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시절 대통령은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이씨왕가에서 대대로 장자에게 물려줬던 권력을 평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그 권력을 향유하게 되자, 민주정치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아서 대통령은 왕처럼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내각 관료들의 태도에서 구태를 엿볼수 있었다. 이승만 정부는 미 군정에 도움을 받아 남한에 세워진 분단국가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을 맞았던 김구는 남한만의 정부수립에 반대를 했다. 그러나 북쪽에서는 러시아의 감시하에 김일성을 주축으로한 공산정권이 태동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독립운동과 무관한 삶을 살아오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뒤 늦게 개입하게 되면서 임시정부의 수반에 오른 인물이다. 애초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아 그와 미 군정은 해선 안 될 정치적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반민특위에 끌려와 단죄를 기다리던 친일파를 자신의 조직으로 탈바꿈 시켰고 일제 36년동안 개 노릇을 하던 친일 앞잡이들이 어두운 세상에서 벗어나 새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인류역사에 최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옥에 티가 있는 상태로 시작 된 자유당은 권모술수와 협잡이 난무하는 정치를 일삼았다. 국회의원들도 역시 똑같아 무정부를 방불(彷佛)케 하는 정치깡패들이 판을 치는 세상으로 혼란을 겪어야 했다. 민주주의의 탈을 쓴 독재가 탄생한 격이다. 국민의 권리는 그들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제의 수탈 기술을 읽혀온 친일 앞잡이들은 정치 수뇌부가 원하는 것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돌격대 역할에 충실했다.
재벌의 탄생도 따지고 보면 이승만 정권의 해바라기들에게, 일본인들이 한국 땅에 들어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성장시켜 온 기업들을 재 분배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준 결과에 기인한다.
애초부터 우리는 올바름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틀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부정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정권에 비 협조적이거나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은 공산당 빨갱이로 몰아부쳐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5.16 군사혁명은 무정부 상태와 버금가는 자유당 정권을 몰아 내고 정부주도의 계획경제가 큰 성과를 이룬 시기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이란 슬로건을 기치로 내걸고 국민의 힘을 결집했고 새마을 운동을 통해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그러나 정치에
선 발전이 없었다. 통일주체 국민회의라는 기구를 만들어 놓고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기형적 선거형태를 만들었고 18년이란 장기집권은 가장 가까웠던 인물의 총구에서 막을 내렸다.
정치자금을 대오던 재벌들은 정부로부터 사업특헤를 누리며 정경유착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냈고 대마불사라고 해서 대기업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4.18 민주항쟁을 통해 군부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란 간판을 내걸고 시작 된 김영삼 정부는 IMF란 복병을 만나 곤욕을 치뤄야 했다. 은행이 파산하고 대기업도 쓰러졌다. 자본주의 해체가 코 앞에 와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러나 우리는 집안 장농 속에 묻어 뒀던 금가락지를 기꺼이 내 놓으면서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쓰러져 가던 한국 경제를 되 살려 내는 기적을 보여줬다.
기업의 최고자리에 올랐던 사람, 청개천의 복원과 도심 속에 버스 전용차로 도입, 4대강 개발, 자원외교 등 가장(假裝), 해외 출장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이 다녔고 심지어 자신의 봉급마져 거부했던 이대통령의 실체는 놀랍게도 자신의 직위를 통해 얻은 정보를이용해서 사익을 챙기는 치밀한 행보를 보여왔으며, 가능성이 희박한 자원외교에 헛돈을 쓰면서 세계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지만 국고만 축낸 채, 실속은 전혀 없는 허풍쟁이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함께 인연을 맺은 사이비 교주와 그의 딸의 묘한 만남, 박정희의 통치 기간 18년, 그녀가 청와대를 나와 은둔의 18년을 보내고 화려하게 정치 무대에 재 등장해서 영욕(榮辱)의 세월을 보낸 18년을 두고 세간에선 18이란 숫자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양, 입방정을 떠들어 대는데 그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도출해야 될 것만 같은 분위기가
한동안 지속됐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너무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 때문인지 박근혜 정권 4년 내내 이어져 왔었다는 이야기다. 잠자는 공주로 알려진 그녀는 과거 중국의 무능한 황제 광서제가 오버랩 되는 것도 농간을 벌이는 자는 바쁘고 농간에 놀아나는 자는 매사 피곤하다는 점에서 일맥상통(一脈相通)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 유세 때 뜬금 없이 "나는 문재인의 친구라서 대통령 할 자격이 있다."라는 말을 했을 때 대중은 그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었다. 촛불혁명 후 전 정권의 가치가 전도된 후 새롭게 치뤄진 선거에서 문대통령이 당선되고 정치판이 새롭게 짜여진 상태에서 문 대통령의 리더 쉽을 보면서 과거 그의 말이 미래를 예견한 듯해서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사심이 없다는 것만큼 공직에 나서는 자의 바른 몸가짐은 없다. 아마도 노대통령의 친구였던 문재인에겐 최소한 그런 물욕이나 권세를 탐하는 사심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요즘 선거운동원이 입고 다니는 파란색 옷이 대중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문 대통령의 리더쉽과 무관치 않다. 최근 남, 북 영수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킨 것도 국민들에게 기대 이상의 큰 선물이었다. 최근 뉴스를 보자니 철도가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한다. 남과북의 얽히고섥혀 있던 굵직굵직한 실타래가 하나하나 풀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호랑이가 대륙을 집어삼킬 듯 표효하는 형상의 한반도가 만주벌판과 모스크바를 넘어 유럽대륙으로 뻗어나갈 날도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선거전이 달아오르면서 네가티브(negative) 전을 본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여지가 충분하다. 분명 정치를 해온 전력으로 볼 때 실력은 검증됐으면서도 과거 사생활이 문제가 돼 도마위에서 난도질 당하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어떤 인물에게 국가의 일을 맏겨야 우리가 더 많은 발전과 그 성과를 향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저x은 여자문제가 복잡해 저x은 아들이 문제래 게다가 이혼까지 했다"며 등등. 본질은 묻고 따지지 않은 채 사생활 문제가 선거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지켜보기 안타깝다. 선거위원회에서 개인의 신상 등을 검증하고 나라를 맏길 수 없는 후보는 심사과정에서 제외시킬 수는 없는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자기 주변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국가의 공직에 나서는 모습은 그의 능력 여부를 떠나 뭔가 1%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후보자의 가정사, 개인사도 듣기 거북하다. 정치인은 대중에게 그가 살아온 인생 모두가 앞으로 정치가의 삶을 살 때 본바탕이 되기 때문에 흠결이 없어야 한다. 가재가 자기는 옆으로 걸으면서 대중을 향해 앞으로 가라고 외쳐댄들 앞으로 란 방향이 제대로 인식될 수 없다. 지도자을 푯대삼아 따르는 대중은 당신을 거울삼아 그대로 따라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직자는 청렴하고 또 삶마져 모든이의 본이 돼야 한다. 과거 정의롭지 못했던 정부의 본원(本源)이 아직도 유령처럼 정치꾼들의 뇌속에 남아 있다면 우리 역사는 게걸음을 할 수 밖에 없다. 정치무대엔 전과자나 불륜을 저지른 자들이 아니라, 청렴함과 정의로움을 삶의 근본으로 삼고 살아온 품격있는 사람이 나서야 할 자리다. 정치인은 명예를 쫓아야지 돈과 권력을 지향하다 보면 부패하고 썩게 마련이다. 이번 선거에서라도 냄새나는 정치꾼들은 솎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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