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 주일의 기적

해암 송구호 2018. 12. 27. 14:12


 


  하루살이는 24시간을 100년처럼 알고 살다 간다. 겨울이란 계절을 알 턱이 없다. 따듯한 태양이 언제나 비추는 줄 안다. 태어나던 날 비라도 오면 아마도 내 생은 온통 먹구름만 가득했다고 기억하게 될 지 모른다. 인간은 100년을 기대하며 살지만 대부분 80문턱을 바라보며 삶의 끝을 정리하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다. 인생이 초로(草露)와 같다는 말을 되뇌이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생의 일들이 마치 물거품과 같이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망연(茫然)해질 뿐이다.

  원숭이를 잡는 손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나무에 페트병을 매달아 두고 그 속에 바나나를 넣어 놓는 것이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움켜잡고 놓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손만 놓으면 자유를 얻을 수 있는데 바나나를 갖겠다는 욕심에 자유와 목숨을 잃게 된다. 

인간도 원숭이와 다르지 않다.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는 진리(眞理)를 앞에 두고 돈(沌)을 움켜 쥔 손을 펼 줄 모른다. 옛날, 어느 마을에 인자한 선비가 가난한 농부에게 땅을 줄테니 네가 갖고 싶은 만큼 땅에 줄을 그어 표시를 하라고 하자, 이 농부는 끝없는 욕심에 줄을 긋다 죽고 말았다고 한다. 

 신은 인간에게 평등이란 자(尺)를 내주고, 자유를 선물했지만 모두가 똑같은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해탈의 문을 들어서면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부합(符合)하겠지만 인간의 욕심(慾心)은 번뇌를 낳고 반목하며 갈등하고 순간마다 업(業/카르마)을 쌓는다. 교만(驕慢)과 사치(奢侈)는 자아를 썩고 병들게 하는 불치병이다. 남들과 비교하며 사는 삶은 늘 고단함을 동반한다. 교만함에

내포된 자기 우월주의는 열등의식의 발로(發露)다. 열등의식의 말로(末路)는 자아 상실로 이어진다. 공작은 자신의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다가 승냥이의 발톱에 목숨을 잃고 만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과거의 화려했던 순간의 영광을 잊어가는 것이다. 출세로 얻은 명예도 늙고 병든 노인에겐 무거운 짊일 뿐이다. 성취감에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 속에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날뛰던 그 순간마저도 이미 빛 바랜 화첩처럼 녹슬어 있고 먼지가 폴폴 날린다. 병든 몸 하나 추스를 힘이 없어 바둥대는 것이 삶의 끝자락이다. 

 늙어 병드는 경우도 있지만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을 앓는 경우도 있다. 어느 여 배우는 젊은 나이에 이혼을 하고, 두 딸과 살던 중 불치의 병을 앓게 됐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두 딸도 해외에 가 있는 남편에게 등 떠밀어 보내고 홀로 마지막 남은 죽음의 시간을 맞으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마지막 남은 2주를 어떻게 쓰고 갈까 고민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돌보다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지방에 있는 장애인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남아 있는 2주의 삶은 고단함 속에서 작은 보람을 얻게 됐고 그녀의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 짐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신은 인간에게 삶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그 끝자락도 정해 놓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건강을 회복해 살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세상 번뇌로부터 손을 놓고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원숭이처럼 눈앞의 이득에 자유를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손을 놓으면 해탈의 문이 열린다. 번뇌도 결국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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