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해암 송구호 2014. 3. 10. 11:53

 

13. 율리우스 카이사르(2)

 

카이사르 와 돈(錢)

빚의 크기 : 역사 연구자들의 수수께끼

                 개인의 별장을 빚쟁이에게 빼앗기지 않은 점

                  무엇에 사용되었나?

                  부담없이 고리대금을 빌려쓸 수 있었나?

카이사르와 크라수스의 관계(債務者 ↔ 債權者) : 크라수스가 14세 위

※ 크라수스 : 로마 제일의 갑부(당대 재산이 국가 예산의 절반 ← 몰수 재산 경매에서 큰 이득챙겨)

돈의 사용처 : 여자선물(극소수의 돈)외 정치자금

                    도로보수

                    검투사 시합

                    선거운동

군(軍) - 백인대에 빌려 병사의 급료 지급(병사들에게 사기, 백인대장 꿔준돈 받기위해 충성)

카이사르는 남의 돈을 이용 혁명을 이뤄냈다.

 

중년시절(BC 60 ~ BC49) /카이사르 40 ~50세

보나 여신제 밤 불미사건 재판 / 빚쟁이 원인

에스파냐 속주 부임(赴任) 늦어져 → 세제개혁 (속주인, 로마인)

공명정대 - 현지 로마인 감사(돈 헌납) ← 빚 갚는데 유용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에스파냐인) : 키케로와 대등한 교양, 카이사르 참모

 

삼두정치(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삼두(트리움 비라투스)

집정관 - 카이사르

 1) 폼페이우스 옛부하 농지분배

 2)오리엔트 재편성안 승인(승인) - 폼페이우스 작성

 

카이사르 추진방식(다목적)

개인의 이익을 공익의 이익 또는 타인의 이익과 결부시키는 능력.

취임(BC59년 집정관)

2명의 집정관 교대 근무

 ▷ 권표(파스키)

     12명의 호위병(릭토르) - 비번 때는 권위상징인 권표, 호위병이 없음

▷ 집정관 통달 = 일보 또는 원로원 의사록 / 원로원 특권 붕괴

▷ 호르덴 시우스 법 - 평민 집회에서 (호민관) 가결

▷ 율리우스 레페르 토리(공직자 윤리법) /100항

    - 1만 세스테리 티우스 이상 선물 받지 못하게(1인 병사 35년치 해당)

深謨遠慮(심모원려) / 멀리 내다보는 술책

농지법

 - 제안자 살해 무산 - 그라쿠스 형제(셈 프로니우스 농지법) / BC133년

                                 호민관 사투루니 누스(BC100년)

- 율리우스 농지법(셈프로 니우스 농지법 보완)

  1. 양도인정(20년후 타인)

  2. 국유지 임차인 자격자

       폼페이우스 따라 5년동안 종군한자

       3인의 아들을 둔 무산자

 3. 부정임차(1천 유겔룸 이상) 환수

    폼페이우스가 오리엔트에서 국고 헌납금 2억 세스테르티우스 사용

 4. 보상액 결정 - 재무관

 5. 재분배 상설위원회 20명(법안자는 참여 않는다)

    - 캄파니아 지방은 재분배 대상에서 제외

      (나폴리, 폼페이)비옥한 땅으로 원로원 유력자들이 마구 빌려 사실상 사유지로 삼아버린 농장

속주세

징세업자(푸브리 카누스 - 예납금 1/3 폐지(안)

 1.속주세의 과징수 예방

 2. 예납금액 공공사업 투자 장려

 

갈리아(서유럽) / 라인강 서쪽

프랑스(프로방스 제외)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남부

독일서부

스위스

업(業) : 농업, 축산업(부족 ; 대 : 10, 소:100)

인구 : 1천 2백만 명

 

게르만족(동유럽) / 라인강 동쪽

기후가 척박하다.

먹을 것이 부족하여 이동.

