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이야기

어머니에게 찾아온 시간의 어두운 그림자

해암 송구호 2014. 8. 28. 10:22

요즘처럼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장모님이 아프신데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짧은 세월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안타까워서다 . 결혼전 얼떨결에 처가에 들렀다 장모님을 만나뵌 후 상견례장에서 처가 식구를 만나던 날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계신 모습이 아내의 언니처럼 젊고 고왔었다. 어머니는 젊어서 예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지 못했지만 대학을 졸업한 남편을 만난 것도 얼굴덕을 단단이 봤다고 한다. 자신이 부족한걸 알고 의도적으로 피하고 만나주지 않아도 끈질긴 구애를 한 장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초등교육을 마친 후 중학교에 가려고 돼지를 키웠으나 그무렵 6.25사변이 일어나 집이 폭격 맞는 바람에 돼지를 잃고 중학교 가는 꿈도 접어야 했단다.

 처의 외할아버지는 영동에서 지역 유지로 초대 국회의원을 지내셨던분이다. 남아선호사상과 조선시대 관습이 여전히 남아있던 시대라  외할머니가 딸만 둘 낳자 외할아버지는 가족을 추풍령에 집을얻어 내보내고 첩을 들여 후사를 봤다.그 이후 자라면서 손에 꼽을만큼 아버지를 보고 자라야 했다. 여자 셋이서 산다는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더우기 해방 전후 삶이란게 곤궁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후 장성해 결혼했고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남편의 불같은 성격때문에 마음 고생을 했고, 외도로 가정이 한 때 파탄나기도 했었다. 남편에게서 조차 버림받은 여자가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여자는 삼종지도라해 세명의 남자를 섬기며 따랐다. 낳아서는 아버지를  성인 되서는 남편을 그리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는 것을 일컷는 말이다. 어머니는 마지막 자신을 아들에 의지하려 했지만 어머니 바램처럼 아들은 당신곁에 남으려 하지않고 분가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지질히 복이 없다 말하며 세 남자를 원망하곤 했다.

 집을두고 밖으로 겉도는 아들에겐 유산조차 주지않겠다며 박절하게 대했다. 박절함속엔 당신의 한이 맺혀 있는듯 했다.

 어머니는 여행을 무척 좋아하셨다. 우린 여름 휴가 때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갔다. 사실 어머니는 사위보다 아들과 떠나는 여행을 꿈꿨을지 모른다. 차타는 걸 너무 좋아하시니 찜통 더위에 도로 한복판에서 장시간 정차해도 아랑곳하지 않아 했다. 제주도 여행에도 함께했고 갈때마다 고마워라 하곤했다.

 맏딸인 아내에 많이 의지해 사셨고 아내 또한 어머니를 챙기려는 마음에 내심 불편함도 없지 않았으나 챙겨야 했다. 어머니는 자존심이 강했다. 누구에게 신세지는 걸 싫어해 건강을 챙겨왔고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스스로 챙겨 드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난 것은 작년겨울 이다. 옥상에 올라갔다 계단에서 구르며 몸에 타박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 이후 몇개월이 지나 몸이 회복된 듯 했으나  가끔씩 단기 기억상실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올 초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니 경도 치매 란다. 그 이후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고 생활하며  불편함은 없어 보여 다행스레 여겼었는데 요즘들어 당신의 기력이 쇄약해지면서 기억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이유중 가장 큰 원인은 무슨 문제를 두고  밤 새도록 골몰히 생각하는 버릇 때문이다. 당신이 놓아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벌어지는 헤프닝인데 잠못잔 다음날은 온몸이 파김치처럼 되곤 하셨다.

 어머니의 기억이 온전할 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기도 했고,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을 조금이라도 위로코자 외출을 하자면 너무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생선류 중 특히 활어회를 좋아하셨다. 회를 즐겨하게 된 이유가 어렸을 때 삼촌들을 따라 물고기를 잡아 즉석에서 끓여먹기 시작하면서 부터라 했다. 오늘도 그 느낌을 되찾아 드리려 외출을 제의 했지만 기력이 쇄해 움직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전화기 들 힘조차 없다시니 아무래도 심각한 듯해 어머니 집에 갔다.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삶의 의지가 없어졌다. 죽고 싶다는 말만 되뇌었다.    

 얼마 전 교회를 함께 다니는 분이 지방으로 이사할 계획이란 말에 쇼크가와 잠을 못자면서 몸이 극도로 쇄약해졌다. 옆에 함께 살면서 딸처럼 의지했다고 한다. 마음이 무너지니 몸은 삭은 벽돌처럼 무너져 버린다. 삶이 너무 유한하다.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그렇게 곱고 아름답던 분이 짧은 세월앞에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자니 만감이 교차한다. 인생이 아침이슬과 같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하다.

 요즘 어머니 머리는 창세기 때처럼 혼돈 그 자체다. 우리는 분명 어제까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일들을 어머니는 잃어가고 계시다. 어머니가 함께했던 기억들을 잃어갈 때마다 이방인처럼 낮설어질 것이 두렵고 고통스럽다. 삶의 끝자락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암으로 고통받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자아를 품고있는데 반하여 치매는 자아와 그동안 살아왔던 기억들을 잃어가는 것이다. 오늘 어제의 기억들을 그리고 먼 과거의 기억까지도.... 

 영혼은 불멸하는가? 아니면 흩어져 사라지는가?   201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