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그리스도의 승리
로마 시대의 별장
- 빌라(Villa) - 전원의 집 / 농작물 생산 기지
- 카사(casa) - 상주하는 집
1장 콘스탄티우스 황제 시대(서기 337년 ~361년)
사후 - 기독교 --- 대제(magnus)
로마식 --- 신군(divus) 존칭을 받았다.
죽기전 -- 친 아들3명, 조카2명에 카이사르(칭호)를 주어 국가 방위책임을 맏김
맏아들 : 콘스탄티누스 2세 / 갈리아, 히스파니아, 브리타니아
둘째아들 : 콘스탄티 우스 /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셋째아들 :콘스탄스 / 이탈리아, 판노니아, 북아프리카
맏조카 : 달마티우스 / 다키아, 트라키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둘째조카 : 한니발리아우스 / 북부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공화국
장례식후 -- 참여한 육친의 살해, 제외 2째 콘스탄티우스
콘스탄티노 폴리스 주교(에우세비우스 맏아) --- 유 -- 12세 갈루스
6세 율리 아누스
판노니아 속주(9개월전) -- 3형제 회합
- 달마 티우스와 한니발 리아누스 담당지역 분할 결정
▷ 도나우강 남안과 그 남쪽에 있는 마케도니아, 그리스 ; 셋째 콘스탄스
▷ 도나우강이 흑해로 흘러가는 일대 : 둘째 콘스탄티우스
▷ 북부 메소포타미아 : 콘스탄 티우스
제국 삼분
성격 : 1) 콘스탄티누스 2세 ; 대범함
2) 콘스탄티우스 : 진진하면서 음침(가까운 사람도 의심)
3) 콘스탄스 : 쾌할(사냥, 연회)
현실적 위상
1) 군사실무 전무
2) 가까운 친구 없음
3) 환관(에우스코스) / 환관들에의해 길러짐(오리엔트풍)
☞ 황궁 내부에 에우스 코스의 네트워크가 넓고 깊게 처져있다.(네트워크 특징 ; 배타성이
강했다.) 이조직의 지배감정은 증오, 질투다. 그리고 배타성이강하며 염탐하는 습성이 있다.
한사람의 퇴장
- 서기 337년9월 - 판노니아 속주에서 제국분할 통치 회의 후
▷ 콘스탄티누스 2세 - 막내에게 북 아프리카 넘기라고 요구, 판노니아 향하던 중 아켈레이 근처
전투에서 마하(야만족) 병사에 콘스탄티누스 2세는 붙잡혀 죽음.
☞ 갈리아, 브리티니아, 히스파니아 ; 콘스탄스가 합병
원수정 시대 야만족 병사와 차이
1) 로마 승률 높았다.(25년 만기제대)
2) 주전력 : 로마 시민권 소유자
3) 보조전력 : 속주, 야만족 출신
4) 로마 시민권<속주>, 퇴직금<로마시민> 방위 협력 댓가(매력적)
국적취득 --- 로마 시민 동등권
4세기 로마군(정 반대 현상)
1) 패전확률 높았다.
2) 시민권(카리칼라 / 안토니누스 칙령) - 기득권(매력없음)
3) 주전력 ; 속주, 야만족
4) 퇴직금 제도 붕괴 ; 퇴역군인이 사회 쓰레기(도적)
또 한사람의 퇴장
- 동방 ; 콘스탄티누스(32세) / 페르시아와 전쟁
- 서방 ; 콘스탄스(30세) / 북방 야만족 퇴치
콘스탄스 ; 내정 환관에 맏겨놓은채 방치" 거미줄 같은 은빛 네트워크"
세금의 부정 - 민중 절망
야만족 출신 장수(외로운 늑대) 주목
반역
마그넨 티우스(야만족 출신 장교) → 마르켈 리누스 황제 추대(로마인 관료 / 허수아비 인식 도주)
▷ 서기 350년 리옹에서 파리로 가는방향 1/3 북상지점 오튕에서 회합
황제 - 사냥, 새로운 황제로 마르켈 리누스 추대 합의 소식 듣고 피레네 산맥까지 도망쳐가다
추겨해온 기병대에 살해됨.
