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로마제국의 3세기 후반
페르시아 왕 샤프르
필리프스 : 메소포타미아 속주 페르시아에 반납
발레리아 누스 : 체포, 기독교인 환영
페르시아에서 벌인 인프라 공사
- 군데 샤프르(샤푸르의 무기란 뜻)란 도시를 통째로 건설
- 도로 다리 땜
- 반디 카이사르(황제의 다리) : 3개의 댐을 겸. 길이 550m
§ 갈리 에누스 황제(253년 ~258년 재위) §
부) 동방에 포로가 되었으나 서방이 안정되지 않아 구제할 여력이 없었다.
미증유의 국난
- 미 증유의 국난(서방)
1) 황제의 권위상실(분열) / 30인 황제시대 돌입
2) 북방 야만족의 도발
- 프랑크족 → 라인강 → 갈리아
- 알레 마니족 → 라인강, 도나우강 → 게르마니아 방벽 → 알프스 → 북 이탈리아
- 고트족 →도나우강
☞ 300년 동안 제국의 방위선을 지켜왔으나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 방위선의 완전 붕괴
동방(oriental) : 더욱 절망적이었다. 유프라 테스강 방위선 존재 않음.
병력을 결집 통합할 수 있는 지도자가 부재 → 방어 성공하면 황제 차지
전염병의 창궐(페스트)
속주세의 소멸 - 국고 소멸
재해 복구금 부재
약탈(전선근처) → 황폐화 / 마을을 버리고 도시로 유민 유입
갈리아 제국
서기 260년 발레리아 누스 황제 - 페르시아 왕에게 포로가 된 소식 듣고 로마제국의 속주 갈리아 → 독립
포스트 무스 : 갈리 에누스가 양육맏긴 아들 살해(신하노릇 불가)
포스트 무스와 실바누스 약탈품 갖고 싸움 포스트 무스가 실바누스 살해
갈리아 제국 선언 : 갈리 에누스 부, 자 잃고 무력으로 갈리아 제국 찾이하려 했으나 실패(방치)
히스 파니아(이베리아 반도)로마제국에서 분리
팔미라(유프라 테스강 - 팔미라 - 지중해) 시리아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시작
오데나 투스 : 동서 교역을 통한 재산 축적 팔미라 귀족(서기 276년 사망)
자기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
로마 : 비르 콘술라리스 / 전직 집정관으로 임명
그의 활약으로 동방의 방위가 근근히 유지
갈리 에누스 : 그를 둑스 오리엔티스 임명 ← 직역" 동방 사령관"
시리아, 팔레 스티나,레바논,요르단,이스라엘 등 동방 전역 해당.
오데나 투스는 고트족에 거둔 승리를 자축하던 중 조카의 칼에 살해, 오데나 투스의 2번째 아내는
자기가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않히고 후견인이 되어 실권을 장악했다. 팔미라 여왕 제노비아의 출현
북(소 아시아), 남(이집트), 동(카파 도키아)가 패권하에 들어갔다.
갈리 에누스 하나의 법률이 로마에 미친 영향 / 지도자 급 인재가 없게된다.
☞ 원로원 의원을 완전히 군대에서 배제 → 3세기 특징 중 하나 비 로마화
군무경력 - 정무경력을 함께 쌓아 폭넓은 시야를 갖도록 하는 것 관 건(인재 양성)
에드워드 기번 ~ 현세까지 갈리 에누스의 법을 비판하는 사람의 공통된 소리는 힘이 관여하지 않게되면
통치력도 사라진다. 이후 로마에는 군사와 정치를 아우르는 인물이 없었고 이 것이 비 로마화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되었다.
법 제정 동기 : 가설1) 곤경을 타개하려고 동분서주하는 황제에게 원로원이 협력하지 않아 화가나서
가설2) 외(야만족)적의 침입ㅇㄹ 군사 전문가에 맏겨야 한다.
