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배달

해암 송구호 2020. 8. 11. 04:24

  재래시장에 가면 머리에 쟁반을 겹겹이 쌓아 이고 좁은 골목길과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아주머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게를 비우고 점심식사를 할 수 없는 상인들에게 일일이 찾아가는 방문 판매다.

자전거와 리어커를 이용한 배달업이 성행하게 된 것은 연탄과 탁주를 배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국민의 안방을 따듯하게 데워주던 연탄이 기름 보일러, 가스 보일러에 밀려나고 사양길을 걸으면서 골목길을 누비던 배달도 자취를 감췄다.

양조장에서 만들던 탁주는 농부에게 보약과 같은 존재였다. 노동에서 오는 고통과 지루함을 달래주고 일과 후에 주막에서 이웃과 정을 나누던 것이 탁주 한잔이었다.

 탁주는 양조장 직원이 찐액을 통에 담아 짐자전거로 주막집에 배달하면 주모는 물과 희석해서 손님상에 내놓는데 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주모 마음대로라 간혹 술맛이 물맛일 때도 있었다. 요즘도 탁주는 서민이 즐겨 찾는 술인데 막걸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현대로 오면서 생산 방식이 자동화 되고 대량 생산체제로 바뀌면서 양조장은 점차 사라지고 막걸리 제조공장으로 변해 주류점이나 마트 등에 배달한다. 반면 짜장면 배달은 여전히 동네 골목길을 누비고 있다.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진화를 한 게 다른 점이랄까? 요즘 공원이나 한강변에서 전화 주문하면 어디든 달려가는 게 짜장면이다. 얼마 전 일산 호수공원에 가족이 놀러 갔던 적이 있다. 자리를 펴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집 종업원이 공원을 돌며 전단지를 돌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서비스 멘의 영업력은 놀랍다. 치킨, 분식, 떡볶이, 족발에서 이제는 음식점에서 만드는 모든 종류의 음식들이 배달 서비스를 이용 가능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가고 있고,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배달 대행사들이 소규모에서 점차 대형화, 전문화되어가고 있다.

 배달의 민족이 ELF 리버리 히어로(DH)에 40억불(한화4조7천억)에 매각됐다고 한다. 국내 투자자 지분의 87%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아직 상장이 안 된 회사로서 가치가 이 정도라니 놀랍다. 코로나 19는 비대면 사업 영역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은 문서, 음식, 식자재 등 다양하게 사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발전해오고 있다. 문제는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다 사고를 당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사건들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라이더들은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비로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에 소속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유통업 종사자 대부분도 처지는 다르지 않다. 자신의 차를 가지고 회사에 고용돼 사업주 지배하에 있지만 회사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최근에 법이 개정돼가고 있다지만 일부가 수혜를 누리고 있을 뿐 대부분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영세한 음식점을 상대로 배달업에 종사하는 라이더의 경우 도로에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경우가 많아도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최저생계비를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하루를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보험 가입을 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4차 혁명과 배달은 전혀 코드가 맞지 않을 것 같지만 상당히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상거래에서 도매인이 중계를 해주고 거간비(居間 費)를 챙기는 것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비대면(非 對面)이 일상이 된 요즘 배달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고 거대한 자본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과거 60년대 수동식 전화를 걸려면 전화기 옆에 달려있는 핸들을 돌려 ‘따릉따릉’ 교환원에게 신호가 가면 “어디로 연결해주세요”라고 말해서 교환원이 잭을 연결해준 후 통화가 되던 때가 있었다. 요즘 배달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음식을 만드는 식당에서 매월 정기수수료를 지불하고 콜센터에 가입하면 콜센터에서 라이더에게 연결해주고 라이더는 배달수수료를 받고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지시를 내리는 자와 지시를 받는 자, 인공지능은 명령 자(命令 者)고, 플랫폼 노동자는 수명 자(受命 者)가 된다. 콜센터 즉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노동 기회를 제공하게 될 사업자는 중개인으로 거간 비(居間 費)를 챙기고 콜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라이더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콜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하는데 그나마 평점이란 제도를 통해 개인의 서비스와 태도 등을 평가받게 돼 있어 이용자가 낮은 등급의 평점을 주거나 불만을 제기하면 등급이 낮아져서 콜 배정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위험을 감내한 채 거리를 질주해야 하고 고객에게 굽신거려야 한다. 늦게 도착하면 평점을 낮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혁명시대에 우리가 겪게 될 일 중 하나는 전문직과 단순직의 양립화다. 과거엔 중간에 사무직이 있었다. 행정업무와 사업주의 지시에 대한 전달과 이행여부를 확인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업무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노동을 대부분 기계(로봇)가 하면서 노동현장에서 중간관리자들이 쫓겨날 날도 머지않았다.

 

 1차 산업혁명 이전엔 인간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생산했다. 따라서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하면 노획물과 함께 젊은 남녀를 데려다 노예로 삼았다. 노동력이 부족할 때는 노예상이 아프리카나 동아시아에서 사람을 사냥해서 충원했다. 유럽의 경우 슬라브족이 일용직으로 유럽 국경을 넘나들기도 했는데 노예(slave)의 어원도 노동을 제공하던 슬라브족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2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이다. 이때부터 노동은 기계와 사람이 협업을 하게 됐다. 말(馬)대신 자동차와 기차가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공장에선 노동자와 기계가 같은 공간에서 일했다. 힘쓰는 일은 기계가 하고 기술을 갖춘 숙련공이 물건을 만들어냈다.

 

  3차 산업은 전기가 들어오면서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분업을 하면서 대량생산체제에 들어갔다. 전문지식이 필요 없고 작업 지시에 따라 시키는 대로 반복된 작업을 하면 됐다. 사람과 기계가 협업을 하는 것이 노동현장의 보편적 모습이 됐다.

 4차 혁명은 스마트 폰에서 시작되고 있다. 통신과 정보가 융합하면서 원격조정이 가능해지고 빅 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삶의 편리성을 추구하고 있다. 거기에 증강현실을 이용한 가상과 현실을 융합하는 시도가 이뤄지는가 하면 기계와 기계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자동화 공장(smart factory)이 가능케 되면서 노동자 없이 공장의 생산성이 증가되는 변화가 독일 등 서구로부터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까? 사람들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지금보다 한 단계 업 된 상태로 자유를 누릴까, 아니면 모든 것을 잃고 무기력한 좀비가 돼서 거리를 방황하게 될까? 미래학자들은 두 부류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AI를 조정하는 자와 AI에 조정당하는 자다. 나머지는 무기력하게 좀비처럼 거리를 방황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고 칭하는데 이 말은 이탈리아어의 불안정하다(precario)와 영어의 노동자(proletariat)라는 단어를 합성한 것으로 영국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처음 주장했다고 한다.

 

  우리가 배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노동시장의 변화다. 비 대면이 일상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요즘 배달통은 한층 더 활기를 띠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변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삶은 장밋빛깔이 아닐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한 일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설마 했던 네가 나를 버렸어!”라는 말이다. 자본의 판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엔 노동현장에서 파업이란 갑 질을 하며 사업주와 맞섰는데 이젠 그런 모습도 역사 속 유물로 남을 것같다. 사업주는 사람 대신 기계를 갖다 쓸 테고 공장은 사람 없이 24시간 멈추지 않는 “스마트 공장”이 대세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니 말이다. 철밥통이란 말도 이젠 옛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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