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지쳐 무기력해질 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여행은 누구나 필요하고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가족여행은 자칫 잘못하면 일상을 여행 속으로 끌어들여 변화와 새로운 느낌을 절감시킬 수 있다. 그래서 여행 중 싸우고 중도에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삶의 무게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욕망의 불씨를 꺼버리는 것이다.
내가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듯해도 사실 나만큼 나에 대하여 모르는 경우도 드물다. 나는 거울을 통해서 겨우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타인에게 비춰진 내 모습은 내가 의도한 것과 사뭇 다르게 보여 질 수 있다. 사람에게는 고유의 의식 세계가 있다. 대부분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하거나 학습된 사실을 통해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한다. 칸트의 선험적 지식은 경험적인 바탕을 제거하더라도 존재하는 진실을 말한다. 사람들은 결국 선험적 지식을 깨우치기 전 경험에 따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보편적이다 보니 서로 다투고 반목하게 되는 것이다. 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데서 오류가 시작 되지만 말이다.
1월 4일 가족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묘미는 일상에서 벗어나 최대한 즐기는(遊樂) 것이다. 일상을 잠시 잊는 것이 아마 여행이 주는 각성제일 것이다. 고양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 갔다. 고창 선운사는 절 뒤편에 동백나무 군락지가 유명하다.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루겠지만 아직 꽃이 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선운사 앞에 흐르는 도솔천과 오래된 느티나무 고목들이 선계(仙界)에 와 있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매표소에서 최단거리로 갈 수 있는 등산코스를 묻자 도솔암 뒤편에 있는 용문굴을 추천해 준다. 시간을 묻자 왕복 2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오후 늦게 도착한데다 겨울은 낮볕이 노루꼬리처럼 짧아 멀리 가지 못하고 용문굴까지 짧게 다녀왔다. 내려오는 길에 시나브로 땅거미가 내려 앉아 주변이 어두컴컴하다. 네비게이션 없이 떠난 여행이라서 다음 목적지로 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선운사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근동의 한 식당을 찾았다. 한산한 식당 한구석에서 선운사에 적을 둔 듯 보이는 스님이 묘령의 여인과 술을 마시다 우리가 들어서자 술병을 우리 시선이 닫지 않는 구석으로 치운다.
산사에 어둠이 찾아드니 모든 사물이 어둠 속에 갇히고 새소리마저 멈춘 채 고요하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 스님은 목탁 대신 술잔을 들었다. 식당 주인도 의당 그래왔던 듯 개념치 않아 하는 눈치다. 먹고 살자니 보고도 못 본 척 하는지 모른다.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이번 여행은 서해안을 따라 남해로 갔다 남해에서 다시 동해로 가는 국토 대장정의 길이다. 우리의 발이 되어줄 애마는 우리와 13년을 동고동락한 K사의 RV 차량이다. 이제 노령기에 접어들어 도막 속에서 부식이 진행되는 상태지만 잔고장 없이 잘 타고 있다. 특히 자동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의 맥동이 고르고 조용하니 장거리 운행에 함께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여행 전 엔진오일을 교환하면서 차량을 검사 받는 중 부동액 소량이 외부로 흘러나온 흔적이 보인다면서 운행 중 수시로 온도센서를 체크해 과열조짐이 보이거나 부동액이 밖으로 심하게 분출되면 차량을 움직이지 말고 견인하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애마는 장거리 주행에서 왕성한 힘으로 달렸고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버텨 주었다. 고맙다, 애마야 !!
여행 둘째 날은 순천만을 보러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송광사와 벌교에 잠깐 들리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송광사는 우리나라의 삼보사찰 중 하나다. 16국사를 배출한 절로 유명하다. 산세가 수려하고 봉황이 알을 품은 듯 따듯한 온기와 포근함이 베어 난다. 요사체도 여느 사찰보다 크고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어 스님들의 수행도량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사찰이 늘어나면서 이곳도 콘크리트 구조물과 한옥이 조합된 대형 건물을 짓고 있었다. 돈과 포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불교계의 공통된 큰 흐름처럼 느껴졌다. 송광사로 가는 길은 미려한 개천과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편백나무 숲이 아름답다. 쭉쭉 뻗은 편백나무 사이에서 나무 끝자락을 바라보며 몇 바퀴 빙빙 몸을 돌리니 나무와 빛의 아름다운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것도 지나치면 어지러움증으로 쓰러질 수 있으니 과욕은 금물이다.
송광사에서 벌교는 차량으로 20여분 걸린다. 벌교는 옛날에 주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고 여수에서는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생겨난 것은 일제시대 이전 벌교는 낙안읍성의 끝자락에 위치한 어촌마을로 가난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가 미곡을 수탈해 본토로 운반하는 거점으로 개발하면서 돈이 돌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주먹 좀 쓴다는 왈짜들이 꼬여들어 벌교가 주먹의 고장으로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벌교 꼬막은 이전부터 입소문을 통해 익히 들었던 터라 여행 중 참된 맛을 느껴보리라 기대감을 갖고 찾았다. 꼬막의 진수, 끝판을 보리라!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에 비해 실망이 컸다. 우선 음식의 간이 너무 세고 꼬막도 서울에서 먹던 것과 비교해 신선도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소문을 쫒아 단체손님이 몰려 드는지 상위에는 엷은 비닐보가 수북히 쌓여 많은 손님을 쉽게 맞으려는 주인장의 마음이 엿보였다. 벌교 꼬막 맛은 별거 없었다. 단지 세상에 허명만 얻었을 뿐이다.
