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고찰

태종

해암 송구호 2014. 11. 13. 11:45

 

 

제2장 역성혁명의 주역  삼봉 정도전

1. 출생의 비화

봉화정씨의 시조가 되는 鄭公美(향리호장)의 아들이 鄭英粲(秘書郞 同正 :종7품)이다. 그리고 손자가 鄭均(檢校 軍器監 : 종3품 散職)이다. 鄭均의 아들 鄭云敬이 鄭道傳의 아버지다. 정운경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 이모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공부를 잘했다. 稼亭 李穀(李穡의 父親)과 친교하였다. 훗날 정도전이 이색 문하에서 공부하게되는 계기가 된다. 정도전은 정운경의 3남1녀중 맏아들이다. 道傳, 道存, 道復이다. 도를 전하고 유지하고 부흥케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정도전의 외가는 증조 할아버지 김전(金戩)이 승려다. 김전은 종 수이(樹伊) 처와 몰래 사귀어 딸을 낳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정도전의 외할머니다. 우현보는 김전과 먼 친척으로 정도전의 출생 비밀을  잘알고 있어 훗날 서로 악연을 쌓는다. 

2. 정도전의 삶

 - 혁명의 깃발을 들도록 만든 배경

       핍박과 모험

       환경(어머니의 혈통 - 천민)

       타락한 도시(개경귀족, 사찰 중)

       귀양살이(나주 부곡마을  -  9년)

      이성계(개경귀족의 멸시)와 의견을 같이함

      빈곤한 생활

3. 丹陽 禹氏家와 敵對 關係

 우현보(1333년생)에게 아들이 셋있다. 홍수, 홍득, 홍명이다. 우씨와 정도전(1342년생)의 외가는 먼 친척이라서 집안내력을 잘알고 있었다. 고려시대는 적서 차별이 없어 정치등용에는 문제가 없으나 정치인으로 출세하는데는 엄연히 차별이 존재했다. 당시 우현보의 아들들이 정도전이 벼슬길에 오르는데 정도전을 경멸하고 승진 할 때마다 사헌부에서 고신(告身 : 職牒)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기록은 날조일 가능성이 높다. 우현보가 1333년생이고 자식들이 1362년 무렵 사헌부 관리직에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도전이 고려말 역성혁명을 꿈꾸는 과정에서 그의 출생이 미천하여 정상적인 승급을 하지 못하고 탄압과 박해를 받으면서 더욱 뜻이 강해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현보의 세 아들은 역성혁명 후 정도전의 손에 죽는다. 우현보는 정안군 이방원의 스승이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악연은 뿌리가 깊다.

4. 정도전과 하륜의 대립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개국한 후 새로운 수도를 정하는 일에 몰두했다. 개경은 왕씨의 수도로 민심이 좋지 않았다. 수도 물망에 오른 계룡산, 무악산, 백악산 중 물망에 오른 곳은 계룡이었다. 그러나 재고 끝에 한양 땅 백악산 아래 터를 닦아 도읍을 정했다. 한양의 단점이라면 물이 없다는 것인데 한강을 앞에두고 있지만 궁을 끼고 흐르는 천이 없는 것이 풍수에서는 커다란 단점이었다. 하륜과 정도전은 도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놓고 격돌했다. 하륜은 무악(현 신촌일대)을 주장한 반면 정도전은 무악보다 한양이 좋다는 쪽의 의견을 냈고 한양이 수도로 결정되었다. 태조4년(1395)10월 하정표문에 황제를 모독하는 글이 포함 되었다는 이유로 유구와 정신의를 억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유구는 표전문 작성을 정도전이 했다고 하였고 명은 정도전을 들어오라 했다. 명나라에 끌려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아는 정도전은 명에 가길 거부했고 하륜은 명에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사건은 정도전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이 들어갔고 하륜도 그중 한사람으로 명에 다녀왔다. 이후 정도전은 하륜을 외방으로 내보내 조선초 하륜은 중앙무대에서 크게 활동하지 못하다 정안군과 1차 왕자의 난을 성공 시키면서 정치적 기반이 확고해진다. 태조와 태종의 관계는 정도전과 하륜의 관계라는 함수를 지닌다.

5. 표전문 사건(表箋文 事件)

 1395년(태조4년)10월 하정표문에 황제를 모독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주원장은어려서 사찰에서 자랄만큼 출신이 미천하였다. 황제에게 올리는 글중 출신을 연상시키거나 역모를 떠올리게하는 글자를 사용할 경우 작성자를 죽이는 이른바 문자옥(文字獄)을 시행하고 있었다. 조선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하정표문을 작성한 것이 화였다. 하정사로 대학사 유구와 한성부윤 정신의가 갔다. 이들은 황제 모독죄로 억류됬다. 문초에서 유구는 정도전이 표전문을 작성했다고 하자 명은 정도전을 보내라고 했다. 명에 가면 죽을 것을 알기에 정도전은 못간다고 버텼다.

