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화롯불에 숨겨진 추억의 밥상

해암 송구호 2012. 11. 12. 17:44

 

수정)화롯가에 숨겨진 추억의 밥상

 

어릴 때 하면 떠오르는 시골 풍경은 아궁이에 군불을 때는 일이다. 마른 솔잎으로 불을 피우고 아까시나무 잔가지로 불씨를 만든다. 불에 타는 아까시나무는 독특한 향을 내뿜는다. 물론 불씨가 만들어지는 동안 아궁이에 언 손을 녹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솥에 물이 데워지고 방안 구들장에 온기가 돌면 군불 때는 일은 끝난다. 아궁이는 불꽃이 활짝 피어 딱딱 소리를 내는데 이때 불구덩이를 헤집고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겨울철 시골밥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청국장이다. 잘 익은 총각김치나 깍두기를 넣고 끓이는 청국장은 맛이 그만이다. 명절 때 만든 두부가 들어가면 그 맛은 한층 고급스럽고 격을 갖추게 된다. 추수가 끝나고 논에 살얼음이 얼면 삽과 양동이를 들고 논으로 간다. 삽으로 흙을 파헤치면 미꾸라지가 나오는데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양동이에 담기만 하면 된다. 요즘엔 농약으로 해충을 잡느라 미꾸라지를 논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니 안타깝다. 미꾸라지는 해감을 해 깨끗이 씻은 뒤 무, 고춧가루, 고추장, 마늘, 파를 넣고 화롯불에 얹어놓으면 국물이 끓어 잦아들고 자작자작해질 때가 가장 맛이 있을 때다.

한겨울이 되면 큰솥에 장작불을 때 조청을 만든다. 고구마나 쌀이 주재료다. 옛날엔 고구마로 할 때가 더 많았다. 보릿고개를 겪었던 시절에 쌀로 조청을 만든다는 것은 사치일지 모른다. 사실 고구마는 긴 겨울밤을 나는데 필요한 간식거리다. 목이 막힐지 몰라 동치미 국물을 마셔가며 고구마를 먹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고구마는 조청으로 거듭나 약식, 한과 등을 만들 때 재료로 쓰인다. 그러나 더 그 맛을 느낄 때는 가래떡을 화롯불에 구워 조청을 찍어 먹을 때다. 가래떡의 쫀득함과 조청의 달콤함이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화롯불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은 양푼에 찬밥, 김치, 들기름을 넣고 비벼먹는 잊을 수 없는맛이다. 고소한 들기름과 살짝 불에 익혀진 김치가 어우러져 새콤하면서 구수한 맛을 낸다. 요즘도 흔한 생선이 꽁치다. 영양가는 최고인 꽁치는 헌 고무신 한 짝만 들고 가도 세 마리는 주었던 기억이 난다. 꽁치는 조린 뒤, 시간이 갈수록 맛이 깊어져 간다. 특히 무에 간이 들어 검게 변할 때 그 맛은 절정에 다다른다. 그런 완숙함 속엔 화롯불이 일등 공신이다. 음식은 향으로 기억된다. 옛 맛을 느끼는 것은 더욱 그렇다. 어느 곳을 지나치다가도 옛 음식 향을 느낄 때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화롯불은 따듯한 음식, 출출할 때 먹는 간식, 그리고 외출해 언 손을 녹이는 따듯함이 녹아든 추억의 물건이다. 한 겨울이면 밤늦게 화롯가에서 바느질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어우러져 사랑과 정으로 녹아있는 화롯불이 이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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