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E : 초기 기독교의 형성과정 / 영지주의(Gnosticism)
역사의 왜곡과 종교의 왜곡 : 서양철학의 다양한 문헌을 참고해서 강의를 하려고 했으나 여건이 허락지 않아 내가 자랄 때 서양철학사로 정평이 나있던 "러셀"을 중심으로 강의를 할 수밖에 없다. 원전을 볼 시간이 부족하다. 만약 조금 시간이 된다면 다양한 원전들을 분석해서 조금 더 충실하게 강의를 하도록 하겠다. 지난 시간 네오플라톤니즘에 대한 강의를 했고 기독교 세계로 넘어가기 전 유대교의 상황들 유대교 상황이라는 게 유구한 전통의 종교로 보는데 예를 들면 일본의 경우 "일본서기(日本書紀))"가 680년부터 720년 사이에 작성됐다. 한자문화권에선 편벽(偏僻)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방대한 역사서가 기록된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쓰여진 것이 AD1145년이다. 우리보다 400년이 앞선 것이다.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하면서 백제의 귀족계급들이 대거 일본으로 갔다. 일본은 종주국 백제가 멸망하자, 독자적인 역사 확립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백제의 지식인들이 자기들이 갖고 있던 역사서를 참조해서 마치 일본에서 꾸준히 역사가 진행돼 온 것처럼 기록했는데 사실 고조선 시대부터 기(旣) 상호 간에 교섭(交涉)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백제의 역사를 일본 역사로 쓴 것이다.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현지의 자료와 백제의 자료를 포괄해서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본적으로 구약이 만들어지는 것도 일본의 사례와 비슷하다. 바빌론 유치를 통해서 유대지방의 역사가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도한 율법주의가 생겨나고, 자기들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기 위해서 기존의 모든 구전 자료들을 모아 기술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대종교(大倧敎)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일본에 의해 식민지가 되자 나라가 망했다는 생각을 갖게 돼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만든 종교에서 환단고기(桓檀古記)를 기술(記述)하는 과정이 이와 비슷하다. 그 내용의 진실성, 역사성을 따지며 "위선 아니냐"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날조할 사항은 아니다. 날조 여부에 대한 사실을 떠나서 옛부터 고대사를 인식했던 방식, 그것을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내용을 통해서 가늠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구약, 일본서기 및 환단고기가 비슷한 역사적 환경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유대경 전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또다시 로마에 의해서 점령당하고 나라를 잃어버린 식민지 상태에서 지금의 기독교가 나온 것이다. 기독교라는 것은 원래 예수(jesus)가 누구였든지 간에 역사적 인물로 있었을 것이다. 한, 두 명이 아닌 집단적인 이름이란 설도 있고 예수라는 게 있는데, 기독교도 정상적인 상태에서 태어난 게 아니다. 우리가 일제시대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처럼 기독교가 번창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는 일제시대를 통해서 대종교 보다 훨씬 조직적인 양태를 보였다. 서양 선교사들이 일제 침략에 어느 정도 대항해 가면서 한편으론 자기 종교를 보호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 오늘날 기독교가 확 퍼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로마 식민지가 되면서 자기들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어떠한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는 분명히 바리세 계통의 사람으로서 바리세주의를 개혁하고 나오는 사람이다. 원래 기독교는 유대교의 개혁을 목표로 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에게 설교를 한 것이다. 성 야고보나, 성 베드로나 유대교를 개혁하는 수준에서 머물기 바랐던 것이다.
바울의 초대교회 : 그런데 여기에 가장 결정적인 게 뭐냐하면 오늘날 기독교를 만든 사람은 열두 제자가 아니라 바울(paul)이다. 바울이 초대 교회 조직을 만들었다. 바울은 스스로가 이방인의 사도라고 자처했고 이방인들을 포용하기 위해서 가장 핵심이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너무 이론적으로 돼 있는데, 구원, 천당은 전 세계 민속종교에 다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기독교에 대한 핵심이 어디에 있느냐 이다. 바울 주장의 가장 큰 핵심은 할례(割禮)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면 할례를 피해야 하니까, 현대에도 과거엔 필요성을 논의한 적도 있었지만 요즘엔 좋은 게 아니라고 해서 하지 않는다. 할례는 유대 광야에서 돌도끼 같은 걸로 하는데 할례석이라고 따로 있다. 교회를 들어오려면 할례를 해라 그러니까, 이방인들이 반발하고 떠나니, 로마서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할례를 부정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모세율법의 준수를 거부하는 것이다. 모세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음식에 관한 내용이다. 모든 음식에 대한 게 들어있는데 이를테면 발톱이 갈라진 동물을 먹지 말라, 도살할 때 피를 어떻게 해야 한다든가 등 복잡한 게 말할 수 없다. 그런것도 율법이라고 해서 지켜야 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것을 바빌론 유수 때 보수파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이다. 유대인들이 바빌론에서 자기들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잘못된 규정들이다. 이게 옛날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는 걸 바울은 알았다. 바울이 항상 말하는 게 벤자민 지파의 당당한 후손이다. 율법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하는 거지만 이건 가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거부한 것이다. 원래 바울이 교회를 만들었을 때 유대인 중 개종한 사람들, 신흥 종교를 추종하는 이방인들로 구성됐다. 무너져 가는 로마 시대에 기독교의 매력이 있었는데 할례나 음식을 취하는 게 까다로워서 과감하게 이것을 거부하고, 유대교에 매력적인 요소는 바울이 계승을 했다.
