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이야기

우리 식구의 셀럽이 된 손녀 딸

해암 송구호 2019. 8. 29. 06:14

 

 장모님이 점점 쇠약해지고 면회 시간마저 짧아질 무렵이다. 치매를 앓고 계셔서 당신이 말씀하신 것조차 담고 계시지 못할 때쯤인 것 같다. 당신의 손녀 딸을 빨리 시집보내라고 했다. 그때는 참 생뚱맞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 말씀을 면회를 갈 때마다 여러 차례 들었지만 건성으로 대답을 해야 했다. 딸들이 아직 남자 친구도  없었고 또 결혼할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당신의 정신이 온전치 못해 하시는 말씀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후 몇개월이 지나서 둘째 딸이 남자친구와 당장 결혼을 하겠다고 생떼를 쓰며 졸라댔다. 자신의 방을 핑계 삼으며 올겨울에 또 이 방에서 보내냐야 하냐며 방을 구실로 결혼을 강행하겠다는 심사다.

 딸이 쓰던 방은 북향이라서 겨울엔 춥고 여름엔 장맛비에 누수가 생기곤 했었다. 그 원인을 찾지 못하다 올봄에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가 직접 방수작업을 해 말끔히 고쳤지만, 딸이 방을 쓸 땐 습기로 곰팡이까지 생겨, 쓰던 농을 버리고 새 농을 들여놓았던 상황이었는데 둘째 딸은 이것을 구실 삼아 올겨울을 넘길 수 없다며 결혼을 시켜달라고 졸라댔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겠다고 생떼를 쓰는 것도 걱정스럽고 누군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몇 번 만나보고 결혼을 하겠다는 딸의 무모한 생각도 걱정스러워하던 차에 딸이 자기가 만나고 있는 친구를 한 번만 만나보라고 해서 결국 지금 사위가 된 남자친구를 대면하게 됐다.

 내가 처음 사위를 만났을 때 다른 것보다 심성이 고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건실한 가정에서 양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을 알게 된 후 가끔씩 딸과 데이트를 한 후 집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잔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불러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과정에 직업상 결혼을 빨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할 수 없어 망설여진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당시엔 내가 금전적으로 넉넉지 못했고 세입자 보증금으로 몇 억을 되돌려 줘야 할 상황에서 딸의 혼사를 진행하려니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순간 중심이 무너지면 쓰러지는 블록 게임처럼 내 삶도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 있을 때 작은 딸은 철부지처럼 결혼을 꼭 해야한다고 고집했다. 세상에 자식이길 부모 있나?

 결국 양가 식구가 만나고 결혼식도 작년 시월 초에 치렀다. 딸을 시집보내기 전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은 그해 십이 월이다. 세 들어 있던 업체가 사업부진으로 갑작스럽게 1년을 앞당겨폐점하겠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계획이 1년 후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보증금 반환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심장이 쫄려와 며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새우며 궁리를 하다 과거 계약서를 꺼내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임대 기간 만료 전에 계약 해지를 할 경우 임차인이 육 개월의 위약금을 물도록 돼있었다. 천만 다행히 아닐 수 없다. 그때 계약서를 꼼꼼히 작성해서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됐고 결국 그 업체와는 작년 말에 계약해지와 동시에 보증금 반환도 무사히 마치게 됐다.

 딸은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했다. 딸에게 결혼 전 계획을 갖고 임신을 할 것을 당부했다. 아직 어리고 사위의 경제적 능력을 감안할 때 몇년 후에 출산을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딸은 우리의 바람과 상관없이 임신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개월동안 입덧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자식의 고통은 내 고통으로 다가왔다. 왜! 좀 더 살림도 배워가면서 시간을 갖고 게획 임신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하고 딸이 뭐든 제 맘대로 해버리는 것이 밉기도 했다. 하지만 띡똑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생명이 주는 환희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다.

 아내는 딸이 보내주는 손녀 동영상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큰딸도 조카를 보면서 귀여워 어쩔 줄 모른다. 그리고 장모님이 생전에 빨리 딸을 결혼시키라고 뜬금없이 서두른 것이 어떤 사인(sign)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일련에 벌어지고 있는 우연한 일들과 장모님의 연관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당신이 그토록 손녀딸의 결혼을 서두르라고 말씀했지만 정작 결혼할 무렵 인사를 갔을 땐 이미 정신이 또렷하지 않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장모님의 마지막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마치 당신이 우리에게 큰 선물을 보내줄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다. 그 아이가 혹시 띡똑이였나?    

