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브카레스트, 바르나, 네세바르

해암 송구호 2017. 4. 30. 18:32

  여행 11일째(20170402) : 불가리아에서 마지막 밤을
 

자연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장소에 있는 네세바르 고대 도시(Ancient City of Nessebar)는 문화의 영역에서 고대 인간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단일 민족이 남긴 다양한 문명의 흔적이 즐비하다. 나무집은 발칸 반도와 지중해 동쪽 전체 지역 건축 양식의 발전 단계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도시 지역의 구조물들에서는 기원전 제2천년기(second millennium BC, 기원전 2000~기원전 1001), 고대 시대, 중세 시대의 양식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전통적인 비잔틴 양식의 도입으로 변경된 중세 종교 건축물에서는 도기 장식품과 당시 특이하게 채색된 장식품을 볼 수 있다. 마을은 기독교식 문화와 종교적 정착지로서 수천 년 넘게 알려져 왔다. 

조그만 바위들이 많은 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 지역 안에, 기원전 30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계층의 총체적인 증거들이 남아 있다. 주된 양식들이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남아 있지만, 1986년부터 19세기경 불법적인 구조물들이 지어지고, 새로 건축된 몇몇 건물이 문화유산법에 위반됨으로써 예외적 일들이 발생했다. 더욱이 기념물과 박물관법을 위반함으로써 발생한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해 반도의 해안 경관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모든 변화들은 도시 구조물과 전체 유산의 순수성이 지니는 뛰어난 일관성을 잠재적으로 위협했다. 

