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 동료와 3년째 해외여행을 함께하고 있다. 이번에 가는 곳은 중국 후난성의 장 가계다. 작년에 싸드(THAAD) 문제가 붉어지면서 우리나라에 몰려오던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겨, 국내 경제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중국으로 여행지를 정해야 할까 꽤나 망설였다. 베트남을 여행지로 놓고 고민했지만 장가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끝내 현실적 불편함에도 불고하고 장가계로 여행지를 선택한 후,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우리 일정은 3박 5일로 다소 팍팍하기는 하다. 하루는 새벽2시에 장사에 있는 숙소에 가서 잠을 자야했고 그 다음날 7시에, 장사에서 4시간 30분을 버스로 달려 장가계로 갔다. 전날 두 세 시간 잠을 잔 후 여행을 하다보니 주체할 수 없는 피곤함이 몸을 짓누르는 상태에서 천문산(天門山)에 올랐다. 엄밀히 따지면 내 몸이 케이블카에 의탁(依託)했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천문산과 연결된 케이블카는 편도 길이가 7.5Km로 약 40분 소요된다. 케이블카는 도시 한 가운데서 출발하고 승객을 싣고 나르는 곤돌라가 고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간에 다른 케이블에 실려 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지하철도가 전기 공급이 다른 구역에 도달했을 때 연결되는 과정처럼 축을 중심으로 해서 양쪽에 케이불이 따로 돌면서 곤돌라는 밀어주는 기계장치에 의해 다음 케이블로 옮겨 이동했다. 문제는 70도가 넘는 경사도에서 케이블을 받쳐주는 기둥도 없이 고정되지 않은 곤돌라가 용케도 정상을 올라간다는 점이다. 또 험준한 산에 이러한 시설을 한 것은 오롯이 사람의 손이라고 했다. 그 어떤 장비를 쓰지 않고 수작업으로 마쳤다는 가이드는 일설에 죄수들을 작업 현장에 데려와 일을 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말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사람 손에 의해 이러한 공사를 했다는 것이 놀랍다. 달나라에서 인공 구조물은 중국의 만리장성 밖에 안 보인다고 하는데 과거 이래로 그들의 스케일은 남다른 점이 있다.
산허리를 빙 둘러 길을 냈는데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내려온 잔도(棧道)기술이 상상 이상이다. 300m 높이에 길을 만들고 그 길의 일부는 유리로 바닥을 깔아 지나가는 사람의 심장이 오그라들게 한다. 우리 일행 중 부부도 공포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본인 말로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율이 온다고 했다. 고소공포증(高所恐怖症)이 심한 경우 오줌을 싸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담력이 없는 사람은 무서운 코스다. 귀곡잔도에는 붉은색 띠가 나무에 수도 없이 많이 묶여 있었다.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그 바람을 적어 매달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도 가족의 건강을 염원하는 글을 써서 묶어놓았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일보다 가족의 건강을 더 염원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추측을 한다.
천문산을 내려올 때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대형 쇼핑몰이나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기계다. 산에 굴을 파서 경사 45도로 길을 내고 그 위에 기계를 설치했다고 한다. 백 미터 이상 되는 것이 족히 스무 개는 넘는 것 같았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여행의 맛은 현지의 밤 문화를 즐기는 것이다. 야시장에도 가보고 주점에 들려 술 한 잔을 기울이는 것도 좋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끼리 가다보면 의사불통으로 겉을 맴돌다 돌아오기 일쑤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할 수 있어 저녁 모임은 풍요로웠다. 현지 가이드는 우리가 술값을 내려하자 화를 내며 자신이 낸다고 했지 않느냐며 우리가 내민 손을 부끄럽게 했다. 대륙적 기질을 타고나서인가? 아니면 객기인가? 우리가 갔던 가게는 조선족이 하는 양 꼬치를 파는 집인데 청도맥주를 곁들여 먹었다. 더운 여름, 숯불에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는 것이 썩 좋은 조합은 아닌 것 같다. 맥주는 시원한데, 불앞이라 열기가 몸을 달구어 덥고 습기가 많아서인지 몸에 끈적 끈적함이 신경쓰였다.
