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제 2차 포에니 전쟁(후기)
BC 210 ~ BC206년
BC 210년
집정관 / 마르켈 루스 : 남부 풀리아 지방(시라쿠사 점령)
레비누스 : 시칠리아 (마케도냐 전선 외교로 묶었던 인물
스키피오 - 25세로 집정관 대행(포세이돈의 아들로 신격화)
실레누스 - 에브로 강 타라고나에 남아 본진 지원
지브롤터 해협
스키피오 카르타고 헤나성벽 도착(20일 →7일) 함락( 온정주의로 대함)
- 아이, 여성, 노약자 : 해방
- 젊은이 : 노잡이
- 기능공 : 공병대 편입
▷ 헤나 전체는 병기창화
마르켈 루스 (62세)- 이탈리아의 칼, 한니발의 추격 언덕 시찰 중 매복해 있던 적의 급습으로 사망
BC 208년
바이쿨라 - 제 5회전
스키피오 행동개시
하스 드루발(한니발 동생) / 유리한 고지, 코끼리 부대
메타우로 - 제 6회전
하스 드루발 - 5만병력 남하 / 하스드루발 전사(3만 전멸)
일리파 - 제 7회전
마고 - 4천 기병
마시나 - 누 미디아 기병
시스코네 - 7만보병 지휘 펴원에서 싸움 기다려
적이 남쪽 항구도시 카디스로 도망하지 못하도록 퇴로차단 목적으로 남쪽에 진영구축
7만 4천명 → 6천명만 도망
스키피오 협상 - 누 미디아인(기병) ,동맹제의
2차 포에니 전쟁의 말기
기원전 205년 ~ 기원전 201년
에스파냐 전선에 25세로 출전(공) → 개선식하지 않고 집정관 출마 허락요구
스키피오의 눈부신 전과(戰果)
민회에서 - 열광적으로 지지, 30세 집정관
스키피오 북아프리카로 임지요구
파비우스(70세) 칸나이에서 참패한 Rome군을 지구전으로 이끌어온(이탈리아 방패)
스키피오의 원로원 설득 : 카르타고내에서 전쟁
노장층 ; 반대
소장층 ; 찬성
시칠리아 속주인에게 관용(임차료 면제)
자발적 경비 부담 병역자
자마 - 제8회전
전쟁의 향배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
스키피오가 도입한 에스파냐 칼 - 좁은 전투에서 벌어진 혼전에서 유리
카르타고 병사 - 1만 5천명 전사(2만명 포로)
한니발 : 카드루 메툼 도망했던 한니발 도착 장로회 강화 받아들이도록
로마 허락없이 전쟁불가 → 인질 100명 → 로마 방식의 교육(가족처럼 우대)
전후 협정 → 승자 패자 존재 정의(개념무)
제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기원전 200년 ~ 기원전 183년
테베레강 언덕(7언덕)
- 공존공영 : 1, 2차 포에니 전쟁 승리 원동력
1차 포에니 전쟁(BC264 ~BC241년) : 침략전쟁(단정 곤란)
2차 포에니 전쟁(BC219년 ~BC206년) - 방위전쟁
제국주의 - IMPERIAL(황제) /19C 이후 표현시작
자마전투 승리 축하사절단(祝賀使節團)
그리스 요청 - 마케도니아 행동(침략) 막아달라고 호소(呼訴)
원로원 제 1인자(프린 키페스) - 제일 영향력 행사 (처음 또는 맨 나중 연설)
파비우스(BC 203) - 지구전법 주창(70세안팎)
스키피오(2차 포에니 전쟁 후) - 제 1인자로 추대(34세)
마케도니아의 남하 ← 억제(抑制)
BC216년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에 패(한니발과 동맹) → 마케도니아를 봉쇄한 국가의 호소
동맹국의 지원을 받은 국가 → 곤경에 처해서 도와달라 청(請) / 원로원 ; 따끔한 맛, 민회 ; 반대(평화갈망)
갈바(BC200집정관) 호소 / 재 투표에서 다수 찬성(단 그리스 파병, 지원병으로 해결)
- 1차 포에니 전쟁 - 메시나 지원 요청(응) - 시칠리아 전쟁터
- 2차 포에니 전쟁 - 사군토 지원요청(한니발 대화) - 이탈리아 전쟁터
마케도니아 → 그리스(아테네) → 로마 개입 결정 → 방향선회 공격 → (페르가몬 왕국, 로도스 섬) → 봉쇄작전 참여 동맹국
헬레니즘 세계의 왕국들
BC 323년 10년 단기간내 유럽, 아시아에 걸친 넓은 지역제패 - 알렉 산드로스왕(33세로 사망)
장군 분할통치
- 안티 고노스 왕조 - 마케도니아
- 셀레 우코스왕조 - 시리아
- 프톨레 마이오스 - 이집트
티노체 팔레 충돌
BC197년
로마 압승 - 스키피오 전술교육 효과
마케도니아(필립5세) - 강화제의
그리스 - 마케도니아의 궤멸
로마 - 패자에게 관용(플라미니 누스)
마케도니아의 멸망 후 그리스 북쪽 경계 - 켈트족, 트라키아인의 방어전략 ? (여우 내쫒은 자리에 호랑이 들어온다.)
