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7 일째 : 코토르, 티라너, 오흐리드
드브로니크에서 헤르체크노비로 가는 버스안에서 내게 한 가지 의문(疑問)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 했다. 버스 안에 먹다 남겨 놓은 물이 계속 없어지는 데 내것 뿐 아니라 아내의 것도 없어 진 다는 거 였다. 의구심이 쌓여 가던 중 결정적으로 뇌관이 된 것은 스톤(ston)에서 산 소금 이다. 우리가 앉았 던 곳 위 선반에 몇 일을 놔두었는데 보이질 않았다. 선반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가로막이 있어 차가 큰 요동을 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게다가 간식을 넣어둔 봉투에 함께 넣었는데 소금을 넣은 봉투만 어디로 가고 없어 분명 차안의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고 보고 인솔자에게 차의 보안이 의심된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앞에 앉아 있던분이 기다렸다는 듯 소금을 내게 건네며 잘 찾아보지 않고 주변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경솔했다며 일행 전부에게 공식으로 사과하라고 말했다. 물건의 가격을 떠나 난 그져 내게 있던 소소한 사건이 혹여 버스에 외부인의 손이 타는 것 아닐까를 말한 것인데 내부 문제로 비약해서 내부자를 의심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귀중품을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소란을 떨어 그 원망의 중심에 내가 있게 된 꼴이었다. 그런데 내게 소금을 건네었던 분의 반응이 꺼림직하다. "도둑이 제 발 저려서 뛴다."는 말처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점은 두고두고 의구심을 갖게 했다. 마치 자기 수중에 지니고 있다 내게 건네는 것처럼 재빠르게 소금을 건넨 점과 또 자기 방어본능이 예민하게 작용한 점이다. 어쨋든 물건을 소홀하게 다룬 내게 큰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의구심가는 사건에 대한 결말은 처음에 운전기사가 먹다 남긴 물을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재차 번복하면서 모든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여행이 끝날 때까지 찜찜한 느낌은 가셔지지 않았다.
여행 7 일째 날인 오늘은 삼 개국의 국경을 넘고 하루 동안에 삼시 세 끼 식사를 각 나라에서 해결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아침은 몬테 네그로, 점심은 알바니아 그리고 저녁은 마케도니아다. 누가 들으면 대통령 세계 순방 하는줄 알겠다. 발칸 여행은 국경을 도시의 경계를 넘나들 듯 오고 간다. 이탈리아 여행 때는 도시 경계를 넘어 갈 때마다 도시 통과세를 내야 했는데 여권검사가 없어 번잡스럽지는 않았는데 발칸 여행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여권을 거둬 스템프를 찍어 댄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운전사는 물이나 술을 국경 경찰에게 건네곤 했다. 뇌물(賂物)은 이들 사이에서는 일종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요즘처럼 테러문제로 국경 통과가 까탈할 때는 작은 흠이라도 잡히면 붙잡아 두고 보내질 않으니 알아서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들이 이용한 버스의 기사는 젊고 눈치가 빨라, 국경 통과 하는데 별 이상이 없었다.
몬테 네그로는 검은 산이란 뜻이다. 우리가 가는 코토르는 북유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피요르드(fjord)가 발칸에 있어서 더욱 주목 받고 있는 곳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중에 노르웨이의 송네피오르는 그 길이가 204 km나 된다. 피요르드는 빙하 침식으로 협만(峽灣)이 형성되어 내륙 깊숙히 바다물이 들어온 상태를 말한다. 피요르드 지형은 배가 정박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어업이나 해상무역이 발달 한다. 노르웨이의 바이킹도 피요르드가 발달된 곳에서 탄생했다.
코토르는 BC168년경 아크루 비움(acruvium)이라 불리는 로마제국의 속주였다. 유스티니아 1세(서기 535년) 때에는 아스크리비움(ascrivium)이라 불렀고 해안가 위에 요새가 건설되어 고트족의 남하를 막았다. 그후에도 전략적 요충지와 무역 거점으로 이용 가치가 높아 불가리아제국, 베네치아공화국, 오스만 투르크제국 등에 통치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베네치아 공화국이 15 세기부터 18세기 대부분을 지배했고 오스만투르크제국은 17세기무렵 2차례에 걸처 단기간 점거했었다.
베네치아가 장기간 지배해서 도시 및 건물의 구조는 베네치아의 건축양식을 지녔다. 코토르는 로마의 속주 때 이미 군사기지로 지어졌을 만큼 군사적 요충지다. 중세 세르비아 네만리치 왕가에 의해 세워진 성벽은 아직도 그 위용(威容)을 드러 내고 있다. 구시가지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비교적 중세의 도시를 잘 보존하고 있다. 1166년 건립된 성 트뤼폰 성당과 시계탑, 왕자의 궁전, 정교회 등이 오밀 조밀하게 모여 있다. 도시 뒤에는 발칸산맥이 성을 감싸 안고 있는 형국이다.
산을 좋아하는 아내와 나는 자유 시간에 도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올랐다. 벌써 야생화가 피어 봄의 향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화려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아도 봄의 전령이 되길 자청하는 야생화가 예뻐서 카메라의 셔터를 연거푸 누른다. 코토르(kotor)는 베네치아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을 지녔다. 산에서 바라보니 그 모습이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 났다. 지붕 모양과 도시가 똑 닮았다.
티라너는 알바니아의 수도다. 버스가 호텔 식당앞에 정차하고 우리 일행이 내리자마자 코를 흘리는 어린 아이가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구걸(求乞) 한다. 알바니아는 국민소득(GNP) 삼천 삼백 달러로 세계 99 위의 후진 국가다. 어린 아이들은 집시들로 먹을게 없어 거리를 떠돌며 구걸을 한다. 집시족은 인도에 뿌리를 둔 코카서스인으로 카스트 제도에 불만을 품고 탈출해 헝거리를 비롯한 전 유럽에 흩어져 사는데 사회적 약자로 어느 지역에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특히 특별한 직업이 없고 소매치기나 도적질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집시들에게 여행객들은 소중한 자원이다. 반면 여행객은 그들이 경계대상 1호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지갑이 주머니 안에 잘 있는지 본능적으로 반응 한다.
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호사를 누리고 시내 투어를 하기위해 스탄더 베르그 광장앞에 갔더니 광장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입장 할 수 없고 일행 중 나이드신분이 화장실을 급하게 찾다 보니 공중화장실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매다, 결국 커피 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하고 단체(團體) 인원이 커피숍에 들이 닥쳤다. "커피숍 습격 사건"이다. 30 명이 긴줄을 서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화장실 상태는 여성에겐 최악(最惡)의 상황이다. 벽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어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화장실 같지 않은 곳에서 힘겨운 자세로 소변을 봐야 했다. 어떤이는 성급함 때문에 안에 갖혀 못나오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티라너에서는 화장실의 추억만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는 바다 같은 호수가 넓게 펼쳐져 있다. 저녁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사용하려니 물이 내려가질 않는다. 이런 내용을 카운터에 말하고 다른 방을 배정 받았다. 새롭게 배정 받은 룸은 넓고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좋았다.
저녁 식사 후 호수가를 산책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가로등이 없어서 호수가를 걷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산책 중 맞은 편에서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향해 물건을 던질 것 처럼 공격적인 몸짓을 하니 아내는 무서운 공포감을 느낀 모양이다. 지금도 오흐리드의 호수를 생각하면 건장한 키에 허름한 옷 차림새 그리고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오던 부랑자가 떠오른다고 한다. 문제는 악몽을 꿀 때 오흐리드의 부랑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오흐리드 호수의 추억은 오래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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