카리칼라 (안토니 누스 칙령) - 일반 시민의 의욕 억누름
갈리 에누스 법률 - 지도층의 의욕을 억누름 / 비로마화
사회 안전의 바로미터
1) 거주지역 - 평야 > 고지대
2) 산업 - 농경문화 > 목축
3) 인프라 - 개방(공동체 - 글로블화) > 폐쇄
4) 전쟁터 - 제국밖 > 제국안(300년간)
군의 구조개혁
- 기병대 : 비 로마화
- 보병 → 기병
- 지도자 : 다재 다능 → 그 분야에서 최고
- 인원 : 5만명(군단장) → 5천명(기병대장) / 원로원과 군대를 분리 시키면서 가속화
스테그 플레이션
화폐의 주조 : 은 → 동 / 인도 중국에서도 은화가치인정, 3세기 후반 로마 - 디플레이션화
불 신임
- 서기 268년 가을 갈리 에누스는 군부 쿠테타(기병대장 아우레 올루스)로 살해됨.
→ 아우레 올루스는 쿠테타 직 후 살해.
클라우 디우스는 군사 전문가의 입장에서 황제의 군사능력에 실망.
☞ 정치는 가능성의 기술이다. 로마 황제는 종신제다. 종신제의 최고 권력자를 불신임하고 싶으면
죽일 수 밖에 없다.
권위의 붕괴 : 하극상 / 종래의 엘리트 그룹을 더 이상 신뢰 않음.
§ 클라우 디우스 고티쿠스 황제(268년 ~ 270년) §
- 고트족을 제압한자로 1세기 클라우 디우스와는 구별
- 일리리아(농촌 경제형) : 북 ; 도나우 강, 남 ; 아드리해
고트족의 내습
북 이탈리아의 " 가르다 호수", 부근에서 벌어진 대규모 격전 - 승리
고트족에 대한 전후 처리
- 젊은 병사 ; 로마군 편입
- 나이든 병사 : 농사(경작지 대여) / 정착 성공
클라 디우스 고티쿠스 : 전염병으로 사망
☞ 원로원에서 동생 퀸틸루스 차기 황제로 지명 → 장병 반발(아울레리아 누스 추대) → 원로원 철회
→ 퀸틸루스 수치심으로 자살
§ 아우렐리아 누스 황제(270년 ~275년) §
- 도나우강 변경 출신 - 로마화한 야만인 / 어머니-무녀, 아버지- 군인출신 농부
- 발레리아 누스 황제로 부터 발탁
삼분된 조국 : 동 - 팔미라 왕국, 서 - 갈리아 제국, 중앙 - 로마 제국
반달족의 침입 : 노획물(비둔한 상태) → 로마군 매복 → 전투 → 반달족 미리 간파 → 노획물 일부 병력이
지키고 → 약탈(계속) → 추격, 섬멸 → 원로원(공포) → 군인 황제에 대한 굴절된 태도
개혁 : 통화 개혁, 성벽건설
1) 통화 개혁 : 처음부터 한 것이 아니고 부정행위 적발 과정에서 시작된 개혁
2) 통화 발행권 : 아우레 리우스의 기축통화가 될 로마 화폐
아우 레우스 금화아우레우스 금화, 데나리우스 은화 : 황제(리옹)제작권
세스테르 티우스 동화 : 원로원(로마)제작권
서기 260년경 갈리아 제국이 독립되면서 화폐를 로마에서 발행
☞ 야만족 격퇴로 갈리 에누스,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로마에 못 오는 사이 집정관이 관리
집정관은 원로원에 의원들이 호선 결정
조폐 - 배합 비율의 차(은화에서 은이 5% ↓)