 딸이 출산이 가까울 무렵 집에 와서 며칠을 머물렀다. 출산 예정일이 7월 20일 전후라고 했는데 시부모가 해외여행을 떠날 때라서 서로 미안함과 서운함이 겹쳤다. 사위는 "첫 손자를 보는데 이때 꼭 여행을 가야 하냐"라고 서운해했다고 하고, 시부모도 출산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던 참이었다. 이번 여행은 시누이가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여행을 하는 것인데 직장 휴가 때를 맞춰 일정을 짜려다 보니 여행 일정이 출산일과 맞물렸던 것이다.

 딸은 그 상황이 민망했던지 뱃속 태아에게 눈치껏 나와주라는 말을 하곤 했다. 태명을 "띡똑이"라고 지었는데 배를 문지르면서 "띡똑아 ! 알아서 7월 17일에 눈치껏 나와라."라고 말했다. 그날이 좋은 이유는 시부모가 여행 출발 전에 보고 갈 수 있고, 사위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의 수련회 일정 시작 전이라서 딱 좋은 때라고 했다.

 7월 17일 아침에 딸이 전화로 산기가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날은 시부모님도 종합 건강 검진이 있어 청주에서 서울 강남의 병원으로 올라오고 있던 참이라고 했다. 시부모님도 아침에 출산 조짐(兆朕)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건강검진 계획을 연기한 채 부평 쪽으로 한 걸음에 달려왔다. 시어머니는 출산 전에 며느리 몸보신을 시키겠다며 한우를 사 오셨던 참이라 점심때 양가 부모가 모여서 한우를 구워 점심 식사를 맛있게 먹으며 병원에서 희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리는데 사위로부터 오후 1시 25분경 출산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시간 오차 없이 딸은 손녀를 순산을 했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손녀와 딸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 신생아가 급하게 인큐베이터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병원 간호사와 아이의 보호자 간 나누는 대화를 두고 볼 때 종합병원으로 후송되는 것 같았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엔 "딸이 무사해야 할 텐데."하는 염려가 앞섰는데 딸이 무사히 손녀를 낳았다고 하자 연이어 태아의 건강이 염려됐고 다행히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다고 하니 감사했다. 우리 손녀는 2.9kg으로 태어났고 자가 호흡이 되는 정상아라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를 보니 숀 더피 미국 하원 의원(위스콘 신주)이 의원직을 사퇴의 변이 눈길을 끌었다. 공화당 출신의 숀 더피 의원은 사퇴의 변에서 10월에 태어날 자신의 자녀가 심장질환을 안고 태어나는데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중에 지금이 공직에서 물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부인과 아기 그리고 우리 가족을 도울 적기라고 판단했다."라는 인터뷰였다. 새로운 생명을 맞으려는 아버지의 부정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를 너무 잘 아는 아버지요,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성공보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자기희생(犧牲)을 선택한 것이다.

 띡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조리던 마음을 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산모에게 "아이를 신생아 실로 데려가 물과 우유를 먹인 후 눕혀 놓을 거"라고 설명을 하자 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아기가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의 말을 듣고 예정보다 일주일을 앞서 나온 띡똑이가 아니던가? 신기한 일은 또 있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던 날, 딸네 집에서 사위가 손녀를 안고 있을 때 손녀가 유독 인중이 길어 "이 녀석 인중이 긴 것을 보니 앞으로 큰일 하겠다."라고 말하자 감고 있던 두눈 중 한쪽 눈을 떠 나를 바라보는 것이 마치 내가 한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애가 뱃속에서 이미 한국어를 떼고 나온 것인가?

 성경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를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고 못을 박았는데 그 어린아이는 바로 신생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이 담기지 않고 오롯이 신성이 내재된 상태의 태아가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신성만이 하느님에게 수렴하는 것이고 인간의 육체와 생각은 이 땅에 묻히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손녀는 태어나면서 엄마의 말을 순종한 딸이 됐다. 우리에게 안도감과 기쁨을 준 띡똑이는 이엘이란 이름으로 출생신고도 마쳤다. 그날이 바로 제헌절이다. 외할아버지로서 바램은 이 땅에 법을 지키고 수호하는 큰 인물이 되길 바란다. 

 웰컴!  조 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