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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는 2,300만 년 전에 한반도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현재 일본은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들어가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지구는 12개의 판으로 구성되어 있고 맨틀 대류 때문에 서로 다른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며 상호 작용을 하므로 판 경계 부근에서 지진, 화산활동, 조산운동(造山運動) 등의 지각 변동이 활발히 일어난다는 것을 판 구조론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저주의 땅인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놓여있다. 실제로 2011년 3월 11일 일본 혼슈 북동쪽에서 9.0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태평양 판이 격렬하게 움직여 해저가 30 ~40m 위쪽으로 올라왔고 이어서 수위가 올라가면서 지진성 해일인 쓰나미가 발생했다. 물적 피해는 접어두고 인명피해만 대략 400만 명 이었다고 한다.
관동 대지진(1923), 고오베 대지진(1995), 동일본 대지진(2011) 등 커다란 규모의 지진만도 수차례 발생했고 지진과 함께 사건과 사고도 많았다. 관동 대지진 때 일본은 한국인 육천 명 이상을 살육했는데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린 후 자경단을 투입해서 무참히 도륙했다. 그 이유는 일본 노동자 계급의 성장, 일본 공산당의 성립에 따른 계급투쟁의 격화, 한국. 중국의 민족해방 운동 등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면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계략이었다.
일본은 봉건제후 시대를 거치면서 생존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경험하게 된다. 적자생존의 진수(眞髓)를 터득하는 과정에서 야비함도 체득했다. 또한 해적질을 통해 약탈한 노획물을 향유(享有)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뻔뻔함도 물려받았다. 그들은 먹이감을 보면 집요하게 공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교활함도 지녔다. 우리는 쪽바리라고 그들을 비하했지만 그들은 속내를 숨기고 치밀함까지 지닌 기회의 종결자다.
뱀이 다가올 때 쥐는 패닉 상태에 빠져 도망가지 못 하고 잡혀 먹힌다. 격투기에서 싸움을 하기 전, 상대방이 강자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면 싸워보지도 않고 밀리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반면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신인 선수는 저돌적인 공격을 하면서 달려든다. 승패를 떠나서 패기만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승패는 장담할 수 없다. 교활함이나 집요함이 없고 임기응변(臨機應變) 이 부족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 역사는 외세의 침략으로 수난과 고초를 당해왔다. 고려시대는 몽골의 침략, 조선시대는 일본의 침략이다. 초식 동물이 육식 동물의 먹이감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첫 번째 빠른 발은 가졌을지 몰라도 강한 이빨과 발톱이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힘을 한 곳으로 모을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의 능력이 어느정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유일한 생존전략이다. 세 번째는 서로 먹이 경쟁을 하느라 지경(地境)을 넓히는 것엔 소홀하다.
2011년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고 붕괴된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어 현재까지 인근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바다는 방사능 물질로 오염됐고 근해에 서식하고 있는 바다 생물들에게 노출되어 후쿠시마 근해의 생태계 파괴는 심각한 수준이다.
1912년 일본 도야마 현의 진즈 강 하류에 서식하는 어패류를 먹었던 주민들이 "이따이, 이따이"라며 통증을 호소해서 정부가 환경 조사에 나섰고, 조사 결과 폐수를 하천으로 방류할 때 중금속인 카드뮴이 모래톱에 침착된 것을 어패류가 먹었고, 마을사람들이 오염 된 어패류를 먹는 악순환(惡循環)으로 몸속에 카듀뮴이 쌓여 생긴 「카드뮴 중독」이란 걸 밝혀냈다. 이따이란 일본어로 아프다는 뜻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근해에서 잡은 물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한국을 대상으로 소송을 했고 1차에서 승소, 2차에서 패소를 한 상태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를 수출하겠다는 몰염치한 생각과 무역 분쟁 상대국을 우리나라로 선택한 것은 무슨 경우 인지, 심히 불쾌한 일이다.