- 조폐 기술자(소장포함) ; 그리스계 해방노예
- 원로원 개입 의혹 - 물증은 없음
- 조폐 기술자 대상 조사과정 → 아벤티노 언덕 농성→ 아우렐리아 누스(실력행사) → 7천명(희생)
- 은화 → 은 도금화(로마 경제 상황 반영)
통화 개혁
금화 : 중량을 260년 이전과 같은 6.5g 환원
은화 : 아우구스트의 결정 당시의 3.9g(함유율 계속5% 유지)
동화 : 폐지
☞ 금화(1) : 은화(100%은 4), 5%의 은 도금으로는 25닢 관계 성립 불가
동화(폐지) -- 앞면<황제 옆 얼굴> 뒷면<기념, 업적>
S : Senatus, C : Consulto <원로원 발행>
아우렐리아 누스 성벽
성벽 : 세르 비우스 성벽(6대왕) - BC 1세기경(팍스 로마나)
카이사르 허물고(271년 시작 6년후인 277년 아우렐리아 누스 성벽 쌓음< 성외곽은 책임
질 수 없는 상황> )
다키아 포기
속공 : 내 - 내적 기반 2개월
외 - 도나우 방위선 - 271년(전반기)
기본전략
1) 적극적인 전법(호된 공격)
2) 야만족 강화 제의 기다림
3) 상대방 압도될 분위기 연출, 되도록 유리한 조건에서 강화
4) 이기고 양보(상대방 체면 세워주기 전략)
☞ 다키아(루마니아) 고트족에 넘겨줘, 트라 야누스 황제시대 로마 속주이래 165년만에 포기
뉴 다키아
모이시아(부분) + 달마티아(부분) + 트라키아(부분)
주도 - 세르 디키아(오늘날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제노비아 여왕(오데나 투스의 부인)
260년 발레리아 누스 황제(포로)이후 아시아에 발 딛여놓은 황제 없음
- 군주 : 바발라 투스(명목상 황제)
- 팔미라 - 용병 → 오데나 투스의 활약에 로마제국 동방에 주둔한 군대까지 가담
일차전
안티오 키아 - 고대(지중해 일대 대표도시)
중무장 기병(팔미라) - 힘 빠질 때까지 도망
힘 빼놓은 상태 공격(포위) : 로마의 승리
이차전
에메사 교외
제노비아 - 중무장 기병(전면)
로마(아우렐리아 누스) - 보병대 전면 < 칼(글라디우스), 창, 곤봉>
경무장 기병 - 활(무기)
중무장 기병 - 긴창, 장검(무기)
☞ 곤봉으로 중무장 기병의 말의 다리를 후려 침
창으로 찌르고 단검으로 승부를 내는 로마 병사 ← 로마군의 승리
팔미라 공방전
제노비아의 팔미라 농성전(페르시아의 원군 로마퇴각 예상)
로마 보급(병참) -- 안티오키아(원거리)
팔미라 -- 통상 민족
제노비아 -- 포로 -- 600명의 주둔군 -- 팔미라인 살해 후 독립선언
로마 -- 신의(최 우선시)
도시 -- 폭력, 약탈, 방화 허용
갈리아 회복
- 테트리 쿠스 -- 갈리아 황제
- 전쟁대신 항복 선택
- 14년간 존속했던 갈리아 제국 소멸
아우렐리아 누스 -- " Restitutor Orbis(제국을 회복한 자) 칭호
- 에로스 꾸짖음에 음모(사형에 처할사람 명단) : 황제 침실에 들어가 장교와 살해.