여행 중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패키지(package) 여행은, 선택 관광과 쇼핑센터 방문이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여행도 예외는 아니다. 첫째 날 선택 관광을 우리에게 합의해서 결정하라는 가이드의 말에 유리다리를 건널 자신이 없던 4명이 유리다리와 묶여진 대협곡 코스를 뺐는데 그들의 선택에 불만을 품은 가이드는 마음이 상해서 우리에게 차갑게 대했고 일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더운 여름날 차안에서 꼼짝을 못하고 볼모로 붙잡혀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번 여행에서 쇼핑센터 방문이 무려 4회가 잡혀 있었다. 여행지마다 들르는 라텍스, 게르마늄, 차(茶), 선물가게다. 쇼핑센터에 들어가면 1시간은 볼모로 붙잡혀 있어야 한다. 간혹 살 의향이 없거나 담배를 피우려고 자리를 뜨면 강제로 막거나 듣기 민망한 말로 거칠게 대한다. “가서 잡아와!” 여행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행사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험한꼴 보지 않으려면 쇼핑이 없는 상품을 골라 가는 것이 최 상책(最 上策)이다. 심지어 게르마늄 상품을 파는 매장에서는 2주 전 황산에서 구입했다며 가볍게 거절하자 직원 중 한 사람이 내게 중국에 자주 오는 것은 현지처가 있어서 아니냐며 반지로 된 것을 보여주며 애인에게 선물로 주라고 강권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생활용품 코너로 끌고 가, 칼이나 감자 깎는 칼을 보여주며 팔에 매달려 개시도 못했으니 하나 팔아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떼로 몰려드는 인해전술에 감자깎는 칼을 사고서야 그들의 포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버스에 돌아오니 일행들이 박수를 치면서 나를 맞는다. 그들은 선방했다. 희생 플라이다. 등등의 말로 현실적 불편함을 일소(一笑)하려 했다. 그렇다보니 우리끼리 순번을 정해 적당히 들리는 곳에서 가이드의 면을 세워주기 위한 적당한 소비를 해야 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다음 차례는 교수, 제자팀이 총대를 매겠다고 한다. 차를 파는 쇼핑센터다. 차차차(茶茶茶)..
과거에 장 가계(長家系) 여행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걷고 또 걷는 고행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코스에 기계장치가 가미되어 있어 돈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십리화랑(十里花廊)에도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앉아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는 여유가 생겼다. 천자산도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서 수려한 산수를 감상할 수 있다. 천자산 옆, 하룡공원에는 하룡 장군의 동상이 있다. 그는 중국의 10대 명장 중 한 명인데 하필 6.25 때 우리의 적으로 싸웠던 인물이란다. 그래서 그의 동상이 있는 광장에는 들르지 않고 인근에 있는 선녀신화의 바위와 어필봉(御筆峰)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고 아바타의 촬영지 장가계로 갔다.
장 가계는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장자방 장량이 마지막까지 살았던 곳으로 그들의 후손들이 일가를 이뤄 장 가계가 됐다. 유방은 왕권 강화와 안정을 꾀하기 위해 창업공신을 하나씩 쳐냈는데 장량은 유방의 흉심을 간파하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유방은 4년을 지켜보고 그가 역심을 품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확인한 뒤 돌아갔다고 한다.
장 가계는 아바타 촬영지로 유명하다. 뾰쪽한 산봉우리와 밀림처럼 우거진 숲이 도가에서 말하는 이상향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현지인이 직접 삽과 곡괭이를 들고 5년에 걸쳐 만든 산 위에 밭이 있다.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면 이곳은 영락(零落)없이 선계(仙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밭에서 물이 솟아난다고 하니 경탄할 일이 아닌가 싶다. 300미터 높이의 산 봉우리에서 샘물이 난다니. 믿겨지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곳에 물이 있고 곡식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이드는 땅을 개간한 현지인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지낸다고 해서 그와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렸다.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명사라고 한다. 나이는 나와 동갑인데 얼굴 피부가 소년처럼 탱글탱글하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지나놓고 생각하니 담배를 입에 물고 사진을 찍는 것은 자신의 호기를 과시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모택동이 혁명을 한 후 토지 분배 과정에서 산간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산봉우리가 뾰쪽한 이곳의 산을 나눠줬다고 한다. 산에서 나는 약초와 나물을 캐서 먹고 살라는 것인데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되어 입장료(천원)를 받는다. 이들은 작은 움막을 지어놓고 사진을 찍어 팔기도 하는데 국가가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수용 절차에 들어가 주변 가옥이 빈곳도 있었다. 500년 넘게 한 곳에서 살아온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 터전을 두고 떠나는 심정은 어떨까? 아마도 새로운 터에 자리를 잡고 살 걱정과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현실 앞에서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몇 년 후에는 이곳 장 가계에서 원 가계를 잇는 케이블카를 놓는다고 한다. 협곡에 기둥도 없이 운행될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것을 상상하면 또 다시 대국의 기개(氣槪)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편리함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호주머니를 털어야 하니 여행 경비는 점점 올라가게 될 것 같다.
