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특히나 어머님을 생각하면 내 가슴 속은 억제하기 힘든 그리움에 목이 메어 눈물이 쏟아지곤 한다. 8남매 중 막내로 어머님이 45세 되던 해에 원치 않은 임신으로 얻은 나였기에 더구나 맏형이 결혼할 무렵이었던 터라 며느리에게 얼마나 민망했을까?
당신이 뒤늦게 얻은 늦둥이라 그랬을까? 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자라면서 사실 난 그런 어머님의 사랑이 창피스럽기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춘기였던 고등학교 2학년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갑작스레 비가 와 하교 길이 걱정되었던 어머니는 밭일을 하던 복장으로 시골길 5 리를 걸어 우산을 들고 왔었는데 어머니의 저고리가 비에 젖었고 가슴 속살이 일부 밖으로 노출되어 민망스런 모습이었다.
그 당시 어머니의 그 모습에 창피스럽기도 하고 남들 눈이 의식되어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던 일이 되돌아 생각해보면 지금은 미안하고, 고맙고 또 너무나 아름답게 생각된다.
어머님은 새벽 4시에 새벽 기도를 위해 교회를 가곤 했는데 아침 찬 공기가 방문 여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며 어머니가 교회에서 돌아 오셨구나 짐작하곤 했다. 평생을 아침제단 쌓으며 하루를 시작하셨다. 어머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형과 누나의 권유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맏형과 누나는 신앙생활이 알찼었나 보다. 물론 그 신앙의 열매가 맺어져 맏형은 목사가 되었고 누님은 교회 일에 충실한 종으로 지금도 신앙생활이 열심이시니 말이다. 어머니는 아침 새벽기도를 일년 삼백육십오일 빼먹는 일이 없었다. 겨울철에 새벽 4시 때론 시간을 잘못 착각해 2시, 3시에 가시는 일도 있었지만 그저 아침에 눈 뜨면 성경책이 든 가방을 들고 교회를 가셨다. 어머니의 새벽기도가 있어서인지 형제들의 신앙생활은 나를 제외하면 대단히 열성적이다. 이제껏 연세가 많이 드셨으면서도 건강함을 유지하고 계신 누님과 형님들을 보면서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마도 하늘나라에서도 아직 기도의 제단을 쌓고 계신 어머님의 사랑은 아닐까?
어머님은 노년에 시골집에서 혼자 사셨다. 막내인 내가 군을 제대했을 무렵 함께 살자며 붙잡았었지만 난 농사일이 힘들다며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서울에 올라와 직장생활을 했는데 어머니의 속마음이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가난해서 줄 게 없다며 항상 미안하단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너무 많은 것을 주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뿌듯하고 목이 메어 오는 그리움에 아직도 눈물이 핑 돈다.
어머니는 밭일로 무릎이 상하셔서 노년엔 한쪽 다리를 절었다. 걸음걸이가 불편하신데도 항상 밭일에 열중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손수 지으신 곡식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함이 컸다. 명절 등으로 가족이 모일 때면 항상 당신이 모아두셨던 나물, 콩, 참기름, 고추장, 된장 등을 손수 만드셔 양손 가득 들려주셨다.
사랑이란 뭘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하지만 자꾸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것은 아닐까? 시간 시간마다 보고 싶어지는 마음.
어머니가 세상 떠나시던 날, 난 아내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 너무 고마웠다. “어머니 몫까지 내가 해줘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던, 지금까지 내 옆에서 날 지켜주고 있는 아내는 어머니만큼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특히나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가며 그 틈에서 잘 자라고 있는 두 딸이 있기에 희망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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