  유일한 보존과 안정화 작업은 중세 교회에서 이행되었으며, 조사가 이루어진 모든 고고학적 유적지는 발견된 다음에 보존되었다. 몇몇 중세 교회는 보수가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방문객 수가 늘어남에 따라 통제가 어려워지고, 공공과 주거 기능, 투자대상으로의 관심으로 인해 이동식 소매점 등이 들어와서 목조 가옥 중 몇몇은 허가 받지 않은 변경이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도시 안의 전통적인 도시 구조물, 고고학적 외관과 분위기는 위협받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고고학의 연구, 강화, 복원 및 보호에 의해 다른 어떤 곳보다 네세바르의 역사적 흔적들은 잘 보존되어 왔다. 작은 반도는 과거 교역의 중심지였다. 제국의 전초지였던 네세바르는 이제는 몰락하는 변방 도시가 되었으나 당시에 중요한 역사적 위치로 인해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끊임없는 거주했던 곳으로(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 정착지의 초기 흔적들) 인상적인 문화층(occupation layer, 유적에서 특별한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는 발굴상의 층위)을 만들어 냈다(어떤 곳은 두께가 6m나 된다).
  불가리아 해안의 바위 절벽 위의 네세바르는 3,000년 넘게 풍부한 도시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많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됨으로써 이 자연적인 방어지역에 고대 도시에 트라키아 인들이 처음으로 정착했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는 그 도시의 원래 이름 ‘메네브리아(Menebria)’의 기원인 메나(Mena, 트라키아 인)에 의한 전설적인 건설을 기록하고 있다. 메가라(Megara)로부터 온 도리안 이주민들은 메셈브리아(Messembria)라는 폰투스 에우크시누스(Pontus Euxinus, 흑해의 옛 이름)의 가장 오래된 그리스 식민지를 만들었다. 헤로도투스(Herodotus)에 따르면 이 도시는 기원전 513년에 이미 존재하였다.
  네세바르는 낭만적인 협곡을 따라 그 안에 둘러싸여 있다. 거리에는 자갈이 깔려 있으며, 중세교회는 본래의 모습대로 보존이 잘되어 있다. 그리고 19세기 목조 가옥은 파란만장한 과거를 묘사한다. 네세바르의 교회는 슬라브족과 그리스 정통 건축이 교차하는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몇몇은 지역에서 가장 세련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네세바르는 서로 다른 시대정신과, 트라키아 인과 헬레네 인, 비잔틴 인, 불가리아 인의 서로 다른 민족정신을 여전히 내뿜고 있다. 반도의 동쪽 끝에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그리스 도시는 아직까지 부분적으로 북쪽에 존재하고 있는 6세기경의 성벽에 의해 방어되었다.
  메셈브리아가 로마의 영향을 받아 쇠퇴하던 당시에 건설된 건물들 가운데 아고라 극장과 아폴로 신전의 흔적도 남아 있다. 도시는 기원전 71년에 로마에 편입되었지만 나라의 화폐를 주조하는 등 이전의 특권은 계속 누렸다. 테오도시우스의 죽음으로 로마 제국과의 분리되었을 때 메셈브리아는 비잔틴의 영토가 되었으며, 동로마 제국의 가장 중요한 본거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와 불가리아 전쟁의 목표물이 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메셈브리아는 어느 쪽 군대가 승리를 쥐느냐에 따라 이쪽에 점령당했다가 저쪽에 점령당했다가 했다. 2주간의 포위 후에 812년에는 불가리아 칸 크룸(Krum)에 점령당했다. 그 후 1453년 터키의 포로가 될 때까지 네세바르는 독특하고 훌륭한 기념물을 소유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9세기경에 트랜셉트(transept) 없이 재건축된 가장 큰 교회 성당인 스타라 미프로폴리아(Stara Mitropolia), 성모마리아 교회(Church of the Virgin, 11세기경 건립되어 18세기까지 계속 장식된), 노바 미트로폴리아(Nova Mitropolia), 고고학적 박물관을 소유하고 있는 성요한 침례교회(Church of St John the Baptist), 마침내 13세기와 14세기 교회들 중 눈에 띄는 건축물 시리즈인 성테오도레(St Theodore) 성당, 성 파라스케바(St Paraskebba), 성미카엘 및 성가브리엘(St Michael and St Gabriel) 성당, 그리고 성요한 알리투게토스(St John Alituhgethos) 성당 등이 있다.
  다른 주목할 만한 교회는 비잔틴 초기 양식(4, 5세기)에 따라 지어진 구 주교의 거주지가 있으며 12세기 귀중한 벽화가 있는 새로운 주교 거주지(성스테판) 등이 있다. 터키인의 지배는 네세바르의 몰락과 동시에 시작되었지만, 19세기경 ‘플로브디브 스타일(Plovdiv style)’로 지어진 많은 집들로 풍성해진 기념비적 유산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시대 특유의 구조는 도시의 수준 높은 응집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해안으로 이어지는 좁은 자갈길과, 석재를 기초 기반으로 하고 넓은 나무 처마를 이용한 네세바르의 국립 복원 주택은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인용자료 : 유네스코 세계유산]

  

네세바르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는데 관광지로서 매력은 없었다. 그러나 자료를 통해 이곳이 3,000년 전 트라키아인들이 정착해 살았던 고대도시로 역사적 가치는 높다는 사실과 그곳에 들렸었다는 데 자족해야 할 것 같다. 이날 바람도 불고 추워서 해변가 까페에 앉아 망중한을 보내다 호텔에 간 기억 밖에 없다. 여행 끝무렵은 관광보다 그냥 어딘가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드는 것은 왜일까? 내일 아침엔 숙소를 나와 테러 위험이 도사리는 터키의 이스탄블에 가야 한다. 거기서 두바이를 경유 해 인천공항 행 비행기로  귀국하게 된다. 이제 발칸 여행을 마치려 한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것을 얻어 간다. 특히 발칸지역이 로마의 속주로서 침략을 받고 그 지배하에 있었으며 동로마제국이 무너지는 15세기(1453년)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이 팽창하면서 이슬람 영향권 아래 있었다는 점은 발칸국가의 공통 사항 이다. 그리고 해상무역의 강국 베네치아 왕국이 아드리아 해를 중심으로 한, 연안국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도 이번 여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발칸 국가는 뒤 늦게 야만의 늪에서 빠져 나와 그들 만의 문명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인류 문명사에 또 다른 분파로 작용할 것이다. 강대국의 지배하에서 다양한 문명을 포섭(包攝)했고 출발은 늦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과거의 역사가 발전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