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해암 송구호 2014. 6. 1. 08:10

 

 

36. 알렉 산드르 세베루스 황제(서기 222년 ~ 235년 재위)

 

가계

 

율리아 마이사(226년 사망)  -----  아비투스(원로원 의원)

                                            ↓

                            ↓-------------------------------------------------------↓

     율리아 소아이 미아스 ----- 마르켈 루스(원로원 의원)    율리아 매게아     마르키아 누스

 

                                     ↓

 

                     엘라 가발루스 황제(218 ~222)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222년 ~235년)

 

 

법학자 울피아 누스

 

로마법 : 식탁에서 화재거리고 포름의 공회장에서 배우고 익힌다.(방청)

 

사법상 최종 결정권 : 속주 총독에 이양

- 기독교 탄압 쉬워져 : 실제 20년 후 증가

  ▷ 항소권 사라져 : 상급 재판 소멸 / 현실적으로는 처리 능력이 어려워서 일 수 있다.

                             로마시민이 속주까지 확대 적용(안토니 누스 칙령) 15년후 황제 감당 곤란

                             속주 총독에 이양

 

사산조 페르시아

 

파르티아 - 로마가 다루기 쉬운 왕국인 이유

1) 유프라 테스강 건너 로마 영토를 처들어 올 군사력 갖고 있으나 유지곤란.

  - 유프라 테스강(서) - 시리아

  - 시리아(북) - 소 아시아

              (남) - 요르단, 팔레스티나, 이집트

   ☞ 10개군단 10만명 집결체제 운영

 

2) 지휘체제 통일(서로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3) 양국 지도자 현실적 시야를 갖고 있었다.

 

로마 : 대관식 없어, 양대 주권자(시민, 원로원)가 통치를 위임.

동양 : 관을 내려줌(수여) 인간을 초월한 누군가로부터 권력을 주어야 의미 있는데 불사신을 나타내는 제사장이나 사제, 성직자가 권력을 수여해야 비로서 권력자도 통치의 정당성을 공인받게 된다.

 

알렉 산데르 황제 - 마크리 누스의 굴욕적인 강화에 따른 철수로 사기가 떨어져 회복을 위한 출전

로마황제 : 문 + 무 겸비(행정+군인)

서기 232년(안티오키아) : 군인들의 기강해이 목도.

                                     군단소집 불참 / 공중 목욕탕, 갈보집

결석인원 :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

                병사들이 황제 숙소를 무장 포위

항의 - 황제와 대치, 방종 용납 불허, 제대불사(무기놓고 떠나라)

 처형 : 주동자(선동)

<주요 문제점>

1. 병사와 황제(알렉 산데르> 일면식 없음

2. 만나면서 체포와 투옥

3. 질책을 " 전우 여러분 !" 단어 선택의 잘못

4. 10년동안 군단기지 정해주지 않은 불만(마크리 누스 굴종외교 유물)

5. 문제해결 장시간 소요(1개월)

지중해 : 로마 내해에서 사산조 페르시아는 붕괴시키려는 전략

 

게르만 대책 : 3세기 로마제국의 쇠퇴는 로마화하지 않은 야만족 때문이다.

 

라인 강변

알렉 산데르의 경제 지원정책 - 교섭

- 로마 병사들의 불만 : 경제원조 정책의 효과 없음.

- 야만족은 경제원조 이용 : 약소 부족의 합병, 질 좋은 무기 사용.

 

암살

- 병사들의 경멸 감정 증가

- 라인강변 전체로 확산

- 235년 3월 : 일제히 봉기, 병사들에 의해 살해됨.

 

3C 로마제국 쇠퇴는 게르만 족의 로마화 실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