§ 프로브스 황제(276년 ~ 282년) §
3세기 후반 황제의 취임 : 수도 로마에 가지 않고 개선식에 갈때만 들림
적극적인 전법 -- 적이 처들어 오기전 처들어가 격파
병사에게 칼 대신 곡괭이를 들어 경작(고향 시르미움 → 생산성 향상)
병사가 암살 : 칼대신 곡괭이를 들게한 것 불만
§ 카루스 황제(282년 ~ 283년) §
군대 : 원로원 의향 묻지않고 선출(황제)
오리엔트(페르시아) 원정 중 -- 벼락 맞아 사망
새 황제로 누메리아 누스 -- 장인 아풀루스 살해
[디오 클레스(38세) / 누메리아 누스]- 경호 책임자 / 아풀루스 - 단칼에 죽임
로마제국과 기독교
로마에서 기독교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기까지 300년
예수죽음 - 33년
콘스탄티 누스 - 서기313년 기독교 공인
종교 ; 인간현상, 사회현상, 역사현상의 총합
기독교의 위상 :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파 인식
서기 70년 유대교 반란 후 유대교와 거리를 둠
유대인 집단구역 14구역 → 땅값 싼 12구역, 13구역으로 이사
로마 : 다신교
유대교(타 종교를 인정 않음) / 역사가 타키투스는 유대교는 신앙이 아니라 미신이라고 했다.
탄압의 비 일관성 -- 색출 금(禁) -- 고발(可)
4세기 -- 디오클레 티아 누스(기독교 철저히 탄압)
기번의 기독교 대두 요인
1) 단호하게 일신교 관철
2) 영혼 불멸 교리
3) 초기 기독교 지도자의 기적
4) 기독교 귀의자들 - 금욕생활
5) 규율과 단결 특징, 로마속내 국가속 국가로 존재
200년 후 도즈교수의 대두요인
1) 기독교가 가진 절대적 배타성 / 영혼구제는 오직 기독교만 가능<불안한 시대엔 통했다.>
2) 개방성(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사회 계층 차별 무시(육체노동, 노예, 범죄자)
3) 사회적 지위와 무관 / 학력, 교양 문제되지 않았다.
4)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데 성공< 로마 ;은화가치 하락 암담함 → 미래의 희망 아이콘>
5) 현실적 이익, 소속감을 갖게함(곤경 ; 함께 구제하는데 협력, 사회 탈락자 구제 - 과부, 고아,
노인, 실업자, 가난한자 대신 장례식, 전염병- 병원역할)
로마 사회에 양보한 기독교 사항
1) 우상숭배
2) 할례
3) 제국의 공직과 병역
4) 회색지대
1) 우상숭배 ; 유대교 엄금, 기독교 인정(중세 이후)
신상 - 불인정, 벽에그린 그림 ; 프레스코화 묵인
2) 할례 ; 남성 성기 표피 잘라내는<종교적 관례>
유대교 : 신과 계약을 맺은 증거<출생 28일 후>
유아에 가능, 성인(고통 극심)← 유대인 격멸요인 중 하나
3) 입교의식 ; 세례(미트라 - 소의 피를 이용 의식)
4) 제국공직, 병역
성(聖)바울 '공동체에 대한 의무'라 하여 인정
" 각자는 모든 윗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가르침은 신 이외에는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권위는 신의 지시에 따라 권위가
된 것이다. 그러한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현세의 모든 권위 위에 군림하는 신에게 복종하는
것 이다.
발레리아 누스 - 기독교 탄압 → 페르시아 포로 → 기독교도 천벌 받아서(서기 260년)
기독교가 승리한 요인은 로마가 약해지고 피폐했기 때문이다. 자신감과 자긍심을 잃었다.
로마(다신교)와 기독교의 차
기독교 : 신부; 고해성사, 신과 맹세한 사이 이혼 및 싸움조차 해서 안된다며 주기도문 10회 암송
" 살아가는 길 제시"
로마신 : 비리 프라카 여신전 - 각자 자기 주장(옆에서 듣게 되면서 감정 풀려) 그래도 안되면 이혼
" 살아가는길 터득"
팍스 로마나 : 기독교 인정받지 못하다 200년 후 로마인에 침투되기 시작
제국의 쇄락 - (식물, 광물, 채석장 광물)다량 → 점차 소량화
카프리아 누스 → 데메트리아 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종말 → 모든 것이 쇄락.
☞ 기독교는 로마가 쇄락해지자 흩어진 민심을 파고들면서 허약해진 내면세계를 내세사상과 연결
특히 신분과 귀천을 무시한 포교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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