조선에서는 차선책으로 김약항(金若恒)과 통역관 곽해룡을 파견했다. 표전문 작성은 성균관 대사성 정탁이 했는데 풍질로 못가고 황태자에게 올리는 전문은 김약항이 지었다고 했다. 1396년3월 계품사(국왕승인 사절) 정총 일행이 명나라 예부의 자문(咨文 : 외교문서)을 전하면서 2차 표전문 사건이 발생한다. 정총도 황제 모독죄로 억류된 것이다. 1396년4월 유구와 함께갔던 박광춘이 돌아와 유구와 정신의의 처자를 보내지 않으면 사신을 유배 보내겠다는 자문을 전달했다. 억류 인원은 1차 표전문 사건 연루자 유구, 정신의, 김약항과 2차 표전문 사건의 정총 이다.

사역원 판사 이을수가 관압사(압송업무 맡은통사)로 표전문 작성  참여자 권근, 정탁, 노인도를 금릉으로 압송했다. 계품사 하륜도 함께갔다. 1396년9월 황제를 알현했는데 그중 권근과 노인도는 억류되고 하륜과 정탁은 돌아왔다. 조정에서는 김약항, 권근, 정총, 노인도의 처자에 수마포 20필을 보냈는데 그무렵 신덕왕후 정씨가 죽었다. 황제를 알현할 때 계비 강씨의 죽음을 조의하는 차원에서 정총은 흰 옷을 입었다. 반면에 권근은 황제가 내려준 옷을 입었다. 정총은 국문을 당하고 유배를 가 결국 처형되었다. 이때 김약항과 노인도도 함께 처형되었다. 권근만 살아서 돌아왔다. 1397년(태종6) 전해 억류되었던 사신이 귀국했다. 설장수가 감사의 뜻을 표하러 명에 다녀오면서 4월7일 자문을 받아왔는데 정도전이 조선의 화원(禍原)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명나라는 정도전을 권력에서 배제시키려 했다. 조선이 요동을 정벌하려는 계획을 갖고있다는 사실과 주도세력이 정도전 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6.요동 정벌론(遼東 征伐論)

요동정벌론을 주창한 정도전에 대하여 실록은 자신이 살기위해 요동정벌을 주장했다고 썼다. 국가를 개국한지 5년만에 해외 원정이 사실상 가능한 일인가? 태조 5년7월, 표전문 사건으로 삼사 판사직에서물러나 있던 정도전은 태조6년(1397) 6월14일 의흥 삼군부 판사로 복귀했다. 요동정벌의 당위성에 대하여 개국공신 남은, 심효생을 앞장세워 태조를 설득했다. 좌의정 조준은 사대의 예의에 어긋나고 나라를 세우는 마당에 가벼히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요동정벌 계획을 보고 받은 태조는 긍정적이었다. 표전문 사건으로 정총이 죽은 것도 영향을 끼쳤다. 병중인 조준에 통보하자 반대했다. 김사형과 조준이 반대를 하자 이성계는 계획을 유보했다.

요동정벌이 다시 대두된 것은 태조7년(1398)8월이다. 그해 3월 함경도 주부군현의 이름 및행정체계를 갖춰놓고 한양으로 귀환한 정도전을 위해 태조는 잔치를 베풀며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이때 정도전의 입 남은이 왕자와 공신의 사병을 관군으로 통합할 것을 청했다. 태조는 흔쾌히 찬성했다. 

 사병의 관군화 및 진도훈련은 사병을 소유하고 있던 왕자와 공신들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인 사건이다. 왕자들과 공신이 정도전을 상대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정도전은 양주목장에서 진도훈련을 실시했다. 윤5월28일 시작된 진도훈련은 여러도의 절제사 군사들이 훈련하도록 한뒤 6월에는 환관 박영문을 전라도 경상도에 보내 실태를 조사했다. 진도훈련을 게을리 하는자는 누구를 막논하고 문책했다. 이때 탄핵을 당한 왕자, 공신, 군인(상장군, 대장군)은 292명에 달했다. 그런 와중에도 전시 동원체제의 긴장은 계속되었다. 진도 강습을 안하는 자중 일부는 용서를 받았다. 개국공신 남은, 이지란, 장사길과 왕족 이천우, 이화, 방간, 방번, 방의, 이양우, 이지, 방과, 이제(경순공주 남편), 방원이다.

 원종공신 유만수와 정신의 휘하 장수들은 50대의 태(笞)를 맞았다. 8월들어 전쟁준비가 최고조에 올랐다. 사병이 혁파되고 이에 거부하던 반대세력이 궁지에 몰려 있을 때 갑자기 이방원 일파가 정도전 일파를 기습, 살해하는 사건이 8월26일(기사년) 새벽2시경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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