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양팔저울이 평형을 이루지 않았을 때

해암 송구호 2019. 5. 5. 16:54




  저울은 물건의 무게를 계량하는 데 쓰이는 도구다. 요즘은 디지털 저울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과거엔 막대 저울이 무게를 달 때 흔하게 쓰였다. 계측할 물건을 쇠고리에 매달고 저울에 추를 매달아 평형을 이루는 점에서 값을 확인하면 된다. 중량이 무거울 땐 값이 큰 추로, 가벼운 물건은 값이 작은 추를 나무 저울대에 끼워서 측정했다. 

 이와 비슷한 원리지만 모양이 다른 양팔 저울이 있다. 주로 가벼운 물건의 무게를 계량할 때 사용한다. 방법은 비슷하다. 접시가 양쪽에 있고 추가 무게 별로 있는 데 한쪽에 계량할 물건을 올려 놓고 평형이 될 때까지 추를 올려 놓으면서 양쪽 접시가 평형을 이룰 때 값이 물건의 무게가 된다.

 오늘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는 것은 바로 "부부간 균형감각"이기 때문에 앞서 저울을 들먹였다. 절에서 밥을 얻어먹을 때 눈치가 있으면 고기반찬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일꾼은 주인에게 칭찬을 듣지만 어떤 일꾼은 주인에게 핀잔만 듣는다. 주인의 뜻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이를 흔히 일머리를 알고 모르고에 대한 차이라고 말한다. 

 부부간의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말이 있듯 서로 합이 맞아야 사는 데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상대 배우자를 힐책(詰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왜냐하면 부부는 양팔 저울과 같아서 한쪽이 기울면 반대쪽에 무언가를 올려 놓아 균형을 맞춰가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올라가는 것으로 칭찬이 가장 좋겠지만 배려도 괞잖다. 그러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난이나 비웃음 또는 냉대와 냉소 등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부부간에 신뢰를 점점 무너트리는 작용을 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요소들이 쌓여가게 되면 상대방의  단점을 캐내려 하고 상대방의 장점은 폄하(貶下)해서 기를 꺾는 데 혈안이 된다. 결국 한 공간 안에서조차 배우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살게 되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일을 할 때도 철저하고 친구를 만나도 항상 그 모임을 주도해 가는 편이라서 친구지만 그의 의견에 군말 없이 따르곤 했다. 여성 편력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정을 등한시 한 적은 없었다. 자녀를 늦은 나이에 낳아기르면서 아이들을 엄청 귀여워했다. 

 그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등산을 통해 풀려고 했다. 가정 일은 아내에게 전적으로 일임했고 아내 또한 군말 없이 감당했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것같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감당키 어려운 농사를 도맏으면서 아내와 함께할 시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또 아들에게 쏟아부은 정성에 비해 대학 진학은 기대에 못 미쳤고 시누이와 시어머니는 대놓고 변변치 못한 대학에 들어갔다면서 흉을 보는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남편이 여자들과 문자를 주고받은 내용을 보니, 자신의 생일은 지나친 사람이 여자 동창의 생일도 챙겨주고 손편지까지 써보낸 것을 본 후, 저간(這間)에 남편의 시간들을 되짚어보게 된 듯하다. 

 어떤 상황이 서로 연관성이 없지만 그것들을 꿰맞추어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증상을 심리학에선 편집증(偏執症)이라고 한다. 부인은 개인의 주관적 사고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없던 사실이 마치 있었던 것처럼 예단(豫斷)하고 남편을 몰아세웠다. 아내가 갑자기 돌변한 것이 무섭고 두려웠던 친구는 무릎까지 꿇고 빌었단다. 

 그리고 아내가 의심하는 부분을 잠재우기 위해 재산도 아내 앞으로 돌려놓았는데 지금도 남편이 어떤 여자와 자기 몰래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사건건 남편이 하는 말을 곡해(曲解)하며 억지를 부린다고 한다. 마누라 없이 나 홀로 인생을 즐기던 이 친구는 지금 생지옥에 떨어져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억지로 살고 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수긍하지 않고 또 남들 앞에선 전혀 티를 내지 않아 겉으론 두 사람이 불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심지어 자녀들 조차도 눈치채지 못했다. 남편을 피 말려 죽이려는 고단수의 농간인지, 아니면 의부증인지 아직 모른다. 다만 아내는 병원에 함께 가자고 하면 자신이 왜 가야 하냐며 화를 내서 제대로 말도 꺼낼 수 없다고 한다. 

 요즘 이 친구는 외부와 전화를 단절하고 산다. 아내가 전화기를 수시로 들여다보고 누구와 무슨 일을 했냐고  꼬치꼬치 따져 묻는 모양이다. 게다가 퇴근길에 곧장 집에 들어가야 한다. 조금 늦게 들어가면 난리를 치는 모양이다. 직장에 쫓아가 패악(悖惡) 질하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 친구는 아내가 평소에 정상적이다 급작스럽게 돌변해서 여자랑 어쨌냐고 추달(推撻) 할 때마다 꼼짝 못하고 당해야 하는 게 미칠 지경이란다.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가정을 완전히 등한시한 채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가정에서나 아내에게 자기의 이상 행동이 드러나지 않으려고 더욱 가정에 헌신하는 경우다. 보편적으로 남자들은 두 여자를 놓고 동시에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의 촉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아내의 혀처럼 구는 이유는 순간 아내의 눈을 멀게해 자신의 외도를 숨기려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다. 

 지혜로운 여인은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려 가정에 닥쳐올 위기로부터 벗어난다. 반면 범민(凡民)은 끝까지 캐고 따져 남편의 외도 사실을 밝혀내고 가장을 벼랑끝으로 몰아세운다. 어리석은 여인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내고 상상으로 만든 허구를 기정사실(旣定事實)로 여기며 가정을 분란(紛亂) 속으로 끌어넣으려 한다.  

 가정이 온전할 수 있는 것은 양쪽의 균형이 중심에 위치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균형자(均衡者)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신뢰다. 믿음이 깨지면 의심증이 생기게 된다. 또  배우자의 장점을 바라보던 눈이 단점만 찾게 되고 곧추세우기 보다 깔아뭉개려 하다 보면 가정은 자정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점점 둘 사이는 멀어져 「님이, 남이」되는 것이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이 달에 몰려 있다. 

부부는 흉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이다. 범죄를 저지른 배우자를 숨겨주거나 그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해도 죄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의복처럼 한몸을 이룬 사이라도 헤어짐면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되는 것이 부부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 수 있으려면 서로 많은 부분을 양보하며 참고 견뎌야 가능한 일이다. 그 바탕엔 믿음이 자리해야 가능하다. 불신의 벽을 쌓으면 결국 남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