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이 갖고 있는 선과 악의 양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상반되는 명제들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부자와 가난한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권력을 쥔 자와 잃은 자 등 수많은 단어들이 정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대립과 갈등을 겪으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또 합일점을 찾으려 한다. 어찌보면 그 자체가 변화의 동력이 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욕구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 일지 모른다.
역사를 반추해 보면 그 실체가 더욱 또렷해짐을 알 수 있다. 역사의 수레를 끌어가는 주체세력은 권력을 쥔자와 사람을 움직이는 재물을 가진 자다. 고려 말 사회는 몇몇 문벌귀족들이 장원(莊園)이란 농지를 늘려가는데 혈안이 돼 국가 부세의 원천이던 상민계층이 붕괴되고 대지주의 노비로 전락하거나 유랑민이 되면서 국가재정 약화를 초래하게 되었고 민심은 고려왕조에 등을 돌리게 된다. 당시 정도전은 이색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는데 동문수학했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어머니가 노비 출신이었다. 신분사회에서 출신 성분은 사회적 지위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되었다. 게다가 세도가였던 친원세력에 맞서다 귀향을 가야 했고 유배지에서 풀려나 고향에 은둔하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중에도 세도가의 횡포에 쫒기는 등 미천한 신분 때문에 겪는 고초가 컸다. 내몰리고 쫒길 때 마다 사회적 약자로서 스스로 신분의 벽을 느꼈고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자 혁명을 꿈꾸었다.
이성계는 (여진 관리로 쌍성의 천호이던 이안사의 후손) 동북면 출신 무장으로 남경(지금의 간도)에서 무공을 세워 중앙에 이름이 알려졌으나 그 역시 변방출신 무장이라서 중앙 진출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다.
무학대사는 또 어떠한가? 부모가 안면도에서 갈대로 삿갓을 만들어 파는 천민이었다. 그는 18세에 출가해 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나옹선사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공민왕의 왕사가 된 나옹이 무학을 전법제자(傳法弟子)로 삼으려 했으나 다른 제자들이 반대했다. 무학의 출신이 미천한 것이 문제였다.
이들 세사람의 공통점은 중앙진출에 한계를 느끼던 아웃사이더란 점이다. 그들은 현재의 세상을 자신들의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중앙 문벌세력과의 싸움이 불가피함을 느꼈고 공감했다.
요동정벌은 우리의 옛 영토를 되찾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고려정부는 내부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전쟁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국논이 양분된 가운데 우기 중( 음력5월) 출정 강행은 위화도회군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았고 수구세력과 개혁세력간 다툼에서 최영을 제거한 개혁세력이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은 토지개혁이다. 일부 문벌세력이 독점했던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키는 한편 백성에게 장기임대하는 방식을 채용했다.
물론 아웃사이더였던 그들은 새나라 조선의 주역이 됐다. 그후 그들은 어떤 길을 걸었나 ? 이씨왕조를 세우는데 공이 있는 자들에게 대물림 가능한 땅을 상으로 주면서 공신이란 칭호와 함께 각종 특혜와 특권을 안겨 주었다. 새로운 귀족세력인 신흥 사대부가 탄생한 것이다. 그들도 고려문벌세력과 똑같이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늘려 가는데 혈안이 됐고 상위 1%의 재력가가 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선사회의 노화 현상은 사대부들이 고리대금업을 통해 양민소유의 농경지를 빼앗고 춘궁기 때 곡식을 빌려주면서 또 전답을 대신해 받는 등 수탈방법은 강도보다 더 잔혹했다. 요즘도 재벌가들이 정경유착을 통해 각종 이권에 개입 더 많은 것을 취하려 애쓰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시대적 차가 있을 뿐 별반 다를 게 없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시대로 또 정보화 사회로 이행되가면서 재화의 가치를 규정하는 틀이 바뀌었을 뿐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 그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유한하다는 점이다. 재화가 한 곳으로 집중되면 될 수록 사회는 노화되어 간다. 국가의 주체세력인 민초들의 생활기반이 붕괴되고 세수도 줄어 국력은 자연스럽게 약화될 수 밖에 없다. 결국 3%의 부자(전체의 70% 이상을 소유 )들의 세상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 민초들은 남겨진 작은 파이를 놓고 피터지는 경쟁을 해야 하는 경제 불균형을 고려시대 이래로 지금껏 겪고 있다. 서민이란 서러운 일들을 너무 많이 겪어 서민인지 몰라도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무거운 짐은 도맡아 진다. 왜적이 처들어 오면 의병이 되고 독립군이 됐다. 지금도 병역의무는 그들만의 몫이다. 세금의 원천도 서민이다. 월급봉투를 받기 전 세금부터 떼인다. 일명 유리봉투라 불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정서는 우민화 정책을 통해 불만을 희석시키거나 잠재운다. 현실을 왜곡해 보도하는 언론이 분위기를 살짝 띄우고, 적당한 아니 충분한 알코올과 스포츠, 그리고 로또가 대중의 뇌기능을 마비시켜버리면 그만이다.
요즘 현대인은 왜! 바쁜지 모른 채 바쁘고 무엇 때문에 일 하는지 알지못한 채 일하며 산다. 채플린 주연의 영화 '모던타임'처럼 기계적인 삶을 살고있다. 마치 직장에 나가지 못하면 죽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산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
종교는 그들을 위로하고 미래를 보장하는 보험과 같은 존재다. 비록 지금 가난하게 살아도 죽어서는 부자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성경에 "거지 나사로는 이승에서 부자가 먹던 밥찌거기를 먹고 살았지만 천국에서는 부자보다 더 잘 살고 있다"고 말하니 희망이 생기는 모양이다. 또 "사후세계를 체험한 많은 사람들의 간증도 있으니 믿음은 확신으로 바뀐다. 그런데 어쩌지 현대 의학으로 유체이탈을 체험할 수 있다는데..
미래엔 미래대로 그리고 현실은 현실대로 잘살고 행복해지면 안되는걸까? 욕심인가? 어떤사람은 금고에 돈이 셀 수 없이 많이 쌓여 있고 어떤 사람은 오늘을 살아내기 힘겨워 극약을 마시는 세상이라면 너무 불공평한 사회가 아닐까?
우리는 고무풍선의 원리를 잘 알고 있다. 균등한 힘의 작용엔 모든 면에 고른 힘이 분포되지만 일정 부분에 힘이 가해질 땐 다른 곳에 똑같은 반대급부적 현상이 발생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힘이 증가되면 풍선은 '펑'하고 터져 버린다. 정치란 균형과 분배를 조율하는 고도의 관리기술이다. 또 경제는 민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 최소한 부자는 세습되지 않는 사회면 좋겠다. 출발선은 최소한 똑같이 서야 공정한 경주가 아닌가? 자라는 젊은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 따듯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