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이 현재 거주하는 땅에 정착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둥지를 틀 게 된 계기는 제1 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벨프 어가 로스차일드가에 보낸 서한에서 잘 나타나 있다. 세계를 떠돌며 유럽 국가들로부터 린치를 당해온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착할 곳이 절실했고 상업과 금융업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로스 차일드 가는 제1 차 세계 대전 때 영국군의 군수품과 무기를 공급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공을 세운 후 이뤄진 거래가 바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은 콩고를 식민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원하면 현재의 땅보다 몇 배 큰 곳을 떼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그들 삶의 중심엔 성경이 있고 천 년 동안 유랑을 하는 것도 또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비록 척박한 땅일지라도 조상들이 살았던 곳을 고집했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에서 로마군과 맞서 싸우던 유대 군은 패전 후 대부분 노예로 끌려가거나 죽었지만 그중 일부와 양민들은 디아스 포라(Diaspora)라고 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영원히 추방되었다. 그들은 조국을 등진 채 유랑자가 되어 유럽 땅을 비롯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아가게 됐다. 하지만 이산이 꼭 나뿐 것만은 아니었다. 세계 각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끼리 소통하면서 각국에서 생산된 물산의 가격을 비교 분석한 후 싼 곳에서 대량 구매를 한 후 비싸게 팔리는 곳에 되파는 장사를 해 큰 부를 축적했다.
셰익스피어 작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 샤일록처럼 이들은 무역업으로 번 돈을 금융업에 투자하면서 더 큰돈을 만지게 됐다. 고리대금업은 유럽인들에게 필요 악이었다. 고리대금을 갚지 못한 서민들에게 유대인은 폭력배를 동원해서라도 빌려준 돈에 이자까지 받아냈다. 요즘 사채업자와 같은 악랄한 자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들에겐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공포감을 심어줬다.
반면 그들의 재산을 탐하던 왕과 귀족들은 유대인이 땅을 소유할 수 없게 만들고, 금과 돈을 들고 국외로 나갈 수 없게 법을 바꾸어 맨몸으로 내쫓는 방식으로 그들이 벌어들인 돈과 재물을 빼앗았다. 중세 시대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등으로 쫓겨 다닌 것과 그들이 살던 마을에 가면 좁고 미로처럼 복잡한 통로가 나 있는데 쫓고 쫓기던 그들의 삶을 엿보게 한다.
또 지진, 전염병과 기근이 발생할 때마다 화풀이 대상으로 공공의 적이 되어 죽임을 당해야 했다. 가장 가까운 시기인 1939년 무렵 나치당은 민중 선동의 제물로 유태인을 지목했고 주도면밀하게 도륙(屠戮)함으로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보여줬다.
유대인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면서도 그 나라에 동화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방식대로 교육을 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모든 삶의 지혜가 녹아있는 「탈무드」는 그들의 교과서이자 생활지침서이고, 규율이고, 법전이며 성서다. 기초교육은 대부분 집에서 아버지로부터 받고 아이가 좀 더 성장하면 지혜가 있는 랍비에게 교육을 의뢰하는데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토론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며 주제가 정해지면 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의 가치관과 철학이 몸 안에 내재돼 있다. 사고(思考)가 깨어있고 주관도 확실하게 서있기 때문에 그들은 다수의 뜻에 묻어가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국방력은 무기의 우수성도 있겠지만 지휘부의 신속(迅速)한 판단과 대처다. 그들은 세계 각처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보원의 첩보를 바탕으로 한 과감한 행동이다. 1967년 6월 5일부터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간 6일 동안 벌어진 전쟁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됐던 사건 중 하나였다. 외눈박이 모세 다얀 장군의 지략으로 중동의 전투기를 선제 타격해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군은 중동 연합군의 저항 없이 예루살렘의 성지를 비롯해 성서에 기록된「단에서 브엘셰바까지」(창세기 21장 31절) 약속된 땅 대부분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천 년간 나라를 잃고 유럽 세계를 떠돌며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흑사병이 돌 때는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타서 그렇다고 했고, 지진과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 생겨도 성난 군중들은 유대인을 죽이거나 희생양으로 삼아 린치를 가했다. 독일 나치당은 유대인 인종청소 계획을 창당 준비 과정에 넣었는데 당기(黨旗) 중에 나치당의 문장(紋章)에서 적색바탕은 사회운동(社會運動)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둥근 원(圓)에 흰색 바탕은 국가주의(國家主義)를 그리고 스와스티카(Swastika / 아시아에서는 卍만)는 영원(永遠)히 유대인을 반대(反對)하는 아리안족의 상징을 담고있다. 아마 히틀러가 가톨릭 신자였던 것에 그 이유가 있는 듯 보인다. 유년기 때 히틀러는 복사(服事)를 했을 정도로 가톨릭교를 신봉했었다.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던 아이히만도 가톨릭교 신자였다. 예수가 죽은 후 유럽사회를 지배하던 가톨릭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인자들이라며 유대인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실제 나치당은 독일의 경제 공황이 유대인 때문인 것처럼 왜곡해서 선전 선동(宣傳 煽動)을 하면서 국민의 지지와 통합을 이끌어냈고, 급기야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그 때 나치당의 광기로 6백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됐다.