유대교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가 별로 없다. 나 이외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배타(排他)가 있고 그것을 위해 모세 율법을 잘 지키라는 게 전부다. 인간이 구원돼야할 존재라는 게 유대교엔 없다. 그런데 사도바울이라는 사람은 인간은 구원되어야 할 존재라고 하는 원죄론을 갖고 나오고 예수의 십자가의 의미를 인간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너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라!" 이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궁극적인 이유다. 이게 뭐냐 하면 완전한 헬레닉 필러 소피다. 이게 헬라 철학이고 플라톤 철학이다. 우리가 쭉 이야기해온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론을 가지고 둔갑시킨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별게 아니다. 그렇게 해서 영육의 이원론이 부할 하는 거고 그러면서 기독교는 완전히 변질되는 것이다.
유대교는 만신을 모시는 수준 : 철학적이 되면서 헬레 나이즈(Hellenize)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겐 하나님의 개념이 없다. 유대교엔 추상적 개념의 God이 없다. 그 대신 자신들의 민족적 수호자인 야훼(Yah - Weh)가 있다. 야훼 신을 유일신으로 받드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개념이 아니다. 유대교는 그 자체가 성황당 종교다. 만신을 모셔놓고 제사 지내는 꼴이다. 반면 기독교는 야훼라는 신은 없는 것이다. 야훼를 받드는 게 아니니까, 야훼와 율법주의가 결속되는 것이니까. 사실은 추상적인 하나님을 이야기한다면은 초기 기독교 이론에 가면 그노티시즘(gnosticism)이 성행했다. 영지(靈智) 주의자들로 그리스, 로마를 중심으로 기독교를 극복하려던 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상의 한 경향이다. 바울은 이들을 계속해서 비난했다. 영지주의자들을 조심하라는 등 계속해서 그노시즘을 비판했다. 초기 기독교 때만 해도 벌써 야훼가 아니라 인간은 영적 인식(gnosis)을 갖고 있다고 믿었고 이런 인식 속에서 지고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다.
천지를 창조한 신 얄다바오트(Ialdabaoth)가 있다. 이게 야훼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감각계를 창조한 존재가 소피아의 반항아이자 얄다바오트라는 열등한 신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고의 신이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내려보내 인간 예수의 몸에 잠시 머물도록 해서 모세의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켰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신화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노시스파의 가장 중요한 이론 중 하나가 예수는 평범한 인간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세례를 받음으로 성자가 그에게 강림했고 수난 시기에는 성자가 예수를 떠났다. 그는 인간일 뿐이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외치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것이 그노시스파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이 가능한 일이냐? 그래서 그노티시즘(gnosticism)과 도세티시즘(docetism)이 결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도세티시즘은 다른 말로 가현설(假現說)이라고 하는데 지상의 예수는 하늘의 영적 실제자의 환영이라는 설이다. 따라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환영(幻影)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노시스 파는 인간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흐름이 기본적으로 마호메트로 간 것이다. 따라서 아랍에서는 예수를 하나의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다. 사실은 이게 그노시티즘의 흐름이다. 초기 기독교의 형성 과정은 복잡하다.
삼위일체론 : 성부, 성자, 성신이라는 삼위일체설이 자꾸 거론되느냐 하면 결국은 예수의 신화(myth)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예수가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혔다 부활했다는 이상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유대교 때만 해도 이러한 게 없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라는 공관복음(共觀福音)서는 소박한 유대인의 예수 이야기인데 삼위일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은 요한복음 때문이다. 초기 교부들은 공관복음은 쳐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전부 요한복음을 가지고 인용해서 썼다. 요한복음이 인기가 좋은 이유는 예수를 추상적인 존재(Logos)로 어둠의 세계에 빛으로 내려왔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희랍철학과 네오플라토니즘의 이원론이 요한복음으로 내려왔다. 예수를 말씀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설정은 스토이 학파에서 나온 것으로 "우주에 원리가 있다"라고 한 데서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초기 교부에선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볼 수 없다는 게 하나의 상식적인 이론이었다. 성부와 성자가 같을 수 없다. 성부는 성부고 성자는 인간 예수, 성자가 잠시 인간의 몸을 빌어 이 땅에 내려왔다고 해도 인간으로 죽었으면 인간인 것이지 어떻게 신이라고 말할 수 있냐? 하여튼 성부와 성자를 분리시켜 예수를 인간화시키는 철학이 초기 기독교에선 기본이었다.
