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라라 걸에서 미셸의 도전은 아름답다.

해암 송구호 2020. 4. 22. 13:47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꾸며낸 것은 뭔가 빈구석이 있어 꽉 찬 느낌을 기대하긴 어렵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 「라라걸」은 논픽션 영화로 한 인간의 삶을 가감(加減) 없이 보여줘 관람객(觀覽客)들의 공감도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라라 걸은 여자 기수가 155년 동안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알려진 멜버른 컵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고 역경(逆境)을 극복하며 값진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기까지 과정을 그린 영화로 실제 주인공 미셀은 각종 대회에 3,200번 출전 16번 골절, 7번 낙마하면서 7전8기의 오뚝이 인생을 살았다.

 사람들은 각자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그 꿈이 실현되기까지 스스로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사가 시시때때로 다르게 변한다. 비록 가능성의 정도가 1%에 불과할지라도 그 꿈을 남보다 더 갈망하는 사람 누군가는 쟁취하게 마련이다. 승마는 특히 인간과 말이 함께 호흡하고, 교감하며 매 순간 악재를 극복해야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고난이도 경기다.

 주인공 미셸은 멜버른 컵 155년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꿈꾸는 여기수다. 경마는 거친 남자들 틈에서 밀리지 않고 경주를 무사히 끝마친다는 것도 사실은 버거운 일인데 그 틈을 비집고 우승컵을 손에 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강한 승부근성과 열정(熱情/ passion)을 심어주기 위해 훈련의 완급(緩急)조절과 함께 때를 기다리라며 그녀가 원하는 경마대회 출전엔 미온적(微溫的) 태도로 일관(一貫)한다.

 대부분 자신의 노력에 비해 더 좋은 성과(成果)를 기대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그리고 자신이 도전했던 일에 흥미를 잃거나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며 쉽게 포기(抛棄)하려 든다. 힘든 과제일수록 도전자에게 요구하는 인내(忍耐)는 더욱 혹독하기 마련이다. 아버지는 딸에게 목장의 허드렛일을 시키며 경마대회에 나가는 것엔 때를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며 조급해하지 않는다. 

 땅이 메말랐을 때 단비를 품듯, 아버지는 그녀의 야망을 불태울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럴수록 그녀의 승부욕은 끓어오르고 결국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꿈에 도전하려는데 경마의 세계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누구나 아버지의 곁을 떠난 그녀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이 때 아버지는 딸을 도와줄 사람을 붙여준 뒤 자신의 존재는 철저히 감춘 상태에서 딸을 응원한다. 

 그녀는 에이전트(agent) 도움으로 경마대회 출전 기회를 얻고, 승리하면서 명마(名馬) 탈 기회(機會)를 제의를 받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기 중 낙마사고로 생사의 귀로에 놓이게 된다. 그녀의 불행(不幸)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태어난지 얼마 후 엄마가 하늘나라에 갔고, 둘째 언니마저 낙마사고로 사망한 뒤라 가족들은 그녀가 기수(騎手)의 삶보다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라고 있다.

 미셸이 오뚝이처럼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는 뚝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그녀는 낙마의 공포마저도 자신의 꿈엔 사치일 뿐, 병상에 누워있는 시간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 또 다시 말 위에서 재기(再起)를 꿈꾸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각종 대회에 나가 승리하면서 명성을 얻고 결국엔 멜버른 컵 출전권을 따냈지만 경기 중 다른 선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며 대회 출정 20회 정지라는 악재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심사 결과에 불복해 법의 판정을 기다리며 한편으론 자신과 경기 출전마다 호흡을 함께했던 애마 주(愛馬 主)에게 경기에서 기수가 승리할 수 있으려면 첫째 말과 호흡이 중요하고, 둘째로 땅의 상태를 읽을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끈기와 투기로 마지막까지 달리는 집중력이 필요한데 매 경기 때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자신이 적임자(適任者)라며 "멜버른 컵" 도전 기회를 달라고 설득한다.

 그녀에겐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오빠가 있다. 이번 영화에 출연한 실제 인물로 오빠가 마필사로 그녀를 돕는데 항상 경기에서 우승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말로 응원한다.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오빠는 현재 그녀가 운영하는 목장에서 마필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오빠와 함께 살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경기장에서 승리의 여신은 준비된 자에게 미소 짓는다. 아버지는 늘 그녀에게 “틈이 생기는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경마(競馬)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말은 큰 대회에서 승리하면 명마(名馬) 반열에 오르고 몸값도 천정부지로 뛰게 마련이다. 기수는 명예를 얻고, 마주(馬主)는 돈방석에 앉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이 쫄깃해지는 박진감(迫進感)이 압권이었다. 특히 말과 말 사이가 거의 틈 없이 서로 부대끼며 내달릴 때 나는 말발굽 소리가 심장을 뛰게 한다. 여성 최초로 멜버른 컵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미셀은 아버지에게 달려간다. 전날 아버지는 심장질환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고, 병원에선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딸의 대회를 응원하기위해 퇴원해서 홀로 라디오 중계를 들으며 대회 우승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딸이 가져온 트로피를 하늘나라에 먼저 가 있는 아내와 둘째 딸에게 헌정한다.

 이 영화는 아내 없이 가족들의 곁을 묵묵히 지켜왔던 아버지의 따듯한 마음을 그려낸 영화다. 막내딸 미셸을 꼬맹이라고 불렀는데 그녀가 엄마의 얼굴도 모른 체 가족 품에서 자라, 가족의 자랑이 될 때까지 희비(喜悲)의 순간들을 앵글에 담고 있다. 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오빠를 유독 챙긴 꼬맹이는 결국 그 오빠의 삶을 책임지는 의리를 보여주고 있다. 기수로 성공하겠다는 그녀의 야무진 꿈은 경기 때마다 엄마의 목걸이에 키스하며 염원(念願)한다. 이 영화는 "불가능하다고? 100번 도전해봤어?"라고 관객에게 묻는다. 

 꿈은 꾸는 자(者)의 것이 아니라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먼저 내딛는 자(者)의 것이다. 「승리의 신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다만 누가 더 꿈을 이루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졌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기도(祈禱)는 자신의 영혼(靈魂)을 깨우는 의식이자 자기 의지(意志)를 다지는 행위다." 염원(念願)이 없는 노력은 매순간 당신의 의지를 시험하려 할 것이고, 포도밭에 들어간 여우가 맛있는 포도를 먹으려다 손이 닿지 않자 포도가 신맛이 난다며 포기한 것 처럼 꿈을 쉽게 버릴 수 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간절(懇切)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