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강의

도올 김용옥 서양철학사 50강

해암 송구호 2022. 1. 7. 17:02

THESE :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 고백의 철학

 

초기 기독교가 정착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론적으로 가장 큰 성과를 낸 위대한 사상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이다. 이 사람은 기독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초기 교부들, 제롬, 암브로시우스가 막 활약할 시기인 354년 11월 13일에 태어나 430년에 죽었다. 북아프리카 지역을 가보면 유럽보다 더 화려할 정도로 문명이 대단하다. 김우중 회장과 돌아다닐 적에 리비아를 가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는데 로마의 신전, 회당, 바실리아(basilica) 규모가 대단한데 이탈리아나 북아프리카가 당시엔 하나의 제국이었다. 아우구스투스가 태어난 곳 히포( bishop of hippo)는 지금 알제리에 해당한다. 까뮤도 알제리 출신이고,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jacques Derrida)도 알제리 사람이다. 알제리라는 나라가 가볍게 볼 곳이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내려오는데, 근세 화가 피카소가 아프리카 조각들과 예술을 보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그러는데  아프리카 흑인들의 토속적인 문화라는 게 모르긴 해도 당시 아프리카 북부는 하나의 대륙(continent)이었는데 뭔가 보이지 않는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고대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조각들을 보면은 심벌리즘(symbolism)과 모든 게 정말 대단하다. 문짝 하나에 조각해 놓은 걸 보더라도 상상력과 문양을 보면 아주 원초적인 것과 아주 고등한 형식이 짬뽕되어 있는 걸 보면은 아프리카가 단순히 20 세기 와서 미국의 재즈를 탄생시킨 것 외에도 고대 이집트로부터 내려오는 그 모든 것과 총체적인 흐름에 대하여 아프리카 문화를 다시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인물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훌륭한 점이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고백(confession)이란 형식을 통해서 최초로 신학이라고 하지만 신학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아주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표현했기 때문에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이라는 것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당시 기독교 신학이 형성되어가는 분위기를 우리가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신국론(city of god)이라는 게 신의 도성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라는 게 신의 도성과 세속의 도성으로 공존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악의 세계와 선의 셰계가 공존하는 것이다. 신국이라는 게 우리가 사는 세속에서 선하게 사는 사람들의 도성을 말한다. 이 사람에게는 결국 교회가 신국이다. 에클레지아(ecclesia)라는 게 그러한 사람들의 회중(會衆)이 모인 곳이다. 유대인에게 예배당(synagogue)이라는 개념은 시너고그(synagogue) 다. 그 후 바울 때 교회(ecclesia)라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바리새인들에게 율법 운동의 센터로 시너고그가 있다가, 교회라는 개념이 에클레지아로 바뀌는데 교회 자체가 하나의 신의 몸이다. 에클레지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그의 지체(肢體)라. 모든 인간들은 교회라는 하나의 몸에 구성 요소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은 죄(罪)라고 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죄라는 개념은 집단적 개념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 하나님이 진노를 일으켰다. 상당히 민족적인 개념이고 민족 종교였다. 민족 전체가 선택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우그스티누스에 와서는 시너고그(synagogue)라는 단체의 개념이 개인의 개념으로 갔다. 죄를 짓는 것은 개인이 짓는 거지. 개인이 죄를 지으면 교회 명단에서 빠지게 된다. 교회에서도 집단의 개념이 개인의 개념으로 가게 된다. 여기에 아우구스투스의 독특한 철학이 있다. 교회라는 개념은 하나님과 인간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교회 자체가 세속에 있는 하나님 이니까, 신과 인간의 영혼을 매개하는 곳이 교회다. 이 개념에서 교회라는 집단적 성격을 강조하는 게 가톨릭이고, 개인의 죄나 구원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라는 걸 강조하는 게 종교개혁 이후에 철저한 개신교의 입장이 되었다. 그 양면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이라든가 교회론이 있는 것이다.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입장도 있고, 인간의 죄는 개인의 문제라는 사상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에는 어떠한 일관된 이론이나 체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고백(confession)하듯 이말 저말 하다 보니 신국론에서도 횡설수설하고 종잡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명저가 된 것이다. 횡설수설해야 명저가 된다. 일관되게 이론을 쓰면 사람들이 안 읽는다. 참회록에 유명한 게 예를 들면 루소, 톨스토이가 있지만 아직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을 읽는 게 더 났다고 러셀은 말한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 성격은 몸집도 크고, 인간적으로 열정적인 사람이다. 엄청나게 패션(passion)이 있는 사람이다. 열정이 있다는 이야기는 성욕이 왕성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모든 인간의 이야기를 놓고 볼 때, 동서양 철학을 막론하고 결국은 죄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볼 때 결국은 성과 관련돼 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죄 짓는 다는 게 남의 물건 훔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죄의식을 느끼는 동기라고 하면 마누라 두고 딴 여자하고 관계(關係) 맺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죄를 짓는다는 개념이 성이 규율의 대상이 아니고, 질서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실 원죄라는 개념이 필요 없다. 원죄도 선악과 따먹었다는 게 뭔가 그런거와 관련지은 것 아닌가? 기독교는 성을 너무 과대하게 포장해서 인류를 괴롭힌 종교라는 것이다. 모든 철학이라는 것이 사실은 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사람의 컨페션(confession)을 보면은 이 사람은 성욕이 엄청 왕성한 사람인 것 같다. 약혼녀와 사이에 다른 여성과 관계를 하고, 후회한다. 사도바울도 엄청 정욕이 들끓었던 듯 "재림을 기다리며 순결하게 사는 게 났지 않냐, 그래야 하나님 보기 더 떳떳한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서양적 인간관에는 기독교 사상이 깔려있고 기독교 인간관에는 인간은 구원되어야 할 존재라는 기저엔 원죄가 존재한다. 인간을 바라볼 때 이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이론적으로 정당화시켜준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죄를 짓게 되고, 그 결과로 죽음을 초래하게 되고, 우리는 아담의 원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것은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 이게 공식화돼있다. 

