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JSA공동 경비구역에서 총성이 들렸다.

해암 송구호 2017. 11. 26. 18:28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게 된 우리 한반도, 크지 않은 땅덩어리를 두고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살고 있는 나라. DMZ는 남과 북이 각각 38선을 기준으로 하여 2km씩 완충지대를 두고 있다. GOP(General Out Post 전초)와 GP(Guard Post 소초)는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전선(戰線)임을 알려주고 있다. 필자는 철책 선(鐵柵 線) 안, GP에서 근무했다. 민정경찰이란 완장을 차고 주간에는 수색정찰을 나가고 야간에는 매복근무를 섰다. 소초(小哨) 근무 때 군견병과 대북방송을 틀어주던 심리요원도 함께 근무를 했는데 이들은 경계근무에서 열외(列外) 된 헐렁한 군 생활에 우리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DMZ(Demilitarized Zone)는 춘삼월 때마다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해 불을 놓는다. 일명 '화공작전'이라고 하는데 남북 중 어느 곳에서 화공작전을 시작하면 맞불을 놓는다. 그냥 놔둘 경우 화염이 덮쳐 초병들이 위험할 수 있고 화재가 철책 뒤로 번져 큰 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화공작전이 시작되면 1~2분 간격으로 "펑" "펑"하고 폭탄이 터진다. 6.25전쟁 때 불발(不拔)되었던 탄환이 터지는 소리로 매년 삼월이면 전쟁 때나 듣는 폭발음(爆發音)을 들어야 했다. 화공작전이 끝나고 보름정도 지나면 DMZ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난다. 서부전선은 연백평야가 있던 곳으로 넓은 개활지(開豁地)에 노루, 토끼, 오소리 등이 뛰노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김일성이 이 땅을 빼앗기고 일주일 간 식음을 전폐(全閉)했다고 한다. 

  38선은 정전협정 후 목책으로 그어졌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보니 수색정찰 중 북측 땅을 밟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삼년 동안에 북한군과 조우(遭遇)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밤에 음식물 찌꺼기를 먹기 위해 멧돼지가 출몰해 비상이 걸리긴 해도 비교적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곳이 휴전선이다. 얼마 전 GOP 통문에 북한군의 소행으로 보이는 목함지뢰 폭발사고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북한 군인들이 담력 시험을 하기위해 종종 GOP 철책까지 내려와 흔적을 남기고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필자(筆者)가 근무했던 곳이 과거 1.21사태 때 무장공비 침투로였다. 침투가 비교적 쉬워서 인지 무장간첩 출현으로 비상 출동이 자주 걸렸는데 장마철에 2주간 꼬박 비를 맞으며 주간 수색, 야간 매복을 나갔었던 적도 있다. 잠도 못 자고 비를 맞으며 작전에 임하다 보니 엉덩이는 짓무르고, 잠을 못자서 눈꺼풀이 내려앉는 고통을 견디다 나도 모르게 졸면서도 언제 눈앞에 적이 나타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긴장하며 밤을 새웠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요즘 우리 군인들은 정신력은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유약(幼弱)해져 있다. 

  얼마 전 판문점 JSA공동 경비구역으로 북한 군인이 넘어왔다. 탈북 방법과 이동로가 이전과 전혀 다르다. 어디 소속인지 모르지만 72시간 다리 앞까지 거리낌 없이 차를 몰고 왔고 초병이 제지(制止)를 하는 모습을 보이자 잠시 속도를 줄이다가 속도를 내 판문각으로 향했고 차량이 공동경비구역으로 접어들 때까지 북한군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차량이 배수로에 빠져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탈북자는 남쪽을 향해 뛰었다. 북한 경비병이 상황을 눈치채고 근접 거리에서 조준사격을 했지만 탈북자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탈북자에게 천운이 아닐 수 없다.

 북한 경제가 붕괴되고 배급제도가 끊어진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기를 겪으면서 북한사회는 살아 남는 자와 죽는 자로 나뉘게 된다. 배급제도에 의존하며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아(飢餓)로 아사(餓死)했다. 이 시기에 급격한 가족해체가 이뤄졌고 꽃제비들이 도시를 배회(徘徊)하기 시작했다. 반면 살아남은 자들은 장마당이라는 시장경제의 주체가 되어 활로를 개척해 가고 있다. 물건을 주고 받는 물물교환에서 밀수품까지 장사에 눈을 뜨게 되면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몸에 익히고 있다. 시장도 상설시장에서 잠시 반짝 열리는 메뚜기 시장까지 다양하다.

  인간은 도전과 응전을 통해 강해지고 추동력을 얻어 발전해왔다. 역경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강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준다. 반면 현실에 안주한 자들은 무기력해지고 나태한 삶에 빠져 허약해진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저급한 문명에 갇혀 사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반면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환경에 도전하면서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육체와 정신을 단련시켜 문명의 진보를 이뤘고 풍요를 누리며 산다.

  남한과 비교할 때 북한은 척박(瘠薄)한 환경을 갖고 있다.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지배계급의 수탈을 피할 수도 없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도전이 이들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사람을 강물에 사는 물고기에 비유한다면 남한사람은 호수에 사는 물고기다. 역동적인 활동을 하는 자가 경쟁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높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시절 로마시민은 평화를 누렸지만 창과 칼이 녹슬게 되어 북방의 훈족이 국경을 넘자 자유를 잃고 말았다. 평화 속에 숨겨진 독을 경계해야 한다. 북한군이 넘어올 때 저지하기 위해 북한군은 소총을 남쪽 방향으로 난사 했지만 우리군은 교전을 하지 않았다. 연평도 폭격에도 둔감해서 질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 곡간(穀間)을 털린 후에 도적(盜賊)을 쫓는다면 뭐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