1592년, 정확히 조선이 개국한 후 200년 뒤 이웃나라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조선 땅을 짓밟았었다. 그 당시 조선의 왕은 선조였고 조정은 동인, 서인 간 당파싸움이 한창이었다. 1588년 황윤길(서인)을 정사, 김성일(동인)을 부사로 해서 「일본 통신사」로 보내 일본의 침략 의도를 파악하도록 했는데 두 사람의 보고는 정 반대였다. 황 윤길은 전쟁 가능성을, 김 성일은 그 반대 의견을 선조에게 고했다. 이때 선조는 두 사람의 의견 중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가려내지 않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친서에서 정명 가도(征明假道)를 언급 한 것과 사신들의 무례한 행동만 봐도 전운을 간파할 수 있었을 텐데 무사안일(無事安逸)하게 대처했다.
1868년 막부 체계를 무너트린 명치(明治)정부는 조선과 통상을 요구했으나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번번이 거절당하자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무력행사를 한 후 1876년 1월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맺으면서 침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조선은 순조, 철종 등 무능한 왕과 외척세력에 의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대원군의 아들 고종이 보위에 올랐지만 부자간 권력싸움에 양진영으로 줄을 대는 간악한 신하들로 이미 자멸하기 일보 직전(一步 直前)이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조선을 일본 정부가 간파했고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밀고 들어왔다.
일제 36년 동안 우리가 겪어야 했던 것들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지만 백성들은 자유를 잃었고, 국가와 개인의 재산을 약탈당했다. 혼란에 빠진 국가, 모래 알처럼 부서지는 조직은 적의 표적이 된다. 피 냄새를 맡으면 몰려드는 상어떼처럼 일본은 본능적으로 우리나라가 허약해지는 때를 정확히 간파했고 시의 적절(時宜 適切)한 때마다 침략의 구실을 만들어 통째로 집어삼켰다.
최근 독도에 대한 영토분쟁을 더욱 노골화 시키는 데엔 속셈이 있어 보인다. 이 명박, 박 근혜 정부를 걸치며 우리나라의 국력이 쇠잔(衰殘해)졌기 때문이다. 그 중 첫 번째로 올바름이란 정의를 잃은 것은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는 기업의 활로를 열어주지 못했다. 점점 우리의 밥그릇이 찌그러지고 있는데 수수방관(袖手傍觀) 만 하고 있다. 셋 째는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일본은 기업과 정부가 한 몸처럼 움직이며 국가의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기업의 목줄을 움켜쥔 채 놓아주려 않고 있다. 기업 규제가 심해 외국으로 떠나는 스타트 기업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한다.
일본정부를 자극하고 있는 일제 시대 때 강제 징용자의 품삯과 위안부 처리 문제,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 수입 규제 문제 등도 그들은 정부와 기업이 한몸처럼 공조하면서 우리 정부를 겁박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해외에서 일본 정부의 촉수(觸鬚)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동해 앞바다에서 일본 초계기가 우리 함정에 근접 비행하고도 우리함정이 레이더를 조사(照射)했다며 생억지 쓴 것이 "운요호 사건"과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일본은 G 20 개최국으로 참석한 나라 중 19개 국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우리나라는 배제시키는 외교적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 한 일을 벌이고 있다. 아베의 치졸한 모습도 역겹지만 홀로 투명 인간처럼 서 있 게 될 문 대통령을 상상하자니 씁쓸해진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그들이 법을 바꿔가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시점에 외교적 무례함을 노골화한 것은 간과할 수 없다.
우리 몸속을 흐르는 피에 「자기 살을 파먹는 괴물」이 내재된 것은 아닐지 두렵다. 어떻게 과거 이래로 당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국력을 낭비하는 것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일까? 미,중 간 패권 다툼으로 양국 사이에 낑긴 우리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지경인데" 광화문 거리에 텐트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세계무대에서 살아남느냐 아니면 소멸하느냐의 귀로에서 정치권과 사회 이익 집단들은 이권다툼에 혈안이 돼 있다. 어부지리(漁父之利)라는 고사가 생각난다. 편가르기를 하고 싸움질에 기운 빼다 보면 종국엔 둘 다 죽게 된다. 또다시 자유를 잃고 싶지 않다면 힘을 모으자.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외교는 직무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폭 넓은 안목과 예지력을 바탕으로 국가 간 문제점들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조정 능력이 필요하다.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감정을 노골화 할 때까지 외교부 수장은 무엇을 한 것인가?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면 자리에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일본의 도발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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