강화내용(플라 미니누스)
1. 그리스 자치권 인정
2. 마케도니아 지배하던 지방 로마군에 인도(내년봄)
3. 마케도니아 군선 5척제외하고 나머지 로마군에 인도
4. 병력 5천으로 제한
5. 로마 허락없이 마케도니아 영토 밖에서 전쟁금지
6. 배상금 1천 탈렌트 지불(500탈렌트 즉시)
7. 로마동맹 페르가몬, 로도스에 싸움 금
8. 왕 2째아들, 디미트리오, 로마인질
9. 아테네 렘노스 섬과 기타섬 영유를 인정
협약 - 군사력 억제
배상금
동맹국에 대한 싸움 금지
칸나이 전투 때 로마의 병사가 한니발의 몸값요구 거부로 "그리스"에 팔려간 병사(노예) 찾아 달라는 요구 → 8,000명 중 1,200명과 함께 개선.
스키피오 아메리카누스 시대(대외정책) ← 온건 제국주의
1. 패권은 로마에
2. 타 강대국은 자위력 수준
3. 로마의 군사점령 없음
4. 각국 자치 완전인정
5. 경제 번영희망
시리아 침공
BC 193년 스키피오 포함 3명 원로원 의원3명 시리아 사절단 파견
스키피오(42세) ↔ 한니발(54세) 대면
BC 191년 시리아왕 안티오 코스의 이동 / 로마의 군사개입 민회 요청
명분 - 아이톨리아 인의 동맹협약 위반
그리스 로마 동맹도시에 시리아 침략 저지
원로원 - 사절파견(밀을 팔아줄 것 요청) 이집트
카르타고에서 협조, 마케도니아 누미디아 선물로 보내온 밀 : 사양하고 돈으로 삼
테르모 필라이에서 교전 - 시리라의 패퇴
아이 톨리아 인 + 시리아 군 → 로마군(병력 소수)
BC 190년
- 시리아 파견 장수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결정
헬레니즘 최대 영토국가 / 군 8만(안티오 코스왕)
- 스키피오(BC194년 집정관) - 집정관 10년내 재 선출 불가로 형 루키우스가 집정관이 되고 참모로 참여(실제 지휘권 부여)
해로(아시아) 아이톨리아인 영역
- 휴전(6개월)
- 시리아 함대(100척 - 한니발 지휘)해전 승리 후 한차례 더 교전 승리 → 제해권 확보
비티니아 왕 - 시리아 전쟁 개입 외교로 해결
시리아의 강화제의
1. 로마 동맹도시 영유포기 군대철수
2. 로마 전쟁비용 절반 배상
로마 요구조건
1. 시리아왕은 로마동맹과 관계없이 에게해 전역, 소아시아 서해안 지방 모든 그리스계 도시 전면적 포기
2. 타우르스 산맥 서쪽 송아시아 전역에서 철군
3. 전쟁비용 전액 배상
로마의 위상(지중해 패권국가로 부상)
BC 202년 - 지중해 서부 강대국 카르타고 굴복
BC 197년 - 지중해 동부 강대국 마케도니아 굴복
BC 190년 - 지중해 동부 강대국 시리아 굴복
지중해 세계의 분쟁 조정국 로마
한니발 / 카르타고 →이탈리아 → 시리아 → 크레타 섬(지중해) →비티니아(흑해) /64세음독자살(BC183년)
↘ 에스파냐 ↗
파트로 네스(로마) ↔ 클리엔 테스(동맹국)
신의(군 병력 지원) 로마
착취(搾取) / 利用 (경제 식민지화) /일본
스키피오 아프리카 누스의 실각
스키피오 재판
- 공격(공로) → 질투 { 마루쿠스 카토 조정하는 호민관(2명)에 의해서 탄핵}
- 건강의 악화
- 시리아에서 500 탈렌트(전쟁 배상금)용처, 고발 → 출납부 원로원에서 찢어
- 스키피오 - 리테르노 별장은거
그라쿠스의 변호에 감사 "딸" 코르넬리아를 시집보냄
그라쿠스 - 코르넬리아
↑
티베리우스
가이우스 크라쿠스(3권에서)
스키피오 52세로 별세 : 가족묘지 매장 거부 / 배은 망덕한 조국이여! 그대는 내뼈를 갖지 못할 것이다.