원 가계는 야생 원숭이가 살고 있다. 공원의 주인이다. 사람들이 먹이를 줘버릇해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가는 사람은 원숭이가 공격을 한다. 먹을 것 인줄 알고 빼앗으려는 것이다. 몸집은 작아도 민첩해서 서, 너 마리가 순식간에 비닐봉지를 낚아채 간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산채에서 화석을 사서 들고 가다 봉변을 당했다. 다행히 물리지 않았지만 일행들은 한 순간 얼음이 됐다. 원숭이에 물리면 우리가 개에 물리면 광견병 주사를 맞듯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500위안이 든다고 한다. 공원에 원숭이가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원 가계에는 500미터 높이를 1분 40초에 내려오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있다. 급강하에도 탑승자는 그 어떤 변화를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이다. 순간 이동처럼 시간의 압축만 있을 뿐이다.
하루 종일 걷다보니 온 몸이 땀으로 끈적끈적하고 속옷이 끼어 피부가 상했는지 쓰리고 아픈데 호텔에 들르지 않은 채 야시장으로 나가자는 일행에 이끌려 인파가 들끓는 야시장에 갔다. 이곳은 경제특구로 외국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풍물시장을 열고 화려한 조명이 사람들을 유혹했다. 초입에 마스크를 쓴 악당 모습을 한 사람이 사람들과 기괴한 포즈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도 그 틈에 끼어 사진을 찍고 가는데 누가 뒤따라와 사진 찍어준 값으로 2천원을 요구했다. 공짜가 아니었던 셈이다.
일행은 두 패로 나뉘었다. 처음에 옵션을 나누어 진행하면서 나뉘어 진 것이 결국 종말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우리는 일행이 함께 마지막 밤을 맥주 파티로 끝냈으면 하는 생각에 앞서간 일행들을 찾았으나 못 찾고 말았다. 자매 팀은 따로 시장을 둘러보겠다고 해서 헤어진 후, 우리는 호텔에서 둘이 여행 마지막 밤을 보낼 요량으로 과일가게를 들렀다. 수박과 배를 샀는데 언어가 통하질 않으니 돈을 내고도 수박을 썰어 가져오는데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일행이 중국어 번역기를 다운 받아갔는데도 그 순간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아 사용을 못하고, 왔다 갔다 종종대기를 수차례 한 후 겨우 우리가 원하는 대로 수박을 잘라서 큰 컵에 담아올 수 있었다. THAAD 영향인지 아니면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써비스가 몸에 베어있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이 우리를 대하는 표정이 밝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몸을 씻고 싸온 소주를 꺼내니 무려 5병이나 된다. 2주 전 친구와 황산에 왔을 때 50도가 넘는 중국술을 매일 점심, 저녁에 먹으면서 속이 불편함을 느꼈던 터라 여행 전에 소주를 사갔는데 양이 좀 많았다. 술을 많이 먹지 않으려고 잔꾀를 썼는데 따듯한 물에 소주 한잔 분량을 타서 먹으니 정종 같다. 물론 배가 부르니 술도 한 병을 채 먹지 못하고 더는 못 먹겠다며 나자빠졌다. 성공이다. ㅎㅎ
함께 여행을 한 친구는 나도 몰랐는데 아내가 폐가 안 좋아 사선을 넘나들었나보다. 지금도 그 경계점에서 가족이 늘 불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귀곡잔도에서 소원을 적어 나무에 매다는 띠에 사업 번창(繁昌)보다 우선 가족건강을 꼽았고, 그렇게 썼었나보다. 그동안 아내의 헌신을 알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고 그녀에게 남은 시간을 장담할 수 없기에 요즘엔 아내의 손이 되어 살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흠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따라 울었다. 그리고 새삼 나와 함께하는 아내의 소중함이 절로 느껴졌다.
