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법과 질서가 무너진 사회의 미래

해암 송구호 2018. 6. 6. 06:28

 


 1988년 10월 호송차로 이동 중이던 죄수들이 무기를 탈취하고 민가에 잠입해서 경찰과 대치하다 9일만에 자살로 끝을 맺은 사건이 있었다. 그중 지강헌이란 인물이 홀리데이란 음악을 들으며 사회를 향해 던진 뼈 있는 한마디의 말은 "유전 무죄(有錢 無罪), 무전 유죄(無錢 有罪)다. 사회 약자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행동은 자살 이었다.

 법과 질서를 말할 때 항상 등장하는 그림 하나가 있다. 눈을 가린 여인이 한 손에는 저울을 또 다른 손에는 칼이나 법전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다. 눈을 가린 것은 그사람의 신분이나 돈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판단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한 손에 든 저울은 죄를 판단할 때 형평성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른 한손에 든 법전이나 칼은 법 집행의 근거와 단호함을 뜻할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이 분립 된 이유는 상호 견제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중 사법부는 입법부에서 만든 사회규약을 행정부가 이행하는 과정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래서 사법부의 결정은 보다 엄정해야 하고 정의로와야 한다. 사법부가 무너지면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게 되고 정의 실현이 불가능해 결국 국가는무질서와 혼란을 겪게되거나 혁명이란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게 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해왔던 못된 짓 중 가장 죄질이 나쁜 것은 최근 밝혀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보고문건에서 드러난 사건으로 사법부가 행정부의 시녀 노릇을 해왔다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정의의 칼이 대통령 손에 들려진 꼴이다. 왕처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쥔 대통령 뒤에서 최순실이 벌인 농간은, 최순실이란 쥐가 국가라는 대들보를 갉가먹은 꼴이 됐다. 

 한진가의 대모 이x희 여사의 만행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일이다. 죄질도 다양하고 사회약자를 상대로 벌인 일들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처음 발단은 조x민 전무의 물컵 투척사건에서 시작됐다. 그 일이 있기 전 땅콩 회항사건을 일으킨 조x아 사장의 일도 있었던 터라 한진그룹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좋지 않았고, 왜 이 집안에 딸들은 똑같이 비 정상일까?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근원이 바로 그들을 낳아준 어머니에게 있었다는 사실에 온 국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사악한 여인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가 어제 있었는데 국민의 법 감정과 별개로 그녀는 풀려났다. 강력히 처벌을 원하던 피해자들 일부와 이미 합의를 한 상태로 다툼의 여지가 이있다는 것이 기각 사유였다. 이제까지 언론은 변죽만 크게 울렸을 뿐이고 "정의의 여신"은 앞을 못보는 맹인에 귀머거리가 된 꼴이다. 판사는 국민의 법 감정보다 재벌의 눈치나 보는 보신주의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것이 바로 사법부의 민낮이다.

  황구는 키워서 복날 잡아먹기라도 하는데 권력과 금력에 눈치보며 자기 보신에 급급해하는 사법부에 x개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 입장을 바꿔 운전수가 사모님을 발길질 했다면 다툴 여지가 있다며 고이고이 집으로 돌려보냈겠나? 법의 적용은 모든 경우에 똑같은 결과를 도출해야 국민이 신뢰를 하고 판결에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법의 잣대가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했다 줄어들기도 한다면 법으로 질서를 바로 잡고 국가를 수호할 수 있겠는가?

  아랍 에미레이트연합국가 중 아부다비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공항 밖은 모래톱이 바람에 날리는 사막이었다. 그러나 시내로 들어가자 도심은 야자수 숲으로 이 곳이 사막인가 의심이 들정도로 여느 도심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곳에서 새의 노래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새가 살기 위한 환경으로 도시가 완벽하게 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가 살기위해서는 벌레들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야 하는데 한낮 온도가 40도에서 50도를 넘나드는데 물마져 없으니 미물들이 숨쉬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질 않는다. 

 사람사는 세상도 똑같다. 어느쪽으로 편향 된 결정들은 종국엔 부정(否定)이란 악재를 피할 수 없다. 결국 모든 것들은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릇 된 것들을 부정하고 올바름을 찾아 회기한다는 것이다. 금력이나 권력으로 잠시 잠깐동안은 자기 의도대로 질서가 움직이는 듯 보여도 궁극에는 더 큰 파도를 만나 그들이 내세웠던 주장이나 명분이 일거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작금(昨今) 우리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법부의 태도는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과 칼에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부끄러운 결정을 하고 있다. 법질서가 무너지면 국가가 붕괴되는 것인데 그들에겐 일말의 양심이 있는 지 모르겠다. 나비효과처럼 한진가에 불어온 일련의 사건들이 돈으로 입막음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고 그 결정에 불복하는 사태가 발생되지 않도록 똑바로 판단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못 막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