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첫돌

해암 송구호 2020. 7. 28. 08:02

 작년 7월 17일은 우리 손녀딸이 큰소리로 울며 이 땅에 태어난 날이다. 석달 후 딸네 집에서 사돈(査頓)이 차린 백일 상을 받고 돌 때는 우리 집에서 하자고 제의(提議)해서 이번에 모이게 됐다. 코로나 19로 비대면(非對面)이 일상이 된 후 남들과 함께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는 일인 데다 주인공인 손녀딸이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로 가족들로부터 사랑과 축하(祝賀)를 듬뿍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憂慮)가 그런 결정(決定)을 하도록 만들었다.

 

 대나무가 자라나듯 손녀딸이 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자면 “왜! 내 딸들을 키우면서 이런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 했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요즘 손녀를 보면서 몸짓 하나하나가 무슨 의미인가 곰곰이 생각하게 되고 또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일신 우일 신하는 손녀의 모습에 탄복(歎服)이 절로 난다. 딸이 결혼할 때 아기는 절대로 봐주지 않겠다고 선언(宣言)하며 나 스스로 다짐까지 했는데 딸이 일하기 위해 남에게 손녀를 맡겨야 할 상황(狀況)이 되자 그런 경계(境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고 시간 많은 우리 부부가 돌보게 됐다.

 

 아이를 양육했던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손녀를 맡아 갓난아기 때부터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예쁜 짓이 늘고 우리 외에 다른 사람에게 곁을 내주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기른 보람도 있고 우리를 믿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이 든다. 또 하나, 둘 씩 말귀가 트이기시작하면서 소통(疏通)이 되자 나도 모르게 정(情)이 생겨나는 걸 느낀다.

 

 손녀딸이 태어날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때 상황을 떠올리면 그동안 유아(幼兒)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백(純白)의 뇌(腦)를 지닌 걸로 알았던 내게 사고(思考)의 전환(轉換)을 갖게 한 사건이 있었다. 딸 부부는 신학대학원을 다니며 지인의 소개로 만나 서둘러 결혼했고 아이를 임신(妊娠)해서 힘든 입덧을 견디며 출산일이 가까워올 무렵 사위는 여름 성경학교를 위해 집을 비워야 할 상황(狀況)에 놓였고, 사돈네 식구도 딸과 함께 해외여행을 계획(計劃)한 날이 출산일과 겹쳐서 이도 저도 못할 상황일 때, 딸이 만삭(滿朔)의 배를 문지르며 “띡똑아! 7월 17일 날 세상에 나오렴, 그래야 우리 가족이 너를 기쁘게 맞을 수 있단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우연(偶然)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기적(奇蹟)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출산 예정일보다 앞당겨서 산통(産痛)이 시작됐고 입원한 지 채 한 시간도 안 돼 띡똑이를 순산(順産)했다. 게다가 간호사가 “아이를 씻긴 후, 물과 우유를 먹여 신생아실에 눕힐 거예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음을 터트리는데 마치 간호사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동영상은 하도 신기해서 아직도 간직하고 가끔씩 보곤 한다. "태교 과정에서 아이가 엄마 말을 통해 학습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 이후로 아기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고 또 소소한 일에 대해서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갖고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하는데 그래서인지 이엘은 자라면서 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리지 않는 게 남다르다.

 

 처음 나 혼자 이엘을 보기위해 딸의 직장인 교회 유아 실에서 하루를 보낼 때다. 우유를 먹이고, 응가를 하면 기저귀를 갈아주며 소란(騷亂) 한 상태에서 잠을 재우는 일까지 혼자 감당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그 후 아내가 동행(同行)하게 됐고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다루며 매주 한 번 손녀를 돌보아온 것이 일 년이 다 되어가면서 이제는 밥도 스스로 먹는다. 하루가 뭐 대단할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와 함께한 다음날은 꼭 쉬어야 몸이 회복된다.

 

 이엘이 자라면서 왕성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보면 건강은 타고난 듯하다. 한시도 쉬지 않고 땀을 흘리면서 노는 모습을 보자면 기특한 생각이 들곤 한다. 가끔씩 우리가 알지 못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번 돌잔치 때 그 의문(疑問) 하나가 풀렸다. 놀다가 뜬금없이 두 주먹을 쥐고 용을 쓰는데 응가를 하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청주 할머니가 “힘”하면서 주먹을 쥐자 따라서 했던 거였다.

 

 아침까지 집안정리를 하며 손님 맞을 준비(準備)를 했다. 11시 30분경 딸 내외와 손녀딸이 왔다. 돌잡이 준비를 위해 준비를 하면서 물건을 늘어놓다 보니 두 주 넘게 정리한 티가 나질 않아서 난감했다. 그러나 어쩌겠나? 오늘 행사를 위해 해야 할 과정(過程)인 것을. 한시가 훌쩍 넘어 사돈 내외와 사돈처녀가 왔고 1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양고기 뒷다리와 국물이 있는 훠거가 나왔고 맛있게 식사를 한 후 집에 가서 오늘의 이벤트인 돌 사진 찍기와 돌잡이 일정(日程)이 시작됐다.

 

 소박한 돌상위에 걸터앉힌 손녀는 잠시도 제자리에 앉아 있으려 않는다. 앞에서 가족들이 카메라 렌즈로 시선을 모으기 위해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관심 둘만한 소리도 내며 야단법석을 떠느라 한동안 집안이 시끄러웠다. 애가 짜증을 부리면 사진 찍다가도 중간에 잠을 재우려 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싶으면 또다시 옷을 갈아입힌 후 사진 촬영을 했다. 그러나 아마추어의 한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시끄럽기만 할 뿐 추억으로 남겨둘 만한 사진 한장을 제대로 찍지 못한 채 돌 사진 촬영(撮影)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로는 다음날 사진관에서 돌 사진을 찍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엘이 잠시잠깐 휴식을 취한 후 돌잡이가 진행됐다. 놀라운 일은 돌잡이를 해봤던 아이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상에 놓인 여러 물건 중 청진기, 엽전과 무명실을 차례로 잡았다. 모든 부모들의 바램인 전문직(專門 職)에 돈 많고 오래 사는 팔자라니 이엘의 미래가 활짝 열릴 듯하다. 손녀를 안고 있던 안사돈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엘아! 커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影響力)을 미치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또 두 주먹 불끈 쥐고 힘을 외치는 이엘아!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자라렴.

 

 아침 댓바람에 사돈에게 줄 요량으로 주말농장에 갔다. 건강에 유익한 비트, 케일을 넉넉하게 심어놓아서 양이 제법 많았다. 시장 가방으로 4개를 가득 채워왔다. 무 농약으로 재배해서 곳곳에 구멍이 나긴 했어도 우리 몸에 유익한 베타카로틴, 산화방지, 비타민C, 심장질환 위험 감소, 비타민K, 탁월한 항암능력을 지닌 신의 채소다. 다행인 것이 밭의 토양이 좋아서 인지 무슨 채소(菜蔬)든 심어놓기만 하면 잘 자란다.

 

 저녁은 전날 콩 국물을 만들어놓은 상태라 국수만 삶아서 차려내면 됐는데, 아내는 여태껏 식은 죽 먹듯 잘 해오던 국수 삶는 것을 실수해서 딸랑 밥상에 국수 한 그릇 올리는데 설익은 국수를 내놓고 말았다. 아내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저녁식사 후 사돈과 좀 더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친구가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바람에 나는 천안으로, 사돈네 식구는 호수공원으로 향해야 했다.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하며..  2020년 07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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