카토의 탄핵 배경
코르넬리우스 가문(스키피오) ↔발레리우스 가문(플라쿠스)
카토(논객 : 1. 유력자 실랄하게 비판, 2.유머)후원 → 정계진출
그리스 문화에 대한 생각 차이
스키피오(愛護) : 카토(嫌惡) /문화유입 거부
↓ ↓
인재 제일주의 강성로마 건설에 유해
1.그리스 문화 숭배
2.영웅주의(개인)
3.발레리우스 가문 - 온건 제국주의 반대(실패시 로마 치뤄야 할 희생 크다)
패배자에 대한 로마 대응방식 차이
칼리아 인, 에스파냐인 / 야만족 → 속주화(부족단위)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그리스, 시리아 / 선진 문명국 → 자치인정
마케도니아 멸망 / BC 179 ~ BC 167년
BC 179년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사망 / 왕위 계승한 맏아들 페르세오스
필리포스 왕 / 정실부인 : 2자 (디미트리 오스 - 로마에 인질/로마 동조자로 봄)
후실부인 : 첩 자식 - 페르세오스(디미트리오스가 로마 첩자라고 친부에게 고자질) → 독살시킴(조선시대 소현세자의 죽음과 유사)
마케도니아 ( 군사력 증강)
페르가몬 왕국 → 창끝겨뤄(로마에 지원 요청)
로마의 개입 - 전쟁의지 낮아
BC 168년 그리스 문제 조속해결 인식 - 원로원
피드나 전투
- 마케도니아 병사 손실 커
4만 4천명 투입 - 전사 2만 5천명
포로 : 16,000명
- 로마 전사자 - 100명 내
페르 세오스 -→ 사모 트라키 섬에서 포로
이탈리아 소도시 알바에서 여생(가족포함)
※ 알바 : 누 미디아의 왕 시팍스가 귀양 살았던 곳
마케도니아 의 4분할
- 자치 인정
- 자위력 허용
- 조세(왕→ 로마) 1/2로마
- 광산수익 - 1/2로마
- 그리스에서 로마 - 가도건설도 하지 않음
카르타고의 멸망(BC149 ~BC146년)
- 2차 포에니 전쟁 후 카르타고, 2류국가로 전락 / 해외영토 잃어버리고, 본국의 농장경영 기반
광산 쇠락
누미디아의 변모(유목→농경)
세력팽창
카르타고 용병모집 : 로마 카토의 실사(누미디아 침략 호소)
용병 6만의 누미디아 영토 침략
로마 강경파(카토) / 카르타고 파병 4개군단 편성
카르타고 강화제의 / 무장해제 → 그리스에서 선왕 페르세오스의 서자 자칭 필리포스란 인물이 반로마 감정의 중심 되면서 상황변화
로마의 최후 통첩 : 시민이주, 전쟁
카르타고 : 옥쇄(玉碎) / 로마 포로군을 성벽 위에서 한명씩 살해
카르타고 함락(5만)
스키피오 아이밀리우스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손자
☞ 繁盛한 자는 반드시 衰退한다(마케도니아를 보면서)
트로이 총사령관 헥토르의 말 : 언젠가는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아이 밀리우스)
카르타고 함락 후 : 저주받은 땅에 소금을 뿌려 모든 생물이 살 수없는 황무지로 만들었다. 그 후 100년이 지난 뒤 사람 다시 살아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누미디아(알제리)의 세력팽창이 제어가 안됨.
로마의 멸망을 바랬던 한니발은 로마가 대 제국으로 발 돗음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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