 

헬베티족(스위스) ; 레만호에 거주하던 헬베티족이 갈리아 서쪽 끝(브르타뉴지방)으로 이주 결정

 총인구 : 36만 8천(청 장년 남 9만 2천)

              2년 준비(12개 도시 400호 불태운 뒤 이동)

 

갈리아 전쟁 1년째(BC58년 카이사르 42세)

(하이두족, 세콰니족)이 헬베티족 통과 과정 싸움 / 하이두족이 로마에 개입 요청

카이사르와 전투에서 생존 - 11만명 다시 고향으로 돌아감.

 

선처(善處)

 1.게르만족이 하이두족을 노예삼는 것은 로마의 불명예

 2. 게르만족 갈리아로 남하 호전성 미뤄볼 때 이탈리아 침략

 3. 아리오 비스투스 세력 팽창

 

갈리아 전쟁 2년차(기원전 57년 /카이사르 43세)

 센강의 북동쪽

 갈리아의 3분(언어, 풍습, 자연환경)

- 프랑스 남서부(아퀴텐 지방)

- 중부 갈리아

그리스인 - 상업에 도통

벨기에인 - 야만적이고 호전적(문명접촉 없어서)

 

BC58년 ~ BC57년 / 총사령관 ; 수에시 오네스 족장 갈바

벨기에 전력의 불온한 움직임 : 40만 / 카이사르의 신속한 대응

이동한 이유

 1. 로마의 갈리아 지배권 확장에 대응

 2.게르만 침입 불허, 로마인 침입 불허(자존심)

 3. 약육강식 논리 더이상 불통 우려

 

갈리아 전쟁 3년차(BC56 년 /카이사르 44세)

전쟁을 해야하는 이유

 1. 로마인 볼모 구출

 2. 복종에 반기든 죄

 3. 인질 제공 후 면절죄

 4. 타 부족 선동

 5. 다른 지방에 악 영향

 

갈리아 전쟁 4년 차(BC55년 / 카이사르 45세)

빚이 점차 사라짐(자,타의 돈에 대한 구분 없음)

 

갈리아 전쟁 5년차(BC54년/카이사르46세)

 제 2차 브리티니아 원정(승리 후 폭풍을 만남)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 사망

 

갈리아 전쟁 6년 차(BC53년 /카이사르47세)

신병 : 새로운 독립군단으로 편성

삼두정치 붕괴 - 원로원의 공작

 

갈리아 전쟁 7년 차(BC52년 /카이사르48세)

베르퀸 토릭스 궐기 촉구 (부르주 농성)

하이두 족 내분

카이사르 위기 / 원로원파 득세

알레시아 공방전 / 알렉산드로 대왕 전투와 맞먹는 승리

 

카이사르의 루비콘 이전 상황

- 원로원파 재선저지

- BC6세기 경 공화정 BC1세기 초 강대국 로마와 맞지 않는 틀(페러다임 교체)

- 카이사르 반대파 법정 끌어 들리는 명분

 1.속주방어 한계 오버(게르마니아 침략)

 2.사비로 군단 편성

 3. 피 정복자에 율리우스 하사(클리엔 테스 조직)

 4. 자금조사< (스키피오 실각:대카토, 카이사르 실각: 소카토)>

- 마르켈루스(원로원파) 카이사르 총사령관 해임 본국송환 제안

- 카이사르 대변인으로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지명

  카이사르 서한 부결

원로원 최종권고 : 1. 카이사르 귀국

                          2. BC 54년 집정관 도미티우스 에노발부스,이탈리아 안에서 4천 지원병 모집 키살피나

                             속주 부임.

                          3. 카이사르 직접 집정관 입후보.

- 반역자로 몰린 카이사르.

루비콘 강 앞에서

 1. 로마국가 체제 개조

 2. 새로운 질서의 확립.

루비콘 강을 건너다. / 참모 라비 에누스 팀 이탈(폼페이우스와 클리엔테스 관계 끊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