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道)은 어느 곳이든 자주 왕래하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물론 다니던 길도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 자연상태로 되 돌아가는 것이 길(道)이다. 오늘 풀어가려는 이야기는 길과 장벽이다. 길은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면 자연스레 생겨난다. 산행을 하다보면 없던길이 어느틈에 생겨나는 것을 종종 보게된다. 예전에 미국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길을 놔두고 화단을 가로질러 다니면서 길이 생겨나자 학교 교장이던 아이젠하우어는 그쪽으로 다시 길을 놓으라고 했다한다. 길은 생겨나기도 하지만 쓰지 않고 버려두면 어느틈엔가 풀이자라고 나무가 자라 자연의 일부로 되 돌아가고 만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했다. 로마가 대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도로는 아주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처럼 로마를 중심으로 우선 도로부터 놓았다. 물론 도로 때문에 "한니발"의 침략으로 로마가 멸망에 처할 위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로마의 융성기에 도로는 지배의 힘으로 작용했다. 도로는 물류의 이동과 군사들의 이동에 주로 쓰였다.
보통 로마군대는 빠른거름으로 이동할 때 하루에 대략 50Km를 이동했다. 중무장 보병의 걸음으로 걷기에는 요즘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로마군의 키는 평균 150cm ~ 160cm 정도였다. 도로는 이들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잘 놓아졌다.
중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했다. 중화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주변국은 오랑케라해서 배척했다. 그들의 세계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리장성을 축조했다. 인공 축조물로 유일하게 달에서 보인다는 만리장성, 대단한 건축물이 아닐 수 없다. 중화사상은 결국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외부와의 단절을 가져와 문화적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근대 아편전쟁을 일으킨 영국에 국토를 할양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물론 아편에 의해 나라를 잃었다는 이유로 지금도 마약범은 중죄로 처벌한다.
로마는 주변국가와 동맹을 맺고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전쟁으로 싸움을 해도 전쟁이 끝나면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재차 전쟁을 일으킬 때는 영토를 빼앗고 국민은 죽이거나 노예로 삼았다. 시민들 가운데도 신분의 격차에 따라 서로를 돕는 파트너쉽이 끈끈했다. 로마는 서로 상생하려는 마음이 여타 어느민족보다 강했다. 반면 중국은 이민족을 배척하고 자국민이 가장 우월하다는 나르시즘에 빠져있었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로마는 있던 장벽도 허물었던 반면 중국은 만리장성을 축조하고 외세를 막으려 전전긍긍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보여주듯 외세에 대한 개방을 꺼렸다. 소중화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던 것이다. 길은 서로 오고갈 수 있는 소통의 장이다. 장돌뱅이들이 봇짐을 지고 다니던 길이고 보부상이 국경을 오가며 물물교역을 하던 곳이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 초반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할 무렵 세계언론은 자동차도 몇대 안다니는 나라에서 고속도로가 무슨 필요가 있냐며 비아냥 댔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는 국가 대동맥으로서 역활을 톡톡히 해냈다. 뿐만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는 무역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지 않은가?
소통은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한 화두다. 서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면 이 또한 금상첨화가 아닐까?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소통이고 서로를 돕고 살 수 있다면 공존이란 희망의 단어를 얻을 수 있다. 자신만을 위해 주변의 동정을 살피지 않는다면 나의 안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 산다는 것이 그렇다. 독불장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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