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마르코폴로의 고향 코르출라섬과 스톤의 소금 그리고 드브로부닉 성벽

해암 송구호 2017. 4. 26. 10:16

  지중해의 햇볕은 빛의 강렬함이 매혹(魅惑)적이다. 몸을 짓누르는 듯한 강렬함을 지녔다. 특히 아드리아해의 빛과 뜨거움은 곡식과 과실이 익기위해 필요한 강렬함 일지도 모른다. 아드리아 해는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여름 휴양지다. 도로를 지나다 보면 여름 휴가철을 대비하려는 듯, 보수 및 확장 공사가 진행되는 곳이 간간히 눈에 띠었다. 유럽인들은 차량 정체가  되풀이 되더라도  불편함을 잘 참는다고 한다. 공사 안내판도 특별하다. 우리 같으면 "통행에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라고 씌어 있는데 반해 "당신의 편의를 돕기 위해 공사 중이니 불편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라!" 안내판의 문구가 건방진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인솔자는 성수기 때는 이곳에서 막히면 2~3시간은 길에서 꼼짝을 못한다며 본인도 4시간을 길에서 꼼짝 못한 적이 있는데 생리 문제 때문에 우산을 들고 벌판에서 겨우 해결을 한 적이 있었다며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드리아 태양의 매혹에 빠진 유럽 피서객들이 전 지역에서 몰려드는 바람에 몸살을 앓는다는 편도 1차선인 이 도로는 우리나라 같았으면 아마 오래 전에 8차선을 냈을 텐데, 자연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편은 참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인내심이 놀랍다.

  코르출라 섬에 가는 길은 험준 산령을 넘어야 했다. 천길 낭떠러지가 도로 옆으로 계속해서 펼쳐지니 속으로 "한번 구르면 그걸로 끝이구나"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코르출라 섬에는 동방 견문록으로 유명한 마르코폴로가 태어난 생가가 있다. 이곳 섬 사람들은 그의 출생을 확신하고 있지만 베네치아에서는 마르코폴로를 자기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어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마르코폴로는 베네치아에서 동방무역을 한 인물로 몽골, 중국 등에 장기간(25년) 머물며 아시아 사정에 밝았다는 점과 그가 베네치아와 제노바 간에 "동방무역 지배권"을 두고 전쟁 중, 제노바에 붙잡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동료 죄수였던 기사도 작가 루스티 첼로에게 구술을 통해 쓰여진 것이 동방 견문록이란 사실이다.

  코르출라 섬 사람들은 마르코폴로가 이 지역 출신이란 점을 두 가지 사실을 갖고 주장하는데 우선 키가 2m가까이 되는 점과 폴로라는 성을 지닌 사람은 아직도 이 섬 이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점을 들었다. 우리가 섬에 도착했을 때 현지 가이드가 나왔는데 폴로의 후예답게  키가 2m는 족히 넘는 것 같았다. 코르출라 섬은 작았는데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 것은 마르코폴로의 생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지역 사람들이 마르코폴로를 자신들의 조상이라 주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역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처럼 세상에 이목을 끌고 관련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면 지역의 경제는 꽃 필테니 말이다.

  스톤(ston)은 고대부터 염전을 해왔던 해안가의 한적한 마을이다. 지금은 조용하기만 한 포구에 불과하지만 과거에는 이곳이 큰 영화(榮華)를 누리던 곳이다. 소금 한 스푼의 가격이 금 1kg과 맞바꾸는 정도였다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귀중품은 노리는 자(者)들이 많기 때문에 보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쌓은 성의 둘레만 5.5km다. 견고하고 높게 쌓아 올린 성을 보면서 당시 소금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지 짐작할 뿐이다. 

  소금은 우리나라의 천일 염전처럼 바닷물을 가두고 수분을 증발시켜 얻어내는 구조였다. 요리의 장인은 소금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너무나 잘 안다. 맛을 내기도 하지만 소금이 포함하는 미네랄의 성분에 따라 음식과 어떠한 조화를 이루고 또 먹는 사람에게 얼마 만큼 이로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로마시대 때부터 소금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월급(salary)의 어원이 소금(salt)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소금이 귀하긴 귀했었나 보다.

  스톤하면 돌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지명(地名) 스톤(ston)은 늪지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드리아 해의 뜨거운 햇볕이 만들어 낸 소금은 미네랄이 풍부해 짠 맛과 단 맛을 동시에 갖고 있다. 발칸에서 몇 일 동안 점심식사로 나온 메뉴는 대부분  생선을 기름에 튀겨 낸 후 감자를 곁들여 먹는 것이었다. 오늘도 점심 식사에 생선이 오를 예정이란 인솔자의 귀뜸이 있었기 때문에 나 혼자 가설을 세웠다. 이곳에서 현지식으로 먹는 노멀(normal)한 음식은 생선 요리다. 빵이 먼저 나오고 메인으로 생선과 감자가 나오는 것이 현지식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침 저녁 가리지 않고 스파게티를 먹어야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추측과 상상이 혹 사상누각(沙上樓閣)을 세운 것일지 모른다. 흔하게, 빈번하게 먹었던 음식이란 점이 그런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이곳에서 굴 요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한 접시를 시켰다. 한 접시에 6개의 굴이 나오는데 4유로를 받았다. 굴은 싱싱한게 맛이 좋았다.