순천만이 세계 5대 자연습지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다 해외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으면서 지역 관광 상품으로 단기에 집중 개발해 요즘 순천의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순천만의 갈대숲과 벌 사진은 오래전 봤던 기억이 난다.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벌이 끝없이 펼쳐진 모습에서 웅장한 멋을 느꼈었다. 철새들이 찾아와 먹이활동을 하기 바쁜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이후로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그리고 순천만의 순진함과 자연스러움은 인공 구조물과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뱃고동 소리에 먹혀 버렸다. 나도 인파에 휩쓸려 생태습지를 떠돌다보니 석양이 지고 날이 어주워져 또다시 순천만에 갇히고 말았다.
순천만 펜션은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 비교적 깨끗했다. 숙박요금을 놓고 주인장과 가격을 조정해 비교적 싸고 합리적인 가격에 하룻밤을 묵을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은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하면서 생겨나는 추억을 쌓는 것이다. 유대감도 물론 더해질 것이다. 비록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지 못하더라도 함께 했던 순간의 감정은 서로의 가슴에 앙금으로 남을 테니 말이다. 안타까운 것은 나이를 먹게 되면서 그런 감정의 덩어리가 작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딸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들을 뇌에 담아둘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추억의 앨범이 되어 아빠와 엄마를 기억할 소재로 요긴하게 사용할 것이다.
셋째 날은 순천에서 진주로 향했다. 진주에서 냉면 한 그릇을 먹고 경주로 가기 위해서 잠시 들리는 곳이다. 진주는 평양 다음으로 조선시대 기방문화를 꽃피운 도시다. 당시 술안주로 올렸던 육전을 냉면의 고명으로 얹는 센스가 일품이다. 육수도 비린 멸치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불에 달군 쇠 봉을 넣었다 빼는 독특한 과정을 거친다. 게다가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과 주방장의 솜씨가 어우러져 냉면 한 사발에 배가 부르다. 맛있는 음식은 누군가에게 추억으로 남게 되어 언젠가 또 다시 그곳을 찾게 한다. 우리가 진주를 찾게 된 것도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딸에게도 그 맛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전에 들렀을 때는 형님가족과 함께 했었는데 면발이 이번보다 더 굵었던 걸로 기억되어 직원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면을 뽑는 사출기의 구멍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면발이 굵었을 때 느꼈던 맛이 내게는 더 기품이 있었는데 이것도 돈과 관계가 있나 싶어 씁쓸하다.
신라의 고도 경주는 도시 자체가 유물 전시관이다. 남산도 예외가 아니다. 남산에 오르다보면 곳곳에 석탑, 불상과 마애불상이 있다. 커다란 유물 전시장인 셈이다. 아마도 선진문명국 같았으면 산 전체를 박물관으로 지정해 출입을 통제하고 곳곳에 있는 유물을 관리했을 텐데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생각에 좀 아쉬움이 든다. 숙소를 정한 후 경주 시내를 찾았다. 야경의 경주 첨성대와 안압지는 매서운 칼바람에도 관람객이 제법 많다. 쌍쌍이 팔짱을 낀 모습이 아마도 연인인가 보다. 경주는 도시가 박물관이고 또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다. 어느 곳을 찾더라도 서 있는 곳이 데이트 장소로 잘 어울릴만한 곳이다.
경주에서 꿀잠을 자고 다음날 또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속초를 향해 출발이다. 속초까지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바닷가를 한참 가다보니 후포리 포구가 보인다. 백년손님이란 프로그램으로 작은 항구가 이름을 얻어 외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프로그램 촬영지 골목은 출연자 모습들을 벽화로 그려 놓았고 그들이 다녀간 음식점마다 사진이 걸려있다. 작은 어촌마을이 이렇듯 생기 있는 모습은 유래를 찾기 힘든 일이다. 덩달아 이곳에서 잡히는 홍게와 대게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인제에 작은 딸이 내려와 직장에 다니고 있다. 물론 집과 거리가 있어 주말에나 올 수 있는 형편이지만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어 지나는 길에 잠시 들린 것이다. 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만류하기도 했지만 본인의 의지가 너무 강해 막을 수 없었다. 혹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난감한 일이 생길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당분간 지켜볼 요량이다.
원래는 하루나 이틀 속초에 머물까 생각도 했지만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고 하니 바깥에서 활동도 부자연스러워질 것을 감안해 딸을 만나본 후 곧바로 집에 가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경주에서 속초까지 인제에서 딸과 잠시 만난 후 일산으로 강행군이다. 딸도 목감기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우리와 대화를 나누기 불편할 거란 생각에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은근히 남은 길도 걱정되니 잠깐 보고 오는 딸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삼박 사일의 짧은 기간 동안 서해안에서 남해안으로 그리고 동해안까지 바닷가 길을 따라 이동한 대장정(大長程) 이었다. 나와 애마가 하나 되어 서로의 건재함을 확인한 값진 여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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