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오래 된 도시가 아직도 삶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고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 자체가 역사 박물관인 스페인의 (舊)수도 톨레도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것처럼 시공을 넘어선 곳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도시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역사적 사실은 전쟁을 통해서 재물을 약탈(掠奪)하고 노동력을 착취(搾取)해서 이뤄 낸 결과물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붙잡는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 베네치아도 그렇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로마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하나같이 도시의 건축물과 각종 조형물들이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보니 관광수익이 국가 재정의 65%를 상회(上廻)하는 나라도 있다. 조상 잘 만난 덕에 관광산업으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오롯이 근면 성실함으로, 땀 흘려야 먹고 살 수 있으니 앞으로 세계정세와 변화에 촉각을 세우지 않으면 끝없는 나락(那落)으로 떨어지기 십상(十常)이다.
약탈과 착취의 온상이 돼 왔던 동남 아시아와 인도 그리고 우리나라는 발전의 기미는 보이나 부의 축적은 미약한 편이다. 세기가 바뀌고 국제 정세가 변할 때마다 외세의 침략과 약탈에 빈번히 노출되었던 우리국민에게 '빨리빨리'는 단어는 익숙하다. 심지어 뜨거운 국물도 후루룩 마시면서 '시원하다' 말한다. 쫓기는 삶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서 일까? 무슨일을 하든 끈기 있게 기다리기 보다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에 연연하게 되고 단기적인 결과에 매달리게 된다.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는 것보다 빠른 방법을 선호한다. 초식동물이 안고 있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우리도 똑같이 겪고 있다.
일본은 주변국가 중 우리의 주권과 재산, 국민을 약탈한 전력을 지닌 국가다. 쌀, 쇠, 금, 은 등을 공출해 갔고 사람들을 징용이란 이름으로 끌고 가 탄광, 군의 총알받이로 내세웠고 여자들은 군수품을 만드는 공장과 성노리개로 전쟁터로 끌고 갔다. 위안부(慰安婦)라는 이름으로 끌려갔던 어린 소녀들은 일본군에게 욕(辱)을 당하다 해방을 맞은 후,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은둔의 삶을 살았고 몇몇 용기 있는 자들에 의해 국제사회에 일제의 만행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우리 국민에게도 그 시대의 아품을 함께하기 시작했는데 최근에 상징적인 조형물인 소녀상이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되었다. 국민들의 성금으로 마련된 소녀상은 전국적으로 73개(20170302기준)가 세워졌고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추세다. 일제의 만행에 맺힌 응어리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반일 감정도 점점 표면화 되고 있다. 일본 우익단체가 보이고 있는 모습과 정부 각료들의 발언을 보면서 일본의 본심이 무엇인가를 되짚어 생각하게 된다.
일본의 아베내각은 위안부 문제를 전정부와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무능한 전정권에게 그들은 위안부 문제를 돈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현명한 우리국민은 그들의 조악(刁惡)함을 간파(看破)하고 오히려 진정한 사과가 먼저라며 보상금을 받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협상 태도는 돈이면 뭐든지 다 해결된다는 재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우리 전정권의 성급한 결정은 당사자들에게 치욕(恥辱)만 안겨준 꼴이 되었다. 금력의 우월성을 통해 가난한 자의 마음을 사려는 태도에는 사과(謝過)의 마음보다 문제를 덮으려는 속셈이 더욱 크다.
위안부 문제는 동남아시아 특히 중국, 필리핀, 한국이 피해 당사국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록물을 유네스코 기록물로 등재하려 하자 일본이 반대하고 나서 미뤄지고 있다. 유네스코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후원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라고 하니 씁쓸하다.
일본은 무슨 일이든 덮고 역사를 왜곡하거나 부정한다.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침략의 불씨를 후대에 남기려는 교활(狡猾)함이 아닌가? 트럼프가 방문했을 때 우리 정부에서 독도에서 잡은 새우를 만찬장에 내놓자 그것을 두고 시비를 하는가 하면 위안부 할머니를 초청한 것까지 간섭하고 나섰다. 주제넘개 남의 나라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 주권을 넘본다면 그게 주적이 아닌가?
일본의 행보는 제이 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戰)의 패전국 독일이 걷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독일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보상도 일시적 보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대인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보상을 하고 있다. 또한 똑같은 일이 재발 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수시로 밝힐 뿐 아니라 과거 전범을 끝까지 추적해서 징벌하고 있다. 독일이 사화산(死火山이)라면 일본의 행태는 휴화산(休火山)과 같다.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세인트메리 스퀘어 파크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중국계 미국인에 의해 추진되었다고 하는데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렸던 김학순 할머니가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위안부 소녀를 바라보는 모양의 조형물이다. 일본 아베정부가 나서서 설치를 방해했지만 샌프란시스코 시는 설치를 강행했고 일본정부는 오사카와 자매결연마저 철회한다고 한다. 일본정부는 과거 군국주으로 회기(回歸)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의 것을 취해 내 배 불리려는 속셈, 누가 모를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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