 펠라기우스(Pelagius) : 아리우스의 논쟁도 예수가 꼭 하나님의 아들일 필요가 없다. 인간이다. 그런 아리안이즘이라는 게 사실 기독교에 상식적인 걸 대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시대에 이 사람을 괴롭힌 게 마니케즘이란 게 있고 이 시대에 같이 활동했던 인물로 펠라기우스(Pelagius / 354~440)라는 사람이 있다. 펠라기우스는 영국에 비숍(bishop)이었다. 펠라기우스의 이론은 원죄는 인성을 더럽히지 않는다. 아담이 선악과 따먹은 것과 우리하고 뭔 상관이냐? 인간의 현세적 의지는 신의 도움 없이 선악을 구분하고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에 의하여 태어난 그대로 죄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이런 건강한 이론들이 있었다. 신의 은총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러한 자립적인 인간에게 도움이 될 뿐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게 좋은 이론이다. 

 

그리스도교 성경의 원전을 만든 제롬 :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펠라기우스를 공격하게 된다. 제롬 같은 경우 구약성서를 번역하고 신약성서를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제롬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햄까지 다니면서 수도생활을 했는데 로마의 귀부인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했다. 싯달다 가는 길에 금을 깔듯이 제롬이란 사람도 그랬다. 여자들이 제롬을 모시고 예루살렘까지 가고 뒷바라지를 해주었는데, 유명한 과부 파울라하고 그녀의 딸 유스토키움이 긴 여행에 동행했다. 제롬은 과부에게 존경을 받았던 걸 보면 성관계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금욕 생활을 했던 제롬은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제롬이란 성인이 귀부인과 귀족의 아가씨를 대하는 태도에서 속물 근성을 엿보지 않을 수 없다. 제롬은 파울라가 죽자 베들레헴에 매장했는데 그 무덤의 묘비명에 "이 무덤에 스키피오의 한 자녀가 누웠으니 유명한 파울리우스 가문의 딸, 그라쿠스 가문 걸출한 아가멤론 혈통의 자손이라. 양친과 유스토 키움의 사랑을 받은 숙녀 파울라가 여기 잠들다. 그녀는 로마 최고의 귀부인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려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베들레헴을 선택했도다." 묘비의 글이 별 문제없는 것 같지만 너무 야하다. 무슨 얘기냐 하면 그의 딸 유스토 키움이 수도원으로 들어갈 때 그녀의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당신의 딸이 군인의 아내가 아니라, 왕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기로 작정하니 노여우십니까?  따님은 당신에게 고귀한 특권을 부여해준 셈이죠. 당신은 이제 하나님의 장모가 되신 겁니다. 