4일 째는 여행 일정이 단출하다. 보봉호 유람선 타기와 황룡동굴을 가는 것이 전부다. 물론 중간에 쇼핑을 끌려가야 하긴 했지만 말이다. 보봉호(寶峰湖)는 협곡을 막아서 수력발전을 할 목적이었으나 현재는 유람선이 다니는 관광지로 탈바꿈 했다. 배가 천천히 호수 가를 떠가는데 박수를 치면 누각에서 토가족 사람이 나와 노래를 한다. 그들의 조상은 산적으로 노략질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곳 산세가 험해 먹고 살 땅이 없으니 궁여지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토가족이 얼마나 사납고 용맹했던지 청나라와 영국이 아편 전쟁을 하던 19세기 중엽 수세에 몰리던 중국군을 대신해서 전쟁터에 나갔는데 영국군의 화력에 속수무책으로 토가족의 군인들이 죽어갔고 부모는 전사자를 고향으로 데려오기위해 삯꾼을 사서 시체(屍體)를 운반했는데 낮에는 주변 사람의 이목이 있어 피하고, 야밤에 청나라 군복을 입힌 상태에서 대나무를 양팔에 끼워 넣은 상태로 짐꾼이 앞, 뒤에서 운반했는데 걸을 때마다 대나무가 흔들리면 마치 시체가 두팔을 앞으로 뻗은 상태로 폴짝폴짝 뛰는 모습처럼 보였다. 얼굴이 분칠을 한 것처럼 하얀 것은 시체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백회를 발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시는 청일 전쟁에서 죽은 토가족을 고향으로 데리고 올 때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토가족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앞에 가족의 무덤을 쓰는 관습이 있는데 지금도 집 옆에는 무덤이 있다.
보봉호에서는 호수 절반을 돌때 쯤 노래자랑을 했다. 우리 팀에는 노래가 취미인 50대 부부 팀이 있었는데 노래가 끝날 때마다 앙코르를 받아 3번을 불렀고 사회자가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넘겨야 한다고 해서 겨우 바턴을 넘겼는데 이 아줌마도 또 노래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아 연거푸 2곡을 부르는 사이 배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은 참**여행을 통해서 장 가계에 왔다. 그런데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팀은 30만원, 한 팀은 40만원, 그리고 마지막 부부 팀은 60만원에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들쭉날쭉한 여행비 차이 만큼 쇼핑에서 강매를 하려는 쇼핑센터 직원의 집요함 또한 도를 넘는 수준이었다. 1시간은 자신들에게 귀속된 것이란 식으로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수걸이를 못했다며 물건을 떠넘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매번 여행갈 때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데 고질적 병폐를 끊을 대안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싼게 비지떡이다.
황룡동굴은 산 속이 텅 비어 있는 상태로 그 안에서 석순이 수천 년 동안 자라나 장관을 이룬 곳으로 바닥에는 7미터 깊이의 물이 흐르고 있어 배를 타고 유람할 수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석순이 피어난 곳에 조명등이 가세를 해서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굴은 신비로움으로 황홀경에 빠져 들 수밖에 없다. 아직 석순이 자라는 곳이 있는데 아래 위로 약 7mm가 벌어져 있는데 두개가 붙으려면 7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십여년 전 중국과 현재의 중국 그리고 앞의로의 중국은 확연히 다르다. 한 때는 우리보다 못했던 경제적 수준에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안 여기려 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G2국가로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경제는 물론 군사 대국이다. 미래의 중국은 아마도 더 비약적인 발전을 할 것으로 예측 된다. 장가계의 모습도 사, 오 년 후 모습이 어떻게 변화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더욱 놀랄 만한 변화가 예고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년에는 또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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