그러다 훗날 "신과 인간이 둘이면서 하나다"라는 니케아 종교회에서 삼위일체론이 정통파 이론이 된 것이다. 성자를 완벽한 인간으로 보면 큰일 나는 거고 그렇다고 또 완벽한 성부로 보는 것도 안 되는 것인데 전자를 사벨리 안 이즘(sabellianism), 후자를 아리안 이즘(arianism)이라고 한다. 성부와 성자는 위(位)는 다르지만 둘은 하나다라고 하는 애매한 이론을 가지고 니케아 의회에서 콘스탄티누스가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타나시우 스파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초기에 이런 복잡한 이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붕괴되면서 유대인들이 다시 흩어지게 된다.
디아스포라(diaspora)와 예수 : 바빌론 유치 시대와 똑같이 디아스포라(diaspora)가 이뤄지면서 어떠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예수처럼 편하고, 매력적인 게 없었던 것이다. 이미 신화는 만들어져 있고, 초기엔 유대교의 개혁운동으로 시작된 것인데 바울에 의해서 반유대교적인 보편 종교로 변질돼 간 것이다. 율법주의를 비판하고, 할례를 거부하면서 희랍 세계에 전반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옛날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주변으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고, 기독교가 제일 번창한 곳이 나일 강 하류 지역이기 때문에 거기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교리가 형성돼 간 것이다. 기독교라는 것이 복잡한데 로마의 쇠망사를 쓴 기번이라는 사람이 기독교가 성장하게 된 다섯 가지 요인을 밝혔다. 첫 번째는 유대교로부터 유래는 했으나 유대교가 갖고 있던 편협하고 비사회적인 것들을 다 정화한, 일단은 비포 용적인 것은 다 바꿨지만 그 기독교 자체는 또다시 비타협적이고, 비관용적인 엄격성을 유지한 게 그리스도교의 성장 요인이다. 두 번째는 새로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개조된 내세관을 제시한 것이 기독교가 성장하게 된 이유다. 세 번째는 초기 기독교의 특징인 기적의 영향력이다. 초기 기독교 유적을 다녀보면은 기적을 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모든 종교들은 기적, 병 치료하고 뭐 이런 것들이 영향을 미쳤다. 네 번째는 초기 기독교는 기독교인들이 순수하고 엄격한 도덕성을 갖고 있었다. 나중에 우리가 말하는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과 달리 수도원에 수도사들의 엄격성이 있었다. 다섯 번째는 로마의 심장부에서 시작하여 점차 강한 독립국가로 형성되어간 그리스도교 사회의 통합과 규율성이 다른 조직보다 뛰어났다.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기독교 탄생과정의 비화 : 초기 기독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한 논쟁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고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과정에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고 콘스탄티누스 이후에는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율리아누스는 기독교가 로마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모든 종교를 균등하게 대접하자는 주장을 편다. 이 사상은 본래 로마의 종교적 이념과 부합된다. 판테온이 바로 종교적 다양성을 수용한 곳이다. 그러나 그에게 배교자(背敎者)라고 불리였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일방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이 시기엔 모든 종교가 편하게 관용이 되었었는데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가톨릭을 전적으로 지지함으로써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가톨릭교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 암브로스, 성 시에 니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노티시즘(靈智主義)으로부터 아리안 이즘을 통해서 내려오는 소박한 인간주의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을 전부 탄압하면서 우리가 말하는 가톨릭 정통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러면서 아주 편협한 형태의 종교가 된 것이다. 서구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 기독교 정통주의와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역사가 진행돼 왔고, 결정적인 해방을 맞게 되는 것은 근세에 와서 과학의 발전이 이뤄지면서 였다. 그 외로는 그것을 벗어날 수 없었고 과학이라는 합리주의에 의해서 벗어났는데 가톨릭이 이론을 만든 게 삼위일체론에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과학이 합리적이고 보다 현실적인 다양한 사상이 등장해서 인간을 해방시켰다고 해도 항상 배면(背面)에 이런 유치한 니케아 종교적인 요소들이 항상 부활한다. 미국에 아무리 훌륭한 민주주의가 정착을 해도 기독교가 있는 한 트럼프 같은 인물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게 똑같은 원리라고 본다. 과학의 합리주의 가지고는 기독교의 정통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동양에서는 맹자로부터 근원적으로 정통교리가 없기 때문에 항상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인성의 깊이만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가 사람이냐? 신이냐 하는 무가치한 논의로 시작해서 삼위일체론이 서구 문명의 주류로 오늘날까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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