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얻는 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이고 또 새로운 세상에 눈이 뜨인 것 일 수 있다. 이 세상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전혀 다른 색을 띠고 우리의 시선을 자극하게 된다. 누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곳에 길이 있다. 아니 길이 열린다고 해야하나? 과학의 길, 학문의 길, 구도자의 길, 생명의 길, 우주로 향하는 길 등, 무수한 길이 열리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선각자(先覺者)가 뜻을 세우고 그 길을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다.
수학에서 무한대(∞)의 값은 Zero로 수렴된다. 바꿔 생각하면 제로의 상태는 가능성이 무한대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류의 발달과정에서 이러한 변화는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자연환경의 지배하에 있을 때 인류는 생존의 벽에 막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공포 속에서 생명을 연명해야 했다. 그러나 인류가 도전과 응전을 통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서 자연의 순환을 인간의 편의(便宜)에 따라 지배하게 됐다. 계절 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문명의 진보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아직도 지진, 폭우, 폭설, 태풍, 산불,화산폭발 등 자연재앙에 의한 피해로 수많은 피해와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는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이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대변해 왔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운명 예정설이 대두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윤회를 한다면 바다로 수렴되는 물방울처럼 인간의 영혼은 각각의 삶의 궤적을 내포한 상태로 환생이란 순환고리에 얽혀 메비우스의 띠처럼 영구히 소멸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반면 손오공이 머리털을 뽑아 분신술을 부린 것처럼, 조물주가 흙으로 인간을 빚은 후 생기를 인간의 콧구멍을 통해 불어 넣은 것이라면 소멸의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불교나 흰두교가 국가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는 국민의 생활 수준은 낮은데 반해 종교적 신념은 두텁다. 그들의 삶은 현재의 가치보다 사후 세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현세의 시련과 고통을 잘 참고 견뎌낸다. 현세에서 겪는 고통은 다음 생에서 더 큰 보상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힘든 삶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들을 순화시킨 종교적 가치와 이념이 현재 삶보다 미래의 삶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시냇가에 살고 있는 새우와 바다에 사는 고래는 서로 만난적이 없다. 둘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로 알고 살아갈 뿐이다. 새우는 잔잔한 물가에서 조용히 숨죽여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혹여 천적의 눈에 띄면 조기에 생을 마감하게 되므로 조심스럽게 은둔하며 산다. 반면 고래는 대양을 누비며 다닌다. 대적할 상대가 없어서 자기 수명이 끝날 때까지 바다의 제왕으로 살다 간다. 그들은 자연의 순리를 쫓아 살다 생명이 끝나는 날 모든 것을 자연에 돌려주고 떠난다.
인간은 조금 복잡하게 삶을 끝낸다. 가족과 친구가 있고 사회적으로 서로 소통하던 팔로우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알던 사람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사람도 있지만 죽음을 부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도 있다. 유대관계가 깊고 서로 가까운 사이일 수록 죽음을 부인하려는 경향이 높다. 또 그 사람의 업적이 클 때, 슬픔을 느끼고 공유하는 범주가 늘어나게 된다. 그가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클경우 슬픔을 공유하려는 폭은 더욱 넓게 확장 된다.
인간은 고래나 새우처럼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눠주고 공유하길 원한다. 때론 직장에서 돈을 벌 목적으로 연구활동에 참여할 때도 있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지금도 새로운 길을 찾기위해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다. 더불어 촛불처럼 자기를 불태우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의 헌신적인 삶과 희생을 잊지말자. 그들의 희생(犧牲)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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