박해와 저항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불의에 침묵하는 종교인을 비판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는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며 우리와 작별 인사를 했다. 돈이 많아서 소매치기 당하면 큰일 나는데 아무일 없겠지? 우리는 블가리아를 뒤로 하고 루마니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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