   나는 과거 소금의 가격을 빌어 그동안 마음의 빚을 지은 친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소금 두 자루(500g/자루)를 샀다. 이것을 가지고 농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입안에 침이 돈다. 그리고 농(弄)에 배를 잡고 웃을 친구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소금 한 스푼과 금 1kg을 맞 바꾸었다면 소금 한 움큼의 가격이 도대체 얼마였을까? 상상하면서.. 이보다 큰 마음의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두브로 브닉의 성벽 위를 걷는 일정, 벤을 타고 스르지산 정상에서 올라 시내를 조망하는 코스 그리고 해적선을 타고 섬 주변을 구경하는 코스가 오후 일정에 있다. 아마 이번 여행의 하일 라이트가 아닐까?  " 두브로브닉을 보지 않고서 천국을 논하지 말라"고 말한 조지 버나드 쇼의 찬사가 현실감 있게 다가 올지 여행을 해보면 알게 될 일이다.

  두브로브닉은 성벽이 웅장하다. 성벽의 끝판왕, 아니 성벽의 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도심을 둘러 싼 성벽은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적들이 발 붙일 곳 없도록 견고하게 지어졌다. 성은 겨울에는 따듯한 바람을 가둬두는 역할을 하고 여름에는 물고기 가시와 같은 구조를 띠어 시원한 남풍이 도시로 불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된 계획 도시다. 풀라차 거리는 도심 중앙을 곧게 관통한다. 그리고  저지대는 고기의 뼈와 같이 골목 사이 사이로 통로가 나있다. 반면 고지대는 바람이 통과할 수 없도록 막힘 구조로 되어 있다. 고지대는 북풍을 막아 겨울의 찬바람이 도시 내로 유입되는 것을 막았다. 반면 생선 가시 모양의 저지대는 남풍을 맞는 열림 구조로 되어 있다. 저지대에는 주로 서민들이 모여 살았고 고지대에는 부자들이 살았는데 그들만이 다닐 수 있도록 별도로 문을 내서 외부 출입을 자유롭게 했다. 개구멍을 부자(buza)라고 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부(富)가 아니라 구멍(口)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드리아의 아름다운 미항 드브로브닉은 금과 은이 거래되던 무역 중심지로 막강한 부를 축적했으나 17세기 말엽 대 지진이 일어나 파괴되었다가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과거의 영화를 드러내듯 하얀 대리석이 깔려 있는 플라차 거리의 바닥은 맨질맨질 해 파리도 낙상할 지경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오고 갔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금과 은이 이 거리에서 거래 됐을까?  부자까페가 있는 성벽도시 드브로브닉의 구시가지를 들어가려면 필레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성벽에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가 성(城)을 들고 있는 조각이 있다. 성을 지키려는 당시 주민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성벽 위 투어는 성의 외곽을 걸으면서 성 내부와 해안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아드리아 해의 쪽빛 파란 물결과 해안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도시가 그림엽서처럼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다운 사진이 된다. 

  스르지산에 오르기 위해 걸어도 되지만 미니벤을 타고 오르면 쉽게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것도 도시를 관망하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리는 벤을 타고 올랐다. 산 정상까지 좁고, 꼬불꼬불 한 언덕을 오를 때 곡예 운전과 차의 롤링에 의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니 발 아래 드브로니크 시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동유럽풍의 집들이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뒤쪽에는 발칸산맥이 길게 뻗어 있어 이곳이 발칸이란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준다. 

   부두에 가서 해적선에 오르니 벌써 한 낮의 땡볕이 사그러 들어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배는 범선이다. 돗을 이용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도록 꾸며졌다. 디젤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모양은 해적선이 분명한데 실체는 통통 배다. 배가 움직이자 선원이 우리에게 음료를 따라 준다. 선장은 앉아서 발로 키를 잡고 조정할 만큼 능숙하다. 너무 쉽게 운전하니 관광객 중 한명이 키를 잡아보겠다고 제의하자 단호하게 거절한다.

  배가 항구에서 벗어나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드브로브닉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온다. 해변에서 벗어나 얼마를 가다 보면 나체해변으로 유명한 '로크룸 섬'이 보이는데 실제로 이곳에는 나체주의 자들이 생활한다고 한다. 5월 쯤이면 해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썬텐을 즐기는데 그들을  멀리서도 쉽게 알수 있는 것은 "여자는 위가 흔들리고, 남자는 아래가 흔들린다."는 인솔자의 말이 재미있다.

  산에서, 성벽 위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도시를 관광하고 마지막으로 도시를 둘러볼 수 있게 자유 시간을 주니, 자유시간 때 몸은 이미 자유를 잃었다. 어딘가에 앉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유럽에서 물과 화장실 이용은 돈이다.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든 공중 화장실이 있고 물도 어느 식당을 가든 자유롭게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화장실도 돈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화장실을 지키던 직원이 정시에 퇴근을 해서 돈이 있어도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난관(難關)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행히 인근 까페 직원에게 부탁하고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현지인의 따듯한 마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덕에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교환했던 현지화가 쓸모 없게 될 처지에 놓였다. 딱 아이스크림 가격인데 방금 전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아내는 더 못먹는다고 하니 내가 먹을 수 밖에 없다. 돈을 소비하기위해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었다. 인솔자는 방금전 먹고 또 먹냐며 놀란 표정을 짓는데 속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화장실에 대한 트라우마는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저절로 생긴다. 인솔자의 말에 따라 화장실 가는 정도가 빈번하게 되고 주문처럼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는 말에 휘말리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화장실을 가게 되고 주기가 불규칙하게 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소변이 마려워지는 오줌 소태와 같은 묘한 병에 걸린다. 공용화장실은 별 문제가 안되지만 유료 화장실의 경우 유로를 받지 않고 현지화가 없을 때가 문제다. 소변을 보기 위한 환전도 여행에서 겪어야 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소액을 환전해야 하니 참 난감하다. 노인들은 아예 물을 마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죽기보다 싫기 때문이다. 그러다 생병 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