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욕정(慾情)의 덫

해암 송구호 2018. 3. 7. 13:14


 손은 뇌의 하수인으로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여 검사 성추행이 한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온누리가 '더러운 손'으로 애꿏은 손을 질타했다. 검찰 직원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은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우선 경건하고 예를 갖춰야 할 장소에 자신의 이성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시고 조문을 간 무례와 오만한 태도,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동료들은 권력자의 옆에 여직원을 밀어 앉히는 태도는 마치 사자우리에 토끼를 던지는 것과 흡사했다.
  들불이 번지듯 우리나라 전체를 들끓게 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백은 대부분 자신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속내를 드러내는 일로, 출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섣부르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약자의 한계성과 여성에게 수치심을 유발케 할 수 있는 내밀한 부분의 문제를 타인과 공유해야하는 불편한 진실이 피해자들을 움추려 들게 했다. 최근 검찰에서 불기 시작한 METOO운동은 우리사회의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뻔뻔함에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연희단 패거리의 연출자 이윤택은 마치 연극을 할 때처럼 예행연습을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하는 내부고발자의 2차 폭로 이후 대중을 상대로 벌인 위선과 가식이 드러난 후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연극영화과의 대학생들을 가르키는 교수들의 일탈도 민망스럽다. 어느 방송프로에서 딸들과 함께 출연해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는데 그들이 성추행범 이란 사실에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서울의 명지ㅇㅇ 대학은 ㅇㅇ학과 교수들이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고 있는 상태라 신학기 수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울지마 톤즈>로 유명했던 이태식 신부의 유업을 잇겠다며 아프리카 남수단에 자원봉사로 갔던 한 만삼 신부는 여성 자원봉사자에게 몹쓸 짓을 했다.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의 경우 자기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꽃뱀으로 모는 몰염치를 보여 공분을 사고 있다.
 문학계에서도 커다란 충격을 준 인물이 있었다. 만인보를 쓴 고은 시인이다. 한때 속세를 떠나 승려로 살던 그의 기행을 목격했던 여성시인은 그를 괴물(怪物)이라고 했다. 음난한 행위를 길거리 공연하듯 하는가 하면 혹여 여성이 옆에 앉기라도 할라치면 손은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린다고 했다. METOO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가 영국 언론을 통해 자신은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다며 집필활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또 다른 목격자들의 연잇는 고백으로 그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아주 작은 파편조각으로 만든 사건이 어제 저녁 한 방송사를 통해 밝혀졌다. 차기 대권주자로 확실시 되었던 충청남도 도지사 안희정의 여성 수행비서관 성폭행 사건이다. 시원시원한 언변과 기존 정치인들처럼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태도에 차기 대한민국을 이끌 인물로 꼽았었다. 이명박, 박근혜가 선거유세 과정에서 이미 불량품으로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보수, 진보 양 진영의 기싸움에 밀려 한국 정치사를 후퇴시켰던 과오가 뇌리를 스치면서 안지사의 민낯이 드러난 것은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훌륭한 사람은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앞에서는 선한 모습으로 뒤에서는 사악한 악마로 이중의 모습을 지닌 위선자였다. 이번 METOO운동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안희정 충남지사의 가면을 벗긴 것이다.
 처음 검찰내부에서 시작된 METOO운동이 문화예술계, 학계, 종교계 및 정치계로 확산되고 있다. 성폭력 및 추행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한결같이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들로 사회적 명성과 함께 절대적 권력을 지닌 자였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애송이거나 이 사회에서 주류로 매김하지 못한 사람으로 권력자의 도움이 필요했거나 그들이 내치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미약한 존재였다는 점이다. 가슴으로 삭이고 지우려고 할때마다 더 생생한 기억으로 자리매김했을 아픔에 대하여 가해자는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기자회견 조차 연극의 각본처럼 표정연기까지 연출하려 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과거에도 종교계에서 성직자들의 일탈은 끊임없이 회자 돼 왔다. 아이를 낳기 위해 드리는 백일기도와 승려의 관계, 목사의 안수기도를 빙자한 신도들의 성추행과 신방을 빌미로 한 목사와 신도의 일탈 등, 종교인의 성적 일탈은 절대자를 내세운 매개자의 위력과 신을 믿는 자의 믿음이 결부되어 발생한다. JMS라는 종교는 매개자와 성관계를 가져야 하늘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교리를 펴면서 신도의 성을 농락했고 그들은 세례의식처럼 그의 성스러운 손길이 자신의 몸에 닿기를 간절히 원했다.
 종교인들의 일탈 행위는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면서 신도들을 농락하고 겁박하는데 따지고 보면 감언이설에 불과하다. 신(神)은 그들의 또 다른 가면이다. 물론 선한 삶을 지향하는 다수의 종교인들에 비해 아주 티끌만큼 작은 소수의 일탈이긴 하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 꼴? 하지만 신을 빙자한 오만 방자한 그들의 태도에 대중은 종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종교는 태생이 수탈과 지배를 모토로 삼았으니 말이다. 
 욕망은 끝이 없다. 더더.. 하다 배터진 황소개구리처럼 끝없는 갈구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자신의 삶을 몰아 넣는다. 파리지옥이란 육식 식물이 있다. 식물은 파리가 좋아하는 향으로 유혹해 죽음의 덫에 가둔다. 순간의 꿀을 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내려놓아야 하는 미투의 가해자들, 어떤 이는 정치인의 삶을 내려 놓아야 하고 어떤 이는 광대의 삶을 접어야 한다. 또 어떤 이는 교수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 명성이 겨울 눈 녹듯 한 순간에 사라질 판이다. 개중엔 아직도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부정하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자도 있다. 심지어 물적 증거가 없다는 점을 구실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권력은 추악한 성질을 함유하고 있다. 자신의 결점은 미화하고 타인의 작은 잘못에 불같이 화를 낸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처럼, 게다가 자신의 허물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함을 지녔다. 유학에서는 이런 자를 소인이라 폄하했다. 하찮은 인간이다. 현재 우리사회는 하찮은 인간들이 설레발을 떨고 있다.
  성인군자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위계(位階)에 의한 권력을 이용해 남의 여자 치마 속을 들여다보는 추잡한 행동은 말았어야지. 남의 장례식장에 가서 여자의 신체를 더듬는 그 더러운 손! 자기의 행동을 괘념치 마라, 다 잊어라, 너는 나의 거울이다. 러시아와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만 기억해라. 사이비 교주의 말이 아니라 이제껏 대중을 속이며 위선의 가면을 쓰고 정치판을 어지럽힌 한 정치인의 부드럽지만 깊이를 헤아리기조차 두렵고 무서운 성폭력 가해자의 말이다.
  METOO운동을 계기로 대중에게 한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서로가 감시자가 되어 더러운 손이 더 이상 뱀 혓바닥처럼 널름대지 못하게 감시해야 한다. 또 상관 옆에 여직원을 앉히는 기업의 오래된 퇴폐적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시도하려는 자들에게 자신의 거부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배우 조민기의 상습적 성추행에 ㅊㅈㄷ 연극과 학생들은 여학생을 부를 때마다 남학생이 함께 따라가 성폭력을 막았다고 한다. 심지어 방송촬영 때도 교수가 좋아서라기 보다 나쁜 손의 움직임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그의 옆에 앉았었다는 후일 담에 웃프다. METOO는 페미니즘을 넘어 조직의 권력 장벽을 허무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