 제롬은 편지에서 유스토키움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엄격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 그리스도교 성경의 원본을 만든 제롬에 편지 내용을 보자면 유스토키움에게 언제나 내 방을 은밀하게 지키도록 해라. 언제나 그리스도인 신랑이 방 안에서 너와 함께 할 수 있게 해라. 기도를 드리느냐? 너는 신랑께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느냐? 신랑께서 네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네가 잠이든 사이에 문틈으로 손을 밀어 넣으면 너는 마음이 셀레 벌떡 일어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나이다. 그때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울타리 처진 동산이요. 막힌 샘이요. 봉해둔 분수로다. 정말 어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성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이런 게 "비사감과 러브레터" 수준에 농을 하고 있다.

 인류역사에서 소위 말해서 제롬으로부터 수도원 제도가 확립되고 역사에서 육체적 순결(celabicy)문제가 인류사에서 종교의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론 독신이란 개념이 수녀고, 정녀고 다 깨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교가 대단한 것이다. 목사들은 평상복을 입고 생활한다. 근데 평상복 입고 다니면서 대접받을 스님이 몇 명이나 되나?  스님들은 머리 깎고 승복 입으니까 스님 대접을 받는다. 종교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데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론에서 말한 것을 보면 어릴 때 옆집 배나무에서 배를 하나 훔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로 보면 그냥 해학으로 넘길 수 있는 건데 그것을 컨페션(confession)이라는 책에서 보면 어마어마하게 반복적으로 썰을 푼다. 예를들면 그의 행동은 말할 수 없이 악한 짓이었다고 말한다. "제 마음을 보소서. 오 하나님 주님께서 나락에 떨어진 제 마음을 궁휼히 여겨 주소서. 이제 보살펴 주소서. 제가 악행을 저지를 유혹이 없었는데도 악행을 저질렀으니 까닭 없이 사악한 짓을 하며 무엇을 구하려 했는지를 제 마음을 주님께 아뢰게 하소서. 그 행동은 사악한 짓이었고, 저는 그런 짓을 갈망했나이다. 저는 소멸을 갈구했으며, 제가 갈구했던 과오 자체를 즐겼나이다. 사악한 영혼은 하늘에서 떨어져 주님의 면전에서 추방되나이다. 수치스러워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고, 죄스러운 마음뿐이옵니다." 이런 얘기를 7장에 거쳐서 계속 이야기하는데, 결국 종교의 천재라고 하는 것은 뭔가 비정상적으로 죄의식을 느끼는 특별한 성격의 사나이들, 비정상적으로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서양사람들은 이러러한 문제를 가지고 집단 체면을 시킨다.

