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는 것처럼, 고요함이나 평화로움이란 말처럼 무서운 게 없다. 내부적으로 모든 조직이 이완(弛緩)되고, 무질서해져 스스로 해체되는 과정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이천 년 전 로마제국도 팍스로마나를 통해 기강이 물러지고 내부로부터 무너져 결국 주변국의 침략에 의해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어갔다. 어느 국가든 적의 침략이 빈번하게 되면 스스로 적의 도발에 대한 대비를 하게 된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은 물론 자강불식(自强不息)을 통해 적이 함부로 망종(芒種) 하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까칠한 성격이나 남보다 유난을 떠는 사람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 된다. 경계의 대상인 동시에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과 다른 모습이나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공격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약자가 되는 순간 무리에서 쫓겨나 외톨이가 되고 먹이사슬의 고리에서 결국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보호막이 사라지는 순간 밀림의 제왕 사자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약체였던 하이에나에게 최후를 맞게 될 수 있다. 사자에겐 비참한 일이지만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자연의 법칙을 놓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있다. 강한 자극은 잠자고 있던 세포들을 깨우고 또 자유롭게 마시던 공기마저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를 나서야 되는 세상이 됐다. 그동안 우리는 자연이 준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공기를 마실 때마다 우리 삶에 절대적인 존재라는 걸 모른 채 당연히 늘 깨끗하고 신선함을 유지하는 존재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린 바이러스의 존재를 통해 공기 중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유해물질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는 오염물질도 그중 하나다.
어제 제주도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마스크를 쓰고 수업하다 쓰러져 결국 사망했다고 한다. 요즘 교사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며 호흡곤란, 구토, 어지러움 증 등을 호소하고 있다. 교사의 건강과 안전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더 많은 피해 사례가 발생될 것으로 예견된다. 당분간이라도 교사와 학생 간 거리를 유지한 채 수업할 수 있도록 안전 블록을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교단을 중심으로 투명한 아크릴 판을 설치해서 그 안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수업을 진행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현재 우리는 도로를 보행할 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교차할 때마다 표정을 읽고 있자면 다양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오염된 물질을 본 것처럼 황급히 지나치거나 외면한 채 지나친다. 가끔은 마스크를 벗고 가다가 눈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황급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손수건을 들고 가다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지나치는데 그럴 때면 내가 무슨 바이러스를 품고 사는 사람인 줄 착각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동네뿐 아니라 가까운 시내의 출입도 꺼리게 되다 보니 스스로 집안에 갇힌 꼴이 됐다. 문제는 하루의 생활이 단조롭고 지루해서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는 것이다. 그나마 해방구는 집 앞에 있는 산에 가는 것인데 가는 중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제각각의 형태로 사람들을 경계하고 꺼려한다는 사실이다. 산에 올라가면 마스크를 벗고 자연의 향기를 몸속으로 느끼려 하는데 문제는 앞, 뒤에서 오는 사람들과 만남이다. 각각의 사람들이 몸으로 드러내는 표현들이 서로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바이러스를 지닌 사람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과거이래로 우리 사회는 사람들은 집단을 이뤄 자연재해나 적(敵)의 침략에 대비했고 힘을 합쳐서 막아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비대면(Untact)이 키워드가 됐다. 상점에 가서 물건을 고르고 장바구니에 담는 대신 온라인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고 물류라인을 통해 공급받는다. 학교 수업도 인터넷 강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직장의 근무형태도 바뀌어가고 있다. 재택근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코로나 19는 사람과 사람을 격리시키고 있다. 또 인류가 지금까지 핵심 코어로 여기던 사회가 분화되어 각자 고립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백두산 지류 중 하나인 중국 산에서 화산 폭발 징후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는 개성공단 내 남북 연락소가 폭파되는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248억 원을 쏟아 부어 만든 것으로 완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북한을 철석같이 믿고 남북교류를 통해 군사적 긴장감을 해소하려던 현 정부로선 뼈아픈 실책으로 남게 됐다. 이전 정부에서 없었던 최고위급 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하고 마치 통일 열차가 달려갈 듯 설레발을 떨었는데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우리 군은 남북화해무드에 춤을 추듯 기강해이가 우려 수준을 넘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진 한반도에 북한, 중국의 배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군은 단 한번도 그들을 사전에 검거하지 못한 데다 민간인들이 군의 철책을 뚫고 들어가 병영 안을 자유롭게 활보해도 누구 하나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우리 군의 “지금” 모습이다.
우리가 그동안 자의적인 평화를 온몸으로 만끽하면서 조직이 이완되고 흐리멍덩해진 게 틀림없다. 과거 임진왜란, 병자호란, 조선말 일본의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을 때 우리는 주체적 역량을 보이기보다 외세를 끌어들여 난국을 해결하곤 했다. 그렇다보니 내 뜻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등장했던 국가의 전횡(專橫)이 판을 친 것이다.
북한에서 탈북자들이 북한을 향해 날린 전단지를 문제 삼자 청와대와 통일부 등 관계기관들이 전단지를 살포하지 못하게 법적인 제도에서부터 그동안 전단지를 날리던 곳에 경찰력까지 동원해 막으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의 하명대란 생각이 가시기도 전에 북한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우왕좌앙하는 정부에 조소라도 하듯 엉뚱한 곳에서 "쾅쾅"하면서 개성하늘에 흙먼지가 날린 것이다. 자주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정부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 안보가 걱정된다. 또 코로나19가 몰고올 새로운 시대를 맞을 능력이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든다. 국가는 국가다워야 한다. 베트남 여행에서 난 그들의 무서운 힘을 느끼고 탄복한 적이 있다. 두고 보라지. 베트남이 한국보다 얼마나 더 강대국이 될지를. 나라의 지도자라면 적어도 베트남의 지도자처럼 해야 옳다. 그런데 그들이 최고로 존경하는 호치민은 우리나라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라는 책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그게 아이러니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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