유대인들은 천 년의 유랑 생활을 통해 나라 없는 민족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선 독해야 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을 것이다. 이스라엘 모사드의 첩보 력은 미국, 러시아와 함께 세계적 수준이다. 그들은 국익을 위해서 요인 암살 등 뭐든 하는 무서운 집단이다. 지금까지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선제 타격이다. 이들의 군사 행동은 미국도 딴죽을 걸지 않는다. 미국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유대인들 중 상당수가 미국의 재계, 정계, 언론계 등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오랫동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팔레스타인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했기 때문에 지금도 양국은 영토 분쟁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천 년 전 이 땅의 주인으로, 팔레스타인은 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이 땅에 살아온 주인으로서 빼앗긴 땅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서부 개척시대 때 원주민이 쫓겨났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살던 땅을 이스라엘에 내어주고 말았다. 엄밀하게 빼앗겼다. 그러나 다시 되찾긴 어려울 것 같다. 이스라엘이 그들보다 힘이 더 세고 강하며 그들을 지원해 줄 백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강한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정보력이다. 정보력은 매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공격의 시점을 재기 위해서도, 한 발 먼저 발을 빼는데도 정보와 첩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최강의 군사력도 꼭 필요한 자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미군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미국은 주한미군의 주둔비를 대부분 분담하고 있는데도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라고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만약 전쟁이 났을 경우를 상상하면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요구를 할 수 있다. 마땅히 독자적 생존을 위한 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을 선언하면서 미국이 공을 들여 "북미회담"을 하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세계 패권을 쥐고 흔들려고 할 때 걸림돌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 아기 손에 권총이 들려진 것처럼 계속 내려놓으란 말만 한다. 어른의 속을 훤히 들여다 보고있는 아기는 자기 손에 사탕을 쥐여주라며 투정 대는데 아마 손에 쥐여줘도 당분간 권총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권총을 내려놓는 순간 두 번 다시 사탕을 얻어먹지 못할 걸 안다면 말이다.
지구상에서 생존의 대왕이라면 바퀴벌레(cockroach)를 따라갈 수 없다. 고생대부터 현존하는 화석 곤충 중 하나로 바퀴벌레는 척박한 환경에도 잘 살아남아 있다. 사막에도, 지하수에도, 그리고 주방에도 바퀴벌레가 산다. 대부분 생명체는 환경이 변하면 종이 멸종을 한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환경이 변할 때마다 자신을 환경에 최적화 시키며 생존력을 과시해왔다.
사막에 살아남은 바퀴벌레는 수분의 리사이클링을 할 수 있도록 신체구조를 변화시켰고 악취가 나는 하수도에서는 소독 성분인 크레졸을 몸에 탑재하는 기지를 발휘하며 지금도 지하세계를 누비며 다닌다. 주방에서도 그들은 인간과 숨바꼭질을 하면서 유유자적한다. 때로는 인간의 파리채나 덫에 걸려 죽기도 하지만 놀라운 번식력으로 개체 복원을 하면서 인간과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다.
생존의 절박함이 없을 때 인간이나 곤충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도태의 길을 걷게 된다. 중국의 팽창을 더 이상 놔두지 않겠다는 기존 기득권 세력과 벌이는 암투에 일본이 가세하면서 한반도는 점점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 형국이다. 분명한 사실은 국제질서의 변화가 점차 가속화될 것이란 사실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의 균형이 깨지느냐 마느냐의 각축전이다.
한국은 군사력도 경제력도 이웃나라와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얽히고설켜 있는 형국이다. 이때 일본의 무역 제재 보복은 우리 국민과 정부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중국과 미국의 싸움에 등골이 빠질 지경인데 일본의 무역제재라는 암초를 만난 꼴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전 예견됐던 일이다. 다만 그때 문제를 그대로 덮어둔 채 현사태를 맞았을 뿐이다. 선조가 판단을 유보했던 것과 아주 흡사한 결과다.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는 집단행동이다. 떼를 쓰면 안 될 것도 되고 떼를 쓰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된다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다. 택시 노조의 집단 반발로 "자동차 공유 시스템"인 「타다」가 「우버」꼴이 됐고, 노조를 결성하고 스크럼을 짜서 드러누우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정책이 바뀌고 법이 바뀐다. 그렇다 보니 나라가 늘 시끄럽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사회가 돼버렸다. 잣대가 들쑥날쑥하다 보니 강짜를 부리고 드러눕는 애가 떡을 먹는 꼴이다. 안 되는 것은 울다 죽어도 안 되고, 되는 일은 해달라고 보채기 전에 알아서 해준다면 우린 더욱 살만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이 요즘 보이는 행보는 임진왜란 때 왜구의 모습과 또 조선 말기 때 조총을 들고 인천 부두로 들어오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린 본 것도 눈을 감아버리는 장애를 지닌 정치인들에게 고액의 녹봉을 주면서 그들의 위험한 외줄타기 외교를 마치 묘기를 부리는 재간꾼인 양 바라봐야 한다. 내일에 벌어질 살벌한 일들은 안 일어났으면 하는 기도(祈禱)로 대신한 채 말이다. 그런데 어쩌지? 꼭 안 일어나길 바라고, 비는 일들이 눈앞에 현시(顯示)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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