콘스탄티우스의 움직임
- 페르시아와 휴전(샤푸르) - 전선 : 티그리스 강 근방
야만족 출신 서방 맞기게 되면 브리타니아, 갈리아, 히스파니아가 게르만족에 점령당할 처지
- 서방에 황제자칭 2명 : 마그넨 티우스, 베트라 니오라(일리리아 지방)
- 콘스탄 티누스에게 부제 제의 협상요청(마그넨 티우스) / 복수, 제국할양 불가
적장 마그넨 티우스
- 서기 351년 발칸
콘스탄 티우스 - 마그넨 티우스
무르사 평원 전투 ; 로마군의 전력이 약화
마그넨 티우스 - 2만4천 전사
콘스탄 티우스 - 3만명 전사
도망 : 마그넨 티우스(자멸) ; 갈리아 민심 이반
데켄티우스 (목멘채)
§ 율리 아누스 황제 시대(서기361년 ~363년) §
메소포타미아 : 오늘날 이라크에 해당,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비옥한 땅.
구조조정
관료기구의 비대화 : 자기보존이 최 우선
자신의 능력보다 주변의 동류를 늘리는 방법으로 실현
예) 이발사 - 20명 조수, 환관 1년 예산 : 갈리아 병사 1년급료보다 높아
배교자 율리 아누스
- 율리 아누스 아포스 타타(배교자)
- 4세기 : 유아세례 없었음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우스 죽기전 세례
율리 아누스 : 20세까지 유폐, 24세까지 철학, 세례받은 이력 없으나 기독교는 그를 배교자로 단죄.
율리 아누스의 신앙 : 모든종교활동 인정 "전면적 관용"칙령(톨레란 티아)
일신교 :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유일신만 인정
콘스탄티누스 대제 : 기독교에 적극적 지원, 공익(정국안정) - 3세기 후반 자연사보다 살해당한 황제 많아
정국 격변(반복)
로마 황제의 권력인정
황제 : 원로원+ 로마시민(시민권 가진 로마병사 포함) → 권력위임
기독교(성 바울의 주장에 마력을 느낌)
종교의 한계성(허구) : 소설 인지
- 황족의 안전보장 지켜지지 않음 첫째아들 : 부대장에 살해
셋째아들 : 야만족 출신 부하에 살해
둘째아들 : 유리우스 반기 진압하러 이동 중 쓰러져 사망
로마제국의 교육
- 읽기 쓰기 셈 - 초등교육
- 교양과목 - 라틴어, 그리스어 문법
수사학(표현력)
변증학(논리성 습득)
수학, 기하학, 역사 지리
로마제국의 종교의 열세
1) 전문사제를 두지 않음(황제=사제)
2) 사제계급을 지역에 파견
안티오키아 :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 경계점이 됨
혼란
1) 이교도 세력 기독교 세력에 반격
2) 기독교회와 기독교도라는 기득권층의 율리 아누스에 대한 적개심
3)기독교 내부 교리논쟁
페르시아 전쟁(서기 363년 3월5일)
적의 기습공격 : 투니카 차림의 율리아누스 전투중 창에 찔려 사망(31세)
후임자 : 요비 아누스(기독교도) 선출 / 363년 콘스탄티 노플 출발 364년 소아시아 남해안에서
새해를 맞았다. 2월17일 그지역 유력자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전날 과음, 과식이 원인>
발렌티니아 누스 (기독교도)- 게르만족 출신 황제(서기321년 세르비아 몬테네 그로에서 출생)
친동생 발렌스를 공동황제에 앉힘
형 : 서방, 동생 : 동방을 분담
동방의 적 - 페르시아
서방의 적 - 게르만족(격파해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것 먹고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찾아 이동)
☞ 4세기 접어들면서 게르만족의 폭발적인 이동(먹고 살 수 없는 곳으로 부터의 탈출)
발렌티니아 누스 황제 10년(전투)이력
- 라인강 → 갈리아 침입: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반달족, 알레마니족
- 북해 → 브리티니아 : 픽트족,스코트족, 앵글로족, 색슨족
- 도나우강 →이탈리아 : 고트족, 훈족
- 북 아프리카 : 사막민족
4세기와 5세기의 차 (야만족의 침입)
- 4C : 침략, 약탈, 살인, 방화 후 떠나는 도적떼
- 5C : 침략, 약탈, 살인, 방화 후 그자리 눌러앉는 도적떼
발렌티아누스 10년 치세 중 야만족 출신 장수 증가
- 원수정 시대 : 속주 출신의 로마화 열의
- 로마제국 후기 : 야만족 출신의 로마화 열의
- 본인이 지식없어 유식자를 싫어함(원로원 의원 출신 황제에 대한 반역죄 뒤집어 씌워 물리적으로 말살)
☞ 발렌티아누스는 지식 콤플렉스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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