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책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그의 글을 접했었다. 화려하지 않은 미사여구와 과거 사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사실감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었다. 이책도 마찬가지다. 지루함 보다는 역사속으로 시간 여행을 하고 온듯한 느낌이 든다.
십자군의 원정이 있던 유럽의 상황은 제후들의 영토싸움이 치열할 때다. 유럽은 서로 땅을 넓히려는 자들의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정략결혼이란 말은 아마 이당시 여자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말이 아닐까? 여자는 집안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혼과 파혼을 했다. 카톨릭교회에서는 이혼을 할수 없으니 결혼 무효라는 주교의 결정이 내려지면 이혼이 된다. 당시 유럽사회는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삶을 살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들의 삶을 주관하는 것은 종교의 속박이다. 따라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죽어 장례미사를 할때까지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장례미사를 하지 않고 묻힌다면 천국행 열차에 오를 수 없다고 믿었다.
유럽사회에서 독특한 문화 중 하나는 무덤이 성당 인근에 모여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 당시 힘좀 쓴 사람은 사원안에 묻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당 가까운 곳에 묻혀야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중세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황의 권위는 하늘을 찌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말로 산사람하나 매장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교황이 성무금지(聖務禁止)를 命하면, 神父는 미사, 세례, 결혼, 장례식 등을 집도할 수 없다. 신 중심의 세상에서 성무금지는 인간으로 살아가야할 이유를 없게 만드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었다. 파문은 성무금지보다 한단계 위다. 살아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아니란 말과 같다. 누구하나 그와 말을 섞지않고 봐도 못본척 하는 왕따의 고충을 겪어야 하는 것이 파문이다. 황제라 해도 신하가 명에 따르지 않고 군사가 그의 명을 듣지 않는다면 황제가 아니다. 그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무섭다 ! 조선시대에 불효자로 낙인찍히면 "생귀신"으로 취급했던 예가 있다. 낮에는 활동을 못하고 밤에만 활동하되 어느누구도 그를 아는 척 하지 않는다. 감옥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중세 사회의 교황의 위치는 바로 권위로 권력을 휘어잡는 세상 이었다. 황제를 능가하는 힘이 교황에게 있었고 교황은 십자군의 당위성을 부르짖은 것이다. 성전 예루살렘의 해방을 위해 떠나라! 이세상에서 지은 죄를 사해 주겠다. 이교도와 싸움 중 죽으면 천당에 갈 수 있다. 이교도를 죽여라 ! 죽여라 ! 십자군은 중세 땅따먹기 전쟁에 힘을 쏟고 있는 기사, 영주들에게 새로운 전장터를 제공해주고 이교도에 빼앗겼던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교도들이 사는 땅을 잔혹하게 짓밟았다. 로마황제들이 종교탄압의 일환으로 콜로세움에서 사자를 풀어놓고 기독교인을 살육할 때 처럼 잔인함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십자군은 마을을 약탈하고 저항하는 자들을 모두 죽였다. 그것도 모자라 인육을 먹으니 소름이 돋을 일이었을 것이다.
십자군 전쟁을 통해 교황은 권위를 잃었다. 그리고 황제는 권력이 강화되었다. 점차 영주의 힘이 약해지고 중앙집권이 강화되어 갔기 때문이다. 카놋사의 굴욕, 십자군 전쟁, 아비뇽 유수는 유럽의 종교와 정치가 갖고 있던 권력 축의 이동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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