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사자(死者)의 서(書)

해암 송구호 2020. 3. 13. 22:49


 


 3월11일 WHO는 pandemic을 선언했다. 질병이 세계적으로 퍼져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될 위험성이 농후할 때 국제적인 이동을 제한해서 질병의 확산을 막으려는 예방대책의 일환으로 취하는 세계보건기구의 지침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19는 이제 세계인을 향해 불화살을 퍼붓고 있다.

이탈리아는 이미 지역 확산이 시작되고 있고 프랑스, 영국도 확진자 수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에 있다. 독일의 메르켈 수상도 이제 코로나19의 지역 확산은 막을 수 없게 되었다며 확산속도를 완화시켜 의료기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과제라는 말을 했다.

WHO의 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부러여수스는 친 중파로 알려져 있다. 질병이 세계로 확산되기 전 pandemic을 선언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중국인의 출입을 막지 않아 대구, 경북지역의 집단감염 사태를 초래했고 지역 확산이 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대국민 홍보와 발표를 보면 자화자찬(自畵自讚) 일색이다. 아마도 4월 대선을 의식해서 이치에 맞지 않는 말들을 쏟아놓고 있는 것 같다.

 어제 전 직장동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가 안양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데 힘이 없고 짙은 우수가 배어있었다. “돈도 다 필요 없고, 건강이 최고다.”라는 말엔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던 삶에 뭔가 아쉬움이 있어보였다.

 3년 전 중국 장자커우를 함께 여행할 때 나무숲이 우거진 귀곡잔도에서 붉은색 비단에 자신의 소원을 적어서 나무에 매다는 데 사업을 하는 친구라서 의당(宜當) 사업번창을 염원하는 글을 쓸 줄 알았는데 가족 건강을 썼었다. 그 때 새롭게 알게 됐던 사실은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이었다. 여느 질병처럼 수술이나 치료를 통해 완치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차가버섯을 다려 마시는 중이라고 했다. 차가버섯이 면역력이 좋아 효과가 있다는 점도 말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도 가끔씩 아내에 대해 말할 때마다 양방보다 한방치료를 받는 데, 아마 아내가 양방치료를 꺼리기 때문인 듯 보였다.

 그의 아내는 4년 전 커피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보건소에서 폐 X-ray 촬영을 했는데 ‘폐 섬유 화’ 증상이 보인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인근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절망적인 말을 들은 모양이다. 검사결과에 충격을 받은 아내가 "나 이제 어떻게 해"라며 엉엉 울 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양방을 멀리하 게 됐고 한의원에서 주로 버섯을 우려낸 차를 마시며 병을 다스려 왔는데 며칠 전 아내가 갑자기 신부전증으로 다리가 붓고 심장에 맥박이 심하게 뛰어 종합병원을 알아봤지만 단지 폐 기저질환자(肺 奇褚疾患 者)라는 이유로 어느 병원도 음압병상이 없어서 수용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이었는지 119에 전화하자 가까운 곳에 음압병상이 한 곳 남아있다는 말에 응급차로 후송 됐고, 코로나19 검사와 병행된 기본검사 중 쇼크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다행히도 하루 만에 의식은 돌아왔지만 전문성이 부족한 의사들의 상황 대처로 아까운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다. 보호자는 의사들이 응급상황에서 신속하게 조치를 해야 한다며 내민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는 말에 어떤 치료가 이뤄지는 잘 모른 채 단지 아내를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조치라도 해달라는 말과 함께 내밀은 서류에 사인하느라 혼이 빠진 상태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거기 가면 나 죽어.”라는 말을 했는데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친구가 영 안 돼 보였다.

 이번 일을 두고 볼때 평소 지병을 앓는 사람은 믿을만한 병원의 주치의로부터 정기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아는 친구는 대장암 4기에 폐암까지 걸렸지만 대장암 수술 후 폐암은 약물치료를 통해 크기를 줄여가는 중인데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어제 운명한 친구 아내의 사인(死因)은 폐 섬유 화(肺 纖維 化/ fibrosis) 증상보다 기관지염증이 문제였던 걸로 밝혀졌다고 한다. 의사 말 한마디에 병원 공포증이 생긴 후, 양방 치료를 거부하다 치료시기를 놓쳐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작년 말 만났을 때 올 7월에 유럽으로 아내와 함께 가족여행을 갈 계획이라며 좋아했었는데, 그걸 못하게 됐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스트레스는 배우자를 잃는 것이라고 한다. 황망해서 지금은 아내의 빈자리를 모르겠지만 장례를 치른 후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지 걱정스럽다. 작년에 등산 중 나눈 말이다. 아내가 외출하고 없는 빈집에서 거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추는데,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져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는 고백이 문득 떠오른다. 아내가 떠난 후를 상상하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슬품이 밀려왔던 모양이다. 그의 예상은 현실이 됐고 아내를 잃은 비통함보다, 쓸쓸함에 생기마져 잃었다.    

 사람들은 일이 있고 난 후 독백처럼 말하곤 한다. 살만 하니까 허망하게 가버린다고. 대부분 사람들은 코앞에 일도 알지 못하면서 내일을 위해 모든 걸 쏟아 붓고 산다. 톱니바퀴에 맞물려진 기어처럼 일상이라는 순환계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일과 후 친구를 만나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 조차 몸엔 커다란 부담을 주는 것일테지만, 막걸리 한잔의 여유조차 없다면 뇌가 터질 것 같기에 오늘도 대포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친구의 아내가 코로나19로 선별진료 대상이 돼 종합병원에 못가고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한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또 평상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왔다면 위기의 순간을 전문의와 상의해서 잘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인명은 제천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야 할 게 아닌가? 

 장례식장에서 젊고 어여쁜 미모의 초상(肖像)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가슴으로 통곡하고 있을 친구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앞으로 빈 가슴을 채워나가기까지 여간 힘든 게 아닐 텐데. 문상 중 나눈 대화에서 그는 "아내의 잔소리를 듣던 때가 벌써 그리워진다"라는 말을 했다. 40여년을 함께 하면서 만들었던 추억이 하나, 둘일 텐가? 그 장소를 지나칠 때마다 아내의 모습이 생각나고 그리워질 게 뻔하다. 덧붙여서 "장례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에 어떻게 들어가나!" 하며 말끝을 흐리는데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몰라 숨 조차 멈추고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 만 둘 사이의 공간을 채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