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

귀향(鬼鄕)

해암 송구호 2016. 3. 3. 11:48

일반적으로 귀향(歸鄕)은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꽃다운 나이에 죽어 이국땅에 묻힌 채 돌아오지 못하는 넋이 있다. 이 영화는 그들의 넋이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형제와 만나는 가설을 세우고 시작하는 한이 서린 영화다.

도입부에 앵글은 평범한 가정집에 칼을 든 강도가 침입해 어머니 앞에서 딸을 강간한고 나가다   아버지와 맞닥뜨려 몸싸움 중  둘 다 칼에 찔려 죽는 끔찍한 장면이 나온다.

소녀는 한순간에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하나는 자신의 순결을 잃은 문제고 또 하나는 아버지의 주검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진 소녀는 정신을 놓아버린다. 이성으로부터 통제받는 세계를 이탈한 소녀, 자유 영혼의 소유자, 현실세계 이단아였던 그녀는 결국 어머니 손에 끌려 만신(萬神)에게 맡겨지게 된다. 신통하게도 신딸이 된 후 굿판이 벌어지면 접신을 하게 되고 산자와 죽은 자를 만나게 하는 영매(靈媒)가 된다. 狂女와 위안부 할머니 영희의 만남은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종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20만의 소녀 중 238명이 살아 돌아 왔다. 그중 현재 살아있는 생존자는 46명이다. 이미 미수(米壽)를 앞두거나 넘긴 할머니들은 이승의 삶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귀향은 그분들의 회한이 담겨진 영화다.

1943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 갔다. 남자들은 총알받이로 여자들은 일본 군인들의 유희(遊戱)의 제물로 끌려갔다. 정민과 영희는 열차 안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일본군 영내 위안소 막사다. 막사는 쪽방처럼 1평 남짓한 방들이 양쪽으로 들어 차 있다. 방안은 세숫대야에 물이 있고 병사들이 건네는 전표를 넣는 상자와 수건이 전부다. 병사 한 명당 주어진 시간은 10분, 하루 종일 병사들을 상대해야 하는 어린 소녀는 성에 눈이 뜨기도 전 성의 노에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일본 병사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급급했고 삶이 무료한 소녀들은 삶을 포기하거나 도망을 하지만 쉽게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병에 걸리거나 도망하다 붙잡히면 총살 후 화장을 했다. 병참 소모품처럼 기능을 잃게 되면 죽이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연합군의 반격으로 일본군이 수세에 몰리게 되자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은폐하기위해  위안부를 모두 죽이려고 뒷산에 파놓은 구덩이로 끌고 가 총살을 하려는 순간, 아군의 구출 작전으로 일부희생자도 있었으나 주인공은 살아 돌아온다. 친구 정민은 함께 도망가다 일본군이 쏜 총에 맞고 사망하는데  죽기 전 몸에 지니고 있던 부적 '괴불 노리개'를 건넨다. 괴불 노리개는 연근에 붙어있는 열매로 삼재를 막는다는 설이 있어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우연치 않게 정민에게 괴불노리개를 받은 영희는 부적의 도움인지 모르나 죽지 않고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산자의 귀향(歸鄕)도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부모 형제가 사는 고향 싸리문 근처는 얼씬 거리지도 못한 채 타향살이를 하며 평생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지은 죄도 없는데 과거를 숨긴 채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병자호란 때 청에 끌려갔던 여자들 중에는 처녀, 유부녀, 양반 상놈 가릴 것 없이 수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일부는 청나라에 눌러 살았고 일부는 환속금을 내고 풀려났다. 당시 조선은 유교국가로 남녀 간 유별함을 엄격히 따진 때였다. 정조(貞操)는 여자의 목숨과 같던 때다. 인조(仁祖)는 특별교시를 내려 "청에 끌려갔다 돌아온 還鄕女들을 "강물에 목욕하면 순결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해서 무마했다.

그러나 그 이후 남녀관계가 복잡한 여인을 화냥년이라 비하했던 것을 보면 당시 사회적 냉대가 얼마나 심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각설하고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전쟁의 첫 번째 피해자는 힘없는 여자였다. 재물을 약탈하거나 여인을 취하고 농락했다.

  터키는 오스만 제국 때 독일편에 섰다가 패전국이 되면서 연합군에 의해 국토가 임의로 할양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당시 군부 지도자였던 아타튀르크 무스타크 케말 장군이 연합군을 상대로 전쟁을 해서 현재의 터키 영토를 지킬 수 있었다. 당시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보스포러스 해협이 피로 불게 물들었다고 한다.

 전쟁 후 이슬람 국가의 상징이던 터키국기의 초록색 바탕이 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피로 국가를 지켜낸 젊은이들의 희생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지금도 국기에 대한 터키국민의 사랑은 남다르다. 시장에 가도 터키국기가 만장기처럼 걸려있고 시내 높은 건물에는 어김없이 국기가 계양되어 있다. 먼 산에도 국기는 펄럭인다. 그들의 가슴에 끓는 피를 식지 않게 하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외세의 힘을 빌려 나라를 지키려는 생각은 나의 주권을 그들에게 넘겨주는 것과 다름 없다.

 이시대 어머니는 밥상머리 교육을 되살려 외세로부터 강해지는 법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한다. "피는 꼭 필요할 때는 흘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라를 빼았기는 순간 너희들의 순결도 잃게 된다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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