 기독교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지상의 삶이 헛된 것처럼 보일 때 종교적 소망을 간직하도록 이끌어주는 게 기독교다. 그리고 불굴의 용기를 심어주고, 우리가 객관적으로 서양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서양철학사에 깔려있는 것에는 죄라는 게 있다. 이게 터무니없는 것이다. 인간의 성욕이 무슨 죄인가? 잘 해결하면 되는 거고, 이런 것들이 과도하게 성의 문제라든가, 그런 것을 통해 인간에게 죄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게 원죄의식을 갖도록 하는게 금욕주의 때문이다. 결국 금욕이라고 하는 것은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니까. 그게 안 해도 편안한 상태를 갖는 인격을 기르면 되지, SEX & SIN이라는 개념을 동양철학은 근원적으로 해체시켰다. 성과 죄는 관계가 없다. 죄의식이 사라지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지금 세상에서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사느냐 하는 긍정적 고민이 아닌 성문제로 점점 흘러 들어가면서 중세기에 신학이 성립되는데 그것은 가혹했다. 이러한 것은 비정상적으로 죄의식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위대한 종교가가 된다. 이것은 문제다. 예를들면 "그는 16세에 카르타고에 간 경험을 이렇게 서술한다. 주위는 온통 가마솥 속에 있는 듯 무법천지의 사람들로 들끓었습니다. 사랑을 모르나 사랑을 갈망하던 나는 뿌리 깊은 사랑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혐오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사모하는 사람을 찾으며 안전한 길에는 반감을 품었습니다." 하여튼 어쩌고 저쩌고 해 가지고 여러 여자와 깊은 관계를 갖다가 신부가 되면서 관계를 끊었고 여자들은 중간에 붕 뜨게 되었다. 

 이사람이 초기엔 마니교를 신봉했는데 마니교의 특징은 악을 실체화한다는 점이다. 신도 악신이 있고, 선신이 있다. 천사와 악마가 있고, 악이란 현존하는 없어지지 않는 절대적 존재라고 봤다. 아우그스티누스 철학의 전반에 이 사람이 마니케즘을 비판하는 것은 마니케즘에서 말하는 천문학적 지식이 비과학적이라며  마니케즘을 떠난다고 러셀이 말한다. 일식, 월식이 마니케즘에서 말하는 것과 과학적 사실이 달랐다. 결국 마니케즘 지도자들을 무시하다 멀어지고 마니교를 떠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선악의 문제를 다뤘다. 죄의문제 악의 문제에 매달렸던 사람인데 악이라는 실체를 마니케즘과 결별하면서 "악이라는 건 실체가 아니다." 이게 아우구스투스의 획기적인 이론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선하게 만들었을 뿐이고 악이라는 것은 단지 선함의 결여태일 뿐이다. 그것은 인간이 잘못한다든지 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악이란 선의 결여 태지 악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이 사람의 유명한 학설이다. 이 사람은 로마에서 밀라노로 파견되었을 때 거기서 암브로시우스를 만나 그에게 감동을 받고 마니교보다 가톨릭 교리가 더 강해진다. 그리고 거기서 세례를 받게 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를 기독교로 이끌게 되는 것도 요한복음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말씀은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있었느니라.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셨으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았으리라.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생명이며 생명은 인간의 빛이니 어둠을 비추지만 어둠은 깨닫지 못하니라."

 재미난 게 뭐냐면 이사람이 성서를 인용하는데 이 사람이 인용했던 성서와 현재 우리가 보는 성서는 다르다. 이 버전이 우리에게 없다. 무슨 얘기냐 하면은 결국은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플라톤 철학을 자기는 극복했다는 고백이다. 플라톤 철학에서 로고스 이론이라든가 이데아 이론의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이라는 게 인간의 구원론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빛과 어둠의 이론으로 해서 빛이 우리에게 내려오고 우리를 다시 끌고 올라간다는 네오플라토니즘 이론이 담긴 요한복음을 보고서 플라톤 이론이 구원론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역시 기독교가 플라톤보다 더 위대하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형이상학적인 로고스 학설은 머리에 있었는데 육화교리(incarnation)와 그것에 당연히 뒤따르는 구원을 희랍철학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러셀은 그리스 교리와 다르지 않은 그런 구원론이 오르페우스라든가 다른 신비 종교에 얼마든지 있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2 원론을 받아들인 마니교도와 반대로 악이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탈선에서 비롯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성바울로에서 특별한 위안을 얻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길고도 긴 열정 속에서 개종했다. 그는 교수직, 애인, 신부를 차례로 포기하고 짧은기간 은거하며 명상을 한 후 성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가 누구보다 기뻐했지만 아들이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388년 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남은 여생을 주교 직무 수행과 여러 이단 즉 도나 투스파, 마니교, 펠라기우스 주의에 맞서 논쟁하는 글쓰기에 전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