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머니, 어머니

해암 송구호 2019. 2. 26. 09:12

 


 요즘 한진가(韓進家)의 안방마님과 그 딸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사회에 큰 반향(反響)을 일으키고 있다. 처음 한진가의 일이 터진 것은 둘째 딸이 직장에서 막말과 함께 던진 물컵이다. 나비효과처럼 물컵 투척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물컵 투척 사건은 한진가의 비리를 지켜봤던 내부 고발자들의 폭로(暴露)로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공금횡령, 밀수, 갑질 등 수 많은 부정과 부조리가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그들이 저지른 다양한 범죄 중, 한진가의 여인들이 보여 준 사회약자들에 대한 갑질은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큰딸의 땅콩회항 사건 발생 때만해도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두고 국적항공의 지위를 박탈하자는 여론이 들끓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잠잠했었는데 둘째 딸의 물컵을 던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한진가의 비이성적인 행동들이 마치 기름을 부은 듯 과거의 망령까지 되살아 났다. 여론을 들끓게 한 것은 피해자들이나 내부 고발자의 투서와 신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폭행, 폭언이 일상이었던 듯, 피해자들마다 하나같이 이들의 행동을 녹취하거나 촬영해서 폭로하기 시작하면서 그릇된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됐다. 

 최근에 큰딸의 남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공개된 영상에도 고성과 함께 폭언, 폭행이 적나라(赤裸裸)하게 담겨있다. 남편 목은 손톱에 긁혀 있었고, 어린 아들은 고성에 공포감을 느낀 듯 자신의 귀를 막고 꼼짝하지 않고 서 있고, 엄마는 아들에게 주장질과 함께 영어로 잘못을 지적하는 모습이다. 

  그녀들의 여과되지 않은 폭력적 언행은 그 어미의 행태를 보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내부 고발자에 의해 드러난 동영상에서 그녀는 공사 현장 여직원, 운전기사, 가사도우미에게 일관되게 고성, 욕설과 폭행을 일삼았다. 그녀들의 폭언, 폭행은 궁극적(窮極的)으로 어미의 행동을 모방하고 학습해 온 결과였다.모전여전(母傳女傳)이다. 어려서부터 사회약자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고 배웠던 것이다. 야수(野獸)의 본능(本能)처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갑질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고, 자신들이 휘젓는 손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때는 야만인으로 불렸던 유럽인들이 오늘날 교양을 지닌 젠틀맨과 마담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엔 자기 희생(犧牲)을 통해, 타인(他人)을 이롭게 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금력이든, 권력이든 높은 신분에 걸맞는 정신적 의무를 질 때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전쟁이 나면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서 용감하게 싸우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자선을 베풀어 돕는 마음이 가진 자의 미덕이고 그런 행위를 통해 그들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이번 한진가의 사태는 금력으로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려다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만 꼴이다.

 요즘 학교에서 왕따나 폭력이 사회적 이슈(issue)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딸 아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아이가 몇 개월째 등교를 하지 않는데 최근 그 아이의 엄마가 학교를 찾아와 딸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고, 학교를 가려하지 않는다며 학폭을 열어달라고 한 모양이다.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어머니는 가해 학생 부모에게 정신과 치료비도 요구할 예정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 학생은 몇 개월 전 담임을 맡고 있는 딸에게 전화를 해, 자신이 학교에 나가지 않는 진짜 이유는 부모님의 불화 때문인데,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심하게 다퉈 심약해졌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단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초등학교까지 우등생이었고, 학생회장을 하는 등 학급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딸이 중학교에 입학한 후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하고, 급기야 죽고 싶다고 해서 고모 둘이서 24시간 아이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현재 교직에 몸담고 있어 딸을 돌볼 수 없는 처지다. 

 추론컨데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이미 정신적인 병이 싹튼 것으로 보여진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에게 의존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을 뿐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자아가 생기고 이성적 판단에 의한 고민이 내면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점점 커갔을 수 있다. 물론 학교에서 친구가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멘탈을 지닌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맞는 행동을 통해 그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익혀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아이의 부모는 부부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딸의 속 마음을 외면한 채, 학내 문제로 몰아부치는 것은 병원(病源)을 놔두고 다른 곳에서 치료의 방책을 구하는 격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자신의 행동은 모든 게 옳고 다른 사람의 행동은 그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든 자기 중심 속에서 해석하고 판단하며 재단하려 한다. 우주가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렇다보니 그 딸도 어미를 닮아 이치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어려서 어미를 통해 보고 배운 것을 옳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한진가의 문제에서 보듯,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을 통해 본태(本態)를 유지하려 한다. 씨도둑은 못말린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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